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객토작업



늘 그랬지만 설교 준비하기가 요즘은 더욱 어렵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막할 때가 많다. 한 주일을 보내며 늘 설교 생각이 머리에 남아 있으면서도 주보를 다 만들 때까지 본문과 제목을 정하지 못해 애태울 때가 있다.

 

삶과 유리된, 생활과 거리가 있는 그럴듯한 말을 찾자면 야 그런대로 쉬울 것도 같은데, 현실을 이해하고 그 현실에 필요한 말씀을 찾으려니 쉽지 않을 수밖에.


지금의 난 성경도 제대로 모르고 농촌의 현실 또한 모르고 있다. 교인들의 표정 뒤에 있는 속마음의 형편이 어떠한지 잘 모르겠다.


할 수만 있다면 빈 말은 삼가고 싶은데 떠오르는 말이 없는 것이다. 지난 주일 저녁 설교 제목은 ‘마음의 객토작업’이었다. 이번 겨울을 보내며 동네에선 대부분 객토작업을 했다. 탱크처럼 생긴 15t 트럭이 길마다 먼지를 일으키며 연신 겁나게 달려 논에다 흙을 부어댔다. 트럭 한 대분에 12,000원이라 한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웬만큼 큰 논은 이삼십 만원이 쉽게 들어가지 싶다. 그만한 액수면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닌데 객토작업이 그만큼 투자를 할 가치가 있는 일일까 싶어 마을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객토작업을 하면 목돈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투자한 것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매해 쟁기로 갈을 수 있는 땅의 두께는 한정되어 있는데 그 한정된 땅에 계속 농사를 짓다보면 점점 땅은 기름기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럴 만도 하겠지 싶었다. 위아래 잠깐 위치만 바꿀 뿐 같은 땅을 계속해서 우려먹는 일이었을 테니까. 그래서 객토작업을 하는 것인데 한마디로 객토작업이란 영양분이 많은 새로운 흙을 딴 데서 파다가 논밭에 들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걸 두고 사람들은 땅 힘을 돋는다고 했다. 약해진 땅에 힘을 북돋아주면 추수량이 눈에 띄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땅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땅에 대해 갖는 지혜이지 싶었다.


반은 질문하며, 반은 말씀과 연결시켜가며 마음의 객토작업 이야기를 했다. 혹은 고개를 끄덕이며 혹은 재미있는 눈빛으로 말씀을 듣던 교우들. 매번 그럴 수야 없겠지만 이런 일은 계속되어야 할 필요한 노력이지 싶다.


논밭이 녹기 전, 객토작업은 추울 때 해야 한다는데 이 겨울 가기 전 내 마음엔 무슨 흙을 들여 힘을 돋울지.

<얘기마을>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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