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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47

마음을 넓히십시오 “그러자 우리 주님이 내게 한 질문을 던지셨다. 내가 너를 위하여 고난당한 그것이 너를 만족케 하였느냐? 내가 말했다. 예, 선하신 주님, 제 모든 고마움을, 선하신 주님, 당신께 드립니다. 복되소서. 우리 선하신 주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만족이면 나도 만족이다. 너를 위해 당한 고난이 내게는 기쁨이요, 지복이요, 한없는 즐거움이다.“(, 이현주 옮김, 말씀과밥의집, p.149) 주님의 평안이 세상의 나그네로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임하시기를 빕니다. 어느덧 사순절 순례의 여정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조금은 더 맑아지고 깊어지셨는지요? 엄벙덤벙 시간에 떠밀리며 살다 보면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 잊을 때가 많습니다. 삶에 대한 질문은 잠시 멈춰 서라는 요.. 2021. 3. 26.
사별의 늪에 빠지지 않게 꽃자리출판사(발행인:한종호)에서 출판할 책이니 뻔한 이야기일 것 같지만은 않아서 흔쾌히 리뷰 부탁을 승낙했다. 하루 날을 잡아 최종 편집원고를 읽었는데, 새벽부터 앉아 읽기 시작한 원고는 밤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야 나는 여덟 시간 동안 한자리에 앉아 집중하여 정독했던 것에 스스로도 무척 놀랐다. 온종일 한 권의 책에 푹 빠졌던 것은 나의 뚝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사별하였다》의 작가들은 제각기 자신들이 체험한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사별을 이야기한다. 네 명의 스토리텔러들이 사별 체험과 같은 주제를 제각기 다른 각도에서 풀어가는 그 이야기는 지닌 내용의 무게도 무게려니와 사별 주제를 풀어나가면서 독자를 견인해 내는 놀라운 흡입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나 .. 2021. 3. 25.
나도 하늘처럼 밤하늘 불을 끄실 때 내 방에 불을 켠다 새벽하늘 불을 켜실 때 내 방에 불을 끈다 어둔 밤이면 전깃불에 눈이 멀고 환한 낮이면 보이는 세상에 눈이 멀고 언제쯤이면 나도 하늘처럼 밤이면 탐욕의 불을 끄고서 어둠 한 점 지운 별처럼 두 눈이 반짝일까 새벽이면 마음에 등불을 켜고서 하늘 한 점 뚫은 해처럼 두 눈이 밝아질까 2021. 3. 25.
봄(8) 아무도 몰래 하나님이 연둣빛 빛깔을 풀고 계시다 모두가 잠든 밤 혹은 햇살에 섞어 조금씩 조금씩 풀고 계시다 땅이 그걸 안다 하늘만 바라고 사는 땅 제일 먼저 안다 제일 먼저 대답을 한다 2021. 3. 25.
봄(7) 아무도 모르게 견딘 추위 속 아픔 모르셔도 됩니다 누구도 모르게 견딘 어둠 속 외로움 모르셔도 되고요 다만 당신께는 웃고 싶을 뿐 웃음이고 싶을 뿐 나머지는 제 마음 아니니까요 2021. 3. 24.
봄(6) 숙제를 하다말고 책상에 엎으려 잠든 아이의 손에 파란 물이 들었습니다. 그리다 만 그림일기 속 푸른 잎 돋아나는 나무가 씩씩하게 서 있습니다. 나무도 푸르고 나무를 그리는 아이의 손도 푸르고 푸른 나무를 푸르게 바라보는 아이의 마음도 푸르고 아이는 오늘 밤 푸른 꿈을 꾸겠지요. 봄입니다. - (1996년) 2021. 3. 23.
자로 사랑을 재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지금이야 대부분 미터법을 사용하지만 이전에는 치(寸), 자(尺), 척(尺) 등 지금과는 다른 단위를 썼다. 거리를 재는 방법도 달라져서 요즘은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도 기계를 통해 대번 거리를 알아내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측정법이 좋아져도 잴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는 있다. 하늘의 높이나 크기를 누가 잴 수 있을까. 바라볼 뿐 감히 잴 수는 없다. 그런데도 자기 손에 자 하나 들었다고 함부로 하늘을 재고 그 크기가 얼마라고 자신 있게 떠벌리는 종교인들이 더러 있으니 딱한 노릇이 아닐 수가 없다. 사람의 마음도 잴 수가 없다. 기쁨과 슬픔 등 사람의 마음을 무엇으로 잴 수가 있겠는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잴 수 없고, 재서는 안 되는 것 중에는 사.. 2021. 3. 22.
봄(5) 윗작실 죽마골을 오르다 만난 꽃댕이 할머니 강 건너 꽃댕이 마을에서 시집온 뒤론 아예 이름이 꽃댕이가 되었다. 귀가 잡숴 큰소리로 싸우듯 소릴 쳐야 알아듣지만 사실 그럴 일이 뭐있담 그냥 얼굴 보면 알지 낯빛 보면 맘 알지 말은 그담 아닌가 환한 웃음으로 지나쳤는데 저만치 가던 할머니 뭐라도 잊은 듯 급하게 달려와선 혼자 사는 당신 집 빈 마루에서 웬 까만 비닐봉지 전하신다. 무슨 설명 대신 손을 잡는데 화로에 잘 익은 고구마처럼 할머니 손이 따뜻하다. 돌아와 열어보니 냉이와 달래 들었다. 혼자 사는 외로움 사람에 대한 그리움 가득 들었다. 달래 향기가 싸하다. 봄이다. - (1996년) 2021. 3. 21.
봄(4) 산이 젖을 꺼내 젖을 준다. 두 손 벌겋도록 얼어온 자식 얼른 가슴 열어 젖가슴으로 녹이 듯 경운기 지나가는 거친 산비탈 겨우내 언살 녹여 어쩜 저리 고운 흙을 내는 걸까 못자리 할 때 되지 않았느냐고 못자리 하려면 고운 흙 필요하지 않냐며 젖을 꺼내 뽀얀 젖을 내는 봄이다. - (1996년) 2021. 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