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2)

다음날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을을 지나 산으로 들어가니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넘나들며 무지개 꽃을 피워낸다. 꽃천사 루루가 찾던 “행복의 무지개꽃”은 오늘 우리가 만난 햇살을 잠시 바라볼 여유만 있어도 쉽게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테를링크의 책 ‘파랑새’에서도 주인공 틸틸은 결국 자신의 집에서 파랑새를 찾지 않았던가. 

1코스는 접근성이 좋고 지리산 둘레길의 시작인지라 걷는 이들이 많다. 혼자 걷는 이부터 수십 명의 산악회까지 가족, 연인, 직장동료 등 길을 걷는 이들의 관계도 다양해보인다. 100년도 못사는 인생에서 우리는 참 다양한 인연의 거미줄을 치고 산다. 그 중 대부분은 돌보지 못한 세월에 사라지고, 일부는 크고 작은 풍랑에 끊기고, 남은 몇 가닥 거미줄만이 오가며 엮이어 실타래가 되고 동아줄 인연이 된다. 가끔은 동아줄 인연인줄 알았던 사람이 무심한 세월에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희미한 기억으로 남게 될 때 나는 묘한 허무함과 슬픔을 느낀다. 길이나 사람이나  왕래하는 걸음 없어지면 사라지는 법이다. 그러니 아끼는 사람과 길하나 만들어 두며 살고 싶거들랑 꼭 봐야 할 일 없고 꼭 해야 할 말 없어도 ‘보고 싶다고. 잘 지내느냐’고 속마음 한 걸음이라도 오가는 정성이 필요하다. 그리 대단한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닌데 나또한 그 마음 한 걸음 인색한 삶을 살고 있으니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사진/김승범

1코스의 반은 숲을 지나 산을 오르는 길이고 구룡폭포를 분기점으로 나머지 반은 시원한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이라 중간 중간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쉴 수 있어 조금은 여유를 갖게 하는 길이다. 봄 가뭄에 계곡물이 적다 싶지만 그래도 지리산이라 이만큼 흐르는 물을 볼 수 있지 싶다. 숨을 몰아쉬며 걷는 이, 세상일은 다 잊은 듯 흐르는 물에 발 담그고 노는 이,  구름다리 흔들며 장난을 치는 이, 기억이 되어줄 사진을 찍는 이, 묵묵히 한 걸음씩 내딛는 이. 

 

나의 오감으로 사람을 느끼지만 그것이 시끄러운 소음처럼 와 닿지 않음은 큰 산이 길에 속한 모든 이들의 소리를 품고 그들을 큰 품에 안았음이리라. 큰 산과 큰 사람은 만 가지 세상사를 품고도 시끄럽지가 않다.

1박 2일 동안 6만보가 넘는 산길을 걸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길 위에서 평범한 대화를 나누며 찔레꽃향기 따라, 때죽나무 흰 꽃길 따라 봄의 끝자락을 걸었다. 

 

생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매일을 걷고 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삶인지라 내 발자국을 따라 선을 그어보면 보수적 테두리의 작은 영역이 만들어진다. 그 안의 내 인생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나는 이 공간에 지루함을 느낀다. 그 안에 아직도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가 있고, 더 열정적으로 노력하며 배워야할 부분들이 있음을 알면서도  어찌해볼 수 없는 권태로움을 느끼며 시들어 갈 때가 있다. 

 

그 지루함과 권태로움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나는 가끔씩 테두리 너머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을 걷는다. 낯선 길에서 느껴지는 새로운 감각과 생각은 시들어가는 나의 일부에 활력을 준다. 그 힘은 테두리안 내 일상에 새로운 균형감을 주고, 걸음의 방향을 바꾸어 삶의 확장성을 준다.  생의 한가운데... 그래서 나는 더 오래,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

 

*나는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1)fzari.tistory.com/2538

 

나는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1)

몇 년 전부터 나는 친구와 함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약국에 매여 있는지라 시간을 자주 낼 순 없지만 그래도 계절마다 걷기 좋은 길을 찾아 종일 걷곤 한다. 올해는 석가탄신일을 이용해 1박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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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2)fzari.tistory.com/2545

 

나는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2)

다음날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을을 지나 산으로 들어가니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넘나들며 무지개 꽃을 피워낸다. 꽃천사 루루가 찾던 “행복의 무지개꽃”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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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 번째 일요일마다 목욕탕에 간다fzari.tistory.com/2550

 

나는 세 번째 일요일마다 목욕탕에 간다

살아오면서 나는 여러 사람에게 많은 빚을 지었다. 내가 머물 곳이 없을 때  어떤 이는 자신의 작은 방에 나를 재워 주었고, 어떤 이들은 얼굴도 모르는 내게 장학금을 주었으며, 학창시절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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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 있는 그 사람을 보세요https://fzari.tistory.com/2610?category=977884

 

눈 앞에 있는 그 사람을 보세요

 “방앗간 참새 왔어~!”  길 건너 덕리에 사는 권 씨 할아버지의 약국 문 여는 소리다. 스스로 참새가 되신 할아버지 덕분에 나는 어느새 방앗간의 주인이 된다. 82세의 권할아버지는 산 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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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셀도서관에 부는 바람https://fzari.tistory.com/2616?category=977884

 

에셀도서관에 부는 바람

나에게 특별한 두 편의 동화를 고르라면 <성냥팔이 소녀>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다. 이 책은 내가 글을 배운 이후 내가 처음 읽어 본 동화책이다. 어릴 적 우리 집은 가난했다. 초등학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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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노인의 지구별 여행기fzari.tistory.com/2536

 

화성 노인의 지구별 여행기

14평의 작은 시골약국에는 하루 종일 여러 사람이 다녀간다. 2살배기 아이부터 90세가 넘는 노인까지... 나이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먹고 사는 일도 다르고 살아온 인생도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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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 님은 사별 3년 차로 10살에 아버지를, 20살에는 어머니와 할머니를 한날에 잃었다. 그리고 47살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녀는 47살에 또다시 찾아온 사별로 인한 슬픔과 고통, 좌절과 희망이 담긴 글을 써서 사별 카페에 공유했고, 그녀의 솔직한 고백과 희망이 담긴 글은 사별 카페의 많은 사별자들에게 공감의 위로와 더불어 희망과 도전을 주었다. 얼마전 사별 카페에서 만난 네 분과 함께 사별 이야기를 담은책 <나는 사별하였다>를 출간하였다. 이제는 사별의 아픔을 딛고, 사는 날 동안 봄바람의 꽃잎 처럼 삶의 풍경 안으로 들어오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인생을 공유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지금은 화성에서 작은 시골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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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따위는 하늘마저 버렸다고

송대선의 시편묵상 2021. 4. 25. 07:09

사진/김승범

 

시편 32

 

너 따위는 하늘마저 버렸다고 빈정대는 자 또한 왜 이리도 많사옵니까?(공동번역

 

彼無神助 其命幾何(피무신조 기명기하)

하느님이 저를 돕지 않으시니 그 목숨 앗는 것쯤이야

 

저들은 큰 소리치지요. 저들의 소리가 이 땅의 현실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이 땅은 당신의 도우심을 우습게 아는 흙으로 되돌아가려는 중력과 어둠의 힘이 더 강합니다.

 

그렇기에 당신을 의지한다는 것은, 믿음의 여정을 걷는다는 것은, 눕고 일어나는 것이 다 당신의 은혜로 인한 것임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순간순간 무(), 흙으로 돌아가려는 중력의 무게 앞에서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일어나게 하시고 당신을 소망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모두 당신의 은총 덕분임을 알게 해주십시오.

 

당신 장중에 잡혀 있는 이 순간순간이 이어져 영원에 닿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눕고 일어나는 것이 사실은 곧장 생과 사로 이어지는 것임도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그러니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영광송을 외우겠습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그렇게 하루를 당신께 의탁하게 하시고 누울 때마다 주님 이제 날이 저물었습니다. 저로 하여금 착한 시작을 하게 하실 양이면 새 아침에 일으키시고 그렇지 않으실 양이면 당신 나라에서 당신을 뵙게 하소서라고 온전히 기탁하게 해주십시오.

 

 

*그분의 마음, 성심(聖心)에 닿는 길fzari.tistory.com/2510

 

그분의 마음, 성심(聖心)에 닿는 길

시편을 순서대로 읽되 한 시편 안에서 마음에 닿는 것을 붙잡으려 합니다. 차례와 관계없이 공동번역과 개역개정, 오경웅의『성영역의』(《시편사색》으로 번역출간)를 중심으로 더 입에 붙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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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 없어도 그것만으로도 넉넉합니다fzari.tistory.com/2512

 

아무 말 없어도 그것만으로도 넉넉합니다

시편 1편 6절b 의인의 길은 야훼께서 보살피신다(《공동번역》) 我主識善人〔아주식선인〕 우리 주님 선한 이 알아주신다(《시편사색》, 우징숑) 누군가를 안다고 할 때 그에 대한 사실적인 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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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씀만 하소서!fzari.tistory.com/2516?category=974810

 

한 말씀만 하소서!

시편 1편 2절 야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 (《공동번역》) 優遊聖道中 涵泳徹朝夕〔우유성도중 함영철조석〕 거룩한 말씀 새김질하며 거닐며 종일 그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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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방이 날뛰고 만민이 미쳐 돌아가는구나!fzari.tistory.com/2519?category=974810

 

열방이 날뛰고 만민이 미쳐 돌아가는구나!

시편 2편 1-3절 어찌하여 나라들이 술렁대는가? 어찌하여 민족들이 헛일을 꾸미는가? 야훼를 거슬러, 그 기름부은 자를 거슬러 세상의 왕들은 들썩거리고 왕족들은 음모를 꾸미며 “이 사슬을 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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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분수를 모르는 하루살이의 소동이라!fzari.tistory.com/2522

 

제 분수를 모르는 하루살이의 소동이라!

시편 4절 4절에서 시인은 그 난장판의 야단법석에서 하느님의 웃음소리를 듣습니다. 하늘 옥좌에 앉으신 야훼, 가소로워 웃으시다 笑蜉蝣之不知自量(소부유지부지자량) 제 분수를 모르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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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적이 얼마나 많은지요fzari.tistory.com/2532

 

내 적이 얼마나 많은지요

시편 3편 1절 吾敵何多(오적하다) 내 적이 얼마나 많은지요(《시편사색》, 우징숑) 당신께 나아가기로 결심하거나 마음을 다지면 걸리는 것들이 뭉게구름처럼 일어나 저를 덮치면서 말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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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록 당신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fzari.tistory.com/2535

 

그럴수록 당신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편 3편 4절 竭聲籲主(갈성유주) 온맘과 영혼으로 주님 당신을 부릅니다(《시편사색》, 우징숑) 그러니 그럴수록 당신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이렇게 제 속의 결심은 연약하기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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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적들을 쳐주소서!fzari.tistory.com/2540?category=974810

 

저의 적들을 쳐주소서!

시편 3편 3절, 6절 그러나 야훼여! 당신은 나의 방패, 나의 영광이십니다. 내 머리를 들어 주십니다.〔3절〕 적들이 밀려 와 에워 쌀지라도 무서울 것 하나 없사옵니다.〔6절〕(《공동번역》) 護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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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이를 특별히 마음에 두시네fzari.tistory.com/2559

 

경건한 이를 특별히 마음에 두시네

시편 4편 3절 알아 두어라, 야훼께서는 경건한 자를 각별히 사랑하시니, 내가 부르짖으면 언제나 들어 주신다.(《공동번역》) 須知主公明 忠良是所秩(수지주공명, 충량시소질) 모름지기 알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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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무엇이 인생의 참된 평강인지요fzari.tistory.com/2563

 

정녕, 무엇이 인생의 참된 평강인지요

시편 4편 6절 “그 누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보여 줄까” 하고 말하는 자가 많사오니, 밝으신 당신의 얼굴을 우리에게 돌리소서, 야훼여.(《공동번역》) 衆庶喁喁望 何日見時康(중서옹옹망 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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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은 세고 어둑하기 한이 없어라fzari.tistory.com/2568

 

고집은 세고 어둑하기 한이 없어라

시편 4편 2절 너희, 사람들아! 언제까지 나의 영광을 짓밟으려는가? 언제까지 헛일을 좇고 언제까지 거짓 찾아 헤매려는가?(《공동번역》) 嗚呼濁世子 冥頑盍有極(오호탁세자 명관함유극)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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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달라 애원하는 이 소리https://fzari.tistory.com/2580?category=974810

 

살려달라 애원하는 이 소리

시편 5편 1, 2절 한숨짓는 까닭을 알아주소서 살려달라 애원하는 이 소리 모르는 체 마소서(《공동번역》) 鑑我默默情(감아묵묵정) 聆我哀哀號(영아애애호) 침묵으로 말씀드리는 저를 살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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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외의 마음 담아, 오롯한 사랑을 나누며https://fzari.tistory.com/2588?category=974810

 

경외의 마음 담아, 오롯한 사랑을 나누며

시편 5편 7절 당신의 크신 사랑만을 믿고 나는 당신 집에 왔사옵니다. 주님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거룩한 성전을 향하여 엎드립니다.(《공동번역》) 我欲入主室 暢沾主膏澤(아욕입주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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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손 내미사 자비 드러내소서https://fzari.tistory.com/2591

 

당신의 손 내미사 자비 드러내소서

시편 6편 4,5절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소서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공동번역》) 祈主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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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징숑(오경웅)의 《성영역의》를 우리말로 옮기고( 《시편사색》) 해설을 덧붙인 송대선 목사는 동양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 귀동냥을 한다고 애쓰기도 하면서 중국에서 10여 년 밥을 얻어먹으면서 살았다. 기독교 영성을 풀이하면서 인용하는 어거스틴과 프란체스코,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등의 서양 신학자와 신비가들 뿐만 아니라 『장자』와 『도덕경』, 『시경』과 『서경』, 유학의 사서와 『전습록』, 더 나아가 불경까지도 끌어들여 자신의 신앙의 용광로에 녹여낸 우징숑(오경웅)을 만나면서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지평에 눈을 떴다. 특히 오경웅의 『성영역의』에 넘쳐나는 중국의 전고(典故와) 도연명과 이백, 두보, 소동파 등을 비롯한 수많은 문장가와 시인들의 명문과 시는 한없이 넓은 사유의 바다였다.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후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열린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제천과 대전, 강릉 등에서 목회하였고 선한 이끄심에 따라 10여 년 중국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누렸다. 귀국 후 영파교회에서 사역하였고 지금은 강릉에서 선한 길벗들과 꾸준하게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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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고춧대



지난겨울 박수철 씨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론 누구보다도 아주머니가 버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몸 한쪽 편을 못 쓰는 남편 온갖 뒷바라지 하랴, 어떻게든 고쳐보려 천근같은 몸을 기대 오는 남편을 부축해 멀리 횡성까지 침 맞으러 다니랴, 치료비라도 보태려 틈틈이 농사지으랴 정신이 없습니다. 


몸이 서너 개라도 쉽지 않을 일을 아주머닌 혼자 감당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겪어야 할 고통이라면 자식보다는 자신이 겪겠다며 고통의 한계를 몸으로 정해놓고 힘든 내색 없이 온갖 일을 꾸려갑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담보로 고통을 홀로 맞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 찾는 아주머니의 마음은 절박할 수밖에 없어 기도 끝엔 늘 눈물입니다. 


어느 날 박수철 씨 집을 찾아 아주머니와 함께 마루에 앉았을 때였습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냐며 아주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없는 시간을 내어 뒷밭에다 고추를 심었더니 그런대로 잘 자라 올랐답니다. 그 만큼의 키라면 막대기로 고춧대를 세워줘야 했는데, 어디 산에가 고춧대를 베어 올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시간도 그렇도, 나무를 베는 일이 아주머니에겐 쉽지도 않은 일인지라 아픈 남편의 처지가 더욱 한스럽게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애써 노력해도 툭툭 막히는 일들, 맥이 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누군가 땀을 뻘뻘 흘리며 지게를 지고선 마당으로 들어서더랍니다.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정은근 집사님이었는데 지게 위에는 고춧대로 쓸 만한 나무가 한 짐 얹어 있었습니다. 내가 꿈을 꾸나, 멍해진 아주머니 앞에 나뭇단을 내려놓은 집사님은 이내 또 다시 산으로 올라 한 묶음 고춧대를 또 한 번 져 날랐습니다.


이 뜨거운 날 농사일도 안 해본 사람이 산에 올라가 얼마나 고생을 했겠냐며, 그렇게 고마울 데가 있냐며 아주머니 목소리는 사뭇 떨렸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남편은 병세가 차츰 호전이 돼 이젠 막대기를 짚고 혼자 걸을 정도가 됐습니다. 불편해도 식사도 혼자 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선선한 바람과 함께 고추밭에 고추는 빨갛게 익어 첫물 따기를 합니다. 붉고 매운 고추. 우리는 밥보다도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정말 그 뿐임을 마음 깊이 배웁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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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봉오리는

꽁꽁 움켜쥔 조막손

손안에 힘이 풀리면

다섯 손가락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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