나무 그늘 같은 사람



“얼굴이 바로 푸른 하늘을 우러렀기에
발이 항시 검은 흙을 향하기 욕되지 않도다.”(정지용, ‘나무’ 1연)

주님이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이제 며칠 후면 하지입니다. 계절이 아주 빠르게 여름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청명한 하늘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보여주시길래 목회실 식구들도 점심 식사 후에 밖으로는 나가지 못하고 지붕에 올라가 남산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교회 십자가 탑, 햇빛 발전소, 남산 타워로 연결되는 풍경이 아름다웠습니다. 맑은 대기 속에 머물다 보면 마음까지 절로 환해집니다. 한 동안 거기 머물다 보니 지붕의 열기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낮 시간에 조금 움직이다 보면 저절로 그늘을 찾게 됩니다. 뙤약볕 아래서 오랜 시간 걸어본 사람이라면 한 줌 그늘이 주는 위로가 자못 깊다는 것을 다 알 겁니다. 시골 마을 어귀에 있는 느티나무 그늘이 떠오릅니다. 그 밑에 평상이라도 마련되어 있으면 길을 가던 사람들이 잠시 다리쉼을 하다 가기도 하고, 이웃이라도 만나면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나무는 마음에 드는 사람과 안 드는 사람을 가리지도 않고, 잔소리를 늘어놓지도 않으면서 품을 열어 모든 이를 안아줍니다. 북한산에는 제가 좋아하는 귀룽나무가 있습니다. 산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그늘이 좋아 언제나 그 아래 머물다 가곤 합니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아름답습니다. 새소리와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노라면 어느새 울울함은 스러지고 평화로운 느낌이 배어듭니다.

나무 그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늘 시뜻한 표정을 지으며 부정적인 말을 늘어놓는 사람들 속에 머물면 저절로 힘이 빠집니다. 가르는 말, 다그치는 말, 성내는 말, 빈정거리는 말, 을러대는 말, 모욕하는 말, 새된 소리로부터 벗어나고 싶습니다. 도시에 살면서 그런 말로부터 벗어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세계-내-존재인 인간은 우리를 둘러싼 여러 가지 조건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주변에 있는 이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표정과 말씨, 그리고 행동 하나하나가 가족이나 이웃의 환경이 된다는 말입니다. 주변에 마음 따뜻한 이들이 많으면 우리 마음 또한 맑아지지만, 늘 우는 소리를 하는 이들이 많으면 맥이 빠집니다. 이웃 사랑의 기본은 다른 이들의 좋은 환경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월요일 목회자들의 모임에서 생각을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줌zoom을 통한 강의였기에 친밀하게 소통할 수는 없었지만, 그 모임을 주선한 이와 잠시 안산 자락길을 걸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느긋하게 걷는 시간은 치유의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산뽕나무에 매달린 오디, 풀숲에 숨어 열린 뱀 딸기에 저절로 눈길이 갔습니다. 느긋한 평화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사람들로 복닥이는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고요함을 누릴 수 있음을 왜 잊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소월의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섭대일 땅이 있었더면’이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나는 꿈을 꾸었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지런히
벌 가의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석양에 마을로 돌아오는 꿈을,
즐거이, 꿈 가운데.”

삶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꿈을 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런 한가로운 평화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 시에는 집을 잃어 떠돌 수밖에 없는 사람, 보습을 댈 땅 한 평 없는 사람의 쓸쓸함이 배어 있습니다. 일제 시대에 살았던 많은 이들의 경험이 그렇게 시적으로 형상화된 것이겠지요.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하여 시인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가느다랗게 이어지는 길이라 해도,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겠노라고 다짐할 뿐입니다. 제법 이런 시를 떠올리며 걷다가 다리 쉼을 하던 참에 동행한 목사님은 자기 삶에 잊을 수 없는 이정표가 된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습니다.

처음 지방의 소읍으로 목회를 나갔을 때의 일입니다. 평소에 늘 마음으로 따르던 목사님 한 분이 지리산에 가던 참에 그를 만나러 잠시 들렀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성삼재까지 차로 모셔다 드리고, 그는 돌아서야 했습니다. 그 날이 마침 수요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요집회를 마치니 늦은 밤이 되었습니다. 성삼재까지 다시 올라가 약속했던 산장까지 홀로 걷는 길은 호젓하다기보다는 괴괴했습니다. 두 시간여 무서움을 달래며 걷는 데 저만치 산장의 불빛이 보였습니다. 밤 10시가 넘어 실내등은 다 꺼졌지만 외등 하나만 밝혀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래로 작은 불빛 하나가 왔다갔다 하는 게 보였습니다. 선배는 홀로 산 길을 걸어올 후배를 기다리며 서성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불빛이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밤에 두 사람은 계곡에서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그 날 보았던 그 불빛은 그의 마음에 쑥 들어왔고, 그날 이후 그는 그 선배를 선생님으로 생각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기다려주고, 마중까지 나와 준다는 것이 때로는 큰 격려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 홀로 동떨어진 자리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이 참 중요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다양한 마중과 배웅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아브라함은 마므레 상수리나무 곁에 있는 장막 어귀에 앉아 있다가 낯선 세 사람을 발견하고는 달려 나가 땅에 엎드려서 절을 하며 그들을 맞이합니다. 손님을 신이 보낸 존재로 여겼던 유목민의 전통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귀한 손님으로 맞이합니다. 물과 먹을 음식을 장만하겠다면서 “좀 잡수시고, 기분이 상쾌해진 다음에 길을 떠나시기 바랍니다”(창 18:5)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구절과 만난 이후에 마음에 소망 하나를 품게 되었습니다. 가급적이면 나를 찾아온 이들이 마음이 상쾌해져 돌아가게 만들고 싶다는 소망입니다. 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러 이 구절을 떠올리곤 하는 건 사실입니다.

소돔 성에 살고 있던 롯도 낯선 이들을 자기 집으로 맞아들였습니다. 히브리서는 나그네를 대접하기를 소홀히 하지 말라면서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대접”(히 13:2)한 사람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롯을 머리로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가 이승우 선생은 <사랑이 한 일>이라는 책에서 롯이 나그네들을 영접한 경위를 유추해보고 있습니다. 도시적 삶에 이끌려 소돔에 정착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소돔 사람들은 그를 뜨내기로 취급할 뿐, 자기들의 일원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동료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처럼 쓸쓸한 일이 또 있을까요? 귀속에의 열망은 번번이 좌절되었습니다. 이승우는 롯이 경험했을 법한 일을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 땅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그 도시에 스며들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도시 사람들이 그를 스며들지 못하게 했다. 그가 그 도시 사람들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도시 사람들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무 일 없을 때는 영역 안의 일원처럼 대했지만 무슨 일이 있을 때는 영역 밖의 외부인으로 간주했다.”(이승우, <사랑이 한 일>, 문학동네, p.31)

롯이 나그네들을 따뜻하게 영접했던 것은 자신이 겪은 따돌림의 아픔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토라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너희는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나그네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로 몸붙여 살았으니, 나그네의 서러움을 잘 알 것이다."(출 23:9)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떠오르지만 어쩌면 여러분에게 조금 낯선 성경의 인물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바르실래라는 사람입니다. 길르앗 사람인 바르실래는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피난길에 올랐을 때, 다윗을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세상의 인심이 압살롬에게로 넘어가고 있던 참이지만, 다윗 일행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침대와 이부자리, 대야와 질그릇, 밀과 보리와 밀가루, 볶은 곡식, 콩, 팥, 볶은 씨, 꿀, 버터, 양고기, 치즈 등이었습니다(삼하 17:27-29). 그는 다윗에게 설 땅이 되어준 셈입니다. 세상이 모두 내게 등을 돌리고 있는 것 같은 때, 가까이 다가와 꼭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주는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우리는 삶의 용기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바르실래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아버지도 떠오릅니다. 자기에게 돌아올 유산의 몫을 미리 달라고 했던 아들, 방탕한 생활 끝에 거지꼴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아들을 먼 발치에서 본 아버지는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눅 15:20). 참 이상하지요. 이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아직도 상거가 먼데’라는 개역판의 번역어가 뇌리에 스칩니다. 상거相距는 ‘서로 떨어진 거리’를 뜻하는 한자어입니다. 그 낯선 표현이 주는 생경함이 부자간의 재회를 더 도드라지게 만들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 처형 이후 갈릴리로 돌아간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주님은 밥상을 차려놓고 제자들과 만나셨습니다. 마중이라 해도 좋고 다가섬이라 해도 좋습니다. 다가섬은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적대적인 시선이 넘치는 세상에 사느라 우리는 지쳤습니다. 불쾌한 일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거리에서 곁을 스쳐지나가는 이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누군가를 진심으로 환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임이 분명합니다. 그래도 주님이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다른 이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두운 밤 산길에서 만난 깜빡이는 불빛 하나가 위안인 것처럼, 이 냉랭한 세상에서 우리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하나쯤 있다면, 형편이 아무리 힘겨워도 다시 살아갈 힘을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번 주일부터 교회 문을 열고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아직은 제한된 인원만 입장이 가능하지만 이렇게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기쁨과 설렘으로 이 주간을 보내겠습니다. 하루하루 건강 잘 살피시고, 지친 이웃들의 작은 그늘이 되어주십시오. 그 환대의 자리에서 문득 주님의 그림자를 보게 될 지도 모릅니다. 평화를 빕니다.

2021년 6월 17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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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승범



원주에서 단강으로 오는 길은 두 개가 있습니다. 문막 부론을 지나서 오는 길과 귀래를 거쳐서 오는 것이 그것입니다. 단강이 거의 가운데쯤 되니까 시작이 다를 뿐 모두가 한 바퀴를 도는 셈입니다.

 

부론으로 오는 길은 포장이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부론부터 단강까진 남한강을 끼고 길이 있어 경치도 좋습니다.그러나 귀래 쪽으로 오는 길은 아직 비포장입니다. 굽이굽이 먼지 나는 길을 덜컹이며 달려야 됩니다.


똑같이 온 손님이라도 부론 쪽으로 온 사람과 귀래 쪽으로 온 사람의 단강에 대한 이미지는 다릅니다. 부론 쪽 포장길로 온 사람은 ‘그래도 야 좋다‘ 그런 식이지만, 귀래 쪽으로 온 사람은 이곳 단강을 땅끝마을처럼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지난 가을부터 귀래에서 단강까지의 길이 포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여기 저기 길이 많이 파헤쳐졌고 돌로 된 언덕이 길을 만들기 위해 깨뜨려지기도 했습니다.


올 연말까진 공사가 끝날 거라 합니다. 그러면 귀래 쪽으로도 씽씽 차가 달리겠지요. 세월 따라 여기저기 막혔던 길이 시원하게 뚫리고 먼지 일던 길이 시원한 도로로 바뀌어 갑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마음은 왜 점점 멀어지는 것인지, 마음에서 마음으로 가는 길엔 먼지 더욱 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얘기마을>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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