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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58

낮아진 가슴 신동숙의 글밭(199) 낮아진 가슴 녹아서 일렁이는 마음의 물살은낮아진 가슴으로 흐른다 무심히 길을 걷다가 발아래 핀 한 송이 풀꽃을 본 순간 애틋해지는 건낮아진 가슴으로 사랑이 흐르는 일 제 아무리 어둔 가슴이라도어딘가에 품은 한 점 별빛을 본 순간 아득한 그리움이 출렁이는 건낮아진 가슴으로 사랑이 흐르는 일 내가 만난 가슴 중에서가장 낮아진 가슴은 무릎을 꿇고 앉아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우던예수의 손길에서 맴돈다 눈가에 고인눈물 한 방울이사랑으로 땅끝까지 흐른다 2020. 7. 27.
마음 젖는 기도 한희철의 얘기마을(37) 마음 젖는 기도 “삼시 세끼 밥만 먹으면 인간인 줄 아는 저희들에게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가르쳐 주옵소서.” 김영옥 집사님의 기도에 울컥 마음이 젖다. - (1990) 2020. 7. 26.
나의 소로우 그리고 하나 신동숙의 글밭(198) 나의 소로우 그리고 하나 눈을 감으면 바로 눈 앞으로 펼쳐지는 유년의 풍경이 있어요. 제가 태어나서 유년기를 보낸 부산의 서대신동 산동네입니다. 지금은 신평으로 이전한 예전의 동아고등학교가 있던 자리 바로 뒷동네입니다. 제가 살던 집 옆으로는 아침밥만 먹으면 숟가락을 놓자마자 달려가던 작은 모래 놀이터가 있었는데, 무쇠로 만든 4인용 그네는 언제나 선택 1순위였어요. 흔들흔들 왔다갔다 어지러워지면 땅으로 내려와서 그 다음으로 미끄럼틀을 타고, 시소와 지구본까지 골고루 돌면서 한번씩 타곤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겨워지면 모래땅에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빙글빙글 돌아가던 놀이 기구인 지구본의 이름이 제가 제일 처음 들었던 지구의 이름이예요. 누군가가 장난 삼아 세차게 돌리면 어지럽고 .. 2020. 7. 26.
백두산에 오르는 꿈 한희철의 얘기마을(36) 백두산에 오르는 꿈 친구와 함께 백두산에 오르는 꿈을 꾸었다. 꿈이었지만 가슴은 얼마나 뛰고 흥분되던지.오르다 말고 잠에서 깨어서도(아쉬워라!) 설레는 가슴은 한동안 계속되었다.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 기똥찬 꿈 꿨으니 꿈을 사라 했다. 거 참 신나는 일이라고 친구도 덩달아 좋아한다.언제쯤일까.먼 길 빙 돌아서가 아니라 내 나라 내 땅을 지나 백두 천지에 이를 날은.설레는 오늘 꿈이, 꿈만으로도 설레고 고마운 오늘 꿈이 정말로 가능한 그 날은. - (1989) 2020. 7. 25.
평온한 둥지 신동숙의 글밭(197) 평온한 둥지 물 한 잔을 마시는 동안맨 처음 물이 떠나온 샘을 생각합니다 밥 한 그릇을 비우는 동안맨 처음 씨를 뿌리던 손을 생각합니다 들뜬 숨을 내려놓으며맨 처음 불어넣어 주신 숨을 생각합니다 샘과 손과 숨 이 모든 처음을 생각함은가슴으로 품는 일 처음을 품으며나의 앉은 몸은평온한 둥지가 됩니다 2020. 7. 24.
비수 하나씩은 품고 삽시다 한희철의 얘기마을(35) 비수 하나씩은 품고 삽시다 그래요, 비수 하나씩은 품고 삽시다.시퍼런 날을 남몰래 갈고 갈며뚝 뚝 눈물 떨궈 갈고 갈며가슴속 깊이 비수 하나씩은 품고 삽시다. 여린 것들을 사랑하기 위해단 한 번 쓰러짐을 위해든든한 물러섬을 위해. (1990) 2020. 7. 24.
사랑합니다, 당신의 마른 생 한희철의 얘기마을(34) 사랑합니다, 당신의 마른 생 그렇게 즐거운 모습을 전에 본 적이 없다. 대절한 관광버스 안, 좁은 의자 사이에 서서 정말 신나게들 춤을 추었다. 이음천 속장님의 셋째 아들 결혼식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오는 길, 차 안은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는 빠른 템포의 노래로 가득했고, 노래에 맞춘 춤의 열기로 가득했다. 오늘은 이해해 달라고 몇몇 교우들이 맨 앞자리에 앉은 날 찾아와 미안한 듯 말했지만 이해할 게 어디 있는가, 같이 춤추지 못하는 자신이 아쉬울 뿐이지. 춤과 술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만큼 난 삶과 멀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예수라면 그들과 어울려 좁은 틈을 헤집고서 멋진 춤을 췄을 텐데! 종설이 아버지와 섬뜰 반장님의 멋진 춤! 엉덩이를 뒤로 빼고 한쪽 다리를 흔들어대는 준이 아.. 2020. 7. 23.
책 속에 글숲 신동숙의 글밭(196) 책 속에 글숲 세상에는 수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 마음에 쉼과 평화를 주는 책은 따로 있습니다. 책 속에 자연과 자연을 닮은 사람의 마음이 스며든 글에서 저는 쉼과 평화를 얻습니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경전과 고전에는 하늘과 땅, 자연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동·서양의 고전 음악을 들을 때면, 선율에 담긴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인간 내면의 율동과 더불어 깊은 호흡을 하게 됩니다. 어디서든 자연과 더불어 호흡을 한다는 것은, 그대로 제 무딘 감성에 불어넣는 생명의 기운이 됩니다. 그래서 책과 음악을 함부로 선택하지 않으려, 책장 앞에 서서 한동안 제목들을 곰곰이 마음에 비추어 보는 오랜 습관이 있습니다. 꽃과 나무와 한국의 자연을 사랑하셨던 법정 스님은 에서 를 .. 2020. 7. 23.
"저를 위한 시 한 편 적어 주세요." ㅡ 나무 선생님 편 신동숙의 글밭(195) "저를 위한 시 한 편 적어 주세요." ㅡ 나무 선생님 편 어둑해 지는 저녁답, 집으로 가는 골목길 한 모퉁이에는 아주 작은 나무 공방이 하나 있습니다. 저 멀리서 보아 유리창 안으로 작고 노란 전깃불이 켜져 있는 걸 볼 때면, 어둔 밤하늘에 뜬 달을 본 듯 반가워 쓸쓸히 걷던 골목길이 잠시나마 푸근해져 오곤 합니다. 잠시 들러 몇 마디 얘기를 나누다가, 나무 선생님이 문득 "저를 위한 시 한 편 적어 주세요." 그러면서 나무에 글씨가 써진다는 도구와 나무 토막을 선뜻 내미시는 것입니다. 집에 가져가서 연습용으로 사용하라시며, 시와 글을 적는 저에게 유용할 것 같다시며 맡기듯이 안겨 주십니다. 저로선 난생 처음 보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2020.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