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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54

신앙이라는 것 신앙이라는 것 인생을 살면서 ‘신앙’이라는 새로운 세계와 만나게 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살아가면서 부딪히게 되는 여러 가지 근본적인 질문들, 가령 “나는 누구인가”로부터 시작해서 “어떤 삶을 목표로 삼아야 되는가” 등등 간단치 않은 주제들과의 씨름을 보다 용이하게 해주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단 한마디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라고 설득하면 그로써 우리의 고뇌는 더 이상의 의문의 여지없는 상태로 안정되는 일까? 아무래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신앙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 우리의 일상의 생활과 분리되어 따로 종교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일상의 자질구레한 또는 사사로운 문제와는 관련이 없이 보다 심오하고 본질적인 차원의 문제들하고만 상대.. 2021. 1. 4.
배춧국 한희철의 얘기마을(193) 배춧국 저녁 무렵 강가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올 때였습니다. 저만치 일 마치고 돌아오는 아주머니가 있어 보니 조귀농에 사는 분이었습니다. 단강1리라는 같은 행정구역 안에 살면서도 강과 산을 끼고 뚝 떨어져 있어 오히려 다리 하나 사이로 마주한 충청북도 덕은리와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이 조귀농입니다. 원래는 조귀농도 단강교회 선교구역이지만 단강교회가 세워질 즈음 덕은리에도 교회가 세워져 자연스레 조귀농이 덕은교회 선교구역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조귀농 하곤 가까이 지낼 만한 일이 특별히 없었습니다. 그래도 몇 년 시간이 지나며 한 두 사람씩 알게 된 것이 그나마 얼굴만이라도 알게 된 이유가 되었습니다. 강가에서 만난 아주머니를 알게 된 건 지난 추석 때였습니다. 섬뜰 방앗간으로 쌀.. 2021. 1. 4.
아름다운 마음이라 부른다 신동숙의 글밭(303) 아름다운 마음이라 부른다 꽃을 꽃이라 부르지 않고아름다운 마음이라 부른다 별을 별이라 부르지 않고아름다운 마음이라 부른다 사람을 사람이라 부르지 않고아름다운 마음이라 부른다 이 아름다운 마음을우리는 세상이라 부른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우리는 마음이라 부른다 2021. 1. 3.
할머니의 낙 한희철의 얘기마을(192) 할머니의 낙 한동안 마을 사람들이 진부로 일을 하러 나가 있었습니다. 당근을 캐는 일이었는데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 아예 그곳에서 먹고 자면서 일을 했습니다. 진부란 곳은 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하는 ‘아주 먼 곳’입니다. 그래도 꼬박꼬박 일당을 챙겨 얼마만큼의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 마을 사람들 중 몇 사람이 진부로 떠났습니다. 윗작실 영미 아버지가 중간상을 해 그를 생각해서 간다는 사람도 있었고 오랜만에 바깥바람이나 쐬러 간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작실 속회 예배를 마쳤을 때 진부 당근 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왜 할머니는 안 가셨냐고 한 교우가 허석분 할머니께 묻자 할머니가 뜻밖의 대답을 합니다. “난 안가, 까짓 거 가서 돈 번다 해도 그게 어디 밤에 자식들 .. 2021. 1. 3.
밤이 되면, 나의 두 눈을 눈물로 씻기시며 신동숙의 글밭(302) 밤이 되면, 나의 두 눈을 눈물로 씻기시며 아침이 되면태양의 빛살로 내 심장을 겨누시며 밤새 어두웠을내 두 눈의 초점을 조율하신다 한 점 한 점 바라보는 곳마다 내 심장의 빛살로 이 땅의 심장을 비추신다 빙판길에 오토바이를 버티는 발살얼음이 낀 폐지를 줍는 손 몸이 아픈 이웃들의 소리마음이 아픈 이웃들의 침묵 하루해를 따라서그 빛을 따라서 그저 모르고 살아간다 밤이 되면나의 두 눈을 눈물로 씻기시며 빛을 거두어 가시니내 몸은 밤이 된다 ... 유주일연오심지등혜 惟主一燃吾心之燈兮이계오목지몽 而啓吾目之矇 야훼께서 내 마음의 등을 밝혀주시니내 어둔 눈을 밝히 보게 하시네 ( 18:28) 2021. 1. 2.
마음의 병 한희철의 얘기마을(191) 마음의 병 지 집사님이 몸살을 되게 앓았다. 찾아 갔을 땐 정말 눈이 십리나 들어가 있었다. 워낙 마른 분이 꼼짝없이 앓아누우니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몸을 무너뜨리는 오한도 심했지만 허리통증으로 집사님은 꼼짝을 못했다. 경운기에 겨우 실려 아랫말 보건소에 몇 번 다녀왔을 뿐이었다. 다음날 다시 찾았을 땐 빈 집인 줄 알았다. 한참을 불러도 기척이 없어 병원에라도 다니러 갔나 돌아서려는데, 방안에서 마른기침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문을 여니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방, 집사님은 두꺼운 이불 속에 혼자 누워 있었다. 전날에 비해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병원이 있는 원주까진 백리길, 마을 보건소에라도 다시 다녀와야 되지 않느냐고 하자 집사님의 한숨이 길다. 그나마 막내 종근이가 있어.. 2021. 1. 2.
은총의 신비 속으로 은총의 신비 속으로 “아침에는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채워 주시고, 평생토록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해주십시오.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 수만큼, 우리가 재난을 당한 햇수만큼,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십시오.“(시 90:14-15) 주님의 은총과 평강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어느덧 한 해의 끝에 당도했습니다. 험한 파도에 시달리며 항해한 배처럼 우리 몸과 마음에 새겨진 흔적이 깊습니다. 상처도 많고 달라붙은 것들도 참 많습니다. 그래도 우리 이렇게 견뎠습니다. 아슬아슬한 희망을 가슴에 품고 고단한 시간을 건너왔습니다. 아직 평안의 포구에 당도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새로운 한 해를 내다볼 수 있는 자리에 이르렀다는 것이 참 고맙습니다. 후회와 자책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스스로 자기 손을 .. 2021. 1. 2.
2021년의 첫날, 오늘도 무사히 신동숙의 글밭(301) 2021년의 첫날, 오늘도 무사히 기대와 설레임으로 서서히 다가오던 새해의 첫날로 추억한다. 오늘 맞이하는 2021년 신축년(辛丑年)의 새해 첫날에선 고요함 속에 생명들의 묵직한 아픔의 소리가 들어있다. 자연의 흐름을 따라서 겨울에는 멈추어야 할 생명들이 문명의 흐름을 따라서 더는 멈추지 못하고서 여기저기 생가지 꺾이듯 터져 나오는 소리들이 그치질 않는다. 빙판길로 변해버린 제주의 도로에선 미끄러진 차량들과 사람들. 거제시에선 새벽 출근길에 가장들이 탄 오토바이가 달리던 도로 위 블랙아이스에서 줄줄이 미끄러져 내동댕이 쳐지는 사고가 일어나고, 늘어나는 배달 음식 주문량을 소화하느라 위험천만한 도로를 달렸을 오토바이 배달업 종사자들 그들의 더운 한숨으로도 이 추운 겨울날이 따뜻해지지.. 2021. 1. 1.
교수님께 한희철의 얘기마을(190) 교수님께 끓여주신 결명자 차 맛은 아무래도 밋밋했습니다. 딱딱할 것 같은 권위의 모습 어디에도 없어 특별히 몸가짐을 조심할 것도 없는 편한 교수실 분위기와 예의 잔잔한 교수님 웃음이 그 밋밋한 결명자 차 맛까지를 또 하나의 편함으로 만들어 난로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보기에도 좋았습니다. 작은 난로 앞, 마치 큰 추위에 쫓겨 온 사람들처럼 난로를 바짝 끼고 앉아 나눈 이야기들, 혹 나눈 이야기는 잊는다 해도 그런 분위기는 오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듯싶습니다. 큰 배려였습니다. 농촌에서 구경꾼처럼 살아가는 아무것도 아닌 일상을 그저 서툰 글로 썼을 뿐인데, 농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농촌의 바른 이해를 위해 책을 읽게 하였다는 이야기야 의미 있는 일이라 여기면서도, 그것이 다름 아.. 2021.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