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 아저씨와 복순이

 

 

집배원 아저씨가 
"등기왔습니다!"

싸인을 받으시고
대문을 나서려는데

우리집 대문지기 복순이가
"멍~멍~멍"

집배원 아저씨가 
허리를 구부리시며
덩치 큰 복순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

복순이는 
땅에 납작 업드리며 
큰 앞발로 아저씨 신발을 꼭 붙잡고 안 놓아준다

집배원 아저씨는
"반갑다고? 형아~ 이제 가야한다아" 하시고는

바쁜 걸음으로 대문을 나서며 
오토바이에 올라타신다

그 짧은 순간
망설이다가 건넨 아쉬운 한마디
"오빠얀데요..."

아저씨가 
"아, 그래요!" 하시며
한순간 푸른 하늘처럼 멍해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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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외의 마음 담아, 오롯한 사랑을 나누며

송대선의 시편묵상 2021. 5. 15. 07:18

사진/김승범

 

시편 57

 

당신의 크신 사랑만을 믿고 나는 당신 집에 왔사옵니다.

주님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거룩한 성전을 향하여 엎드립니다.(《공동번역》)

 

我欲入主室 暢沾主膏澤(아욕입주실 창첨주고택)

爰具敬畏心 朝拜爾聖宅(원구경외심 조배이성택)

 

나 바라기는 주님집 내실에 들어

풍성한 은택에 넉넉히 젖고

경외의 마음 담아 당신 전에서 예배하는 것이옵니다(《시편사색》, 오경웅)

 

시인은 주님의 내실(內室)에 들기 원합니다. ()도 아니고 청()도 아니라 실()입니다. 주님과 공적인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만나고자 함()도 아니고, 손님으로 찾아와 격식을 갖추고자 함()도 아닙니다. 시인은 그저 주님과 내밀한 만남을, 있는 모습 그대로 다 보여주고 싶은 만남을 원하고 있습니다. 내실(內室)은 사랑하는 장소요, 님의 허락없이는 결코 들 수 없는 장소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차지하는 장소요, 둘이 하나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복에 겨워 신음하며 자신을 잊어버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곳에서는 님의 신령한 은택에 젖어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곳에서 오롯한 사랑을 나누며, 님이 내가 되고 내가 님이 되는 영원같은 찰라를 맛보면 어떤 기분일까요? 동등하다 여길까요? 말도 안되는 시건방진 생각입니다.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사랑에 젖어 자신을 잃었다가 돌아오면 그저 한없는 은총을 입었기에 더욱 더 당신을 우러르고 그리워하지요. 당신이 어떤 분이신데 저를 내실에 들이시고, 제가 뭐라고 저를 받아들이셨는지,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그 무한한 간격을 당신의 능력으로 당기셔서 간격없게 하시고 품으신 은총에 감읍하면서도 화들짝 놀라 무릎 꿇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공경하면서도() 두려워떨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엎드려 예배하며 그 사랑을 내면에 꼭꼭 눌러 담습니다. 혹여 잊혀질까 그 사랑의 순간을 삶과 영혼에 오롯이 새겨내야지요.

 

그래야 하는 것은 시인이 주님의 집 내실에만, 성전에만 머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치가 전도되고 거짓으로 가득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현실, 인생을 혼돈스럽게 만들고 내면에 다듬어온 사랑을 조롱하며 신기루처럼 만들고자 하는 거짓된 힘을 대면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악에서 건지소서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데 그 간절한 기도는 역설적이게도 주님과 나누었던 내밀한 사랑에서 솟아오르는 울림입니다. 악과 싸우기 위해 시인은 독한 마음을 품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날을 날카롭게 벼리지도 않습니다. 악과 싸우다가 자신도 모르게 괴물이 되었던 어둠의 전철을 밟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악과 싸우다가 자기의()에 빠져서 악만큼이나 자신을 부풀린 괴물로 변한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여전히 많거든요. 그보다는 사랑을 간직하고 사랑을 부드럽고 여리게 노래하는 것이, 여전히 사랑에 목마른 것이 그를 그분 앞에 사랑스러운 어린아이로 여전히 살아가게 하는 것임을 님의 내실에서 배웠기 때문이겠지요.

 

* (), (), ()

 

()은 공적인 장소이며 공식적 업무를 처리하는 곳이다. 엄격하고 사적인 관계가 통용될 수 없다. 듣는 이와 호소하는 이의 높낮이가 아주 크다. 듣는 이는 지위만큼의 높은 자리에 서 내려다 보고 고하는 이는 낮은 자리에 엎드려 아뢴다. ()과 실()은 모두 집에 있다. ()은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기에 격식을 갖추고 머무는 곳이다. 주인은 예를 갖춰 맞이하고 손님은 신을 벗고 오른다. 주인과 손님 사이에는 아직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 연회를 즐길 수도 있고 사적인 일들을 처리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목적지향적인 곳이다. ()은 안방이다. 함부로 외부인을 들이지 않는 주인만의 방이다. 그곳으로 손님을 들인다는 것은 격의없음이며 친밀함이며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임이다. ()에서는 도무지 감출 바가 없다.

 

또 다른 의미, 공자가 제자 자로의 배움을 평하면서 어느 정도의 학업을 이루긴 하였으나 아직 완성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由也升堂矣 未入於室也)고 평하는 장면이 있다. 학문이나 기능, 사유 또는 관계의 정도를 평하는 언어이기도 하다. 옛사람들은 이러한 낱말의 간격에서도 자신의 처한 바를 파악하고 나아갈 바를 가늠하였다. 나는 그분과 어디서 뵙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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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손 내미사 자비 드러내소서

시편 6편 4,5절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소서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공동번역》) 祈主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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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징숑(오경웅)의 《성영역의》를 우리말로 옮기고( 《시편사색》) 해설을 덧붙인 송대선 목사는 동양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 귀동냥을 한다고 애쓰기도 하면서 중국에서 10여 년 밥을 얻어먹으면서 살았다. 기독교 영성을 풀이하면서 인용하는 어거스틴과 프란체스코,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등의 서양 신학자와 신비가들 뿐만 아니라 『장자』와 『도덕경』, 『시경』과 『서경』, 유학의 사서와 『전습록』, 더 나아가 불경까지도 끌어들여 자신의 신앙의 용광로에 녹여낸 우징숑(오경웅)을 만나면서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지평에 눈을 떴다. 특히 오경웅의 『성영역의』에 넘쳐나는 중국의 전고(典故와) 도연명과 이백, 두보, 소동파 등을 비롯한 수많은 문장가와 시인들의 명문과 시는 한없이 넓은 사유의 바다였다.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후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열린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제천과 대전, 강릉 등에서 목회하였고 선한 이끄심에 따라 10여 년 중국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누렸다. 귀국 후 영파교회에서 사역하였고 지금은 강릉에서 선한 길벗들과 꾸준하게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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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강



겨울비 내리는 강가는 유난히 추웠다. 그만큼의 추위라면 눈이 맞았을 텐데도 내리는 건 비였다. 내리는 찬비야 우산으로 가렸지만 강물 거슬러 불어대는 칼날 바람은 쉽게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가장자리 얼어가는 강물이 잡다한 물결을 일으키며 거꾸로 밀리고 있었다. 하늘은 잿빛으로 낮게 내려앉았다. 한참을 떨며 강 건너 묶여있는 배를 기다렸지만 뱃사공은 나타나지 않았다.


강 하나 두고 떠난 사연은 무엇일까. 지난해 가을 10여년 만에 고향을 찾은 유치화 청년의 지난 내력을 알기 위해 교회 젊은 집사님과 마을 청년과 치화 씨와 함께 길을 나선 것이다. 이쪽 부론은 강원도, 짧은 폭 강 하날 두고 겨울비 속 풍경화처럼 자리 잡은 저편은 충청북도. 유치화 청년의 먼 친척이 살고 있는 곳이다.

 

 


기구한 사연 속, 열세 살 땐가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가족들이 모두 흩어지게 되었을 때 치화 씨는 먼 친척의 소개로 경기도 이천에 있는 한 농가로 떠나게 되었다.


과수원일, 돼지 치는 일, 되는대로 일하다 보니 어느덧 뼈가 굵어 지난 세월 셈하니 10여년, 강 건너 불어온 바람결엔지 10여 년 동안 끊겼던 아들 소식 전해들은 어머니는, 홀로 질곡의 시간 견디던 어머니는 그 길로 달려가 앞뒤 사정 가릴 것 없이 눈물로 아들 손 잡고 이곳 단강을 돌아온 것이다. 아무도 그 어머닐 막을 수 없었다. 그게 지난 가을이었다.


몇 번은 고되어서, 몇 번은 매 설움에, 어쩌면 조금씩 눈뜨는 자의식에 몇 번을 도망쳤지만 알고 있는 곳은 오직. 강 건너 오늘 찾아가는 그곳, 멀다지만 그래도 피붙이가 살고 있는 곳, 거기뿐이었고 이르면 그날 저녁 아니면 다음날 어김없이 찾아온 주인에 의해 싫은 걸음 다시 이천으로 향한 것이 어느덧 10년, 10년 세월이었던 것이다.


낚시 바늘처럼 꼬부라진, 어쩜 지금 치화 씨의 마음속엔 그렇게 꾸부러진 시선이 불쑥 자라 있는지도 모른다. 10년의 마른 세월이 정 없이 키웠던 건 그런 잘못된 오기였는지도 모른다.


어머닐 설득하여, 어쩜 10년 안에 만난 아들 또 잃게 되는 건 아닌가 하여 극구 가지 말라 말렸던 어머니를 설득하여 오늘 함께 길을 나선 것이다. 10여 년 전 어떻게, 어떤 조건으로 떠났었는지, 지난 10년간의 보상은 어찌될 수 있는 건지를 우선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전기가 끊긴 오랫동안 빈집이었던 더없이 허름한 집에서 늙으신 어머니와 살아가는 지금 치화 씨의 삶이란 더 없이 막연하다. 미루어 짐작할 뿐인 지난 10년의 시간, 지난일이라고 지금의 막막한 생활을 두고 지난 10년을 그냥 묻어둘 수야 없는 것 아니겠는가.

 


바람에 물결에 뒤뚱거리는 쪽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그리고는 지난 기억 더듬는 치화 씨를 따라 몇 집을 들러 지난 내력 알만한 이들을 만나 얘길 듣고 나눴다. 별다른 얘기는 없었다. 떠나기 전 치화 씨 얘길 듣고 미루어 생각했던 거의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다음에 다시 날을 잡아 이천을 찾기로 하고 권하는 점심을 사양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얼마 전 치화 씨 이복형을 통해 오늘 일을 부탁받았다는, 작실마을 새로운 반장이 된 병철 씨는 오늘의 동행에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그러나 그게 어디 남의 일인가, 내 일이요 우리 일이지.


돌아오는 길 그새 얼어붙은 길은 넘어질 듯 미끄러웠고 하늘은 여전히 흐렸지만 떠날 때 굳었었던 치화 씨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아져 있었다. 부론에 나와 돌아올 직행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잠간 음식점에 들렀다. 난롯가에 둘러 앉아 장날 인심만큼 푸짐한 짜장면 곱빼기를 먹으며 추위와 허기를 달랬다.


강 하날 사이에 두고 가깝게 건너다보이는 마을을 차창으로 내다보며 어쩜 오늘 난 얼어붙은 겨울길이 아니라 잊혔던 지나간 시간 위를 걸었지 싶었다. 배를 타고 건너건 좁다란 강이 아니라 그렇게 강처럼 무심히 흘러갔던 아픔의 시간이었지 싶었다.


그 길을 건너 만나게 될 몇 사람, 그들은 누구일지.

<얘기마을>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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