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세상

한희철의 얘기마을(130)


썩은 세상




“도둑놈을 잡아들일 놈들까지 썩었으니 퍽 썩었지? 다 썩었어.”


단강으로 들어오는 직행버스, 옆자리에 앉은 마을 노인이 장탄식을 한다.


높은 자리의 나리들은 부패로 썩고, 

버려진 듯 살아가는 후미진 농부의 마음은 짓물러 썩고, 

이래저래 썩은 세상, 

다 썩은 세상.

푸른 싹에 대한 절실한 그리움!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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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개

한희철의 얘기마을(129)


끌개




벌써 며칠 째인지 모릅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소를 끌고선 아스팔트 위를 왔다 갔다 합니다. 소 등엔 멍에가 얹혔고, 멍에엔 커다란 돌멩이를 올린 나무 막대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끌개’를 끌며 소가 일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등 뒤에 늘어진 끌개의 무게를 견디며 소는 묵묵히 걸어갑니다. 일소가 되기 위해선 배워야 할 게 많아 일철 앞두고 소가 일을 열심히 배우는 것입니다. 일소가 되기 위해 등 뒤의 무게를 견디며 천천히 걷는 연습을 하는 소, 며칠 동안 끌개를 끌며 일 배우는 소를 보는 마음이 숙연합니다.


내게 주어진 임의 밭을 갈기 위해 끌어야 할 끌개가 내게도 있습니다. 쉽지 않은 무게를 견디며 많은 시간 끌개를 끌어야 합니다. 이 밭에서 저 밭으로 소가 함부로 뛰는 건 제대로 끌개를 끌지 않은 탓입니다.


쉽게 마치려 하고 쉽게 벗으려 하는 내 끌개를, 끌개 끄는 우직한 소는 묵묵함으로 질책하고 있습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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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라림을 빛나는 보석으로 바꿀 때

쓰라림을 빛나는 보석으로 바꿀 때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합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따로 따로는 지체들입니다.”(고전12:26-27)

평강의 주님이 우리 가운데 늘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별고 없으셨는지요? 시간 여행자인 인간은 언제나 앎과 모름 사이, 빛과 어둠 사이, 기쁨과 슬픔 사이, 확신과 회의 사이에 걸린 외줄을 타고 삽니다. 어지간히 익숙해지긴 했어도 균형을 잡고 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 가운데서도 맑고 선선한 웃음을 지으며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한 동안 미세먼지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초미세먼지가 ‘나쁨’ 단계에 이르렀다는 뉴스 보도를 보았습니다. 대기의 정체(停滯) 때문이라지만 결국 그 먼지를 만든 것은 우리들이기에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주 정말 오랜만에 교회 문이 다시 열렸습니다. 비록 마스크 너머로 보아야 했지만 정겨운 얼굴들을 대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았던지 모릅니다. 마치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근 8개월 만에 처음으로 교회에 온 교인도 가슴이 벅찬지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손을 마주잡지도 얼싸안을 수도 없었지만 눈빛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확진자가 줄어들지 않는 상황에서 많이 못 오실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거의 교회의 수용 인원을 다 채울 만큼 오셨습니다.

황지우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 떠올랐습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가슴 절절한 그리움으로 누군가를 기다려본 사람이라면 이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다림의 시간은 지연된 시간입니다. 늦어지는 도착 때문에 우리 온 몸은 귀로 변합니다. 긴 설렘의 시간 끝에 시인은 마침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고 노래합니다. 기다림은 ‘너에게로 감’입니다. 긴 격절의 세월이 우리 그리움을 깊게 만들었습니다.

예배시간에 쌍둥이 아기를 환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기를 품에 안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 품에 안긴 아기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축복하는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생명은 태어나고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요. 어떤 분은 그 광경을 보고 뭔가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그 감격을 전해왔습니다. 문득 이사야가 전해주던 아름다운 비전이 떠올랐습니다. 이사야는 앗시리아의 침공으로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던 백성들에게 한 아기의 탄생을 예고합니다. 그 아기야말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징표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헤매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쳤다”(사9:2). 우리는 이런 희망을 품고 어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비대면 예배가 일상이 되면서 가장 마음이 많이 쓰이는 분들이 원로들이었습니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신 분들도 계셨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계셨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교회생활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는데, 비록 감염병 때문이라지만 교회 출입이 금지되었으니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마치 친교의 자리에서 멀어진 것 같은 소외감을 느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삽상한 바람이 부는 늦가을이면 함께 나들이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먼데 가지는 못했지만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이 기뻐하셨습니다. 올해는 그럴 수 없어서 고심 끝에 작은 선물을 보내드렸습니다. 스산한 계절, 몸과 마음 두루 덥히시라고 어묵을 선택했습니다. 좋은 선택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일은 우리교회가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지난 주일 광고 시간에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할 일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라는 숙제를 내드렸습니다. 사실 감사는 뜻밖의 선물이나 도움을 받았을 때 우리 속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고마움의 감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를 강조하는 것은 돌이켜 생각해보지 않으면 우리 삶에 주어지는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내게 주어지는 어떤 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입니다. 바울 사도는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지 않았습니다.”(고전15:10a)라고 고백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라야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습니다. 자기 삶이 ‘사랑의 빚’임을 아는 사람은 질투, 분노, 혐오에 빠지지 않습니다. 감사는 우리 영혼의 굳어짐을 막아주는 백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뭇잎이 노란색, 붉은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급한 녀석들은 줄기에서 분리되어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굴러다닙니다. 김현승 시인은 유난히 가을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가을을 노래한 시가 아주 많습니다. 그 가운데 ‘나무’라는 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느님이 지으신 자연 가운데/우리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것은/나무이다.” 시인은 나무 모양이 사람을 닮았다고 말합니다. 참나무는 튼튼한 어른들 같고, 앵두나무와 그 빨간 뺨은 소년들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저물녘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나무도 옆에서 그림자를 드리우고, 우리가 멀고 팍팍한 길을 걸을 때면 말없이 그 먼 길을 따라오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러하듯 나무도 머리를 푸른 하늘에 두고 있습니다. 이 시의 마지막 연은 매우 종교적입니다.

“가을이 되어 내가 팔을 벌려
나의 지난날을 기도로 뉘우치면,
나무들도 저들의 빈손과 팔을 벌려
치운 바람만 찬 서리를 받는다, 받는다.“

시인은 기도하는 나무, 참회하는 나무를 보고 있습니다. 참회의 자세는 찬 바람, 찬 서리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가만 보면 늦가을 나무는 잎에 가려 보이지 않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보입니다. 돌에 맞아 난 상처, 벌레들의 공격을 받았던 흔적, 찢기고 잘린 자리에 생긴 옹이…. 그 자국들은 나무가 견뎌야 했던 아픔의 시간을 보여줍니다. 그 아픔과 상처를 안으로 감싸 안으며 나무는 성장을 거듭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한사코 우리의 몸과 마음에 난 상처를 숨기려 합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경쟁 사회에서 취약함을 드러낸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우리를 확고히 사로잡고 있습니다. 취약함이 자랑일 수는 없지만 부끄러워 숨겨야할 것 또한 아닙니다. 나의 연약함을 누군가에게 드러낼 때, 다른 이들도 자기 안의 상처를 드러낼 용기를 냅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취약함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인간이 속절없이 떠밀리고 있는 인고와 슬픔의 강 속에 뛰어드셨습니다. 그래서 울기도 했고, 화를 내기도 했고, 배신도 당하고, 고향에서 쫓겨나고, 거절당하는 쓰라림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아픔과 쓰라림을 빛나는 보석으로 바꾸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 신비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그는 몸소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을 받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히2:18). 놀라운 은총입니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가려진 부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무에 새겨진 옹이와 상처와 같은 이들 말입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지 못한 분들, 가혹한 노동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분들, 자꾸만 절망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분들의 설 땅이 될 수 있는지 고심해야 하겠습니다.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능력도 없지만, 우리가 함께 지향을 분명히 하고 연대한다면 적어도 절망에 휩쓸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이들을 위해 늘 기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공적인 문제를 향할 때 삶을 얽어매고 있는 비애감은 줄어들고, 삶의 의욕이 커질 겁니다.

아직 주일까지 며칠 남았습니다. 꼭 걸어온 시간을 반추하면서 우리 삶이 사랑의 빚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 좋겠습니다. 할 수 있다면 우리의 등불이 되어 주었던 이들에게 작은 감사의 마음이라도 표하면 좋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늘 강건하시기를 빕니다.

2020년 10월 29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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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들판

한희철의 얘기마을(128)


텅 빈 들판




들판이 텅 비었다.

볏가리와 짚가리 듬성듬성 선 들판

모처럼 소들이 한가하다

어미 소와 송아지가 진득이 편한 시간 보내기도 드문 일,

커서 할 일 일러라도 주는 듯

어미 소와 송아지가 종일 정겹다.

송아지와 어미 소가 대신하는 

이 땅의 평화.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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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출 수 없는 사랑

신동숙의 글밭(259)


멈출 수 없는 사랑




물이 흐르는 것은

멈출 수 없기에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을

무슨 수로 막을까


매 순간 흐르고 흘러서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물처럼


멈출 수도 없는 

끊을 수도 없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멈출 수 없는 사랑


햇살이 좋은날엔 

무지개로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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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소

한희철의 얘기마을(127)


변소


언젠가 아내의 친구가 단강에 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와서 지내다 아내에게 화장실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들어가더니 고개를 흔들며 “여기 아닌데” 하며 그냥 나오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배를 잡고 웃었지만 허름한 공간 안 땅바닥에 돌멩이 두 개만 달랑 놓여 있었으니, 도시 생활에 익숙한 친구로선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누구네를 가도 익숙해졌지만 저도 단강에 처음 왔을 땐 변소 때문에 당황했었습니다. 들어가 보니 한쪽 구석에 돌멩이 두 개만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잠시 생각하다 틀리지 않게 일을 보긴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수세식에 익숙해진 터에 돌멩이에 올라앉아 맨땅 위에 일을 본다는 것은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편해야 할 그 자리가 불편한 자리가 되고 말았고, 다시 편한 자리가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단강의 변소는 대개가 그러합니다. 무엇보다 모양이 허술합니다. 구멍이 숭숭 뚫려 밖이 보이기도 하고, 휘휘 바람이 자유롭게 통하는 헛간 같은 곳입니다.


구조도 간단합니다. 웬만큼 넓적한 돌멩이 두 개만 있으면 되고, 그 뒤에 재나 겨를 쌓아두면 됩니다. 삽이나 넓적한 나무를 귀퉁이에 세워두면 더 이상은 필요한 게 없습니다.


큰일을 보고 나면 뒤에 있는 재나 겨를 변 위에 뿌리고 다시 뒤편으로 밀어내면 됩니다. 그렇게 쌓인 것들은 나중 좋은 거름이 됩니다.


맨땅 위 김이 허옇게 오르는 것을 막대기로 치우는 데는 비위가 약해서는 안 됩니다. 침을 꿀떡 삼키고는 후딱 처치를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조금 우스운 일입니다. 결국 자기가 먹은 것 자기가 싸는 것인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낸 몸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모양이 그렇고 냄새가 그렇지 그 모든 게 선입견만 버리면 더러울 게 하나 없는 것입니다. 먹고 싸고, 싼 것을 다시 먹거리를 위해 거름으로 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인 것입니다. 


요즘 동네에 변소개량 작업이 벌어졌습니다. 시커먼 플라스틱 통을 땅에 묻고 번듯한 변소를 짓는 것입니다. 듣기로는 나라에서 반 보조가 있어 반만 부담하면 된다 합니다.


그게 필요한 일임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아쉬움이 없는 게 아닙니다. 편리를 내세워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이 적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눈 똥, 제가 확인해 모았다가 제 먹거리 위해 쓰는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을 이젠 쉬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원시적이고 미개하다 할진 몰라도 그간 몸에 익은 탓인지 뭔가 아쉬움도 남습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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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네 소

한희철의 얘기마을(126)


은희네 소


은희네 소가 은희네로 온 지는 10년이 넘었습니다. 정확히 그 연수를 아는 이는 없지만 대강 짐작으로 헤아리는 연수가 십년을 넘습니다. 이젠 등도 굽고 걸음걸이도 느려져 늙은 티가 한눈에 납니다.

은희네 소는 은희네 큰 재산입니다. 시골에서 소야 누구 네라도 큰 재산이지만 은희네는 더욱 그러합니다. 


팔십 연줄에 들어선 허리가 굽을 대로 굽어 고꾸라질 듯 허리가 땅에 닿을 할머니, 은희네 할머니가 온 집안 살림을 꾸려갑니다. 아직 젊은 나이의 아들과 며느리가 있지만 그들조차도 이런 일 저런 일 크고 작은 일에까지 할머니의 손길을 필요로 합니다. 중3인 은희야 제 할 일  제가 한다 해도 이제 초등학교 3학년과 2학년인 은옥이와 은진이 뒷바라지는 역시 할머니 몫입니다.



이런 저런 농사일 꾸려 나가려면 적지 않은 품이 들고, 품의 대부분은 다시 품으로 갚아야 하는데 품 갚을 손이 집안에 없습니다. 그럴 때면 소가 나섭니다. 사람 대신 소를 보내도 소로 사람 품 수를 쳐주는 까닭입니다.


그런 주인 집 사정 저도 안다는 듯 은희네 소는 십년이 넘도록 묵묵히 온갖 일을 해왔습니다. 게다가 때마다 송아지를 쑥쑥 잘 낳아주니 그런 든든한 재산이 어디 쉽겠습니까.


어디 하나 의지할 데 없이 막막한 삶을 살아가는 은희 할머니, 어쩜 은희 할머니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것은 소, 말 못하는 소인지도 모릅니다. 당신보다 소 먼저 죽는다면 죽은 소 정성스레 묻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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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성당

신동숙의 글밭(258)


구멍가게 성당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답

작은 마을의 어둑해진 골목길은 좁은길


구멍가게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어린 아들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갑니다.


카운터를 지키시던 주인 아주머니가 

오늘은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텔레비젼을 바라보시며 

저녁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색색깔의 과자봉지와 음료들은 아울러

중세시대 성당의 화려한 비잔틴 모자이크가 됩니다.


간혹 종지에 촛불을 켜고 앉으셔서 늦은 밤까지

학원에서 돌아오는 딸아이의 밤길을 지켜주기도 하시는


염주알인지 묵주알을 돌리시기도 하는 구멍가게

아들이 좋아하는 과자가 풍성한 이곳은 기도의 성당


두 손을 모으신 아주머니가

홀로 드리는 저녁 미사를 두고

간혹 싫어하는 손님도 계신다지만, 


앞으로 과자를 사러갈 때면

기도의 성당으로 들어가듯 

달콤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들어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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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한희철의 얘기마을(125)


들꽃


단강에 와서 깨닫게 된 것 중 하나가 들꽃의 아름다움입니다. 곳곳에 피어있는 이런저런 들꽃들. 전엔 그렇게 피어있는 들꽃이 당연한 거라 여겼을 뿐 별 생각 없었는데, 요즘 와 바라보는 들꽃은 더 없이 아름답고 귀하게 여겨집니다. 




쑥부쟁이, 달맞이꽃, 달개비, 미역취 등 가을 들꽃이 길가 풀섶에, 언덕에 피어 가을을 노래합니다.

때를 따를 줄 아는 어김없는 모습들이 귀하고, 다른 이의 주목 없이도 자신의 모습 잃지 않는 꿋꿋함이 귀합니다. 제 선 자리 어디건 거기 넉넉히 뿌리를 내리고 꽃으로 피어나는 단순함이 또한 귀합니다. 꾸밈없는 수수함은 또 얼마나 정겨운지요.


필시 우리도 들꽃 같아야 할 것, 지나친 욕심과 바람일랑 버리고 때 되면 제자리에서 피어나 들꽃처럼 세상을 수놓을 것, 주어진 시간을 노래할 것, 들꽃을 바라보며 들꽃 같은 삶을 바래봅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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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찬 온기

신동숙의 글밭(257)


알찬 온기




혼자 앉은 방

어떻게 알았을까


책장을 넘기면서 숨죽여 

맑은 콧물을 훌쩍이고 있는 것을


누군가 속사정을 

귀띔이라도 해주었을까


있으면 먹고 없으면 

저녁밥을 안 먹기로 한 것을


들릴 듯 말 듯 

어렵사리 문 두드리는 소리에

마스크를 쓴 후 방문을 여니


방이 춥지는 않냐며 

내미시는 종이 가방 속에는

노랗게 환한 귤이 수북하다


작동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놓아주시는 난로에 빨간불이 켜지고

방 안에 온기가 감돈다


가을 햇살처럼

알찬 온기에


시간을 잊고서 

밤 늦도록


<무지의 구름>과 <신심명(信心銘)>의 허공 사이를

유유자적(悠悠自適) 헤매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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