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02/082

다람쥐의 겨울나기 아랫마을 안 속장님 네를 들어서다 보니 문 한쪽 편으로 빈 철망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전에 다람쥐를 키우던 철망인데 다람쥐는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고, 철망 안엔 난로연통에 쓰이는 ‘ㄱ’자 모양의 주름진 연통과 보온 덮개로 쓰는 재생천 쪼가리들만 널려 있었습니다. 먹을 걸 넣어주던 조그만 통 안에는 잘 까진 호박씨들이 한 움큼 잘 담겨 있었습니다. 안 속장님께 다람쥐에 대해 물었더니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모이를 주려고 문을 여는 순간 밖으로 뛰쳐나와 도망을 쳤고 한 마리만 남았는데, 남은 한 마리가 날이 추워지자 연통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춥지 말라고 바닥에 깔아준 재생천을 조금씩 쏠아서 연통 속에 꾸역꾸역 쑤셔 넣더니 그 안에 틀어박혀 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남은 한 마리마저 보이질 않아.. 2021. 2. 8.
끝내 돌아서지 못하는 것은 수없이 돌아섭니다. 부름 받은 땅 이 땅에 발 붙여 살면서도 마음은 수없이 돌아섭니다. 떠날 갈 이 모두 떠난 텅 빈 땅 껍질 같은 땅에 주름진 삶이 상흔처럼 남았습니다. 숯 같은 가슴에서 떨어지는 눈물 받을 길 없고 퍼렇게 멍든 얘기 피할 길 없을 때 수없이 돌아섭니다. 말뚝처럼 불쌍한 몸뚱일 남기고서 마음은 수없이 돌아섭니다. 하면서도 끝내 돌아서지 못하는 것은 당신 때문입니다. 갈 테면 가라는 질책도 원망도 아닌 그저 나직한 음성 당신 때문입니다. 텅 빈 땅에 홀로 남는 당신의 긴 그림자 때문입니다. 아니 당신의 맑은 얼굴 때문입니다. 이 땅 끝내 돌아서지 못하는 것은. - (1993년 2021.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