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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73

흐린 날의 日記 우스운 일이다 피하듯 하늘을 외면했다 무심코 나선 거리 매운바람 핑곌 삼아 고갤 떨궜다 구석구석 파고들어 살갗 하나하나를 파랗게 일으켜 세우는 무서운 추위 그 사일 헤집는 매운바람 잔뜩 움츠러들어 멋대로 헝클어져 그게 바람 탓이려니 했다 가슴속 어두움도 잿빛 하늘 탓이려니 했다 우리 거짓의 두께는 얼마만한 것인지 우린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 건지 걷고 걸어도 벗어날 수 없는 거리 쉬운 祝祭 네가 보고 싶어 이처럼 흔들릴수록 네가 보고 싶어 뭐라 이름 하지 않아도 분명한 이름 구체적인 흔들림과 장식 없는 쓰러짐 그 선명한 軌跡 목 아래 낀 때를 네게 보이며 난 네 吐瀉物이 보고 싶은 거야 바람 탓이 아니다 추위 탓이 아니다 잔뜩 움츠러들어 멋대로 헝클어져 어둠속 서로를 알아볼 수 없는 우리들은 1988년 2021. 5. 27.
눈 앞에 있는 그 사람을 보세요 “방앗간 참새 왔어~!” 길 건너 덕리에 사는 권 씨 할아버지의 약국 문 여는 소리다. 스스로 참새가 되신 할아버지 덕분에 나는 어느새 방앗간의 주인이 된다. 82세의 권할아버지는 산 밑의 오래된 옛집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6남매를 낳고 키운 오래된 집은 늙은 부부의 거친 피부처럼 누런 빛깔을 띠고 여기저기 주름과 틈이 생겼으며 검은 그름이 나이테처럼 쌓여있다. “아부지 오셨어요! 때마침 커피타임인데 아부지도 한잔 허실라요?”라고 인사를 건네면 “그려, 한잔 줘 바. 개미다방 미스리보다 나을라나?”로 되받아 치신다. 몇 해 전부터 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가 요즘은 밭도 아닌 밭 비탈에 앉아 하루 종일 풀을 뜯는데 말려도 안 듣는다는 하소연부터 뒤뜰에 심겨진 감나무에 감이 얼마나 열렸는지 등 그저 .. 2021. 5. 27.
펼치다 펼치다 책의 양 날개를 두 손의 도움으로 책장들이 하얗게 날갯짓을 하노라면 살아서 펄떡이는 책의 심장으로 고요히 기도의 두 손을 모은다 느리게 때론 날아서 글숲을 노닐다가 눈길이 머무는 길목에서 멈칫 맴돌다가 머뭇거리다가 말없이 하늘을 바라본다 내 안으로 펼쳐지는 무한의 허공을 가슴으로 불어오는 자유의 바람이 감당이 안 되거든 날개를 접으며 도로 내려놓는다 날개를 접은 책 책상 위에 누워 있는 책이지만 아무리 내려놓을 만한 땅 한 켠 없더래도 나무로 살을 빚은 종이책 위에는 무심코 핸드폰을 얹지 않으려 다짐한다 내게 남은 마지막 한 점의 숨까지 책과 자연에 대하여 지키는 한 점의 의리로 하지만 내게 있어 책은 다 책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책이란 돈 냄새가 나지 않는 책 탐진치의 냄새가 나지 않는 책을 .. 2021. 5.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