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기도

한희철의 얘기마을(96)


어느 날의 기도



외로운 영혼을 이젠

믿습니다.

숨 막히는 이유

빈틈없는 소유

뿌리 없는 비상보다는

아무것도 아니어서 텅 빈

외로운 영혼들

외로워도 외롭지 않은

외로워서 외롭지 않은

아무것도 없어

꾸밈없는 영혼을

축복하소서,

주님. 


-<얘기마을>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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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성지(聖地)를 가졌는가?

신동숙의 글밭(241)


마음의 성지(聖地)를 가졌는가?



초가집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스케치북에 그리고 그리던 제 마음의 고향집입니다. 어린날의 그림 속에는 작은 초가집 한 채가 있고, 오른편엔 초가 지붕을 훌쩍 넘는 나무 한 그루, 왼편엔 장독대가 있고, 둘레에 싸리와 나무로 엮은 울타리는 키가 낮으며 성글고, 집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감싸고, 집 앞으로는 작은 개울물이 흐르는 그런 마음속 풍경을 그림으로 그릴 때면, 언제나 마음이 따스해져오면서 평화로웠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의 성지는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지금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진정으로 마음이 좋아하는 그림을 따라서 비록 혼자서 걸어온 길이지만, 그 길에 만나게 된 벗님들에게서도 나와 같은 마음의 성지(聖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떠가는 일은 별을 발견한 듯 경이로운 일입니다. 중학생 시절 건물 귀퉁이 작은 동네 서점에 처음으로 들어가 머물며, 서점 안에 책들을 모두 살피어 비로소 마음에 들어와 손에 잡은 한 권의 책은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이었습니다. 처음 본 어느 스님의 단정한 인상이 마음에 들어오던 순간입니다. 


스무살 초반엔 초가집과 함께 막사발이 참 좋아졌습니다. 깊은 묵상 중에 인간의 문명을 하나씩 거두어내고 있던 제 모습이 생각납니다. 고대로부터 인류가 만든 건물과 유물들, 자동차, 우주선, 샴푸, 칫솔까지 정말로 필요한 것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모든 유·무형의 문화와 문명을 하나씩 마음의 체에 거르고 걸렀던 때입니다. 주위에선 취업에 신경 쓸 시절에 저 혼자서는 속으로 깊이 앓던 때입니다. 


아무도 모르고 누구도 몰라주는, 길 없는 길을,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그 길을 혼자서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모든 청춘의 가슴에는 한 점 별빛처럼 미세하지만 빛나며 손짓하는 영혼의 부름이 있고, 물처럼 구름처럼 가슴 가장 밑바닥으로 유유히 흐르며 우리의 가슴을 적시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문득 대상을 만나면 일어나는 그리움이 되기도 하고 방황이 되기도 하는. 


배흘림 기둥으로 올린 한옥의 멋스러움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기와집을 볼 때면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오는 이유를 찾아야 했습니다. 지배와 피지배가 낳은 건축 양식이 어쩌면 고래등 같은 한옥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닿고부터는 아름다운 한옥도 제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였습니다. 가을 하늘의 쪽빛을 담은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에선 어딘가 애써 잘 보이기 위한 인위적인 한 마음이 거슬렸습니다. 그에 비해 막사발은 자연적이고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본성을 닮았습니다. 


눈먼 장님이 한 걸음씩 길을 더듬어 한발짝 내딛듯 제 마음이 걸어가는 길은 가족도 평범한 주위 사람들의 관심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보이는 그런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이미 물길이 난 그 길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은 그 마음의 길이 아니고선 이 땅을 살아가는 몸이 숨을 쉴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십 대 초반 가슴으로 읽은 윤동주 시인의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의 시인의 마음이, 저에겐 몸을 받아서 살아 숨 쉬는 일 자체가 괴로움이라는 의미로 읽혔습니다. 생명이 생명을 먹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방식의 모순. 




* 시와 구름이 머무는 황간역의 강병규 역장님의 돌그림


2002년 월드컵의 열기도 제 가슴에 불을 지피지는 못했습니다. 법정 스님의 오두막과 소로의 월든 숲에 오두막이 가슴으로 들어오고, 2003년 어느 봄날엔 저 역시 그러한 삶을 살기로 뜻을 세우고 인생의 방향키를 조정하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이유가 혼자만 잘 살아선 아무 의미가 없다는데 생각이 미친 것입니다. 돕는 삶, 나누는 삶이라야 비로소 인간으로써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한 생각이, 아궁이 마른 장작에 불을 지피듯 풀무질을 하는 바람에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족이란 울타리는 헐어버리기 쉬운 성근 싸리와 나무 울타리도 아니고, 단숨에 뿌리 뽑힐 나무도 아니었습니다. 딸아이의 행보에 엄마는 당뇨가 왔고, 아버지는 한 쪽 귀가 안들리고, 약혼자는 자신의 삶까지 접고서 인도에 가면 저를 만날 수 있단 희망 하나로 비행기표를 끊어둔 상황과 막다른 골목에서 맞닥뜨린 것입니다. 


그렇게 삼십 대가 되었습니다. 큰 아이가 품에서 내려와 집 앞 골목길을 자박자박 걸어다닐 무렵 다도(茶道)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다도가 몸에 익숙했던 건,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익히 들어온 밥상머리 예절과 다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신혼 살림을 고르던 시절 그 예쁜 커튼들을 다 제쳐두고 장식도 없고 고운 색으로 물도 들이지 않은 광목천으로 된 단순하고 소박한 커튼을 고른 저를 두고 같이 따라간 친구와 가족들의 반응은, "발품 팔고서 기껏 고른 게 저거냐"라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제 마음은 무명의 광목천에서 안식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집 창문에 걸어둔 그 천덕꾸러기 광목천 커튼이 다실에 걸려 있는 걸 보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제가 그토록 좋아하던 막사발을 훔쳐간 일본이 고려청자가 아닌 막사발을 그들의 국보로 모셔 놓았으며, 초가집을 닮은 초의선사의 일지암이 한국 다도의 성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동안 혼자서 걸어온 길이 영 틀리지는 않았구나 하는 확인을 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지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잡초요리연구가인 고진하 시인 목사님과 아내 권포근 선생님의 자연 속에서 공생하며,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며 생명과 이웃을 헤치지 않으려 선택하신 불편당의 삶, 한국 다도의 성지가 된 초의선사의 일지암, 초가집을 닮은 소로와 법정 스님의 오두막, 권정생 선생님의 안동 조탑리의 가난한 생가, 한희철 목사님이 단강 마을 이웃들과 함께 힘을 모아 서로를 배려하며, 느린 호흡으로 주위에 흔한 나무와 흙으로 담을 쌓아 만든 인우재의 기도실이 제겐 마음의 성지입니다. 


그런 제 마음속 그림이 글에서도 간간히 드러나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숨인가봅니다. 제 글에서 오두막이 나오는 글을 보시고, 마음에 떠오르는 그림을 손수 돌에 그림으로 그려서 선물로 보내주신 분은, 기차가 지나치던 작은 간이역을 시(詩)와 구름이 머무는 역으로 가꾸신 강병규 황간역장님입니다. 지금은 은퇴를 하셨지만, 마을 사람 누구든 그리고 동행하는 우리는 시동(詩同)은 역장님으로 부릅니다. 


커피 물을 들인 고목의 나무틀 속에 놓인 돌그림의 빛깔이 더불어 따스하게 번집니다. 마치 돌그림이 거하는 안식처, 오두막 같습니다. 그림이 가슴으로 들어옵니다. 그림을 보고 있자니 제 마음의 성지와 점점 하나로 물이 듭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제 마음의 성지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평화가 흐르고 숨을 쉬고 있는 이 몸에 깃드는 지금 이 순간이 제 영혼의 집이 되는 따스한 경험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집니다. 벗님들은 어떤 마음의 성지를 가졌을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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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

한희철의 얘기마을(95)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


어릴 적 교회학교는 따뜻한 교실이었다. 들로 산으로 쏘다니다가도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놀던 것을 그만 두고 교회로 향했다. 믿음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린 때다. 이제쯤 생각하기로는 성경 이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교회에 가면 언제라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건 책도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흔치 않던 시절, 우리들 가슴엔 단비와도 같은 것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여름이었다. 마침 그날이 수요일이었는데,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요란하게 내렸다. 빗소리에 가려졌는지, 선생님이 안 계신 건지 예배시간이 되었는데도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다 교회로 갔다. 검정 고무신에 우산도 없이 내리는 비를 쫄딱 맞은 채였다.


뚝뚝 빗물을 떨구며 기와지붕 허름한 예배당에 들어섰을 때, 예배당은 비어 있었다. 그러나 텅 빈 것이 아니었다. 어둑한 제단 저쪽 누군가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보니 선생님이었다. 그날 예배는 선생님과 둘이서 드렸다.


그날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그 선생님 이름이 무엇인지 난 지금 기억이 없다. 그러나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는 그 단순한 사실이 얼마나 거룩한 일인지 어두컴컴한 제단 앞  무릎을 꿇으셨던 선생님은 지금도 날 가르치고 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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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우리를 가르치는 방법

한희철의 얘기마을(94)


삶이 우리를 가르치는 방법


지금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기에 이야기합니다. 안갑순 속장님이 담배를 대한 건 놀랍게도 일곱 살 때부터였습니다. 충(회충)을 잡기 위해 담배를 풀어 끓인 물을 마신 것이 담배를 배운 동기가 된 것입니다. 


그 옛날,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속장님은 시집을 갈 때에도 담배를 챙겨갔다 합니다. 끝내 고집을 부려 풀지 않는 보따리 하나를 두고선 모두들 땅문서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담배꾸러미였습니다.


어느 날 며느리가 담배를 핀다는 것을 우연히 눈치 챈 시아버지는 노발대발하는 대신 아무도 모르게 은근히 담배를 전해 주었다고 합니다. 시아버지가 어디 밖에 나갔다 오신 날 서랍을 열면, 말없이 약속된 서랍을 열면, 거기엔 언제나 담배 몇 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당시로선 가장 좋은 담배가. 



그렇게 담배와 벗한 것이 어느새 60년 세월이 지났습니다. 환한 불빛이 자신에게로 내려오는 꿈을 연이틀 꾼 것이 속장님에겐 교회를 찾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곰곰이 그 범상치 않은 꿈을 생각하다가 스스로 교회를 찾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다고 이해한 것이었습니다. 


그게 몇 년 전의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면서도 담배는 못 끊었습니다. 60년 동안이나 인이 박힌 담배를 끊는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세례를 받던 날, 그날부터 속장님은 거짓말처럼 담배를 뚝 끊었습니다. 놀란 건 며칠이나 가나 보자 했던 주위 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좋던 담배가 냄새조차 역겹더랍니다. 속장님이 놀랐습니다.


속장님은, 눈물 많은 속장님은 지난 이야기를 하며 또 주르르 눈물을 흘립니다. 담배를 끊고 나서야 담배 냄새가 그렇게 역겹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걸 알고 나니까 돌아가신 어머니가 겪으신 고초가 생각났던 것입니다.


어머니 계신 방에서 담배를 피우면서도 어머니 생각은 조금도 못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결국 담배를 모르시던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못하신 채 담배 냄새의 역겨움을 그냥 참고만 계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뒤늦게야 깨닫게 되는 후회스러움. 삶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방법 중엔 그런 게 있나봅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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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朗讀)

신동숙의 글밭(240)


낭독(朗讀)




곁에 아무도 없는 

적막감이 밀려올 때


묵상 중에도 흔들려서 

말 한 마디 건져올릴 수 없을 때


책을 펼쳐보아도

글이 자꾸만 달아날 때


책을 소리내어 읽어줍니다

내가 나에게 읽어줍니다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다독이고 다독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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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언제인지

한희철의 얘기마을(93)


그날은 언제인지



“축제의 모임 환희와 찬미소리 드높던 그 행렬. 무리들 앞장서서 성전으로 들어가던 일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미어집니다.”(시 42:4)


말씀을 읽다 가슴이 미어지는 건, 시인의 마음 충분히 헤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떠나간 이들 모두 돌아와 함께 예배할 그날은 언제일지, 이 외진 땅에서 그려보는 그 날이 옛 일 그리는 옛 시인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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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처럼 착하게 서 있는 집

신동숙의 글밭(239)


바보처럼 착하게 서 있는 집





땔감이래도 줏어다가


부뚜막 한 켠에 


쟁여 드리고 싶은 집


가난한 오막살이


바보처럼 착하게 서 있는 집


책으로 둘러쌓인 방


서넛이 앉으면 꽉 차는 쪽방에서


권정생 선생님


이야기 한 자락만 들려주셔요


* '바보처럼 착하게 서 있는 집'은 권정생 선생님의 노래 상자 제목에서 인용 - 권정생 詩. 백창우 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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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의 길을 나서는 이들

한종호의 '너른마당' 2020. 9. 23. 08:03

한종호의 너른마당(64)


순례의 길을 나서는 이들

 

코로나에 길고 긴 장마와 태풍, 유례없었던 무더위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계절의 변화를 그 누구도 거스를 수는 법. 어느 누구도 태양을 바닷속으로 집어넣었다가 산 위로 꺼내 올릴 수 없다. 하늘의 별들을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냈다가 다시 나오게 할 방법도 없다. 우주의 흐름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 궤도를 정해놓으셨고, 그에 따라 인간의 삶도 그 변화의 흐름과 궤도, 그 길 위에 있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길은 이미 있기도 하고 아직 없기도 하다. 기존의 궤도를 돌아 움직이는 길이 있는가 하면, 아직 그 위에 서 보지 않아 길은 있으나 그 길이 아직 자신이 걸어갈 길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길이지만, 그 길 위를 걷는 이에 따라 그 길의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결국 도달해서 얻게 되는 종국적인 뜻이 같을지라도 그 여정의 내용과 과정은 사뭇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인간의 운명과 그 길은 이미 있는 것이지만, 그 길을 처음 가는 이에게는 이미 있으나 아직 없는 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무수히 오간 길도 그 길을 처음 밟는 이에게는 낯선 길이다. 전혀 모르는 새로운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우리는 오랜 옛날 그 길 위에 있던 사람들의 영혼, 숨결, 그리고 인생과 역사를 만나게 된다. 그들이 겪었던 고뇌, 슬픔, 좌절과 갈망 그런 것들이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된다. <순례>는 바로 그러한 여정을 우리에게 준비시킨다.

 

순례는 다만 성지를 다녀오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의 고뇌와 절망, 그리고 새롭게 일어서려는 의지의 꿈이 존재하는 곳이면 그 어디든 우리에게 순례의 현장이 되는 것이다. 그로써 우리에게 새로운 영성과 깨우침이 일어나면 그 순례는 성공적이 될 것이다. 그건 무언가를 찾아 나선 길이 결국 그 무언가를 찾았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두가 바쁘게 뛰어가면서 살아가는 때에 순례는 그 속도가 너무 느리게 보인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세월에 이 숨차게 돌아가는 시대에 적응할 수 있을까 염려하기도 한다. 모두가 정신없이 자기 일에 몰두하는 때에, 긴 시간을 뚝 떼어내서 그 어디론가 순례의 길을 떠난다고 하면 그건 세월의 낭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낙오하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모두가 실생활에 결국 도움이 되는 것을 구하는 때에, 그보다는 고답적이고 정신적이며 생활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 같은 순례자의 삶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빠르게 달리기만 했다가 그 여정에서 반드시 봐야 할 것과 깨우쳐야 할 것을 놓치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속도는 있지만 방향은 없고, 빠르기는 하지만 결국 도달할 곳에 도달하는 것은 아닌 기이한 인생의 모순에 직면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자기 일에 집중하는 것 같지만 큰 맥락을 놓치고 살아가기에 자신의 삶이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래서 우리 인생사의 커다란 지도를 갖지 못한 채 그저 열심히 가기만 하면 되는 줄로 아는 어리석음이 우리를 삼켜버릴 수 있다. 이에 더하여, 현실의 삶이란 그 정신적 능력에 의해 그 가치가 달라질 수 있음을 알지 못한 채 세끼 밥 먹고 자기 욕심 채우고 살면 다 되는 줄로 아는 자기 삶의 품격을 스스로 저버리고 마는 지경에 빠져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일상의 삶을 잠시 멈추고, 순례의 길로 떠나는 것은 사실 먼 곳을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도 하다. 사랑하는 남편이 갑자기 자신에게 말도 하지 않고 베트남 전쟁 최일선으로 떠나자 아내는 엉터리 위문단의 일원이 되어 가수로 베트남에 가게 된다. <님은 먼 곳에>라는 영화의 줄거리 대략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남편인 님을 김추자의 노래처럼 늦기 전에만나지만 그곳에서 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도 만나게 된다. 님은 먼 곳에 있으나 그녀의 순례는 그 먼 곳을 마다하지 않고 떠남으로써 님과 자신 모두를 동시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순례도 그와 다르지 않다. 우리의 인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을 만난 자신을 만나는 그런 여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님은 먼 곳에있는 것 같으나 사실은 자신의 가슴, 영혼, 삶 속에 있다는 것을 깨우치는 이 순례의 여정은 지리적 거리를 뛰어넘는 자기 안의 순례로 귀결된다. 길을 가면서 순례자는 끊임없이 자신과 대치해야 하고 자신과 긴장해야 하며 자신과 새롭게 조우하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자신을 만나고 이루어나가게 된다.

 

사실 우리는 순례의 의미를 역사 속에서 갖지 못한 민족이다. 정신적 성지가 없는 민족의 모습을 여기서 보게 된다. 그건 우리에게 부끄러움이기도 하다. 나라가 힘들고 사회가 어지럽고 정치가 파행을 겪을 때, 우리에게 순례자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긴 호흡으로 세상을 내다보면서 미래를 예견하는 그런 정신적 순결의 힘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당장의 이해에만 휘둘리는 그런 저열함으로 살아가는 사회가 되고 만다.

 

세상은 한없이 변하는 것 같지만 인간이 사는 본질은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나 행복해하고 싶고 자유와 기쁨과 감사를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건 그저 오지 않는다. 정신적 성지를 향한 순례로 순결해지는 영성을 가진 개인과 사회가 진정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그것이다. 빠르기만 하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집중하고 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현실적이기만 하면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니다. 깊고 깊은 영성의 힘이 솟구칠 때, 이 혼란의 시대를 뚫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

 

가을바람이 불면, 순례의 길을 떠나는 이의 머리 위 하늘에서 별들이 반짝일 것이다. 숲은 춤추며 노래하고 강은 우리보다 앞서서 달려갈 것이다. 우리는 이미 길 떠난 자이며 아직 그곳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벌써부터 축복을 누리는 존재가 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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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사랑

한희철의 얘기마을(92)


고마운 사랑




심방 다녀오는 길, 사택 김치거리가 떨어졌다는 얘길 들었다시며 김천복 할머니가 당신 밭에 들러 배차(이곳에서 배추를 배차라고 부른다)를 뽑는다.


“올 김장 어뜩하나 걱정했는데 나와 보니 아, 배차가 파-랗게 살아있질 않겠어유. 을마나 신기하고 감사하든지. 그러고 보면 곡식이 사람보다두 더 모진 것 같애유.”


지난 번 물난리에 며칠간 물에 잠겼던 강가 밭. 포기했던 배추가 살았다며, 그렇게 하나님 아부지는 먹고 살 길을 다 마련해 주신다며, 배추를 뽑으며 연신 고마워한다. 당신네 김치 할 땐 아까워 못 뽑은 통배추를 쑥쑥 뽑아 짚으로 묶는다.


고마운 사랑,

고마운 사랑.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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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

신동숙의 글밭(238)


한마음




그 옛날 당신이 내어준 한마음

살갗을 스치는 바람인 듯

가고 오지 않는 물결인 듯


까맣게 태운 마음 한 알

가난한 마음에 품기로 하였습니다


바람결에 뭍어온 풀향 한 자락에

물결에 내려앉은 별빛 한 점에

그 한 말씀을 새기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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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  (0) 2020.09.22
가을비와 풀벌레  (0) 2020.09.20
별과 별 사이에 우주적 거리  (0) 2020.09.13
마스크를 쓴 얼굴이 아름다워요  (0) 20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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