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속도를 줄이십시오


“성급한 사람과 사귀지 말고, 성을 잘 내는 사람과 함께 다니지 말아라. 네가 그 행위를 본받아서 그 올무에 걸려 들까 염려된다.”(잠 22:24-25)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지난 한 주간도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셨는지요?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교우들 모두 자기 인생의 때를 사느라 분주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앞두고 설렘 속에 있는 이들도 있고, 뜻하지 않은 시간에 찾아온 질병과 사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왠지 모를 불안함에 시달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그 모든 분들의 품이 되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약 5:13)

어느덧 곡우 절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시간의 속도는 일정하지만 사람들이 경험하는 시간의 속도는 제가끔 다릅니다. 권태에 빠진 영혼에게 시간은 너무 느리고, 어떤 열정에 휘말리고 있는 이들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빠릅니다. 하지만 어느 경우이든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시간은 꿈결같이 흘러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덧없는 인생’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말하면 이미 늙어버린 것일까요?

덧없는 삶이 그나마 아름다운 것은 고마운 인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신비롭기만 합니다. 하고많은 사람 중에 우리를 한 공동체로 세우신 까닭이 무엇일까요? 참 고맙습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 걸어온 분들이나 새로운 지체가 된 분들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새로운 인류입니다. 이런 저런 기준을 내세워 사람들을 가르고 나누는 것이 현실이라면, 교회는 그런 차이를 넘어 일치를 지향하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만나 피차 위로하고, 위로받고, 격려하고,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아파하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사진/김승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느긋하게 좋은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이느라 서가에서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꺼내 밑줄을 그어놓았던 구절들을 읽어보았습니다. ‘느린 사람들은 평판이 좋지 못하다’는 말로 시작되는 이 책에서 저자는 느림을 의도적으로 선택하겠다고 말합니다. “느림. 내게는 그것이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으로 보여진다.” 조금 길지만 그가 쓴 문장을 인용하겠습니다. 천천히 읽으며 머릿속에 이미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나는 굽이굽이 돌아가며 천천히 흐르는 로 강(江)의 한가로움에 말할 수 없는 애정을 느낀다. 그리고 거의 여름이 끝나갈 무렵, 마지막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끝물의 과일 위에서 있는 대로 시간을 끌다가 마침내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는 9월의 햇살을 몹시 사랑한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굴에 고귀하고 선한 삶의 흔적을 조금씩 그려가는 사람들을 보며 감동에 젖는다. 시골의 작은 마을 카페. 하루의 노동을 끝낸 사내들이 가득 채운 포도주 잔을 높이 치켜든 채 그 붉고 투명한 액체를 가만히 응시한다. 지그시 바라보다가 드디어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가 마시는 모습은 경건해 보이기까지 한다. 수백 년이 넘는 아름드리 나무들. 그들은 수 세기를 이어 내려오면서 천천히 자신들의 운명을 완성해 간다. 아주 천천히. 그것은 영원에 가까운 느림이다.”(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김주경 옮김, 동문선현대신서50, p.10)

우리를 마구 밀어붙이는 세상에 살면서 느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시간에 떠밀려 표류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느림을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이들은 자기 숨이 가지런해짐을 실감합니다. 급한 성정이 결삭을 때 우리 주변에 평화의 기운이 감돌게 됩니다. 사람들을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세상에 살면서 우리 마음에는 시퍼런 멍자국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 때문인지 조그마한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삽니다. 급한 우리 마음을 자꾸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야 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지난 4월 17일부터 이른바 ‘안전 속도 5030’이라는 도심속도제한이 적용된다지요? 일반도로는 50km/h 이하로 달려야 하고, 주택가 등 이면 도로는 30km/h 이하로 달려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것을 시범적으로 먼저 시행했던 도시에서는 인명 피해가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교통 혼잡에 따른 불편도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니 다행입니다. 운전대만 잡으면 입이 거칠어지고 질주 본능에 사로잡히는 이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속도의 신화에 사로잡힌 이들이 불퉁거리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조치는 마땅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심속도제한 소식을 들으며 몇 해 전 독일에서 경험했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베를린에서 집회를 마치고 잠시 괴테의 도시인 바이마르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괴테 하우스 박물관을 찾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우리처럼 커다란 간판이 걸려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방이 많은 괴테 하우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을 지낸 괴테의 유복한 삶에 약간의 질투를 느꼈습니다. 괴테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프리드리히 쉴러의 집도 있었습니다. 고단하기 이를 데 없던 그의 삶의 흔적들이 그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무슨 억하심정인지 모르겠지만 괴테보다는 쉴러에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노마드적(유목적) 삶의 신산스러움에 대한 공감 때문이었을 겁니다.

바우하우스 조형대학까지 방문하고 베를린으로 돌아갈 때는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습니다. 속도 제한이 없는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차들의 행렬이 어지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베를린에 가까운 어느 산길에 다가서자 모든 차들이 시속 30km로 속도를 줄였습니다. 도로가 한산했지만 그 속도를 위반하는 차량은 없었습니다. 저를 안내해준 분은 어리둥절해 하는 제게 밤은 동물들도 휴식을 취해야 하는 시간이기에 자동차의 소음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습니다. 그나마 밤 9시가 넘으면 차량통행이 금지되는 도로라 했습니다. 동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살갑게 다가왔습니다. 마침 차창 밖으로 붉은 여우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치 선물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프라이부르크(Freiburg im Breisgau)에 갔을 때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낮에 몇 차례 지나간 도로인데, 저녁 9시가 되자 차들이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양 옆으로 주택을 낀 도로였습니다. 그 시간이면 사람들이 편안한 휴식을 취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자동차 소리를 제한하기 위한 조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규정을 잘 지켰습니다. 시민의식이 높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규정을 어겼을 때 상당한 벌금을 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시민 사회는 사람들이 함께 지켜야 할 것을 지켜가는 데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자꾸 엇나가고 있습니다만 한 가지가 더 떠오르네요. 프라이부르크에 머무는 동안 도심 외곽에 살고 있는 한 피아니스트의 집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저녁 만찬을 나누며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다가 그 자리에 동석한 한 건축가가 시계를 보더니 오늘은 너무 늦어 자기가 계획했던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밀린 빨래를 하려 했는데, 집에 가면 9시가 될 것이고 그러면 세탁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공동주택에 사는 이의 비애라 했습니다. 이웃들의 쉼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섬세한 배려였습니다. 자유는 그러한 한계를 받아들일 때 아름답습니다. 층간 소음 문제가 이웃 간의 폭력으로 비화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우리 사회의 현실과 무척 대조가 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의 속도를 조금만 줄여 보십시오. 고요한 마음에만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질주하느라 미처 보지 못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올 겁니다. 미당 서정주 선생의 시 ‘난초’는 그런 세계를 절묘하게 보여줍니다. “하늘이/하도나/고요하시니/난초는/궁금해/꽃 피는 거다.” 조급한 마음에 사로잡히는 순간 우리 속에는 불평불만이 가득 차오릅니다. 출애굽 공동체가 큰 시련을 겪은 때는 조급한 마음에 사로잡혔을 때입니다. “그들은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에서부터 홍해 길을 따라 나아갔다. 길을 걷는 동안에 백성들은 마음이 몹시 조급하였다.”(민21:4) 비록 현실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고, 매사가 더디기만 한 것 같아도, 안달하지 마십시오.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시는 주님을 깊이 신뢰하며 오늘이라는 시간을 충실하게 채우십시오.

이제 한 주 후인 5월 첫 주일은 우리교회 설립 11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가급적이면 그 날은 교회 문을 열고 대면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상황이 나빠지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이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평화.

2021년 4월 22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posted by

화성 노인의 지구별 여행기


14평의 작은 시골약국에는 하루 종일 여러 사람이 다녀간다. 2살배기 아이부터 90세가 넘는 노인까지... 나이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먹고 사는 일도 다르고 살아온 인생도 다른 사람들이 오늘도 약국 문턱을 넘나들며 인사를 나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오기 때문이다” 

약국 출입문 옆에 걸어 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약국에 오는 이들이 보게 될 글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내가 제일 많이 읽게 된다.


약국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사람을 습관처럼 무감각하게 대하거나, 매출을 위한 돈줄로 보게 되는 마음을 경계하고, 또 내가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길 바라며 되새겨 읽게 되는 글귀이다. 평소 나는 약국을 찾는 이들에게 여러 질문을 건네고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우리는 동네 골목길에서 만난 듯 소탈하게, 어느 집 부엌의 밥 짓는 냄새만큼이나 고소하게, 봄의 들꽃처럼 수수하게, 때로는 100분 토론처럼 진지하고 격렬하게 인사를 건네고 삶에 대한 애기를 나눈다. 
  

사람들과의 대화는  음식처럼 다양한 맛을 낸다. 어느 대화는  달콤하고, 어느 대화는 씁쓸하고 또 어떤 이는 담백하다. 그리고 어느 대화는 길게 여운을 남기는 뒷맛을 지녔다.

 



오늘은 된장에 묻힌 봄나물을 투박하지만 예쁜 분청사기에 담아놓은 듯 한 맛을 내는 안 장로님 애기를 해주고 싶다. 올해 나이 84세, 네 딸의 아버지요 홀로되신지 40년이 지났다. 6.25전쟁 때 북쪽에서 피난 내려오셔서 화성에 살게 되셨는데 가진 것 하나 없어 남의 집 머슴부터 온갖 일을 하셨단다. 배운 것 이라곤 땅을 일구는 것뿐이어서 젊어서부터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고 그렇게 한평생을 농사꾼으로 사셨다. 10년 세월 오며가며 전해들은 애기로 가늠해 짐작컨대 이분 또한 실로 어머 어마한 인생을 살아내신 듯 보인다. 

줄줄이 어린 딸들을 두고 아내가 죽자 어린 딸들과 젖먹이 갓난아이까지 혼자 키울 수가 없어서 막내는 입양을 보냈고, 남은 4명의 딸들을 키우다 보니 그 세월이 하루처럼 가버렸단다.

 

사진/김승범


막내딸 정분씨는 아직 미혼으로 아버지와 살고 있는데 몇 해 전부터 아버지를 모시고 1년에 1-2번씩 가까운 곳으로 해외여행을 간다. 처음엔 싫다 하시던 장로님이 아이처럼 들뜬 모습으로 들려주시는 여행담은 글 좀 쓰는 여행 작가의 베스트셀러 못지않은  재미가 있다.

“내가 말야, 이번에 대만에 다녀왔거든. 근데 거기 바닷가에 요상스런 돌밭이 있는데 구멍이 숭숭 뚫린 돌들이 버섯맹키 생긴것도 있고, 여자얼굴 같은 것도 있고... 근데 고것들이 사람이 맨든게 아니리 바람이 그랬다드만. 대만 바람은 기술도 좋아.  같이 간 사람들이 자꾸 노래를 하라고 해서 내가 또 버스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갔어. 한곡만 할라 했는데 박수를 자꾸 쳐가지고 내가 또 불렀지. 온천을 갔는데 말야 늙은 살가죽도 온천물로 씻으니 보들보들 헌 것이 아적 쓸만허데. ” 


화성 노인의 지구별 여행기는 자꾸 웃음이 난다. 

장로님은 고추농사를 전문으로 하신다. 2월이 되면 비닐하우스에 고추모종을 키워서 내다팔고 1년에 3000-4000개의 고추를 심는다. 이른 봄부터 시작된 고추농사는 10월이 되어야 끝나는데 그 많은 고추를 혼자서 심고 따고 말리고 판매까지 하신다. 나이가 드시면서 조금씩 줄이기는 하셨지만 작년에도 2500개나 심고 거두셨다. 오랫동안 고추농사를 하셨으니 장로님만의 단골고객들이 있어서 그렇게 많이 심고 거두어도 완판을 하신다. 장로님은 가장 좋은 시기에 나온 좋은 고추는 따로 추려서 제일 먼저 교회에 가져가신다. 올해 나이 84세의 노익장은 아직도 동네 최고의 고추농사꾼이다. 

하지만 내가 장로님께 놀라는 것은 노익장의 고추농사 때문만은 아니다. 내게 감동을 주고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것은 그분이 내게 수시로 들려주시는 성경구절들과 찬송가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성경구절들을 줄줄이 암송하시는 모습을 보노라면 이분이 정녕 84세인지 의심스럽다.


일주일동안 암송하고 싶은 성경 한 장을 정해서 일하는 중에... 걷는 중에.. 먹는 중에... 하루 종일 수시로 암송을 한다고 하신다. 장로님은 “주의 말씀이 꿀처럼 달다”고 말씀하시며 어린 아이 같은 표정을 하고 암송한 성경구절을 들려주시곤 한다. 

또 장로님이 불러주시는 찬송가는 정말 압권이다. 장로님만의 스타일로 재편곡된 찬송가는 ‘이 찬송가가 내가 알던 그 곡인가?’싶어 새롭고 우습지만, 찬송가를 부르시는 장로님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자꾸 미소를 짓게 된다. 


장로님을 볼 때마다 내 안에 떠오르는 예수님의 한마디는 누가복음 18장 16절이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장로님은 오늘도 내게 성경을 암송해주고 찬송가를 불러주시며 말씀하신다. “어디서...누구앞에서 부르든 찬송가를 대충 부르면 못써! 모르면 다시 배우고 다시 연습해서 지대로 정성껏 불러야제.  하나님은 태진아나 송대관이 노래하는 것보다 내가 하나님께 찬송가를 잘 불러드리는 걸 더 좋아하신단 말여.”라며 당당하게 말씀하신다. 

맞다! 나 또한 대한민국의 유명한 아이돌이 불러주는 노래보다 내 아이들이 나를 위해서 정성껏 불러주는 한곡의 노래에 눈물이 나고 웃음이 나는 것처럼 하나님도 그러시리라.


하나님이 84세의 안 장로님과 44세의 이정숙을  함께 보고 계신다면 누구를 더 사랑스럽게 바라보실지는 너무도 자명하다. 나는 장로님보다 40살이나 젊지만 장로님처럼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지 못한다. 그래서 장로님의 그 마음과 그 표정이 부럽다. 장로님이 보여주시는 하나님을 향한 그 뜨겁고 순수한 애정 앞에서 나는 매번 기가 죽는다.

오늘도 유리약국엔 사람들이 다녀가고 이야기가 남겨진다.

*나는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1)fzari.tistory.com/2538

 

나는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1)

몇 년 전부터 나는 친구와 함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약국에 매여 있는지라 시간을 자주 낼 순 없지만 그래도 계절마다 걷기 좋은 길을 찾아 종일 걷곤 한다. 올해는 석가탄신일을 이용해 1박 2일

fzari.com

 

*나는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2)fzari.tistory.com/2545

 

나는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2)

다음날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을을 지나 산으로 들어가니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넘나들며 무지개 꽃을 피워낸다. 꽃천사 루루가 찾던 “행복의 무지개꽃”은 오늘

fzari.com

*나는 세 번째 일요일마다 목욕탕에 간다fzari.tistory.com/2550

 

나는 세 번째 일요일마다 목욕탕에 간다

살아오면서 나는 여러 사람에게 많은 빚을 지었다. 내가 머물 곳이 없을 때  어떤 이는 자신의 작은 방에 나를 재워 주었고, 어떤 이들은 얼굴도 모르는 내게 장학금을 주었으며, 학창시절 선생

fzari.com

 

*눈 앞에 있는 그 사람을 보세요https://fzari.tistory.com/2610?category=977884

 

눈 앞에 있는 그 사람을 보세요

 “방앗간 참새 왔어~!”  길 건너 덕리에 사는 권 씨 할아버지의 약국 문 여는 소리다. 스스로 참새가 되신 할아버지 덕분에 나는 어느새 방앗간의 주인이 된다. 82세의 권할아버지는 산 밑의

fzari.com

 

*에셀도서관에 부는 바람https://fzari.tistory.com/2616?category=977884

 

에셀도서관에 부는 바람

나에게 특별한 두 편의 동화를 고르라면 <성냥팔이 소녀>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다. 이 책은 내가 글을 배운 이후 내가 처음 읽어 본 동화책이다. 어릴 적 우리 집은 가난했다. 초등학교 2

fzari.com

----------------------------

 

이정숙 님은 사별 3년 차로 10살에 아버지를, 20살에는 어머니와 할머니를 한날에 잃었다. 그리고 47살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녀는 47살에 또다시 찾아온 사별로 인한 슬픔과 고통, 좌절과 희망이 담긴 글을 써서 사별 카페에 공유했고, 그녀의 솔직한 고백과 희망이 담긴 글은 사별 카페의 많은 사별자들에게 공감의 위로와 더불어 희망과 도전을 주었다. 얼마전 사별 카페에서 만난 네 분과 함께 사별 이야기를 담은책 <나는 사별하였다>를 출간하였다. 이제는 사별의 아픔을 딛고, 사는 날 동안 봄바람의 꽃잎 처럼 삶의 풍경 안으로 들어오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인생을 공유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지금은 화성에서 작은 시골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posted by

그럴수록 당신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송대선의 시편묵상 2021. 4. 22. 06:22

시편 34

 

 야훼께 부르짖으면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들어 주십니다.(공동번역)

 

竭聲籲主(갈성유주)

온맘과 영혼으로 주님 당신을 부릅니다(시편사색, 우징숑)

 

사진/김승범

 

그러니 그럴수록 당신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이렇게 제 속의 결심은 연약하기만 한데 마음 안팎 적들의 조롱과 설득, 위협과 강권은 쉴 새 없이 울려납니다. 그러니 당신 이름을 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여, 이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소서.” 저들의 조롱이 제 귀를 다 채우고 그 위협이 제 마음을 가득 채워 저를 사로잡기 전에 당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소리를 다함(竭聲)은 기실 마음을 다함(竭誠)이지요.

 

멀리 계신 거 아니신가 두려워 당신을 부릅니다.

혹여 더디 오실까 두려워 속히 오시라 부릅니다.

혹여 이 상황을 너무 가벼이 여기실까 두려워 부릅니다.

제가 견디지 못하고 숨막혀할까 두려워 부릅니다.

 

그렇게 거듭 부르는 중에 그리도 살갑게 응답하시고 다가오셔서 조롱과 위협의 허깨비들의 그림자를 지우시고 당신의 임재로 저를 살리셨던 기억들이 하나둘 일어납니다.

 

그로 인해서 다시금 일어나고 힘을 얻었던 과거의 순간들, 은총의 순간들이 지금 여기에 다시 드러나면서 기실 그 두려움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그저 스러지는 포말(泡沫)이요 환영(幻影)임을 선명히 보여줍니다.

 

 

*그분의 마음, 성심(聖心)에 닿는 길fzari.tistory.com/2510

 

그분의 마음, 성심(聖心)에 닿는 길

시편을 순서대로 읽되 한 시편 안에서 마음에 닿는 것을 붙잡으려 합니다. 차례와 관계없이 공동번역과 개역개정, 오경웅의『성영역의』(《시편사색》으로 번역출간)를 중심으로 더 입에 붙는

fzari.com

*아무 말 없어도 그것만으로도 넉넉합니다fzari.tistory.com/2512

 

아무 말 없어도 그것만으로도 넉넉합니다

시편 1편 6절b 의인의 길은 야훼께서 보살피신다(《공동번역》) 我主識善人〔아주식선인〕 우리 주님 선한 이 알아주신다(《시편사색》, 우징숑) 누군가를 안다고 할 때 그에 대한 사실적인 앎

fzari.com

 

*한 말씀만 하소서!fzari.tistory.com/2516?category=974810

 

한 말씀만 하소서!

시편 1편 2절 야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 (《공동번역》) 優遊聖道中 涵泳徹朝夕〔우유성도중 함영철조석〕 거룩한 말씀 새김질하며 거닐며 종일 그 말씀

fzari.com

*열방이 날뛰고 만민이 미쳐 돌아가는구나!fzari.tistory.com/2519?category=974810

 

열방이 날뛰고 만민이 미쳐 돌아가는구나!

시편 2편 1-3절 어찌하여 나라들이 술렁대는가? 어찌하여 민족들이 헛일을 꾸미는가? 야훼를 거슬러, 그 기름부은 자를 거슬러 세상의 왕들은 들썩거리고 왕족들은 음모를 꾸미며 “이 사슬을 끊

fzari.com

*제 분수를 모르는 하루살이의 소동이라!fzari.tistory.com/2522

 

제 분수를 모르는 하루살이의 소동이라!

시편 4절 4절에서 시인은 그 난장판의 야단법석에서 하느님의 웃음소리를 듣습니다. 하늘 옥좌에 앉으신 야훼, 가소로워 웃으시다 笑蜉蝣之不知自量(소부유지부지자량) 제 분수를 모르는 하루

fzari.com

 

*내 적이 얼마나 많은지요fzari.tistory.com/2532

 

내 적이 얼마나 많은지요

시편 3편 1절 吾敵何多(오적하다) 내 적이 얼마나 많은지요(《시편사색》, 우징숑) 당신께 나아가기로 결심하거나 마음을 다지면 걸리는 것들이 뭉게구름처럼 일어나 저를 덮치면서 말립니다.

fzari.com

 

*너 따위는 하늘마저 버렸다고fzari.tistory.com/2544

 

너 따위는 하늘마저 버렸다고

시편 3편 2절 너 따위는 하늘마저 버렸다고 빈정대는 자 또한 왜 이리도 많사옵니까?(《공동번역》 彼無神助 其命幾何(피무신조 기명기하) 하느님이 저를 돕지 않으시니 그 목숨 앗는 것쯤이야

fzari.com

*경건한 이를 특별히 마음에 두시네fzari.tistory.com/2559

 

경건한 이를 특별히 마음에 두시네

시편 4편 3절 알아 두어라, 야훼께서는 경건한 자를 각별히 사랑하시니, 내가 부르짖으면 언제나 들어 주신다.(《공동번역》) 須知主公明 忠良是所秩(수지주공명, 충량시소질) 모름지기 알지니

fzari.com

 

*정녕, 무엇이 인생의 참된 평강인지요fzari.tistory.com/2563

 

정녕, 무엇이 인생의 참된 평강인지요

시편 4편 6절 “그 누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보여 줄까” 하고 말하는 자가 많사오니, 밝으신 당신의 얼굴을 우리에게 돌리소서, 야훼여.(《공동번역》) 衆庶喁喁望 何日見時康(중서옹옹망 하일

fzari.com

 

*고집은 세고 어둑하기 한이 없어라fzari.tistory.com/2568

 

고집은 세고 어둑하기 한이 없어라

시편 4편 2절 너희, 사람들아! 언제까지 나의 영광을 짓밟으려는가? 언제까지 헛일을 좇고 언제까지 거짓 찾아 헤매려는가?(《공동번역》) 嗚呼濁世子 冥頑盍有極(오호탁세자 명관함유극) 세상

fzari.com

 

*살려달라 애원하는 이 소리https://fzari.tistory.com/2580?category=974810

 

살려달라 애원하는 이 소리

시편 5편 1, 2절 한숨짓는 까닭을 알아주소서 살려달라 애원하는 이 소리 모르는 체 마소서(《공동번역》) 鑑我默默情(감아묵묵정) 聆我哀哀號(영아애애호) 침묵으로 말씀드리는 저를 살피시고

fzari.com

*당신의 손 내미사 자비 드러내소서https://fzari.tistory.com/2591

 

당신의 손 내미사 자비 드러내소서

시편 6편 4,5절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소서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공동번역》) 祈主一

fzari.com

---------------------------------------------------------

*우징숑의 《성영역의》를 우리말로 옮기고( 《시편사색》) 해설을 덧붙인 송대선 목사는 동양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 귀동냥을 한다고 애쓰기도 하면서 중국에서 10여 년 밥을 얻어먹으면서 살았다. 기독교 영성을 풀이하면서 인용하는 어거스틴과 프란체스코,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등의 서양 신학자와 신비가들 뿐만 아니라 『장자』와 『도덕경』, 『시경』과 『서경』, 유학의 사서와 『전습록』, 더 나아가 불경까지도 끌어들여 자신의 신앙의 용광로에 녹여낸 우징숑(오경웅)을 만나면서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지평에 눈을 떴다. 특히 오경웅의 『성영역의』에 넘쳐나는 중국의 전고(典故와) 도연명과 이백, 두보, 소동파 등을 비롯한 수많은 문장가와 시인들의 명문과 시는 한없이 넓은 사유의 바다였다.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후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열린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제천과 대전, 강릉 등에서 목회하였고 선한 이끄심에 따라 10여 년 중국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누렸다. 귀국 후 영파교회에서 사역하였고 지금은 강릉에서 선한 길벗들과 꾸준하게 공부하고 있다.

posted by

무화과 잎과 열매

 

 



무화과 잎과 열매가
가위바위보를 한다

하늘땅 걸고서
내기를 한다

누가누가 이기나
가위바위보

무화과 잎은 빈 손
맨날 보자기

무화과 열매는 쥔 손
맨날 바위

이기기만 하는 잎은 신이 나서 
하늘을 우러러 푸르게 웃음 짓고

지기만 하는 열매는 열받아서 
잘도 잘도 영글어간다

'신동숙의 글밭 > 시노래 한 잔'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21.04.25
세작  (0) 2021.04.24
무화과 잎과 열매  (0) 2021.04.22
동중정(動中靜)  (0) 2021.04.20
진선미의 사람  (0) 2021.04.19
새순  (0) 2021.04.15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