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사는 자식들


“월급은 12만원 받는데, 엄마, 저녁이면 코피가 나와.”


얼마 전 순림이한테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중학교를 마치곤 곧바로 언니가 있는 서울에 올라가 낮엔 방적공장에서 일하고 밤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는 순림이. 


“돈 벌기 그렇게 어려운 거란다.”


엄마 김 집사님은 그렇게 말했다지만, 마른침 삼키며 그렇게 말 할 수밖에 없었다지만. 그래 순림아, 삶이란 때론 터무니없이 힘겨운 것일 수도 있나 보다.


천근만근 저녁마다 두 눈이 무거워도, 선생님 뭔가를 쓰는 칠판에 낮에 일한 실올이 바둑판처럼 아릿하게 깔려도 두 눈을 크게 뜨렴. 네가 마주한 것, 배우는 것, 단순한 공부가 아닌 엄연한 삶이기에.

연신 눈물을 닦으셨다. 얼마 전 자식을 떠나보내고 남은 텅 빈 집에서 심방예배를 드리며 할머니는 그렇게 눈물을 흘리셨다. 어린아이 하나가 어른 몇 명을 당한다는데, 매 한 번 큰소리 한 번 모르고 키운 손주자식들, 녀석들의 얼굴과 웃음이 온통 방안마다 집안마다 가득한데, 이젠 집안이 텅 비었다.


떠나간 아들은 공장에 잘 나가고 있는지, 무슨 기계를 다룬다 하는데 다치지나 말아야 할 텐데. 며느리와 손주들이 얻었다는 방은 어떤지, 연탄가스 새는 건 아닌지.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 삼아 놀던 손자 손녀는 지금쯤 무얼 하는지. 낯선 세상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건 아닌지.


전엔 일 다 마치고 돌아올 저물녘이면 집안에선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건 사람이 살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표지이며, 가족에겐 어서 오라는, 오늘도 수고했다는 더없이 푸근한 손짓이었다. 집안에 들어설라치면 달려 나와 인사하던 손자 손녀 그리고 웃음 많은 며느리, 그럴 때면 하루의 힘겨움은 문 밖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는데. 며느리가 떠다준 시원한 물 한 사발에 하루의 피곤을 씻고, 모두들 한자리에 둘러앉아 저녁을 들면 그러면 족했는데. 피어나는 이야기꽃, 피어나는 웃음꽃, 그게 좋아 한낮 논밭에서의 시간도 견딜 만 했는데.


이젠 저녁연기도 달려 나오는 식구도, 기다리는 저녁상도, 둘러앉을 사람도 없다. 이사 하던 날 밤 이사 잘했다고 전화한 집사님은 목이 메어 제대로 말을 못했다 한다. 서로가 전화통만 붙잡고 시간 모르고 있었으리라.

흐르는 세월을 따라 단강에도 한두 집씩 전화기가 놓이고 가끔씩 그렇게 전화가 온다. 떠나간 자식들의 전화가 온다. 안녕하시냐고,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 멀리 사는 자식들.

<얘기마을>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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