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가 끝나면 <조국의 시간>을 읽기로 했다




요즘은 학생들 기말고사 기간이라고 한다. 학교에서도 코로나 안전 수칙을 잘 지키느라 등교하는 날이 많지 않다. 

고1이 된 딸아이가 가끔 침대에 모로 누워서 귀로만 듣는 온라인 수업이 절반이래도, 돌아오는 시험날은 나가는 월세와 월급처럼 어김이 없다.

그 옛날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버스에서 내리면, 혼자서 집으로 걸어가는 밤길이 어둑했다. 동대신동 영주터널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멈추어 서면, 언제나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먼저 살피다가, 머리 위에는 달이 혼자서도 밝고, 바로 옆으로 우뚝 보이는 혜광고등학교 창문들마다 그 늦은 시간까지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

거기서 그대로 북녘 하늘로 가로선을 그으면, 저 멀리 대청공원 6·25충혼탑 꼭대기에 작은 불빛들이 마치 작은 별빛 같았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내 두 눈도 따라서 깜빡이다가 지우듯 고개를 돌리고, 언제쯤 저 학교 창문에 불빛들이 꺼질런지, 달이 가는 길을 궁금해하다 보면 잠시 무서움도 잊을 수 있었다.

밤새 어둡고 쓸쓸한 시간을 어떻게 견디나, 방바닥에 누워서도 그런저런 생각을 꽃 피우다가 잠이 들던 나의 학창시절 이야기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서대신동과 동대신동은 산새와 지새가 둥그런 교육 마을이라 불리었다. 그대로 둥근 하늘을 머리 위에 이고 살아가던 조용한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무분별한 재개발로 인해 곳곳에 고층 아파트가 볼썽사납게 세워지면서, 나의 어린 시절 그 끝없는 한 폭의 하늘을 뚝뚝 끊어놓았다. 하지만 가슴속에선 언제든지 어릴적 뛰놀던 서대신동 바위산 위에서 바라보던 그 커다랗고 밝은 하늘이 펼쳐진다.

고향 마을을 감싸 돌던 구덕산과 푸른 부산항 앞바다도 밤에는 잠을 자는지 늘 깨어 있는지, 이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오늘밤에도 달은 어김없이 그 밤길을 혼자서 걷고 있겠다.

 



고1 딸아이가 얼마 전에 <나철 평전>을 다 읽었는데, 기말고사가 끝나면 <조국의 시간>을 읽기로 했다.

남편이 온라인 예약으로 주문한 6쇄 본을 단숨에 내가 먼저 읽고, 그동안 가슴에 옮겨 붙은 불꽃 하나를 어쩌지 못해서, 저 혼자서 가슴 먹먹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2주도 안 지나서 25쇄을 찍었다는 기사를 본다. 아마도 대한민국 출판 역사 이래 처음 찍는 놀라운 기록일 것이다.

흔들리며 걷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때론 길을 잃고 헤매이기도 하는 이 땅의 길이, 내가 걸어온 길이고 또 지금도 걸어가고 있는 이 풍진 세상이다. 

다른 한 쪽에선 진실과 정의를 덮으려 기를 쓰고 있지만, 이제는 조국이라는 한 사람이 그저 한 점의 불쏘시개와 촛불을 넘어서, 바른 마음으로 바른 눈을 뜨게 해주는 하나의 이정표가 되는 맑은 별빛 같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마음의 짐을 편히 내려놓으시고, 가족들과 함께 그저 평안하고 자유롭게, 이 땅 어느 곳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든지, 그 마음 만큼은 자연인과 자유인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랄 뿐이다.

상록수의 푸른 가슴에서 가슴으로 이어져온, 이 한 점의 별빛을 묵묵히 생각하면서 그리고 가슴에 먹먹히 씨알처럼 품고서 살아가려는 이들이 이렇게도 많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쁘다.

지금도 밤길을 걷는 듯 이 어둔 세상, 오래 쉬지도 못하고서 아침이면 눈을 뜨자마자 또 걸어가야 하고 살아가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의 가슴 가슴마다, 진실과 정의와 사랑이 불꽃처럼 번지고 있는 모습을, 내가 있는 곳에서도 평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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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신에게 낙심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송대선의 시편묵상 2021. 6. 14. 03:41

 

시편 78, 9

 

야훼여, 바른 판결을 내려주소서.

사람의 마음속, 뱃속을 헤쳐보시는 공정하신 하느님(공동번역)

 

但願睿哲主 鑑察我忠義(단원예절추 감찰아충의)

按照爾公平 報答我純粹(안조이공평 보답아순수)

꿰뚫어보시는 주님 제 진실함을 보소서

당신 공평 비추시어 제 결백함 알아주소서(시편사색, 오경웅)

 

 

시인의 기도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간절히 바른 판결을 원할 만큼 제 속마음이 깨끗하다고 감히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어리석고 제 깜냥을 헤아리지 못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꿰뚫어보시는 분 앞에서 감히 진실함을 주장할 만큼 뻔뻔하지는 못합니다. 늘 그렇듯 우리의 신앙은 이렇게 어정쩡한 자세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 그럼에도 당신 앞에서 머무는 은총을 허락하시고 당신 앞에 무릎꿇는 끈기를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은총으로 인하여 헝클어진 제 마음속 어둠의 실마리들을 하나씩 끄집어내게 하시고, 끈기로 인하여 헝클어짐에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그래도 이 숨이 있는 동안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내어놓게 하십시오. 옛사람들의 결심처럼 일식상존(一息尙存), 마지막 숨이 붙어있기까지 그리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사도 바울 선생의 권면처럼 어떻게해서든지 저 자신에게 낙심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제게 낙심한다는 것 자체가 저를 믿는 행위이지 당신을 의지하는 행위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날마다 순간마다 꺼내놓기는 그저 내 헝클어진 어둠들뿐인데 점차 느끼고 누리기는 당신으로 채워지는 인생임을 알게 해주시고 시간이 가고 삶이 힘에 부칠수록 그걸 더 잘 맛보도록 해주십시오,

 

그래서 꿰뚫어보시는 분과 제 허물과 연약함 사이는 한없는 간격뿐이요, 저로서는 도무지 건널 수 없는 아득함인데, 당신께서 건너오시는 데는 한순간이요 지척임을 알게 하시고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은혜로 그리될 수 있음을 소망하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겸비의 은총도 받을 것이요, 당신을 신뢰하는 가운데 자유로운 동심의 영혼도 회복하겠지요. 정녕 그리되기까지 결코 저 자신을 믿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게 해주십시오. 절망과 낙심의 지름길이 될 터이니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우징숑(오경웅)의 《성영역의》를 우리말로 옮기고( 《시편사색》) 해설을 덧붙인 송대선 목사는 동양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 귀동냥을 한다고 애쓰기도 하면서 중국에서 10여 년 밥을 얻어먹으면서 살았다. 기독교 영성을 풀이하면서 인용하는 어거스틴과 프란체스코,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등의 서양 신학자와 신비가들 뿐만 아니라 『장자』와 『도덕경』, 『시경』과 『서경』, 유학의 사서와 『전습록』, 더 나아가 불경까지도 끌어들여 자신의 신앙의 용광로에 녹여낸 우징숑(오경웅)을 만나면서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지평에 눈을 떴다. 특히 오경웅의 『성영역의』에 넘쳐나는 중국의 전고(典故와) 도연명과 이백, 두보, 소동파 등을 비롯한 수많은 문장가와 시인들의 명문과 시는 한없이 넓은 사유의 바다였다.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후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열린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제천과 대전, 강릉 등에서 목회하였고 선한 이끄심에 따라 10여 년 중국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누렸다. 귀국 후 영파교회에서 사역하였고 지금은 강릉에서 선한 길벗들과 꾸준하게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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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록 당신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편 3편 4절 竭聲籲主(갈성유주) 온맘과 영혼으로 주님 당신을 부릅니다(《시편사색》, 우징숑) 그러니 그럴수록 당신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이렇게 제 속의 결심은 연약하기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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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편 3절, 6절 그러나 야훼여! 당신은 나의 방패, 나의 영광이십니다. 내 머리를 들어 주십니다.〔3절〕 적들이 밀려 와 에워 쌀지라도 무서울 것 하나 없사옵니다.〔6절〕(《공동번역》) 護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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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편 2절 너 따위는 하늘마저 버렸다고 빈정대는 자 또한 왜 이리도 많사옵니까?(《공동번역》 彼無神助 其命幾何(피무신조 기명기하) 하느님이 저를 돕지 않으시니 그 목숨 앗는 것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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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편 1, 2절 한숨짓는 까닭을 알아주소서 살려달라 애원하는 이 소리 모르는 체 마소서(《공동번역》) 鑑我默默情(감아묵묵정) 聆我哀哀號(영아애애호) 침묵으로 말씀드리는 저를 살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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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편 4,5절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소서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공동번역》) 祈主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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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아무려면 제가 이런 짓을 했으리이까?

시편 7편 3절 야훼, 나의 하느님! 아무려면 제가 이런 짓을 했으리이까?(《공동번역》) 容我一申辯(용아일신변) 주님 저 자신을 변호하도록 허락하소서〔주님 제발 제 말 좀 들어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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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가르치셨을까, 여기 저기 바쁘실 하나님이



언제 만드셨을까. 아가의 눈과 코와 입과 귀를. 별빛 모아 담으셨나, 무엇으로 두 눈 저리 반짝이게 하셨을까. 


까만 눈동자 주위엔 푸른 은하수. 언제 저리도 정갈히 심으셨나, 눈 다치지 않게 속눈썹을. 어디를 어떻게 다르게 하여 엄마 아빨 닮게 하셨을까.

 

어디를 조금씩 다르게 하여 다른 아이와 다르게 하셨을까. 물집 잡힌 듯 살굿빛 뽀얀 입술. 하품할 때 입안으로 보이는 여린 실핏줄.  


손가락 열, 발가락 열. 그리곤 손톱도, 우렁이 뚜껑 닮은 발톱도 열. 열 번도 더 헤아려 크기와 수 틀리지 않게 하시고.


언제 가르치셨을까. 엄마 젖 먹는 것과 배고플 때 우는 것. 쉬하고 응가 하는 것. 하품과 웃음. 밤에 오래 잠자는 것. 혼자 있기보단 같이 있기 좋아하는 것.

 

찬찬히 엄마 얼굴 익히는 것. 햇빛에 나서면 눈감는 것. 노래 좋아하는 것.

 

언제, 모두 언제 가르치셨을까. 몇 번을 가르쳤기에 어린 아기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일까. 여기 저기 바쁘실 하나님이.  

-<얘기마을>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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