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



둘러앉아 얘기하던 한 아이가
무인도에 떨어지면 뭣부터 하겠느냐 물었을 때
아이들은 돌아가며 말했지
살려 달라 모래 위에 크게 쓰든지
불을 피워 연기를 올리던지
지나가는 배를 기다려 옷을 흔들겠다고
뚱딴지 같이 어떤 녀석은 
뒷간부터 짓겠다더군
뭐라 할까 망설이다
난 발가벗고 잠을 자고 싶다 했어
모두들 웃었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어

인습의 굴레란 참 우스운 것이지
무섭기도 하구
언젠지도 모르고 한번 쓰기만 하면 
좀체 벗기는 어려운 것
문득 거울 속 얼굴과 바라보는 마음이 다른 것
허우적거려도 잡히는 것이 철저하게 날 붙잡고 있는 것
정말이야
내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먹을 걱정 살 걱정 
그런 것 모두 잊고
그냥 잠을 잘 거야
모두 벗고 팔다리 맘대로 뻗고 말야

그런데 무인도가 있을까
사람 살지 않는 섬이 
아직도 있을까
혹 있다 해도 
거기 혼자 떨어질 수 있을까
응, 그대야

 

<얘기마을>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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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씨랑 나랑 바람이랑

 



입바람에 날아갈까
손바람에 흩어질까

홀씨랑 나랑 바람이랑 
셋이서 잠잠히 있었지

몸으로
숨 한 점 잇는 일이

허공으로 
손길 한 줄 긋는 일이

땅으로
한 발짝 옮기는 일이

순간을 죽었다가
영원을 사는 바람의 길이라며

홀씨랑 나랑 바람이랑 
셋이서 숨 한 점 나누었지

하지만 한 점도
모르는 이야기

몰라도 훌훌 좋은 
숨은 바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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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통과

사진/김승범



가나다순이어서 그랬을까, 58명 중에 내 차례는 맨 나중이었다. 우르르 나가 선 채 한참을 기다렸다가 마지막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사람들 앞에서 인사를 했다. 간단한 소개를 들은 뒤 뒤로 돌아섰다.


“可한 사람 손드시오.”
“否한 사람 손드시오.” 


잠시 후, “네, 됐습니다. 이상으로 준회원 허입자 성품통과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그렇게 준회원 허입 성품통과가 끝났다. 이제 준회원이 된 것이다. 솔직히 난 아직도 잘 모른다. 한편 모르고도 싶다. 얼마나 지나야 목사가 되는 건지, 또 얼마가 지나야 그 불편한 시험 안 치러도 되는 건지. 


지난번 시험 볼 땐 그럭저럭 외웠었는데 쉽게 잊고 말았다. 한심한 노릇이다. 잠깐, 정말 잠깐이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돌아서 있던 그 시간에 정말 기분이 묘했다.


사람들은 날 두고 손을 들고 내렸다. 내 모르고, 날 모르는 사람들, 그들은 무엇을 알고 손을 들었을까.


‘否한 사람 손드시오’ 했을 때 더러더러 손 좀 들지 그랬습니까. 저놈은 안 된다고, 머리가 빈 놈이라고, 용기 없고 믿음 없고, 아직 먼 놈이라고 번쩍 손을 들어 큰 소리로 외치지 그랬습니까.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요. 편한 웃음으로 손 든 당신을 이해하며 고마워했을 텐데요.


생각뿐, 그날 밤 나는 주님 앞에 홀로 엎드리질 못했다. 중요한 건 그분 앞에 바로 서는 것인데.

<얘기마을>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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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셀도서관에 부는 바람


나에게 특별한 두 편의 동화를 고르라면 <성냥팔이 소녀>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다. 이 책은 내가 글을 배운 이후 내가 처음 읽어 본 동화책이다.


어릴 적 우리 집은 가난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 최종학력인 부모님은 5남매를 공부시키기 위해 산골마을 떠나 정읍으로 나오셨다. 고향의 논밭을 팔아 변두리에 작은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정착했지만 학력이 낮은 부모님이 고를 수 있는 돈벌이는 제한적이었다. 어릴 적 기억을 되짚어 보면 아버지는 끊임없이 일을 하셨다. 가족이 먹을 양식은 직접 농사 지으셨고, 5남매를 가르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셨던 것 같다. 보일러공, 집짓는 일, 수레에 과일과 야채를 싣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파는 노점상, 공장직공, 청소부 등 아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까지 합친다면 아버지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경험하셨을 것이다.

 

어린 내게 아버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큰 사람처럼 보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식들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던 아버지라는 호칭이 그를 다재다능하고 용감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사셨음에도 불구하고 언니들의 기억 속엔 수업료를 제때 납부하지 못해서 교무실로 불려 다니던 옛 기억이 있다. 수업료 내기도 빠듯한 형편이었으니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사준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셨을 것이다. 요즘은 지역마다 도서관이 많고 학교 교실에도 읽기 좋은 책들이 진열되어 있지만 내가 어릴 적엔 정읍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책을 빌려주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시절 내겐 한글을 깨우쳐도 교과서 외엔 읽을 책이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고교 졸업 후 서울로 간 큰언니가 성탄절 선물로 <성냥팔이 소녀>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 함께 실린 동화책 한 권을 보내주었다. 나는 그 책을 얼마나 재밌게 읽었는지 모른다. 몇 번을 보고 또 봤다. <성냥팔이 소녀>를 읽으면서 불쌍해서 울고,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을 읽으면서 두근두근 가슴이 뛰었다. 그 책은 나의 첫 번째 책이었고, 초등학교 6년 동안 내가 가져본 유일한 동화책이었다. 스무 살 큰언니의 가난한 지갑을 털어서 산 한 권의 동화책이 어린 막내 동생에겐 어떤 부자의 지갑으로도 살 수 없는 따뜻한 기억이 되었다.

 

사진/김승범


작은 시골교회의 사모로 살고 있는 친구가 도서관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친구의 글 중 일부를 옮겨보면 “내가 이곳에 도서관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기도하게 된 것은 할머니 손에 크고 있는 작은 여자 아이 때문인데, 학교를 마치면 갈 곳도 없고 매일 매일이 그냥 너무 심심하고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그 아이의 눈이 너무 쓸쓸해 보였어. 양육비조차 보내지 않고 서로 책임을 회피하는 이혼한 부모로 인해 상처받고 힘들어 하는 아이에게 매일 부담 없이 찾아가 놀다갈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결심의 시작이었어. 나의 청소년 시절이 불우했고 힘들었기에 난 예전부터 청소년들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길 바라고, 그런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었어.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행복해지고, 따뜻함을 느끼고, 좋은 멘토를 만나 인생을 함께 고민해주고 기도해주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전까지 있었던 도시의 큰 교회가 아닌 낙후된 지역의 작은 교회에서 그 꿈을 시작하게 되었네. 이제 시작이야! 친구야, 나의 꿈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응원해줘.” 

학창시절 말이 없고 수줍음 많던 친구가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따뜻한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감히 나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을 시작했다는 소식에 나는 조금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했다. 나이가 들수록 다시 무언가를 꿈꾸기 시작한다거나, 오랫동안 꿈꾸던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엄두가 나지 않은 일인지 나는 안다. 그것도 내가 먹고 사는 일이나 내 일신의 편안한 현재와 미래를 위한 일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헌신해야 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런 일을 교인이 100명도 안 되는 작은 시골교회 목사님의 가난한 아내로 사는 친구가 시작했다. 

 

나는 분명 마음 가득 친구를 응원해줄 것이다. 하지만 내 안의 누군가가 ‘마음만으론 안 되지. 네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지.’라고 계속 말을 걸어왔다. 친구는 우선 4,000권을 수납할 수 있는 책장과  1,400여권의 책을 준비 했노라고 말했다. 그 외에도 도서관에 필요한 것들이  많을 것인데 도서관이 친구의 소망처럼 누군가에게 따뜻한 공간이 되려면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먼저 집에 있는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책장을 정리하다보니 제법 깨끗하고 좋은 책들이 많았다. 이젠 그 책들을 우리 집 책장에 모셔두는 것보다 에셀 도서관에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도서관으로 책을 보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많은 동화책이 읽고 싶었지만 책이 없어 읽을 수 없었던, 일찍 철이 들어버려 가난한 엄마에게 동화책 사달라는 말을 감히 꺼낼 엄두도 낼 수 없었던, 항상 책을 가지고 다니며 읽던 친구를 호기심과 부러움의 시선으로 쳐다보았던, 큰언니가 보내준 한 권의 동화책이 너무 좋아서 읽고 또 읽었던 어린 정숙이들에게 어른이 된 내가 이제야 책을 보내주는구나!  친구가 언제라도 가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린 동네 도서관을 만들어 주니, 이제 어른이 된 정숙이는 그곳에 살고 있을 어린 정숙이들에게 좋은 책을 선물해 주면 되는 거구나. 어쩌면 가난한 언니가 보내준 한 권의 동화책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따뜻한 어린시절 추억을 얻은 나처럼, 또 다른 누군가가 에셀 도서관에서 만나는 좋은 책과 따뜻한 마음을 통해 평생 접어 간직할 수 있는 어린 시절 고마운 기억을 얻어 갈 수도 있겠구나.’ 


나는 그곳으로 책과 컴퓨터를 보냈고, 책을 받은 친구는 “네가 내 기도의 응답이고 하나님의 기적이야”라고 말했다. 작은 일에 이런 말을 듣는 것이 부끄럽지만 아마도 도서관을 처음 꾸리면서 힘든 부분이 많았을 친구에게 응원이 되어준 것 같아서 기쁘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네가 기도의 응답이고 기적”이라는 친구의 말이 되씹어지면서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 이 정도가 기적이면 하나님의 배포가 너무 작지 않나요? 적어도 제 친구 입에서 기적이라는 말이 나오게 하시려면 도서관의 책장이 가득 차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정도는 돼야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친구의 말이 내 마음을 흔들었고 나를 또 다시 행동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하면 에셀 도서관의 책장에 책을 다 채울 수 있을까?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따뜻한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친구의 결심과 행동이 나를 흔들었고 나는 더 크게 흔들리어 또 다른 누군가를 흔드는 바람을 만들 수 없을까 생각했고 기도했다. ‘하나님! 내게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흔들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재주가 있다면, 내가 보낸 글을 읽고 마음이 흔들린 누군가는 도서관에 책을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주세요. 에셀 도서관의 책장이 가득 채워지는 기적이 일어나게 해 주세요.’ 


나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에셀 도서관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고, 그들이 그곳에 기적을 만드는 따뜻한 바람이 되어주길 부탁했다. 그리고 기적을 만드는 바람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편지를 받은 많은 이들이 도서관에 후원금을 보내주었고, 또 다른 이들에게 바람이 되어주길 부탁했으며, 많은 이들이 각자의 형편에 따라 책을 선물해 주었다. 한달 후 에셀도서관의 책은 두 배로 늘었고 작은 여자아이는 학교가 끝난 후 그곳에서 놀기 시작했다. 

바람은 풀잎을 간질이고 나무를 흔들며 구름과 물을 흐르게 한다. 모든 바람은 자신이 만난 크고 작은 세상을 흔들며 생동하게 만든다. 자기 자신과 세상을 흔들고 싶다면 우리는 바람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람의 시작은 오늘 나의 작은 결심과 행동이며, 누군가와 나누는 짧은 대화와 한 편의 글일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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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나는 친구와 함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약국에 매여 있는지라 시간을 자주 낼 순 없지만 그래도 계절마다 걷기 좋은 길을 찾아 종일 걷곤 한다. 올해는 석가탄신일을 이용해 1박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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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 있는 그 사람을 보세요

 “방앗간 참새 왔어~!”  길 건너 덕리에 사는 권 씨 할아버지의 약국 문 여는 소리다. 스스로 참새가 되신 할아버지 덕분에 나는 어느새 방앗간의 주인이 된다. 82세의 권할아버지는 산 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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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 님은 사별 3년 차로 10살에 아버지를, 20살에는 어머니와 할머니를 한날에 잃었다. 그리고 47살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녀는 47살에 또다시 찾아온 사별로 인한 슬픔과 고통, 좌절과 희망이 담긴 글을 써서 사별 카페에 공유했고, 그녀의 솔직한 고백과 희망이 담긴 글은 사별 카페의 많은 사별자들에게 공감의 위로와 더불어 희망과 도전을 주었다. 얼마전 사별 카페에서 만난 네 분과 함께 사별 이야기를 담은책 <나는 사별하였다>를 출간하였다. 이제는 사별의 아픔을 딛고, 사는 날 동안 봄바람의 꽃잎 처럼 삶의 풍경 안으로 들어오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인생을 공유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지금은 화성에서 작은 시골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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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 대청소


예배당 대청소를 했다. 몇 번 얘기가 있던 것을 하루 날을 잡아 다함께 하자 했는데, 그것이 주일낮예배 후로 정해졌다. 


제단 커튼도 떼 내고, 창문 커튼도 모두 떼어냈다. 숨어있던 거미줄이 제법이었다. 막대기 끝에 빗자루를 매달아 거미줄을 걷어냈다. 유리창 틈새 먼지와 오물도 털어내고 구석구석 걸레질도 했다. 밖으로 가져나온 커튼은 커다란 함지에 세제를 풀고 발로 꾹꾹 밟아 빨았다. 남자 교우들은 예배당 주위 바깥 청소를 했다. 자루를 들고 다니며 온갖 오물과 쓰레기들을 주위 담았다. 


우물가로 가보니 김천복 할머니가 발을 걷어붙인 채 양동이 안에 들어가 빨래를 꾹꾹 밟고 있다. 


“아니, 할머니가 다 하세요?” 했더니 할머니 대답이 걸작이다. “더 늙으면 못할까 봐유.” 내년이면 여든, 얼마 전엔 심하게 앓아 할머닌 몸이 안 좋은 상태였다. 


일꾼 맞춰 놨으니 제발 한 주를 연기해 달라고 청을 해 한 주의 시간을 얻었던 이필로 속장님은 청소 후의 식사를 위해 이런저런 반찬을 아침 일찍부터 만들어 왔다. 


이웃집서 담배조리 하러 와 달라는 걸 “오늘은 죽은 친정엄마가 살아와도 교회에 가야 한다.”며 만사 제쳐놓고 교회로 온 것이었다. 


다함께 힘을 합하니 일이 과히 많지도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놀이방에 모여 점심을 같이 먹었다. 그 점심이 얼마나 맛있던지 두세 그릇씩은 잠깐이었다. 밥통 하나 가득 밥을 지으면서도 혹시나 싶어 따로 솥 하나에 밥을 더 하더니 그 솥도 모두 동이 나고 말았다.


오늘이 무슨 날이냐며 지나는 길에 들린 작실 할머니의 식사가 하마터면 모자랄 뻔 했다. 예배당보다도 우리들 마음이 더 깨끗해진 것 같았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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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의 하늘, 그 원맥을 <나철 평전>에서 찾았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일본인도 사랑하는 세계 평화의 시인,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하늘이 아름다운 시인, 그런 윤동주 시인의 하늘이 나는 늘 궁금했었다. 그 하늘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학술서와 문학서에선 어린 시절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마을인 북간도, 그곳 마을에 살던 이웃들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이라서 그렇다고들 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윤동주 시인의 하늘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윤동주 시인의 시에서 펼쳐지는 하늘은 분명히 크고 밝은 배달의 하늘이다. 시에서 크고 밝은 한의 정서가 가장 잘 드러나는 시인이 윤동주인 셈이다.

나는 늘 그의 하늘이 궁금했었다. 그 하늘의 원맥이 궁금했었다. 그동안 윤동주 시인과 관련한 대부분의 책들 그 어디에서도 안타깝지만 그 원맥을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나철 평전>을 읽으면서 북간도와 만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독립운동의 선각이 된 인물인 '나철'을 알게 되었다.


<삼일신고>, <신리대전>, <신단실기>, <천부경> 민족의 경전과 그에게로 이어지는 대종교를 통해서 윤동주 시인의 하늘 그 원맥을 찾게 되었다.

'대종교'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 그 당시에 일제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지어진 이름으로, 단군의 '홍익인간'과 '제세이화'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리고 대종교는 독립운동의 선각이 되었다.

 



<나철 평전>을 통해서 알게 된 하늘의 원맥은 윤동주 시인만이 아니었다. 권정생 선생님이 좋아하신 올바른 역사학자 신채호, 정인보, 안재홍, 조소앙, 손기정, 청산리 전투의 김좌진, 지청천, 조선의 말과 글을 지킨 주시경, 지석영, 외솔 최현배. 많은 독립운동가들 대부분이 나철의 대종교인들이었다. 나철 그는 독립운동의 선각이다.

역사의 진흙탕 속에 숨어 있던 보화를 발견한 자의 떨리는 심정으로 딸아이에게 물었다. "딸아~ 3·1독립운동을 아느냐?", 딸아이는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표정을 짓는다.

"딸아~ 그러면 3·1독립운동이 있기 이전에 도화선이 된 독립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느냐?", 딸아이는 그런 것도 있느냐는 표정이다. 

"바로 일본 동경의 유학생들인 YMCA 한인 기독교 청년들에 의해서 일어난 2·8독립운동이다. 2월 8일은 너의 생일날이기도 하니까. 평생 잊지 않을 수 있겠다."

그런데 그보다도 앞선 2·8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된 무오독립운동이 이미 만주와 북간도에서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이번에 엄마가 알게 되었다며,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자녀들 앞에서 선포하었다.

3·1독립선언문과 그보다 더 앞선 2·8독립선언문에 친일 인사들의 입김이 섞여 있다면, 순수한 조선인의 입김으로 씌여진 독립선언문은 만주와 북간도에서 독립투쟁을 하던 나철의 대종교인들에 의해 씌여진 무오독립선언문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딸아이와 아들 앞에서 거듭 말해주었다. 

어린 자녀들이 당장은 그 뜻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어린 자녀들의 마음밭에 한 알의 씨앗을 심는다는 봄날의 가벼움과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역사의 거울을 밝히지 못한 민족에게는 나아갈 미래가 선명할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크고 밝은 배달의 하늘, 온세상을 이롭게 하고 평화롭게 하는 단군의 홍익인간과 제세이화의 하늘을 통해서 나는 하느님의 얼굴을 본다. 고조선의 화랑과 선맥의 풍류를 보고, 부처의 불성을 보고, 공자의 군자를 보고, 예수의 성령을 보고, 참자아, 본성, 진리의 온전함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인의 DNA 속에 유유히 흐르고 있는 크고 밝은 세계 평화의 하늘을, 나는 윤동주 시인의 시뿐만이 아니라, BTS의 춤과 노랫말에서도 본다. 

크고 밝은 하나의 하늘빛을 무지갯빛으로 꽃 피우고 있는 다이너마이트의 한국과 전세계의 젊은이들에게도 이 아름다운 하늘과 진리의 원맥을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철은 한국의 역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으로 독립운동의 선각이다. 조선인 최초로 자신의 명함에 한글과 한자와 영문의 이름을 나란히 새긴 멋스러운 이름, 아름다운 하늘을 윤동주 시인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게 이어준 이름, 그리고 알게 모르게 오늘날의 우리 후손들에게로 유유히 이어준 원맥의 이름인 것이다. 

이곳에 다 담지 못한 숨은 보화 같은 이야기들은 새로 꽃 피운 <나철 평전> 책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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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입보다 사람 입이 더 무섭다”

<꽃자리> 출간 책 서평 2021. 5. 28. 12:45

 

“호랑이 입보다 사람 입이 더 무섭다”

 

속담이나 우리말에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우리네 삶의 경험과 생각이 녹아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냄새가 무엇이냐 물으면 우리 옛 어른들은 ‘석 달 가뭄 끝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흙먼지를 적실 때 나는 냄새’라 했다. 생각해보면 그윽하다. 농사를 업으로 삼고 있는 옛 어른들에게 석 달 동안 가뭄이 든다는 것은 절망의 벼랑 끝에 내몰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곡식이 될만한 풀포기는 모두 새빨갛게 타들어가고 논바닥은 거북이 등짝처럼 갈라졌을 터. 식구들을 먹여 살릴 길이 보이지 않으니 농부의 마음은 갈라진 논바닥보다 더 깊이 타들어 갔을 것이다. 하루하루 애(창자)가 타는 마음으로 쳐다보는 하늘,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천둥소리가 나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천둥지기’라 했다) 후드득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 다. 떨어지는 빗방울은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를 대 로 마른땅을 적시며 스민다. 그때 피어나는 냄새는 세상 그 어떤 냄새와도 비교할 수 없는 냄새였을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하늘 은총의 향기였을 터이니 말이다.

 

《늙은 개가 짖으면 내다봐야 한다》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종교, 환경과 일상의 삶 등을 녹여 낸 197개의 속담과 생소한 29개의 우리말에 대한 간결한 해설과 마음에 새길 교훈이 담겨 있다.

 

사람들이 쏟아내는 말 한마디, 한 마디가가 무서운 시절이다. 옛 어른들의 “호랑이 입보다 사람 입이 더 무섭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아무리 무섭다 하여도 호랑이 입은 한 번에 사람 한 명이나 동물 한 마리밖에는 물지를 못한다. 아무리 재빠르고 사납다하여도 한꺼번에 사냥감 둘을 물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의 입은 다르다. 말 한 마디로도 얼마든지 많은 사람을 죽일 수가 있다. 잘못된 말 한 마디로 수십, 수백, 수천, 수만 명을 다치게 하거나 쓰러져 죽게 만든다. 사람의 입이 호랑이 입보다 무섭다는 것을 언제쯤에나 깨달아 세상 평온해질까.

 

그 외에 이 책에 수록된 몇 가지를 살펴보자.

 

“시루에 물은 채워도 사람의 욕심은 못 채운다”

시루의 가장 큰 특징은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그렇게 구멍이 숭숭 뚫린 시루에 물을 채운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런데 시루에 물을 채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다. 사람의 욕심을 채우는 일이다. 사람의 욕심을 채우는 일은 시루에 물을 채우는 일보다도 어려운 것이어서, 불가능의 끝이라 여겨진다.

 

“어머니는 살아서는 서푼이고 죽으면 만 냥이다”

살아생전 어머니의 모습을 철없는 자식들은 서푼의 초라함으로 보곤 한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의 모습이 서푼이 아니라 만 냥이었음을, 만 냥이 아니라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이었음을 깨달을 때쯤 어머니는 이 땅을 떠나시고 은혜는 갚을 길이 없다.

 

“다 씻어 먹어도 물은 못 씻어 먹는다”

다른 것이 더러워지면 물에 씻으면 되지만 물이 더러워지면 물을 씻을 것은 따로 없다. 이 말 속에는 무엇이 우리 삶의 최후 보루인지가 담겨 있다. 자연과 환경 문제와 관련하여 그 어떤 말보다도 깊은 울림을 가진 잠언으로 다가온다.

 

“얕은 내도 깊게 건너라”

이 말은 단지 냇물을 건널 때만 필요 한 말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사람을 대하는 태도, 우리 인생을 위한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누군가를 겉모습만 보고 ‘얕은 내’로 여겨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그렇게 하면 실수하게 되고 결국 좋은 사람을 놓치게 된다는 엄한 가르침으로도 다가온다. 누구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는 그윽한 가르침을 옛 어른들은 냇물 이야기로 편하게 했지 싶다.

 

“천리 길에는 눈썹도 짐이 된다”

천리 길에는 눈썹도 짐이 된다는 것은, 먼 길을 나설 때는 눈썹조차도 빼놓고 가라는 뜻이다. ‘눈썹조차도’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뜻을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것들은 무엇이든 모두 다 빼놓고 가라는 것이다. 온갖 것을 다 챙겨가지고 무거운 걸음을 옮기고 있는 우리네 삶에 눈썹의 무게 이야기는 얼마만한 무게로 다가올 수 있을지.

 

“흉년 손님은 뒤꼭지가 예쁘다”

흉년 때에는 손님이 찾아오는 것보다도 왔던 손님이 가는 것이 더 반갑다는 뜻이다. 돌아서야 할 때 돌아서는 것이 아름다운 법, 남는 것보다도 떠나는 뒷모습이 더 아름다울 때가 있는 법이다.

 

“무는 개는 짖지 않는다”

물 때 물을지언정 함부로 짖지 않는다. ‘받는 소는 소리치지 않는다’는 속담도 있다. 일을 능히 처리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사람은 공연히 큰소리를 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빈 수레가 요란한 법, 속이 허전한 이가 요란할 뿐 정말 능력이 있고 속이 알찬 사람은 대개가 말이 없다. 무림의 고수가 언제 함부로 제 실력을 입방아로 대신하고, 함부로 칼을 빼들던 가. ‘김 안 나는 숭늉이 더 뜨겁다’는 말이 있거니와, 말 많음으로 스스로의 삶을 더욱 가볍게 하지는 말 일이다.

 

“제가 똥 눈 우물물 제가 도로 마신다”

단순하고 명쾌하다. 재미있고, 통쾌하다. 자신의 감정 때문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것, 급하다고 아무도 안 본다고 앞 뒤 가림 없이 행동하는 모든 것, 그 모든 것들은 우물에 똥을 누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보는 이 없다고 슬쩍 쓰레기를 버리거나, 돈에 눈이 멀어 비 오는 날 하수구에 독성이 있는 공해물질을 함부로 흘려버리거나, 화가 났다고 자기의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낸다든지, 그 때는 편할지 몰라도 그 모든 일들은 고스란히 자기에게로 돌아온다.

 

“훈장 똥은 개도 안 먹는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선생님은 늘 애가 타고 속이 썩는다. 애가 타고 속이 썩는 사람이 눈 똥이 다른 사람이 눈 똥과 같을 수가 없다. 아무리 먹을 게 궁한 개에게도 훈장이 눈 똥은 쓰디써서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개도 그랬을까, 훈장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은 선생님 노릇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역설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거지가 빨래하면 눈이 온다”

거지가 빨래를 하면 눈이 온단다. 거지가 눈 오는 날을 용케 알아맞힌다는 게 아니다. 거지가 빨래를 하는 날은 날이 푹한 날이고, 그런 날은 눈이 올 가능성이 많을 뿐이다. 거지가 빨래하는 모습을 본 지가 오래 돼서 그러는 것일까, 이제는 날씨의 징조도 신문이나 방송의 일기예보에 의존을 하며 살아간다. 거지의 빨래에서 눈을 짐작하는 마음조차 잃어버린 이 시대에 시대의 징조를 헤아리는 눈을 갖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기대일까?

 

“봄비는 일비고 여름비는 잠비고 가을비는 떡비고 겨울비는 술비다”

내 인생의 계절이 봄이든 여름이든 가을이든 겨울이든, 하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모든 것을 건강하고 여유 있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삶,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마음 아닐까? 언제 어떤 비가 오면 어떠랴, 은총으로 받으면 모두 은혜의 단비인 것을….

 

“삼 년 가는 거짓말 없다”

 

거짓말로 잠깐 속일 수는 있다. 그러나 아주 속일 수는 없다. 거짓말로 사람을 속일 수는 있다. 그러나 하늘을 속일 수는 없다. 결국은 모두 드러난다. 그런데도 거짓말을 하는 것은 어리석음보다도 악함 때문이다.

 

“좋은 목수한테는 버리는 나무가 없다”

좋은 목수는 무엇보다도 적재적소에 필요한 나무를 안다. 꼭 필요한 나무를 꼭 필요한 곳에 쓴다. 그러기에 좋은 목수는 그 어떤 나무도 함부로 버리지를 않는다. 다른 사람이 버리는 나무라 할지라도 그 나무를 잘 보관하였다가 그 나무의 소용에 꼭 맞는 곳에 사용을 한다. 버리는 나무가 없는 목수가 좋은 목수다. 버리는 사람이 없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정성만 있으면 앵두 따 가지고 세배 간다”

아무리 때가 늦었다 하여도 정성만 있으면 얼마든지 마음을 전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때를 놓쳤다고 너무 늦었다고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 비춰 생각해 보면 때를 놓친 것보다는 정성이 부족한 경우가 더 많다. 부족한 정성을 때 놓친 탓으로 돌리는 것은 못된 버릇이다.

 

 

“남산골샌님 역적 바라듯”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어 벼슬길에 오를 길이 막막하니, 혹시 역모라도 일어나 그 참에 벼슬자리나 얻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을 두고 ‘남산골샌님 역적 바라듯’이라고 했다.

 

"속 빈 자루는 곧게 설 수 없다"

자루는 제 스스로는 힘이 없어 무엇인가로 채워지지 않으면 설 수가 없다. 지독하게도 가난했던 시절 아마도 이 속담은 먹는 것과 관련하여 ‘굶주린 사람은 체면을 차리고 올바로 살기가 힘들다’는 뜻으로 쓰였을 것이다. 오늘날은 다르지 않을까? 마음이 비면 똑바로 설 수가 없다. ‘비면’이라는 말은 ‘비우면’이라는 말과는 다르다. 마음을 스스로 비우면 천국이려니와, 있을 게 없어 속이 비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결국은 넘어지고 말 것이다.

 

“산이 울면 들이 웃고 들이 울면 산이 웃는다”

어떤 일이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즐거워하는 이가 있으면 괴로워하는 이가 있는 법이다. 내가 즐거워할 때 혹 누군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돌아볼 일이다. 그러면 이기적인 기쁨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 것이다. 내가 눈물 흘릴 때 혹 누군가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돌아볼 일이다. 그러면 슬픔을 이길 수 있는 위로를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반보기’

반보기란 시집간 딸과 친정의 가족들이 양가의 중간쯤에서 만나 그리움과 정담을 나누는 풍습이었다. 친정으로 가지 않기 때문에 시댁의 가사에 별로 영향을 주지 않고, 또한 친정 갈 때 준비해가야 하는 음식(그것을 정받이 또는 정성이라고 불렀다)도 장만하지 않아도 되고, 당일로 다녀올 수 있기 때문에 매우 편리한 풍속으로 이용되었다. 서로 반쯤 다가가 눈물겨운 만남을 가졌던 반보기, 옛 시집살이는 그만큼 섧고 고달팠던 것이리라.

 

‘집손’

‘집손’이란 허술하고 초라한 차림으로 이 집 저 집 다니며 밥 도 얻어먹고 잠자리도 얻어서 자는 사람인데, 겉모습만으로 보면 거지와 다름없지만 그냥 밥을 얻어먹고 잠만 얻어 자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시간을 통해 그 집에 있는 문제를 꿰뚫어보면서 넌지시 해결책을 일러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더없이 허술한 차림으로 바람처럼 살아가지만 어디에도 속해있지를 않으면서 모든 사람을 진정으로 만나는 사람, 티내는 일없이 구원의 빛과 길을 전해주는 사람, 그들을 ‘집손’이라 한다고 했다.

 

‘언구럭’

‘사특하고 교묘한 말로 떠벌리며 남을 농락하는 짓’이다. ‘괜히 죽는 소리를 하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떠보는 일’을 ‘언구럭을 떤다’고 한다.

 

‘땅 타박’

말 그대로 ‘땅이 나쁘다고 타박하는 것’을 말한다. ‘타박’이란 말이 ‘허물이나 결함을 잡아 핀잔하거나 탓함’을 뜻하니, 땅 타박이란 공연히 땅만 나쁘다고 땅만 야단치는 경우를 말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 상사 탓을 하고, 부모 탓을 하고, 환경 탓을 하고, 하늘 탓을 한다면 그야말로 땅 타박을 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돌이마음’

‘사심을 돌려 바르고 착한 길로 들어서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묵무덤’

‘오래도록 거두지 않고 내버려두어서 거칠게 된 무덤’이 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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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누이의 새벽기도

사진/김승범

 


새벽기도회, 대개가 서너 명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
그날도 그랬다.
적은 인원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뒷문이 열렸다.
보니 승학이가 들어온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아이다.
그러더니 그 뒤를 이어 승혜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들어온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승학이 동생이다.
엄마 잠바를 걸치고 온 것이 쑥스러웠나 보다.


두 어린 오누이의 새벽예배 참석.
난롯가에 나란히 앉아 무릎을 꿇는 그들을 보고 난 잠시 말을 잊고 말았다.
저 아이들, 무슨 기도를 무어라 할까.
순간, 입가 가득 번지는 주님의 웃음이 보일 듯 했다.
어린이들 별나게 좋아하셨던 그분이셨기에.

 <얘기마을>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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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기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 샘물이 솟아서 마실 것입니다. 가을비도 샘물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으며 올라가서, 시온에서 하나님을 우러러뵐 것입니다.” (시 84:5-7)

주님의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5월 말인데도 며칠 선득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사무실에 장시간 앉아 있다가 몸이 차가워졌다 느끼면 화단에 나가 볕바라기를 합니다. 꽃들의 향연에 슬며시 끼어들어 벌들처럼 코를 벌름거리기도 합니다. 꽃은 싫은 내색조차 없이 자기 향기를 나눠줍니다. 나눠주고 나면 텅 비어 버릴까 걱정스럽지만, 향기 창고가 비는 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따금씩 날아와 이 꽃 저 꽃 문을 두드리는 흰 나비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습니다.

지난 주일부터 우리는 오순절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교회력으로 가장 긴 절기로 대림절까지 이어집니다. 오순절은 교회의 생일입니다. 성령은 만나기 어려웠던 이들이 만나 서로 소통하게 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여기던 이들이 만나 우정을 나누게 만듭니다. 새로운 인류의 탄생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성령강림절 아침, 예루살렘에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많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곳에서 낯선 경험을 합니다. 성령에 충만해진 사도들이 골방 문을 열고 대중들 앞에 섰습니다. 놀랍게도 군중들은 사도들의 말을 자기들의 모어(母語)처럼 다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흔히 이것을 방언이라 말하지만, 사도들이 이상한 언어로 말한 것이라기보다는 듣는 이들의 귀가 열린 것입니다. 마음이 통하면 언어는 크게 장벽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이 그러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도무지 소통할 줄 모릅니다. 생각과 지향, 정치적 입장, 신앙의 빛깔이 나와 다르다고 지레 판단해버린 이들이 하는 말은 우리에게 소음처럼 들립니다. 자기 확신에 찬 이들의 언어는 폭력적이기도 합니다. 차이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특히 종교적으로 근본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이들일수록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를 견디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기준으로 삼아 세상을 재단합니다. 그 생각에 포섭되지 않는 이들은 배척하거나 혐오합니다. 마치 기관총을 발사하듯이 거친 말, 단정적인 말을 쏟아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말이 닿는 곳에서 건강한 생명은 불구로 변하고, 단절의 벽은 점점 높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고 말했습니다. 히브리어로 말씀을 뜻하는 ‘다바르’는 단순히 말이 아니라 행위를 내포합니다. 다바르는 창조력입니다. 예언자들의 말도 다바르입니다. 아름다운 창조의 흐름이 불의와 부패와 폭력에 막혀 차단될 때 터져나오는 말이니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든 터져나올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이 누군가의 가슴에 희망의 싹을 틔울 수도 있고, 절망으로 이끄는 통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순절기를 지나면서 우리가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화해자로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 사람들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고, 도무지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만나 사랑의 친교를 나누도록 해야 합니다. 나와 성향이 다르고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과도 마음을 열고 접촉할 용기를 내야 합니다. 많은 점에서 공통분모를 찾기 어려운 이들과 함께 지낸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 몰려서든, 아니면 의지적 결단이든 다른 사람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장벽의 저편에 있는 이들이 우리와는 상종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부끄러워하기도 합니다.

 

사진/김승범


지난 월요일 저는 아내와 함께 청계천변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먼 거리를 빠르게 걸을 수 없는 아내의 사정을 고려한 선택이었습니다. 걸음을 늦추니 보이는 게 많았습니다. 머리 위로는 장미꽃이 드레드레 매달려 추파를 던졌고, 개천에는 팔뚝 크기의 잉어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물가 바위에는 한 다리로 절묘하게 균형을 잡은 채 쉬고 있는 왜가리도 보였고, 뒷목에 길게 돌출된 흰색 깃털이 난 해오라기도 물속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나왔는지 귀여운 아이들도 그 신기한 새들을 보며 으밀아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걷다가 마주치는 이들 중에는 서름한 내색없이 풍경에 대한 감상을 툭 던지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정겨운 풍경입니다. 박태원의 ‘천변풍경’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지만 그래도 도심지에 이만한 산책로가 있다는 것이 참 고마웠습니다.

한참 걷다보니 건너편으로 ‘광장시장’이라는 간판이 보였습니다. 이실직고 하자면 저는 서울에 50년 넘게 살았으면서도 광장시장에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절로 발걸음이 그쪽으로 옮겨졌습니다. 포목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한복집 또한 많았습니다. 요즘 한복을 입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저 가게가 어떻게 운영될까 싶어 안쓰럽기조차 했습니다. 손님을 호객하는 이도 있었고, 무심한 눈길로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고, 성경을 읽고 있는 이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분들은 수십 년째 똑같은 모습과 표정으로 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겁니다. 권태로울 수도 있는 일상을 그분들은 어떻게 견디셨을까요?

조금 더 걷다보니 먹자골목처럼 보이는 곳이 나왔습니다. 녹두빈대떡, 마약 김밥, 육회비빔밥, 떡볶이, 해산물 등속이 사열하듯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연신 ‘와’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동감 넘치는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문득 제가 읽는 책의 세계가 얼마나 관념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빵을 먹어본 적이 결코 없는 사람은, 자기 잠자리에서 근심에 찬 밤을 눈물로 지새며 앉아 있지 않는 사람은, 결코 그대를, 그대 천상의 힘들을 알지 못하리!”(요한 볼프강 폰 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곽복록 역, 동서문화사, p.136) 하프 켜는 노인의 노래 가운데 나오는 구절입니다. 땀 흘리며 일하는 이들에 비해 머리를 쓰며 사는 제 삶이 초라하게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시장을 벗어나 온 길을 되짚어 오는 동안 걷기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어느 모임에 가든 가끔 듣는 단골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가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여러 권의 책을 낸 저자이기 때문에 듣는 질문도 있습니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어떻게 하세요?” 글을 쓰다 보면 어떤 때는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이 풀려나오듯, 거미가 거미줄을 뱉어내듯 줄줄 생각이 이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생각을 타자를 치는 손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물고, 대개의 시간은 떠오르지 않는 생각을 이끌어내기 위해 긴장하며 견뎌야 합니다. 이런 경험을 세세히 풀어 설명할 수는 없는지라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미리 준비해 놓았습니다. “산책을 해요.” 답해 놓고 생각하니 꽤 적절한 대답이었습니다. 몸의 움직임이 달라지면 생각의 길 또한 달라집니다. 차라리 생각을 비워내고 나면 가출했던 언어가 돌아올 때도 있습니다. 전혀 다른 루트를 통해 생각이 전개되는 셈이지요.

운동 삼아 걷는 것도 좋지만, 영혼의 환기를 위해 느긋하게 걷는 것도 꽤 도움이 됩니다. 해찰하며 걷다보면 바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것들에게 말을 건네거나 그것들이 건네는 말을 들으려고 귀를 쫑긋하다 보면 나를 사로잡고 있던 긴장감이 해소됨이 느껴집니다. 자기 초상에 충실해야 한다는 사회적 속박에서 벗어나는 일은 자못 장쾌한 일이 아니던가요?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걸을 때 누릴 수 있는 자유다. 걸어가는 몸은 역사를 가진 것이 아니라 그냥 태곳적에 시작된 생명의 흐름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두 다리를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는 짐승, 키 큰 나무들 사이의 순수한 힘, 한 번의 외침에 불과한 것이다.”(프레데리크 그로,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이재형 옮김, 책세상, p.17)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 이것 참 멋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종교는 오랜 순례의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순례는 영혼의 중심을 찾아가려는 치열한 몸부림입니다. 순례는 불편함 속으로의 돌입입니다. 어떤 종교 전통에서는 오체투지를 하며 나아가기도 합니다. 자기 몸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것이지요. 뭘 얻으려는 것일까요? 뭘 얻으려는 것보다는 자기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로부터 해방될 때 비로소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던가요? 안셀름 그륀은 기독교인의 걷기에 대한 책에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새로운 세상의 꿈을 품고 예수의 동행이 되어 살던 제자들에게 십자가 사건은 큰 충격이었을 겁니다. 하나님 나라의 꿈은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던 것일까요? 그들을 온통 사로잡고 있던 것은 저물녘의 쓸쓸함이었을 겁니다.

“지금 여기에서 나는 걷고 있다. 나는 텅 비었다. 힘이 다 빠졌다. 나는 아는 길을 지나며, 낯선 길을 지난다. 소요 속을 걸으며, 고요 속을 걷는다. 서로 밀쳐 대는 무리와 함께 걸으며, 외로이 홀로 걷는다. 나는 낙망하고 낙담한 채 길을 간다. 혼란스러운 내 삶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길을 간다. 이때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걸으신다. 그리스도가 나와 나란히 걸으시며 내 길을 열어 주시고, 내 이야기의 의미를 드러내 주시고, 내가 왜 지금껏 이 길을 걸어야 하는지 밝혀 주신다. 이것은 그분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안셀름 그륀, <길 위에서>, 김영룡 옮김, 분도출판사, p.89-90)

지금 절망의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분들이 계신가요? 삶은 신산스럽기 이를 데 없고, 마음 둘 곳도 없고,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그 길. 그 외로운 길 위에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과 만났습니다. 가끔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아득함에 갇힐 때,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 천천히 길을 걸어보십시오. 그 길 위에서 주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오순절기를 지나는 동안 우리 가슴에 시온의 대로가 열리면 좋겠습니다. 교우들의 가정마다 기쁨과 사랑의 샘이 고갈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고맙습니다.

2021년 5월 27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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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의 日記

      
          
우스운 일이다
피하듯 하늘을 외면했다
무심코 나선 거리 
매운바람 핑곌 삼아 고갤 떨궜다
구석구석 파고들어 
살갗 하나하나를 파랗게 일으켜 세우는 무서운 추위 
그 사일 헤집는 매운바람
잔뜩 움츠러들어 멋대로 헝클어져 
그게 바람 탓이려니 했다
가슴속 어두움도 잿빛 하늘 탓이려니 했다
우리 거짓의 두께는 얼마만한 것인지 
우린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 건지
걷고 걸어도 벗어날 수 없는 거리 
쉬운 祝祭
네가 보고 싶어
이처럼 흔들릴수록 네가 보고 싶어
뭐라 이름 하지 않아도 분명한 이름 
구체적인 흔들림과 장식 없는 쓰러짐 
그 선명한 軌跡
목 아래 낀 때를 네게 보이며 
난 네 吐瀉物이 보고 싶은 거야
바람 탓이 아니다
추위 탓이 아니다
잔뜩 움츠러들어 멋대로 헝클어져 
어둠속 서로를 알아볼 수 없는 우리들은 

<얘기마을>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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