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과 반찬통

카테고리 없음 2020. 7. 31. 06:53

한희철의 얘기마을(42)


도시락과 반찬통


도시락에 대해 물은 건 떠난 민숙이 때문이었다. 그나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학교를 졸업한 민숙이가 도시락을 챙겨줬을 터였지만 민숙이 마저 동네 언니 따라 인천 어느 공장에 취직하러 떠났으니 도시락은 어찌 되었을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일 오후 광철 씨네 심방을 갔다가 봉철이를 만난 것이었다.


“안 싸가요.” 


봉철이의 대단은 간단했다.


“왜?”

“그냥, 싸 가기 싫어요.”

“그럼 점심시간엔 뭘 하니?”

“혼자 놀아요. 혼자 놀다 아이들 다 먹고 나오면 같이 놀아요.”

“도시락은 없니?”

“도시락은 있는데 반찬통이 없어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반찬통이 없다니. 정말 없는 게 어디 반찬통일까. 재작년 엄마 병으로 하늘나라 가시고, 올 봄 누나 공장으로 떠나고, 술기운에 살아가는 아버지, 가뜩이나 일손 모자라는 동네 품 팔기 바쁜 광철, 남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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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봉철이 점심을 챙겨 줄 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걸 몰랐던, 어쩜 알려고 안 했던, 미안한 만큼 꼭꼭 봉철이 손을 잡고 약속을 했다. 도시락 꼭 싸 가기로.


저녁 예배 시간에 내려온 봉철에게 반찬통을 전했다. 반찬통을 전하는 마음이 또 아팠다. 반찬통 없어 못 싸가던 도시락, 반찬통 전한다고 끝난 건 아니잖은가.


엊그제는 원주 중앙시장에 들렀다. 멸치 값이나 오징어 값이나 같았다. 오징어포와 마른 새우를 샀다. 이제 중학교 1학년. 봉철인 한참 배워야 하는데 최소한의 뒷바라진 누가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 건지.


봉철이의 표정이 그래도 밝은 것이 한편은 다행이면서도, 유난히 작은 키가 꼭 먼저 가신 엄마 닮은 것만은 아니지 싶어서. 봉철이... 


(얘기마을,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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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한 톨

신동숙의 글밭(203)


먼지 한 톨



먼지 한 톨로 와서

먼지 한 톨로 살다가

먼지 한 톨로 돌아가기를


내 몸 무거운 체로

하늘 높이 오르려다가

땅을 짓밟아 생명들 다치게 하는 일은

마음 무거운 일


들풀 만큼 낮아지고 

풀꽃 만큼 작아지고

밤하늘 홀로 빛나는 

별 만큼 가난해져서


내 마음 가벼운

먼지 한 톨로 살아가기를


높아지려 하지 않기를

무거웁지 않기를

부유하지 않기를


그리하여

자유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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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 좋은 사랑

한희철의 얘기마을(40)


허울 좋은 사랑




“선한 목자는 양을 사랑하지.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그 양을 찾는단다.”

어린이 예배 시간, 아내가 선한 목자와 양 이야기를 가지고 설교를 했다 한다. 말똥말똥 이야기를 듣던 주환이가 불쑥 묻기를 “그치만 나중에 잡아먹잖아요?” 했단다.


어린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그 이야기를 했고, 뜻밖의 이야기에 낄낄 웃었지만 솔직히 속은 불편했다. 아이들의 단순한 시선에 걸린 분명한 현실 비판. 허울 좋은 사랑의 거짓 명분도 있지. 암, 있고말고! 


-<얘기마을>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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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가 끝까지 지켜볼꺼야"

신동숙의 글밭(202)


"엄마, 내가 끝까지 지켜볼꺼야"


오후에 갑자기 빗줄기가 거세지는가 싶더니 전화가 걸려옵니다. 합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아들입니다. 지난 겨울 방학부터 코로나19로 반년을 집에서 거의 은둔 생활을 해 오던 아들이, 그립던 친구들을 다시 만나기 시작한 건 초여름인 6월 중순입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학교와 함께 푹 쉬었던 학원들과 학습에도 다시 시동을 걸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즘 들어 매일 아침이면 거울 앞에서 머리 모양과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마지막에 마스크를 쓰고서 등교 준비를 하는 아들의 낯선 모습이, 이제는 제법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이유는 비가 세차게 내리니, 집에 있는 복싱 가방을 가지고 중간 지점인 학교 앞으로 와 달라는 얘기입니다. 집에 들렀다가는 복싱 학원 차를 놓칠 수도 있으니, 엄마가 데리러 와 달라는 얘기입니다. 비폭력 평화를 사랑하는 엄마의 바램은 복싱 학원 차를 영영 놓쳐서 아예 가지 않게 되는 일이지만, 아들에겐 아빠와 함께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져버릴 수 없는 입장이 있다는 걸 엄마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들의 하루 일과가 바빠지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마치면 하루에 두 군데 운동 학원을 가야 하기에, 늘 그래왔듯이 학습 학원에 대한 부담은 최소한으로 줄여주기 위해 엄마도 억지로 공부를 하라고 쪼으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걱정을 해 주는 건 고맙게도 아들의 친구 엄마입니다. 학업에 무심해 보이지만 그런 제 마음 속에선 늘 신경을 쓰고 있는 공부가 있습니다. 학업보다는 마음을 밝혀줄 동양 경전과 하나님을 알아갈 성경 읽기입니다. 


그런데 한 가족이라곤 해도 다들 뜻이 달라서, 그런 제 뜻대로 되지 않기에 속으로만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어린 손주가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한학을 공부했다는, 멀리서 들려오는 옛이야기가 저에게는 늘 그리운 사람이 사는 집과 마을의 풍경입니다. 다만 기도하며 깨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뿐입니다.



아들의 친구 엄마는 합기도를 운영하시는 관장님의 부인이자 운동 선생님이자 세 아들을 둔 바쁜 직장맘입니다. 그 중에 둘째 아들과 우리 아들은 오래된 단짝 친구입니다. 운동 선생님이자 친구 엄마는 우리 아들 예성이의 주중 시간표를 대략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성이의 수학 연산을 걱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세 아들들은 합기도장에 딸린 사무실이자 작은 방에서 수학 연산 학습지를 꾸준히 해 오고 있는 중입니다. 


괜찮다면 수학 학습지 선생님이 애살도 있고 잘 가르치신다며, 생각이 있으면 소개를 해줄까 하십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관할 지역이 달라서 안 된다는 얘기를 들으시고는, 운동 선생님이자 친구 엄마가 나서서 그러면 합기도에서 하는 걸로 하자며 학습지 선생님과 얘기를 했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합기도 운동 선생님에겐 매일 오후마다 수학 연산 학습지를 풀라며, 한 마디를 해야 할 아들이 셋에서 넷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어쩌다가 저는 한 짐 덜고, 한시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제게 주어진 시간 만큼 공부도 하고 기도도 해야 하는데, 깜빡 낮잠이나 자고 있으니 염치가 없고, 제게 내려주시는 은총이 차고도 넘침을 봅니다. 처음엔 사양할까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혼자서 푸는 학습지보다는 친구가 옆에서 같이 풀면 서로가 심심하지 않아 오히려 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는 한 생각을 붙잡은 것입니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검정색 반팔과 반바지를 입은 아들이 검정색 우산을 들고 저만치서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뒷좌석에 앉자마자 "아씨~" 콧등에 얹는 안경 꼭지가 다시 떨어졌다며 투덜대면서 보여줍니다. 어젯밤에 안경 꼭지 고무가 떨어진 걸 보고 임시방편으로 강력 접착제로 붙여주었더니, 방금 차에 오르기 직전에 다시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만치라도 견뎌준 고무 꼭지에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대로 쓰고서 운동을 했다가는 피부를 찌를 것 같습니다. 


동네에는 안경점이 한 군데 있습니다. 아들에게 5천원을 주면서, 큰 도로에 차를 세울 수도 없고, 엄마랑 같이 가려고 먼 곳에 주차를 하게 되면 복싱 학원차를 놓칠 수도 있으니, 혼자서 안경점을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망설임도 없이 그러겠다고 합니다. 평소 같으면 혼자서 못 들어간다며 떼라도 썼을 텐데, 아들은 급하기도 했거니와 부쩍 올라간 키 만큼 마음도 자란 거 같아서 흐뭇한 마음으로 운전대를 부드럽게 돌립니다.


골목을 한바퀴 돌아서 나오는데 때마침 검정색 우산을 든 아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차 뒷좌석에 털썩 앉은 아들의 입에선 "아씨~" 하며 새어 나오는 소리가 쇳소리 같아, 언제나 엄마 귀에 거슬려도 표정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복싱차가 오기까지 1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평소에 날씨가 좋을 때 같으면 잠시 기다리라며 내려주었을 텐데, 빗줄기가 세찬 바람에 잠시 차에서 쉬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새로 받은 합기도 도복 얘기를 꺼냈습니다. 선생님이 예성이 오랜만에 왔다고 도복값을 받지 않고 선물로 주시겠다는데, 얘기를 이어가려니, 뒷좌석에 사장님처럼 앉은 아들이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안돼! 아씨~ 그러면 안 되지." 합니다.


엄마의 얘기가 이어집니다. "나중에 진욱이랑 민욱이 형아랑 원욱이가 우리집에 놀러 오면, 올 때마다 엄마가 맛있는 간식 해 주면 안될까? 선생님이 도복값을 받지 않고 선물로 주고 싶다고 하시는데" 했더니, 아들의 입에선 "그건 그거고, 당연히 그렇게 하는 거고, 도복값은 꼭 드려!" 합니다. 그러면서 잠시 몸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다시 사장님처럼 기대앉으며, "도복값 꼭 드려야 돼~ 엄마, 주는지 안 주는지 내가 끝까지 지켜볼꺼야." 아들은 작은 소리로 은근히 근엄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아들 생각이 그러면 그렇게 하자고 했더니, 무거운 몸을 틀면서 "그리고 내가 그랬다고 절대로 말하면 안돼! 아씨~ 내가 그랬다고 말하기만 해봐~ 아씨~ 부끄럽게." 그러면서 저 혼자 먼 데를 보는지 고개를 돌리며, 비가 쏟아져 내리는 창밖을 보는 듯 퉁하게 있습니다.


아들의 입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그런 말들이 엄마 귀에는 꼭 예수님의 음성처럼 들려옵니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하시던 말씀이 그렇고, 혈우병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은 후 병이 나은 것을 보시며, '내가 했다' 하지 않으시고,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 하신 예수의 마음을 곰곰이 헤아리다 보면, 어둡던 가슴에 등불을 켠 듯 햇살을 비추는 듯 따뜻해지고 환해져옵니다. 


그 먼 옛날 그 모든 이적과 기적을 행하시는 중에도 신약 성경의 단 한 소절도 '내가 했다.'며 스스로에게 의를 돌리신 적이 없으신 예수입니다. 저는 언제나 예수의 온전히 낮아진 그 마음 앞에 그만 주저앉습니다. 그 겸손함과 사랑으로 온전한 진리의 몸이 되신 예수의 말씀을 오늘 아들에게서 살짝 엿들은 것입니다. 


아들의 입에서 '아씨~'를 연발하게 만들고, 몸과 마음을 눅눅하게 만드는 세찬 빗줄기 조차 메마른 심령에 내려주시는 시원한 복음의 말씀 같습니다. 그리고 은총의 햇살처럼 제 무딘 가슴까지 환하게 비추는 빛줄기 같습니다. 아들의 입에서 나온 "엄마, 내가 끝까지 지켜볼꺼야."라는 말처럼 가슴 선들한 말씀이 또 있을까요. 이 세상 끝까지 챙기려고 온종일 내려주시는 빗줄기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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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말

신동숙의 글밭(201)


마음속의 말



   

믿으라 말씀하시는

마음속의 말은 


내가 먼저 

너를 믿는다


사랑하라 말씀하시는

마음속의 말은


내가 먼저

너를 사랑한다


먼저 믿지 않고선

먼저 사랑하지 않고선


결코 건넬 수 없는 

마음속의 말


말씀보다 

먼저 있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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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왜 왔니?

한희철의 얘기마을(39)


우리 집에 왜 왔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가 뒤로 돌아 게시판에 머리를 대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욀 때 모두들 열심히, 그러나 조심스럽게 술래 쪽으로 나아갔다. 느리기도 하고 갑자기 빨라지기도 하는 술래의 술수에 그만 중심을 잃어버리고 잡혀 나가기도 한다. 그러기를 열댓 번, 술래 앞까지 무사히 나간 이가 술래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있는 동안, 그동안 잡아들인 사람들의 손을 내리쳐 끊으면 모두가 “와!”하며 집으로 도망을 친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꽃을 따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무슨 꽃을 따겠니, 따겠니, 따겠니?”


두 패로 나뉘어 기다랗게 손을 잡곤 파도 밀려갔다 밀려오듯, 춤추듯 어울린다. 따지듯 점점 목소리가 커진다. 어느새 발그래진 모두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조용하고 작은 단강초등학교 교정, 유쾌한 함성이 번진다. 지난 여름성경학교 때 내려와 아이들을 가르쳤던 용두동교회 청년들이 성탄절을 앞두고 다시 단강을 찾은 것이다. 쑥스러워 하는 아이들. 천성의 부끄러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생님들 대하기 부끄러운 건 배우긴 그렇게 안 배웠으면서도 그동안 교회에 빠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걸 모르지 않는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한바탕 어울려 뜀으로 쑥스러움을 흔쾌히 털어낸다. 



이필로 속장님 댁에서의 저녁식사. 30여명의 적지 않은 식사였지만 속장님은 즐거움으로 저녁을 준비했다. 속장님은 물론 딸 혜영 씨, 문현이, 옆집에 사는 설정순 집사님의 손길도 분주하였다.


먼 길 차를 탔고, 아이들과 한바탕 뛰기도 했던지라 시장기가 동하기도 했겠지만 청년들은 정말 맛있게 밥 두 세 그릇을 쉽게 비웠다. 어디 가게에 나가 장 봐 온 게 아닌, 농사 지어 만든 상 위 가득한 반찬들, 그게 고향 맛 아닌가. 정성으로 차려주신 손길, 맛있게 든 손길 모두가 고마웠다.


모처럼 꽉 찬 예배당, 또 다시 절실한 젊은이 떠난 농촌의 빈자리. 저녁예배를 마치고 선생님들이 준비한 연극을 보았다. 아기 예수 탄생 시 떴던 별에 대해 갖는 박사들의 진지한 관심, 혹 아이들에겐 어려운 내용이었을지 모르지만 알리라,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신비한 별 있음을.


연극을 보는 아이들 눈망울이 총총하다. 이어 나타난 산타 할아버지, 뒷짐 빨간 보따리엔 선물이 가득하다. 언젠가 예배를 드리며 “산타가 있을까?” 했을 때, “우리 마을엔 없어요.” 했던 한 아이의 대답을 듣곤 마음이 아팠었는데, “아니야, 오실 거야. 착한 너희들을 두고도 안 오신다면 산타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거야.” 하며 정말 산타가 없다면 나라도 밤을 새워 아이들 머리맡 선물 전해야지 했는데, 정말 멋진 산타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정말 산타가 찾아왔구나.


한 사람 한 사람 나가 선물을 받는다. 제일 먼저 나간, 제일 어린 경민이는 처음 보는 산타가 신기하고 무서워 두 눈이 왕방울만 해졌고, 자꾸만 뒷걸음질을 쳤다. 겨우 언니 품에 안겨 앞에 나가 선물을 받았다.


고마운 선물. 외로울 수 있었던 가슴 외롭지 않게 사랑으로 받은 고마운 선물. 내년에 또 보자며 산타는 떠났다. 아이들 마음속으로.


주일 예배를 드리며 헌금을 바치는데, 용두동교회 청년부가 드린 감사헌금이 있었다. 거기에 적힌 감사 내용을 읽으며 문득 가슴엔 따뜻한 눈물이 고인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에 감사드립니다.” 


 -<얘기마을>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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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심사

한희철의 얘기마을(38)


자격심사



-교회 세워진 지 몇 년 됐죠?

-3년 됐습니다.

-지금 몇 명 모입니까?

-20여명 모입니다.

-첨엔 몇 명 모였나요?

-20여명 모였습니다.


피식 웃었다. 자격 심사, 둘러앉은 심사위원들이 3년 동안 그대로인 수치를 두고 웃었다.

나도 웃으며 그랬다.


-작년 한 해 동안 세 분이 이사 가고, 세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모두들 다시 웃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면서

-됐습니다. 나가세요.

그렇게 자격심사가 끝났다. 


-<얘기마을>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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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씨앗, 심기 전에 먼저

신동숙의 글밭(200)


기도의 씨앗, 심기 전에 먼저


장맛비가 쏟아지는 저녁답, 잠시 차를 세운다는 게 과일 가게 앞입니다. 환하게 실내등이 켜진 과일 가게 안을 둘러봅니다. 반쯤 익은 바나나가 비닐 포장에 투명하게 쌓여 있고, 붉은 사과는 계절을 초월해 있고, 일찍 나온 포도 송이에 잠시 망설여지고, 토마토는 저도 과일이라 합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과일이 노랗게 잘 익은 황도 복숭아입니다. 황도 복숭아를 좋아하는 아들의 얼굴이 동그랗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요즘은 떠오르는 얼굴이 그 옛날 맑은 밤하늘에 별처럼 별자리처럼 많아서 행복합니다.


과일에는 씨앗이 있듯이 불교, 천주교, 기독교 등 모든 종교에는 종교 교리 속에 씨앗 같은 영성의 기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리와 기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하나의 달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불성 또는 부처라 하고, 천주교에서는 하느님 또는 천주님이라 부르고, 기독교에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이라 부르고, 유대인들은 야훼 또는 여호와라 이름합니다. 그리고 동양의 경전인 논어와 중용을 비롯한 철학적인 학문의 영역에선 영성, 참자아, 성性, 본성, 본질적 자아, 근원, 진선미의 온전함을 칭합니다. 





가족들이 잠든 새벽 장독대 위에 하얀 사발에 정한수를 떠놓고 "비나이다" 두 손 모아 가슴으로 빌던 우리네 어머니들은 "하늘이시여" 하늘을 우러러 보며, 보이지 않는 그 마음이지만 아궁이에 불씨를 지키듯 떨리는 마음으로 지키며 한평생을 사셨습니다. 종교를 갖지 않아도 절대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삶 가운데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절대와 영원과 하늘에 대한 믿음을 단지 무속이라 치부해 버리기엔 단군의 홍익인간과 재세이화(在世理化), 그보다 앞선 천부경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에 담긴 그 심오하고 깊은 뜻은 성실한 자연을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자연과 더불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있는 참된 이치 또는 인간의 도리, 바른 길, 하늘의 뜻, 천명(天命), 순명(順命), 중도(中道), 중용(中用), 다양한 이름의 하나의 달, 즉 진리가 모든 종교 교리 속에 기도처럼, 과일 속에 씨앗처럼 있습니다. 저는 이 모든 종교의 영성 씨앗 안에 깃든 보편적 진리의 성령을 봅니다. 동서고금 불고 싶은데로 부는 사랑과 자유의 바람인 성령을 커다란 경전인 자연의 성실함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와 학문을 초월해 인간의 보편적인 의식의 영역에서는 '양심'이라고 이야기 해 주면 시골의 할머니들도 쉽게 이해를 하곤 하십니다. 그리고, 과일을 맛있게 먹느라 생각을 비운 아들에겐 과일 속에 씨앗이라고 얘길 해 줍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장 23절) 요즘 유튜브로 세상을 배워가는 아들에게 이 씨앗 같은 말씀을 얘기해 주면서, 아들의 어린 마음에 어떤 모양의 마음이 들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더불어 우리네 속담에 "콩 심은데  콩 나고, 밭 심은데 밭 난다." 이 한 소절을 양념처럼 곁들여 주면 제 아무리 무딘 마음이라도 움찔해지기 마련입니다. 


나아가 황도 복숭아를 먹으며 복숭아 나무 과실 농사를 짓던 농부의 손길과 마음을 마음으로 그리다 보면 저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맑게 흐르는 수돗물에 복숭아를 씻어서 껍질을 돌려 깎으며 조각 조각 사이좋게 나누는 일련의 흐름은 그대로 기도가 됩니다. 그리고 언제나 값없이 주시는 흙과 햇살과 빗물과 바람과 달과 별 이 모든 자연에 깃든 진리, 섭리를 마음으로 헤아리다 보면 어느새 호젓한 기도의 평온한 산책길을 걸어가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황도 복숭아 한 박스에 2만원의 값을 치뤘지만, 그 값 안에는 자연에게 주는 값은 빠져 있는 줄로 사려됩니다. 자연에게 있어서 돈이란 아무 쓸모도 없을 테니까요. 돈으로는 태양빛 한 줄기도 살 수 없고, 빗물 한 방울도 살 수 없기에, 값없이 내려주시는 자연의 은총에 인간이 줄 수 있는 대가란 오로지 기뻐하며 기도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길 뿐. 


하나님이 명령하신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18절) 이 말씀이 제 귀에는 마치 사랑하는 이의 말처럼 "꼭 붙어 있자."로 들립니다. 과일 속에 씨앗처럼, 다 먹고 난 후에는 흙 속에 씨앗처럼. 씨앗이란 혼자서는 성장할 수 없고, 무언가가 품어야 그 생명이 성장할 수 있는 이치입니다. 그렇게 인간 본연의 첫사랑인 씨앗 같은 하나님은 품어줄 옥토밭을 간절히 찾고 계시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준 주기도문에서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늘의 뜻, 씨앗을 품을 땅은 성전인 우리의 몸, 마음, 중심, 가슴인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스무살에 문득 들어온 한 생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양한 종교에 저마다의 마음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새벽 기도를 삶의 중심에까지 놓는 이유를 헤아리다 보니 그 생각의 끝이 기도에 닿았습니다. 기도의 힘. 종교가 없어도, 교리를 몰라도, 진리를 몰라도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는 바가 있으면 그 간절함은 기도가 되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우주에는 에너지의 파장과 흐름이 있어서, 간절하고 꾸준히 소원하는 바가 있다면 때가 되어 과일이 열매를 맺듯 이루어진다는 엄연한 사실, 자연의 법입니다.


그리고 그때 덜컥 무거운 한 생각이 든 것입니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게 기도라면 그 기도, 함부로 입으로 말해선 안되겠구나, 마음으로도 되뇌어선 안되겠구나 싶은 마음이 든 것입니다. 어려서 철 모르고 드린 기도가 만약에 하나 나중에 이루어진 경우, 정작 그때 가서 "이게 아닌데" 하는 마음이 뒤늦은 후회를 남긴다면 그 바램과 기도는 에초에 심지 말았어야 했을 씨앗이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랬기에 제게는 기도가 우선이 아니라 바른 법을 찾는 일이 우선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스무살 이후 본격적으로 제 삶은 진리를 구하는 순례길에 오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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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한희철의 얘기마을(38)


평화


동네 남자들이 은경이네를 위해 한나절 나무를 같이 했습니다. 한 짐씩 경운기에 실어 날랐습니다. 반장님이 아침부터 방송으로 알리더니 어느 새 한데 모여 나무를 한 것입니다.


은경이 아버지는 지난 가을 팔을 다쳤습니다. 어둔 길 탈곡을 마치고 경운기를 타고 돌아오다가 둔덕을 지날 때 기우뚱 중심을 잃으며 기울어졌는데, 그 순간 미끄러져 내리는 탈곡기를 막다가 팔을 다쳤던 것입니다.



덕분에 은경이네는 얼마 남지 않았던 나무가 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늘 이웃들이 마실 많이 오던 집이 썰렁한 냉방인지라 여느 해처럼 사람들이 모이질 못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은경이네를 위해 나무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모두 나서니 마당엔 이내 나무로 가득했습니다.


이웃의 정이 고마운 은경이네는 보리로 밥을 짓고 말려뒀던 나물들을 꺼내 삶아 점심을 준비했습니다. 고추장에 석석 비벼 맛있게들 먹었습니다. 그리고도 저녁에는 칼국수를 밀어 또 한 차례 나누어 먹었습니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이웃의 모습이 여간 정겹지 않았습니다. 은경이네 굴뚝에서 퍼져 나온 저녁연기가 매운바람에 어지러웠지만 푸근한 기운으로 퍼졌습니다.


-<얘기마을>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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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아진 가슴

신동숙의 글밭(199)


낮아진 가슴





녹아서 일렁이는 

마음의 물살은

낮아진 가슴으로 흐른다


무심히 길을 걷다가 

발아래 핀 

한 송이 풀꽃을 본 순간


애틋해지는 건

낮아진 가슴으로 

사랑이 흐르는 일


제 아무리 어둔 가슴이라도

어딘가에 품은 

한 점 별빛을 본 순간


아득한 그리움이 출렁이는 건

낮아진 가슴으로 

사랑이 흐르는 일


내가 만난 

가슴 중에서

가장 낮아진 가슴은


무릎을 꿇고 앉아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우던

예수의 손길에서 맴돈다


눈가에 고인

눈물 한 방울이

사랑으로 땅끝까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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