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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주세요 신동숙의 글밭(254) 풀어주세요 천장의 눈부신 조명 위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볼 수 있도록 창문틀 너머로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도록 시멘트 바닥 아래 흙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벽돌 우리에 갇혀 매여 있는 나를 풀어주세요 안락이라는 족쇄에 묶여 꼼짝 못하는천국이라는 재갈을 입에 물고 말 못하는 몸 속에 갇힌 나를 풀어주세요 2020. 10. 15.
사과를 깎아 먹는 일과 詩 신동숙의 글밭(255) 사과를 깎아 먹는 일과 詩 사과를 처음으로 스스로 깎아 먹었던 최초의 기억은 일곱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녁 무렵 작고 여린 두 손으로 무거운 사과를 거의 품에 안다시피 받쳐 들고서, 언덕처럼 세운 양무릎을 지지대 삼아, 오른손엔 과도를 들고 살살살 돌려가며 한참을 씨름하던 나의 모습이 생각난다. 한참을 사과와 과일칼과 씨름하며 그리고 엉성하게나마 다 해내기까지 앞에 앉아 숨죽이고 있던 엄마가 환하게 웃으시며 박수를 쳐주었던 기억이다. 그때부터 스스로 사과를 깎아먹는 역사는 시작되었고, 그리고 모든 일에 있어서 책임감의 문제도 그때로부터 시작이 된다. 이후에 감당해야 하는 일은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날카롭고 겁나는 과도를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칼끝이 함께 둘러앉은 누군가에게.. 2020. 10. 14.
상처 한희철의 얘기마을(114) 상처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힘든 일이지 싶어 저녁 어스름, 강가로 나갔다.모질게 할퀸 상처처럼 형편없이 망가진 널따란 강가 밭, 기름진 검은 흙은 어디로 가고 속뼈처럼 자갈들이 드러났다. 조금 위쪽에 있는 밭엔 모래가 두껍게 덮였다.도무지 치유가 불가능해 보이는, 아물 길 보이지 않는 깊은 상처들.한참을 강가 밭에 섰다가 주르르 두 눈이 젖고 만다. 무심하고 막막한 세월.웬 인기척에 뒤돌아서니 저만치 동네 노인 한분이 뒷짐을 진 채 망가진 밭을 서성인다.슬그머니 자릴 피한다.눈물도 만남도 죄스러워서. - (1991년) 2020. 10. 14.
편지 한희철의 얘기마을(113) 편지 가끔씩 편지를 받습니다. 한낮, 하루 한 번 들리는 집배원 아저씨를 통해 신문을 비롯한 이런 저런 우편물들을 전해 받습니다. 그 중 반가운 게 편지입니다. 신문, 주보 등 각종 인쇄물 또한 적지 않은 읽을거리지만 편지만큼의 즐거움은 되지 못합니다. 찬찬히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가슴 속 쌓인 이야기를 전하는 정겨움을 어찌 다른 것에 비기겠습니까. ‘보고 싶은 ㅇㅇ에게’ 그렇게 시작되는 편지를 읽으면 산만했던 내가 하나로 모이고, 잊혔던 내가 되찾아져 맑게 눈이 뜨입니다.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어느새 맘속으로 찾아와 더 없이 그리운 사람이 되어 나와 마주합니다. 가끔씩 편지를 씁니다. 군 생활할 때 정한 원칙 중 하나가 편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먼저 쓰진 못해도 최소한.. 2020. 10. 13.
목사님, 참선방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왔어요 신동숙의 글밭(254) 목사님, 참선방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왔어요 아침에 눈을 뜨니 가을 하늘이 참 좋아서, 이 아름다운 하늘을 오래도록 보고 싶은 한 마음이 산들바람처럼 불어옵니다. 그리고 보이는 하늘 만큼이나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펼쳐지는 내면의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은 한 마음이 잔잔한 물결처럼 일렁이는 가을 아침입니다. 구름처럼 자욱한 욕심을 걷어낸 텅빈 하늘, 무심한 듯한 공空의 얼굴은 어쩌면 사랑뿐인 하나님의 얼굴을 닮았는지도 모른다는 누군가의 얘기가 귀를 간지럽힙니다. 그냥 쪼그리고 앉아서 가만히 푸른 가을 하늘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면서 실실 웃음이 흘러나오는 이유를 다 알 수는 없지만, 늘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은 하늘 만큼 땅 만큼입니다. 그처럼 맑갛게 갠 내면의 .. 2020. 10. 13.
달개비 신동숙의 글밭(253) 달개비 인파人波에 떠밀려 오르내리느라 바닷가 달개비가 들려주는 경전經典을 한 줄도 못 읽고 말 한마디 못 붙이고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답니다 2020. 10. 12.
한희철의 얘기마을(112) 소 힘없이 병원을 빠져나왔습니다. 배웅 차 현관에 나와 있는 속장님을 뒤돌아보지 못합니다. 심한 무기력함이 온통 나를 감쌉니다. 가슴은 자꾸만 아래로 가라앉고 지나가는 이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한낮의 뜨거운 볕이 편했습니다. 그래, 농촌에서 목회하려면 최소한 두 가지는 갖추고 있어야 해. 돈이 많든지 능력이 많든지, 조소하듯 자책이 일었습니다. 이따금씩 병원을 찾게 되는 교우들, 마을 분들, 병원까지 찾을 때면 대부분 병이 깊은 때고, 긴 날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데 당장 눈앞의 어려움은 병원비입니다. 마음 편히 치료해야 효과도 있다는데 아픈 이나 돌보는 이나 우선 돈이 걸립니다. 아픈 이들은 돈 걱정 없이 치료를 받도록 돕던지, 아니면 아픈 곳 어디라도 손 얹.. 2020. 10. 12.
미더운 친구 한희철의 얘기마을(111) 미더운 친구 부인 자랑이야 팔불출이라지만 친구자랑은 어떨까, 팔불출이라면 또 어떠랴만. 이번 물난리를 겪으면서 개인적으로 어려웠던 건 태어난 지 8개월 된 규민이의 분유가 떨어진 일이었다. 된장국과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먹는 반찬이야 그러려니 했지만 당장 어린 것 먹거리가 떨어진 게 적지 않은 걱정거리였다. 얼마 전 모유를 떼고 이제 막 이유식에 익숙해진 터였다. 분유를 구하려면 시내를 나가야 하는데 쏟아진 비에 사방 길이 끊겨버렸다. 안부전화를 건 친구가 그 이야길 듣고는 어떻게든 전할 방법을 찾아보겠노라 한다. 오후가 되어 전화가 왔다. 손곡까지 왔으니 정산까지만 나오면 전할 수 있겠다는 전화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작실로 올라가 산 하나를 넘었다. 길이 끊기니 평소 생각도 않.. 2020. 10. 11.
알고 보면 신동숙의 글밭(252) 알고 보면 허리 굽혀 폐지 주우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알고 보면 어느 독립운동가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더욱 허리 굽혀 인사드려야겠다 2020.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