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은혜



절기예배 중 그중 어려운 게 감사절입니다. 기쁨과 감사가 넘쳐야 할 감사절을 두고 웬 우중충한 얘기냐 할진 몰라도, 아무래도 감사절은 어렵습니다. 그것이 맥추감사주일이건 추수감사주일이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첫 곡식을 거두며, 혹은 온갖 곡식을 거두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예배에 왜 감사와 기쁜 마음 없겠는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괴롭고 안타까운 일들을 주변에 두고 때 되어 감사절을 맞아야 할 때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삼스럽게 감사의 조건과 감사의 이유를 찾아보지만, 그런 마음을 가로막고 나서는 안타까움이 바로 곁에 있습니다. 

지난번 맥추감사주일 예배를 드릴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일이 감사절, 어떻게 감사 예배를 드리나, 바쁜 일철에 몇 명이나 모여 어떤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을까, 미리부터 마음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텅 빈 자리 마주하며 평소의 주일보다도 어렵게 감사절 예배를 드린 기억이 적지 않은 탓입니다. 올해도 또다시 ‘비록 없을지라도’ 했던 하박국을 읽어야 하나, 언제나 다른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이 차올랐습니다. 

 

사진/김승범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종이와 크레용을 준비해서 제단 글씨를 쓰기로 했습니다. 스스로 기운이 빠져 최소한의 준비마저 빠뜨리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냥 ‘맥추감사절’하는 것 보단 뭔가 감사의 의미가 담긴 글을 쓰는 것이 좋겠다 싶어 곰곰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것이 ‘넉넉한 은혜’였습니다. ‘넉넉한 은혜’, 그건 어쩌면 믿음의 고백이라기보다는 간절한 ‘간구’였습니다. 작은 도화지에 글씨를 써선 제단에 걸었습니다. 넉넉한 은혜가 조그만 종이에 담겨 어찌 보면 초라하게 제단에 걸렸습니다. 

다음날 감사절이 되었습니다.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따라 한 분 한 분 교우들이 예배당으로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감자며 마늘이며 새로 찧은 쌀이며, 교우들은 각각 정성으로 구별한 곡식들을 제단에 올려놓았습니다.  


예배를 시작하기 전 찬송을 부르는데 문이 열리고 예배당으로 들어서는 두 분이 있었습니다. 작실에서 내려온 박수철 씨 내외였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부축을 받으면서도 한 걸음 떼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박수철 씨가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교회를 찾은 것입니다. 


찬송을 부르던 교우 몇 분이 나가 박수철 씨를 도왔습니다. 예배는 또 한 번의 일렁임이 있은 후 시작이 됐습니다. 오원례 씨가 남편 이상옥 성도님의 부축을 받으며 예배에 참석한 것입니다. 당뇨와 교통사고로 몸과 마음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시력마저 거의 잃어버린 오원례 씨가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눈물을 흘리며 예배당으로 들어섰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후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예배를 준비하는 시간이었으면서도 교우들은 너무 큰 반가움에 오원례 씨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 모습이 여간 소중하지 않았습니다. 


그 바쁜 철, 예배를 드리는 예배당엔 전에 없이 교우들로 꽉 찼습니다. 제단에 내걸린 글씨처럼 생각지도 못한 넉넉한 은혜가 우리를 덮고 있었습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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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무엇이 인생의 참된 평강인지요

송대선의 시편묵상 2021. 5. 3. 05:08

 

 

사진/김승범

 

시편 46

 

그 누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보여 줄까하고 말하는 자가 많사오니,

밝으신 당신의 얼굴을 우리에게 돌리소서, 야훼여.(공동번역)

 

衆庶喁喁望 何日見時康(중서옹옹망 하일견시강)

吾心惟仰主 願見主容光

많은 이 기도합네 웅얼거리나 평강의 때 일랑은 얻지를 못해

나 오직 주님만을 우러르나니 주님의 얼굴 빛 보게 하소서(시편사색, 오경웅)

 

좋은 날 원치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누가 불행을 바라겠습니까? 다들 좋은 날을 바라고 쨍하고 해뜰 날을 기대합니다. 그러면서 다들 두리번거립니다. 그 좋은 날이 어디서 오는지 목을 빼고 혹여 기미라도 보이면 득달같이 잡아채려 덤벼듭니다.

 

그러나 참된 좋은 날을 그렇게 두리번거리며 찾을 수 있는게 아니지요. 그게 이웃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저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오롯이 당신을 바라며 우러르는 가운데 허락하시는 당신의 은총으로 인해서이지요.

 

시인이 그러고 있습니다. 다들 두리번거리고 우르르 몰려다닐 때 그는 홀로 고요한 가운데 당신을 우러릅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오히려 고요 가운데 침잠하는 거지요. 호렙산의 엘리야에게 보이셨던 것처럼 세미하게 들려주시는 당신의 음성을 듣고 그 은총에 감싸이고자 한다면 더더욱 그리해야겠지요.

 

시인은 그저 당신 얼굴 뵙기를 원합니다. 하느님 계심, 그것이 정녕 인생의 참된 평강이지요. 당신이 뭘 하셔서, 엄청난 기적과 놀라운 일을 행하셔서 우리 인생이 윤택해지는 것이 아니지요. 어린아이가 마구 뛰어놀다가도 엄마 하고 부를 때 부엌에서 세탁실에서 마당에서 대답하기만 해도 아이의 마음은 편안해지면서 다시금 제 할 일에 마음 쏟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당신의 계심을 누리길 원합니다. 주님 계심을 오롯이 누리는 것으로 제 삶의 조리(條理)가 자연스러울 터인데 뭘 따로 더 구하겠습니까?

 

주님 마치 인생에 행복과 즐거움, 만족한 그 무엇이 따로 있는 양 여기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속삭이는 유혹에서 넘어가 두리번거리는 어리석은 짓을 좀 덜하게 해주십시오. 당신의 계심을 오롯이 맛본 성인(聖人)들이 당신의 은사와 능력과 놀라운 선물마저 다 내려놓고 오롯이 당신만을 추구한 것처럼 그렇게 저도 오롯이 당신만을 구하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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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편 4,5절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소서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공동번역》) 祈主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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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징숑(오경웅)의 《성영역의》를 우리말로 옮기고( 《시편사색》) 해설을 덧붙인 송대선 목사는 동양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 귀동냥을 한다고 애쓰기도 하면서 중국에서 10여 년 밥을 얻어먹으면서 살았다. 기독교 영성을 풀이하면서 인용하는 어거스틴과 프란체스코,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등의 서양 신학자와 신비가들 뿐만 아니라 『장자』와 『도덕경』, 『시경』과 『서경』, 유학의 사서와 『전습록』, 더 나아가 불경까지도 끌어들여 자신의 신앙의 용광로에 녹여낸 우징숑(오경웅)을 만나면서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지평에 눈을 떴다. 특히 오경웅의 『성영역의』에 넘쳐나는 중국의 전고(典故와) 도연명과 이백, 두보, 소동파 등을 비롯한 수많은 문장가와 시인들의 명문과 시는 한없이 넓은 사유의 바다였다.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후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열린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제천과 대전, 강릉 등에서 목회하였고 선한 이끄심에 따라 10여 년 중국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누렸다. 귀국 후 영파교회에서 사역하였고 지금은 강릉에서 선한 길벗들과 꾸준하게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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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저를 몰라보셔도 괜찮아요”


오늘은 장애인 목욕봉사가 있는 날인데 아침부터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뭄 후 오랜만에 보는 봄비이니 단비인 것은 확실한데 혼자서 우산을 받쳐 들기 어려운 분들에게는 단비도 씁쓸한 불편함이 될 수 있다. 목욕탕으로 이동하려니 횡단보도 앞에 휠체어를 잡고 계신 팔십이 넘은 어머니와 육십이 넘은 아들이 우산을 받쳐 든 채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익히 알던 분들인지라 나는 얼른 늙은 어머니대신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어머니는 봉사하러 온 고등학생의 우산을 같이 쓰고 목욕탕으로 따라오셨고 나는 아들이 타고 있는 휠체어를 밀고 봄비 속을 앞서 걸었다. 휠체어에 앉은 사람과 밀어주는 사람이 빗속을 함께 걸으면 한사람은 비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나는 15분동안 비를 맞았지만 어머니는 20년 세월 아들을 위해 여러 번 비를 맞으며 걸었겠구나 싶은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61세 아들은 마흔 살에 뺑소니 교통사고로 뇌와 척추를 다쳤고, 오랫동안 의식불명이었다가 겨우 깨어났는데 다시 아기가 되어 어머니 품으로 돌아왔다. 치료를 위해 자신이 가진 전 재산과 남은 인생을 쏟아 부은 어머니는 이제 85세 허리 굽은 가난한 노인이 되었지만, 환갑의 아들은 여전히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로 살고 있다.

오랫동안 어머니는 아들을 남탕으로 보내고 나면, 본인은 여탕에 들어 오셔서 다른 장애인분들이 옷을 입고 벗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아들을 목욕시켜 주셔서 감사하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돕고 싶으셨던게다. 목욕봉사는 항상 봉사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하신 일은 목욕봉사팀에서 딱 필요한 도움이었다. 몇 년 전부터는 팔순이 넘은 어머니도 같이 목욕봉사를 받으시라고 권해드렸지만 어머니는 한사코 거절하셨다. ‘내가 너무 늙어서 이제는 아들을 목욕시킬 수가 없었는데 우리 아들 목욕시켜 주시는 것도 너무 감사하다고, 나까지 신세질 수 없다’고 말하셨다. 그래도 우리는 어머니를 뵐 때마다 거듭 권해드렸고 어머니는 1년 전부터 목욕탕에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목욕봉사를 받기 시작하셨다.  

 


목욕탕에서 내 인기는 연예인 못지 않다. 머리에 타월을 두른 벌거숭이로 이만한 인기를 누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 그 어려운 일을 내가 또 해내고 만다. 왜 인기가 좋냐고? 몸매가 비결이냐고? 묻는다면, 물론 난 잦은 산행으로 다져진 근육의 날씬한 몸을 가졌다고 말할수 있다. 하지만 내 인기의 비결은 따로 있다. 이 일도 십 년 넘게 하다보니 나름 요령을 터득해서인지 나는 때를 아프지 않으면서도 아주 시원하게 잘 민다. 한 번 나한테 때를 밀어보신 분들은 내 목욕 서비스를 다시 받길 원하셔서 선착순 대기 번호를 부여할 정도다. 그러니 이날만큼은 팬서비스 차원에서라도 나는 무대위 가수처럼 뜨거운 땀방울을 닦아가며 때를 민다.  

오늘은 세 분의 때를 밀어드렸는데 그 중 한 분으로 어머니의 때도 밀어 드릴 수 있어서 기뻤다. 85세 어머니는 아주 작고 말랐다. 근육이 다 빠져버린 거죽만 남은 마른 몸의 때를 밀어 드리면서 나는 마음이 아팠다. 마른 몸의 어디에서 아들과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나오는지  의문스러웠다. 어머니와 나는 때를 밀면서 이런 저런 애기를 나누었는데 그 대화가 내 마음에 묵직한 울림을 만들었다. 

어머니는 목욕을 받으면서도 “내가 이런 귀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 너무 감사하다”고 하셔서 나는 어머니의 볼에 내 볼을 맞댄 채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세요. 천국에 가시면 하나님이 이보다 더 좋은 것을 준비해 놓으셨을거예요.” 

어머니는 “내가 글도 모르는 바보라 하나님 말씀을 읽지 못해서 항상 아버지께 죄인이야. 그래도 ‘아버지는 내 마음 아시죠’하며 기도를 하고 또 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목사님 말씀 들은 거 마음에 잘 새겨 기억하고 또 기도하는거 밖에 없다”라고 고백하셨다.


난 어머님의 고백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수많은 목사님의 설교에 너무 쉽게 비평의 칼날을 들이대며 취향대로 골라 듣는 나는 설교 한편을 어머니의 반만큼이라도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었던가?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원 없이 성경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한 적이 있던가?  내가 누린 배움의 기회와 지식에 대해 나는 얼마나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어머니는 “때밀어 주느라 힘들어서 어쩌냐! 내가 때가 많을 것인데... 내가 집사님을 너무 고생시키고 있네”라고 말하시며 자꾸 미안해 하셨다. 그래서 내가 “어머니, 지금 제가 때 밀어드리는 거 아니예요. 지금 ... ”하고 다음 말을 하려는데 어머니가 나보다 먼저 다음 말을 이으셨다.

“지금 나 때밀어 주는 거 하나님이 하고 계신거 알아요. 그분이 자꾸 나를 살게 해.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으면 나는 진작에 어찌 되었을지도 모르지. 그분의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 수가 없어.”라고 고백하셨다. 난 그 순각 울컥 목이 메이면서 왈칵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어머니의 마른 몸의 때를 밀어드리면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기도했었다. 


“주님, 지금 제 몸을 당신께 내 드릴테니 지금 이 순간 주께서 12제자들의 발을 닦으신 날처럼 여기 제 앞에 앉아계신 어머니의 마른 몸을 닦아주세요. 제자들은 발만 닦으셨지만 어머니는 온 몸을 닦아주시고 이분의 마음도 닦아주시고 눈물도 닦아주세요.” 

어머니가 나에게 “지금 나 때밀어 주는거 하나님이 하시는거 알아요.”라고 말하시는 순간 나는 어머니와 나 사이에 주님이 계신 것을 느꼈다. 주님이 여자 목욕탕에 앉아 오늘 어머니의 몸을 닦으시고, 어머니와 나의 눈물을 닦으시는 것을 느꼈다. 목욕탕의 수증기와 얼굴에서 흘러 내리는 땀 때문에 눈물을 감출 수 있어서, 나는 어머니의 때를 밀면서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어머니는 목욕을 마치시면서 자신이 기억을 자꾸 놓쳐서 다음 주에 교회에서 나를 만나도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귓가에 대고 대답했다.  


“어머니가 저를 몰라보셔도 괜찮아요. 제가 어머니를 알아볼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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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 님은 사별 3년 차로 10살에 아버지를, 20살에는 어머니와 할머니를 한날에 잃었다. 그리고 47살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녀는 47살에 또다시 찾아온 사별로 인한 슬픔과 고통, 좌절과 희망이 담긴 글을 써서 사별 카페에 공유했고, 그녀의 솔직한 고백과 희망이 담긴 글은 사별 카페의 많은 사별자들에게 공감의 위로와 더불어 희망과 도전을 주었다. 얼마전 사별 카페에서 만난 네 분과 함께 사별 이야기를 담은책 <나는 사별하였다>를 출간하였다. 이제는 사별의 아픔을 딛고, 사는 날 동안 봄바람의 꽃잎 처럼 삶의 풍경 안으로 들어오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인생을 공유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지금은 화성에서 작은 시골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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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돌틈에 누운
풀 한 포기를

비 걸음으로 
달려와서

바람 손으로 
부둥켜안고서

해맑은 웃음으로
일으켜 살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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