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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48

산안개 신동숙의 글밭(169) 산안개 비가 오는 날에는산안개가 보고 싶어서 밥을 먹다가먼 산을 생각합니다 설거지를 하다가산안개를 생각합니다 푸른산 머리 위에 앉은하얀 산안개가 순합니다 비가 오는 그믐밤에도흰 박꽃처럼 순합니다 하늘도 순하고산도 순하고집도 순합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온 마을이 하얀 박 속입니다 2020. 6. 20.
자조 한희철의 얘기마을(4) 자조 버스에 탄 할아버지 두 분이 이놈, 저놈 호탕하게 웃으며 농을 한다. “이놈아,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해야지.” “어허 그놈, 으른 애도 모르는 걸 보니 갓난애구먼.” “이놈아, 집에 틀어박혀있지 나가길 어딜 나가누. 나갔다 길 잃어버리면 집도 못 찾아올라구.” “고 어린 게 말은 잘하네. 아직 이도 안 난 것이.” “뭐라고?” 어이없어 껄껄 웃고 마는 할아버지, 정말 앞니가 하나도 없다. 친구 같은 두 분 할아버지, 무심한 세월 덧없음을 그렇게 서로 자조하고 있는 것이었다. (얘기마을, 1989년) 2020. 6. 20.
베드로의 눈물 조진호와 함께 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순례(24) BWV 244 Matthäus-Passion / 마태수난곡 No. 24 베드로의 눈물 마태수난곡 2부 45~46번마태복음 26:69~73음악듣기 : https://youtu.be/YAD8bJc5SPw45(38)내러티브에반겔리스트69.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69. Petrus aber saß draußen im Palast; und es trat zu ihm eine Magd, und sprach:대사 여종1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Und du warest auch mit dem Jesu aus GaIilaa.내러티브에반겔리스트70.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70. Er leugnete aber .. 2020. 6. 19.
다석, 도올, 머튼, <시편 사색>을 주워서 소꿉놀이 신동숙의 글밭(168) 다석, 도올, 머튼, 을 주워서 소꿉놀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심심해진다. 한때 바깥 일도 해보았지만, 제 스스로가 이 사회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한 사람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자본과 경제 논리로 형성된 이 사회구조 안에선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 나인 것이다. 물론 스스로도 어려서부터 이 사회 안에서 있음직한 성공에 대한 꿈을 꾸어본 적 없이, 몸만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그러니 서로가 아쉬울 것도 없는 사이인 것이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혼자 놀기로 했다. 설거지를 하다가 종종 쪽창으로 창밖을 본다. 마당 위에 하늘을 보고, 나무도 보고, 풀꽃도 보고, 새소리에 귀가 맑아지기도 하면서, 그렇게 가만히 바라본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이 세상은, 자연은 참! 신기.. 2020. 6. 19.
삶을 모르고서야 한희철의 얘기마을(3) 삶을 모르고서야 “제가 열 살 때 샘골로 글을 가르치러 댕겼어요. 국문이죠. 그때 칠판이 있었겠어요? 그런데 샘골 노인들이 참 지혜로웠어요. 어떻게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면서 쟁반에다 좁쌀을 담아 준비를 해 둔 거예요. 손가락으로 좁쌀 위에 글을 썼다가 흔들면 지워지니 아, 그 얼마나 편하고 좋아요.” “요샌 큰일이에요, 시골에도 도둑이 많으니. 며칠 전엔 성희 네도 도둑을 맞을 뻔 했대요. 자가용 타고 온 웬 남자들이 서성거려 그 집에 온 손님인 줄로 알았지 도둑인 줄 생각이나 했겠어요.” “바로 그날 부놋골에서 도둑을 맞았데요. 금반지 다섯 개와 쌀 두가마를 잃어버렸대요.” “흥호리에선 경운기 앞대가리만 빼갔대요. 값나가는 쪽이 앞쪽이니까 대가리만 빼서 차에 싣고 갔나 봐요... 2020. 6. 19.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한희철의 얘기마을(2)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계시니까 솔직히 말이지, 난 세상에서 목사님이 제일루 편한 줄 알았어유. 일요일 날 예배만 보구선 맨날 쉬는 줄루 알았어유.” 교통사고를 당한 딸 간호를 위해 딸네 집에 다녀온 이서흠 성도님이 예의 두 눈이 다 감기는 웃음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사고를 당한 따님은 사모님입니다. 고향을 떠나서 시작된 믿음이 사모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했습니다. “가서 며칠 있어보니까유, 세상에, 목사 사모만큼 힘든 일두 읍드라구유. 자기 몸이 아파두 교인이 아프다문 거기 쫓아가야지, 시간 나문 기도하구 책 봐야지유. 괜히 옆에서 지켜보니까 자꾸 눈물이 나드라구유.” “전 농사 짓는 사람이 제일 힘든 것 같은데요?” 했더니 “저두 그랬어유. 세상에 농사짓는 일만큼 힘든 게 또 .. 2020. 6. 18.
분노할래요 신동숙의 글밭(167) 분노할래요 분노할래요모르는 아이의 작은 소리에도 욕심부릴래요어진 어른의 큰 가르침에도 땅에 닿으려는 옷자락의 끝을 추스르듯제 모든 의식을 추스려서 이 모든 분노와 욕심도 오롯이 진리 속이라면쓸모가 있을 테니까요 사랑하지 않을래요제 가족의 정다운 사랑에도 믿지 않을래요제 자신의 확고한 믿음에도 입가에 묻은한 방울의 물기를 닦듯이제 모든 마음을 닦아서 이 모든 사랑과 믿음도오롯이 진리 속이 아니라면쓸모가 없을 테니까요 2020. 6. 17.
그것밖엔 될 게 없어서 한희철의 얘기마을(1) 그것밖엔 될 게 없어서 따뜻한 봄볕이 좋아 소리와 규민이를 데리고 앞개울로 나갔다. 개울로 나가보니 버들개지도 벌써 피었고, 돌미나리의 새순도 돋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밭둑에 어느새 풀들이 쑥 자라 있었다. 개울물 소리 또한 가벼운 몸짓의 새들과 어울려 한결 명랑했다. 겨울을 어떻게 났는지 개울 속에는 다슬기들이 제법 나와 있었다. 다슬기를 잡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논둑을 지나다보니 웬 시커먼 덩이들이 군데군데 논물 안에 있었다. 자세히 보니 개구리 알이었다. “저게 뭔지 아니?” “몰라요.” “개구리 알이야, 저 알에서 올챙이가 나오는 거야.” 소리와 규민이가 신기한 눈빛으로 개구리 알들을 쳐다본다. “올챙이가 커서 뭐가 되는지 아니?” “개구리요.” 책에.. 2020. 6. 17.
하나님도 별 도리가 없으시다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 하는 ‘안으로의 여행’(57) 하나님도 별 도리가 없으시다 나는 확신합니다. 만일 나의 영혼이 준비가 되어 있고,하나님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와 마찬가지로나의 영혼 안에서도 드넓은 공간을 찾아내기만 하신다면,나의 영혼을 이 강물로 가득 채우시리라는 것을. 글을 쓰다가 뒤뜰로 나가 밝은 달 아래 서니, 소동파의 에 나오는 시 한 수가 문득 떠오른다. “저 강상(江上)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이여,귀로 듣노니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노니 빛이 되도다.갖고자 해도 금할 이 없고 쓰자 해도 다 할 날 없으니이것이 조물주의 무진장(無盡藏)이다.” 이 무진장한 바람과 달빛도 사람이 그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면 스며들 길이 없다. 맑은 바람을 마시면서도 누군가에.. 2020. 6.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