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선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9)


 뜻밖의 선물




‘아, 예배드리고 싶다.’
‘내가 예배에 고팠구나.’


근 석 달 만에 드리는 수요저녁예배, 지는 해가 드리우는 저녁 그림자를 밟고 예배당 마당으로 들어서는 교우들의 모습에서 그런 마음이 읽혀진다.


코로나가 준 뜻밖의 선물 중에는 그런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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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8)


꽃들은




꽃은 하나님의 웃음인지도 몰라.
슬쩍 대지에 남긴 하나님의 지문인지도 모르고.
결코 까탈스럽고 엄숙한 할아버지가 아님을 일러주는 하나님의 손사래인지도 모르고.
천지창조 후 그래도 뭔가 아쉬워서 한 번 더 어루만진 하나님의 손길인지도 모르지.

예배당 앞 공터에 꽃을 심기 위해 찾은 양주화훼단지,
이름도 모를 만큼 꽃들은 얼마나 많던지,
눈이 부실 만큼 빛깔은 얼마나 예쁘던지,
서로서로 모양은 얼마나 다르던지,
꽃은,
꽃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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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기쁨

신동숙의 글밭(155)


안목,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기쁨


스승을 찾던 20대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가를 배우다가, 요가를 가르치다가, 몸의 움직임이 곧 의식의 움직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에도 혼자서 관련된 서적들을 찾아서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단순한 요가로부터 시작된 책의 관심 분야는 점차 확장이 되었습니다. 


인체, 근육과 골격, 운동과 춤, 자연식 섭생법, 한의학, 인도의 아유르베다, 심리와 마음에 관련된 수도승들의 체험 수필, 명상 서적, 명상 음악과 클래식, 국악, 동서고금의 철학과 고전으로 이어지며 자연히 관심 분야가 넓어졌습니다. 한 사람을 구성하는 세상의 모든 유형과 무형의 대상이 공부의 범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점점 명상으로 집중이 되었습니다. 결국은 밖으로 드러난 몸은 보이지 않는 마음이 그 원인이 됨을 알게 되면서 마음 공부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혼자서 책으로만 하는 공부가 힘에 겨웠습니다. 마치 허공 속에 홀로 있는 듯,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향하여 떠나야만 한다는 마음이 제 안에선 바람처럼 불었습니다. 길이 없는 길을 가야 한다는 막막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때부터 책 속이 아닌 사람을, 비로소 스승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를 진리의 길로 인도해줄 바른 스승은 어디에 있는지, 지푸라기 한 올처럼 붙든 것은 스승과의 만남이라는 간절한 염원 하나였습니다.


책 속에서 보면 누군가는 때에 따라서 스승이 내게 왔다고도 하는데, 제 삶을 되돌아 보면 요원하기만 하였습니다. 결국 스승을 찾아서 26세에 인도를 가게 되었습니다. 스승과의 인연이 닿을 만한 아쉬람이나 요가 과정이 있는 대학원에서 요가 공부를 하기 위해서 인도 전역을 한 바퀴 돌게 되었습니다. 뭄바이, 방갈로르, 뿌네, 첸나이, 캘커타, 비하르, 델리, 요가의 본고장 리쉬케쉬, 달라이 라마가 있는 북인도의 다람살라까지. 


익스프레스 기차는 한국의 통일호처럼 덜컹이는 창문입니다.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던 인도의 시외버스는 몸집이 작은 제 무릎이 닿을 정도로 의자 간격이 좁았습니다. 게스트 하우스와 여관에선 이불을 덮고 잠을 자 본 적이 없습니다. 가지고 간 얇은 침낭이 이불이 되었습니다. 뭄바이의 향신료인 마살라는 땀 냄새 같았고, 저녁답에 내린 뿌네의 기차역에선 코리엔더(고수) 냄새가 공기 중에 풍겼습니다. 한국인에게서 마늘 냄새가 난다던 서양인들의 말이 남의 말 같지 않았습니다. 


다행인 것은 육식을 꺼리고, 빵과 과일을 좋아하는 저에겐 인도의 먹거리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청포도를 알알이 따 씻어서 빈 패트병에 넣고 마시듯이 들고 다녔습니다. 라임 오렌지는 보일 때마다 사 먹었습니다. 길거리에서 파는 수박 조각엔 소금을 쳐서 주었는데, 한국의 수박바를 닮았습니다. 밀가루를 얇게 밀어서 화덕에 구운 차파티와 난, 기름에 튀긴 푸리와 요거트가 흔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인도 사람들은 한국인인 저에게 참 친절했습니다. 2004년 인도인들의 정서는 한국의 70~80년대의 정서와 닮아 있어서 제겐 익숙하고 친근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반대되는 점은 한 가지, 승낙의 표시로 그들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는 점입니다. 도리도리를 하면서 "no problem."


대부분의 도시를 잠시 머물다가 떠나왔습니다. 주로 지역의 대학이나 도서관과 서점과 아쉬람을 둘러보았습니다.  요가의 본고장 리쉬케쉬에서는 숙소를 잡고 한 달 넘게 머물면서 시간대 별로 아쉬람에서 요가 수행도 하고, 저녁이면 강변에서 뿌자를 드렸습니다. 요가의 본고장답게 모든 수련원들이 저녁 어스름이면 모두 강변으로 나와서 뿌자를 드리는 것입니다. 나뭇잎 접시에 촛불을 띄우기도 하고, 꽃을 띄워 강물에 흘려 보내며 기도를 드리는 경건한 의식이 자연스러운 마을입니다. 


히말라야에서 흘러온 물줄기가 강물이 되어 마을 한 가운데를 흐르던 리쉬케쉬에선, 다리를 건널 때면, 아이들이 밀가루를 콩알처럼 굴려서 작은 봉지씩 손에 들고서 내밀기도 합니다. 가끔 물고기밥을 사서 건너곤 하였습니다. 다리 한 가운데 서서 물고기밥을 강물에 던지면 팔뚝만한 물고기가 바글바글 몰려듭니다. 그래도 어느 누구도 물고기를 잡으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마을의 모든 식당에서도 고기를 팔지 않는 요가의 마을이 리쉬케쉬입니다. 그 옛날 비틀즈가 방문해서 서양인들에게도 유명세를 탄 돌로 된 아쉬람도 있었습니다. 제가 머물 당시에도 많은 나라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인도 전역을 돌면서도 저의 관심은 오로지 하나, 스승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스승과 만나기 위해서 떠나는 길 위에 있었습니다.


달라이 라마가 있는 티벳의 임시 수도 다람살라는 북인도에 있습니다. 제가 여행하던 그 당시에는 달라이 라마가 해외에 순방을 갔던 시기였습니다. 대신 후계자인 까르마파가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두 명의 까르마파가 있다고 하는데, 그들은 한 명의 달라이 라마승이 두 명으로 분화되어 환생을 한 경우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중에 한 명의 까르마파와 친견을 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고, 꼭 한 가지의 질문을 하면 답변을 들을 수 있다는 소식에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부귀 영화는 제 소원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오로지 하나 스승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친견을 하게 된 까르마파는 20대 초반의 어깨가 건장한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머리를 까까머리로 밀었고, 이마는 높은 산마루 같았고, 눈에선 맑고 깊은 고요가 느껴졌습니다. 질문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 질문은 아시다시피, "저의 스승은 언제 만날 수 있을까요?", 돌아온 답변은 "때가 되면 만납니다."였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답변이었습니다. 때가 되면 만난다는 말이 사심없는 마음에, 사심없는 길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조심했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기도입니다. 


그때에도 기도라는 것은 기도한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바른 법을 알기 전에는 기도도 함부로 드리면 안되는 것이라는 자각이 있을 때였습니다. 온전치 못한 기도를 섣불리 드렸다가 나중에 기도가 이루어진 후, 이게 아닌데 하며 후회할 일이 생긴다면 그 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어둡고, 혼돈스럽고, 세상에 혼자 있는 듯한 시절, 그때에도 언제나 붙드는 것이라곤 어둠 속에 한 점 빛나는 별빛 하나였습니다. 극히 작아서 어둠에 묻혀버릴세라, 보고 또 보며 늘 바라보던 작은 별빛 한 점은 진리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자연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사람에게도 이처럼 자연스레 아름다운 길 곧 진리가 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거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스승은 때가 되면 만난다'는 까르마파의 말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오늘의 말 같습니다. 그 말은 씨앗이 되어서 많은 말들을 낳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내 앞에 스승이 나타나도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없다면 결코 만나지 못할 거라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스승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습니다. 내 어둔 눈을 밝히고, 어둔 마음을 밝혀서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일입니다. 그렇게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기 전에는 예수와 석가가 내 앞에 나타나도 결코 만날 수 없을 거라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마음 공부가 더 넓어지고 깊어져야 하는, 마음이 몸이 되듯이 실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생긴 것입니다. 허황된 꿈을 쫓거나 모호한 비진리 속에서 재미를 찾는 일들은 제겐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것입니다. 재미보다는 의미를 찾는 삶. 매일 매 순간 속에서 의미를 찾는 일로 하루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하루라는 선물은 습관을 만들어 가기에 아주 좋은 완벽한 시스템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연과 진리 안에 거하며 하루를 살아간다면, 그 안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다는 이치입니다.


안목을 가르기 위해선, 세상의 모든 종교와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만 하는 일. 흐르는 물처럼 매 순간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을 깜빡여서 스스로를 밝히고 맑혀야 하는 일. 숨이 붙어 있는 한 끊이지 않을 마음과 생각의 일어남 앞에 비로소 마음을 내려놓기로 하였습니다. 마음을 비우기로 한 것입니다. 어디를 찾아가서 찾고 구하려는 모든 의지 조차도 내려놓기로 한 것입니다. 한 자리에 머물러 매 순간을 깨어 있는 삶으로. 물처럼 바람처럼 보이지 않는 자연과 진리의 흐름을 믿고 제 자신을 맡기기로 한 것입니다. 


열린 개방성과 깨어 있음으로 스승을 알아 볼 수 있을 거라는 자연스런 이치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류시화 시인이 인도를 십 년이 넘도록 안방 드나들 듯이 하며 수많은 스승을 만났고, 그 중에 대여섯분으로 추려서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누가 나의 스승입니까?'라고, 저와 같은 질문을 그도 궁금해 했던가 봅니다.


스승들의 한결같은 답변은, 진리를 사랑하고, 모든 생명에게 친절하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가 그대의 스승입니다. 마음의 평화는 모든 곳에서 등불이 됩니다. 사람을 만날에서도, 꿈을 선택할 때에도, 진리 안에 머무는 순간의 첫 느낌이 바로 마음의 평화와 자유인 것입니다. 태초의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운행하시던 모습도 저에겐 평화로운 풍경으로 다가옵니다. 책과 음악과 만나는 사람과 사소한 모든 것들을 선택할 때에도 자연과 진리와 마음의 편안함은 기준이 됩니다. 스승을 만나기 위해, 진리와 제 자신을 등불 삼아서 홀로 걸어온 길이,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매일 새로운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선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영적 스승은 늘 원합니다. 숨이 붙어 있는 동안 영적 순례의 여정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바로 제 자신인 것입니다. 거듭 얘기하는 것은,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 사실을 떠올릴 수록 밖으로 떠도는 여행보다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제자리에 머물러 홀로 고독과 침묵 속으로 깊어지는 길로 더 나아가게 됩니다. 


함석헌 선생의 말처럼 얼굴 하나를 만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온 것입니다. 그리고 재미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운문사에 방문한 신부님들이 운문사의 주지 스님에게 여쭈었다고 합니다. "스님은 깨달으셨습니까?", 스님으로선 난처한 질문이자 궁한 답변일 것 같습니다. 그러자 현명한 주지 스님의 답변은 "깨달은 사람은 깨달은 사람을 알아봅니다."


안목, 서로를 알아본다는 것은 기쁨입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나 또한 알아볼 수 있다는 사실은 기적입니다. 사람 뿐만이 아닙니다. 꽃과 나무와 물건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무소유의 존재 그 자체로도 충만할 수 있는 원리입니다.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소유에 끄달리지 않아도 되는 존재만으로 충만한 삶입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는 좋은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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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창법칙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7)


깨진 유리창법칙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깨진 유리창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으로,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범죄이론이다. 


깨진 유리창 법칙의 구체적인 예가 있다. 구석진 골목에 차량 두 대를 보닛을 열어둔 채 주차를 시켜둔다. 그 중 한 대는 앞 유리창이 깨진 차다. 그런 뒤 일주일을 지켜보면 결과가 다르다. 유리창이 온전한 차는 일주일 전과 동일한 모습이지만, 유리창이 깨져있는 차는 거의 폐차 직전으로 심하게 파손되고 훼손된다는 것이다. 


예배당 앞에 있는 공터를 다시 한 번 꽃밭으로 만들었다. 그동안 무관심한 것도 아니었지만 크게 관심을 갖는 것도 아니어서 덥수룩하게 자라 오른 풀과 꽃들이 방치되고 있었다. 어제는 교직원들과 시간을 내어 풀을 뽑고 삐쭉 무성하게 자란 코스모스와 해바라기를 솎아냈다. 코스모스 덤불 아래 숨어 있던 키 작은 꽃들도 캐내어 옮겨 심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싶어 화훼단지를 찾아 꽃을 사오기도 했다. 하나는 초승달 모양으로, 하나는 십자가로, 다른 하나는 하트 모양으로 꽃을 심었다. 가장자리에서 구경만 하지 말라는 뜻으로 한 가운데로는 길을 내었다. 



아직도 허술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작은 변화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지나가던 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어떤 이는 가운데 통로로 들어와 꽃들을 살핀다. 꽃 앞에 꽃 이름과 꽃말 등을 달아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변화 중 가장 놀랍게 여겨지는 것이 있었다.
 
공터 앞 도로에는 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겨우 두 대의 차가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도로에 차를 주차시켜 놓으면 지나가는 차나 사람이 위험하기 마련인데, 비어 있는 때가 드물었다. 늘 서 있는 차 중엔 지게차도 있었다. 바라볼 때마다 아쉬움이 컸다. 그것은 서로를 위한 배려의 부재로 다가왔다. ‘주차금지’ 판을 세워두어도 무용지물이었다. 오히려 ‘주차금지’ 입간판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이리저리 찌그러져 있다.


어젯밤 수요예배를 마치고 사택으로 돌아가며 일부러 확인해 보았더니 꽃밭 앞에 주차된 차가 보이질 않았다. 신기했다. 우연한 일일지도 모를 일, 오늘 새벽 기도회를 나가며 확인해 보았다. 역시 차가 없었다. 모처럼 꽃밭이 꽃밭다웠다. 뭔가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어쩌면 꽃밭 앞에 세우려 했던 작은 안내판을 세우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다. 안내판엔 이런 글을 적으려 했었다. “예쁜 꽃을 바라보면, 우리 마음도 예뻐지겠지요!” 그 말이 ‘주차금지’라는 말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면 싶었었다. 법칙 중에는 깨진 유리창 법칙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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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리감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6)


괴리감


전해진 것이 전부가 아니기를 바라지만, 얼마 전 뉴스에 언급된 교회가 있었다. 교회가 리더십 훈련을 한다며 대변 먹기, 음식물 쓰레기통 들어가기, 공동묘지에서 지내기 등을 강요했다는 내용이었다. 


교회와 관련한 뉴스 중에는 일반인들의 생각을 뛰어 넘는 기괴한 뉴스가 한둘이 아니어서 이력이 붙을 만도 했지만, 대변 이야기는 이력이 붙을 대로 붙은 이들에게도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일이었지 싶다. 혀를 차는 것을 넘어 경악을 하게 했다.


뉴스 중 관심이 갔던 것은 조금 다른 것에 있었다. 그 교회 교인이 2-3천 명 정도가 되는데, 대부분이 젊은 교인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성실하고 우직하게 목회의 길을 걸어가는 적지 않은 이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성품도 따뜻하고, 지극히 상식적이고, 역사의식도 뚜렷하고, 환경을 걱정하고, 교회와 교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기교와 술수를 버리고, 약자를 긍휼히 여기고, 헛된 욕심을 삼가고, 가난함으로 부르심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이 땅 구석구석 외진 곳에서 묵묵히 살아간다. 규모로 따진다면 주목을 받을 일과는 거리가 멀고,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면 실패 쪽에 훨씬 더 가깝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런 현실을 두고 느끼는 감정을 괴리감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괴리’(乖離)는 ‘어그러질 괴’(乖)와 ‘떼놓을 리’(離)가 합해진 말이다. 굳이 그리 어렵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지금 내가 느끼는 괴리감이란 훨씬 단순하다. ‘괴로운 거리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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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타 준 커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5)


로봇이 타 준 커피


심방 차 해남을 방문하는 일정을 1박2일로 정했다. 길이 멀어 하루에 다녀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싶었다. 마침 동행한 장로님이 회원권을 가지고 있는 숙소가 있어 그곳에 묵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어둘 녘에 도착한 숙소를 보고는 다들 깜짝 놀랐다. 진도라는 외진 곳에 그렇게 큰 숙박시설이 있는 것에 놀랐고, 그 큰 숙소가 꽉 찬 것에 더 놀랐다. 평일이었는데도 그랬으니 말이다. 


권사님이 권한 일출을 보기 위해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났다. 남해의 일출은 동해의 일출과는 사뭇 달랐다. 바다 위가 아니라 섬과 섬 사이에서 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해가 떠오르며 하늘과 바다를 물들였던 붉은 빛은 바라보는 마음까지 물들이기에 충분했다.


해돋이를 보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차 한 잔을 하기로 했다. 이른 시간이었기에 프런트에 들러 차 마실 수 있는 곳을 물었다. 일러주는 옆 건물로 갔더니 커피 향은 나는데도 차를 파는 곳은 보이질 않았다. 지하까지 내려가 물었지만 같은 대답이었다. 1층에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돌아와 둘러보았지만 1층 어디에도 찻집은 없었다.


이게 뭐지, 당황해하고 있을 때 우리 눈에 띈 것이 로봇이었다. 한쪽 구석에 로봇이 서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장식용으로 세워둔 것으로 알던 우리는 혹시나 싶어 로봇 앞으로 다가갔다. 아무래도 직원들이 말한 곳이 그곳이지 싶었다. 


처음 대하는 상황, 서로가 이런저런 상상력을 발휘하며 모니터를 두드렸다.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은 맞았다. 몇 가지를 택한 뒤 선택 자판을 누르니 드디어 로봇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능숙한 동작으로 커피와 음료를 뽑았다. 뽑은 음료를 쟁반 쪽으로 옮기는 동작까지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주문을 끝났지만 우리는 또 다른 문제를 만났다. 음료는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꺼낼 수 있는지가 막막했다. 로봇은 아크릴 투명 벽 안에 있었던 것이다. 다시 살펴보니 로봇 앞에 작은 스크린이 있었고, 거기에 번호를 입력하라는 문구가 있었다. 조금 전 차를 주문하며 받은 영수증에 번호가 찍혀 있는 것을 우리가 몰랐던 것이었다. 호주머니에 구겨 넣었던 영수증을 다시 꺼내 거기 찍힌 번호를 누르니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로봇, 마침내 우리는 원하는 음료를 받을 수가 있었다. 로봇에게 음료를 주문하는 일을 마침내 해내다니, 우리는 일종의 뿌듯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발코니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는 시간, 누군가의 말대로 마치 지중해 어디쯤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일상의 삶 속에서 멀리 떠나와 있다는 것, 드물게 아름다운 경치를 마주하고 있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런 마음을 거드는 것이 또 한 가지 있었다. 로봇에게 차를 주문해서 마시는 것이 마치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외국에 온 것처럼 느끼게 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건 상관없이 우리는 멋진 여행을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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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 있기 위하여 움직입니다

신동숙의 글밭(154)


앉아 있기 위하여 움직입니다


하루의 생활이 앉아 있기 위하여 움직입니다. 뻐꾸기 소리에 눈을 뜨는 아침에도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바로 움직이기보다는 이부자리에 그대로 앉습니다. 말로 드리는 기도보다는 침묵 속에 머무르는 고요한 시간입니다. 


고요한 아침을 그렇게 맞이하기로 하는 것입니다. 앉았는 자리가 먼 동이 트는 산안개가 고요한 어느 산기슭이면 보다 더 좋겠지만, 골방에서도 가슴엔 밝은 하늘이 펼쳐집니다. 밤새 어두웠을 가슴으로 숨을 불어 넣으며 더 내려놓으며 새날 새아침을 맞이합니다.



20년 전쯤에 요가를 배우며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12가지 기본 동작을 아사나라고 하는데, 요가 수행자들의 몸수행의 방편이었던 아사나는, 앉아 있기 위하여 움직이는 조화로운 몸동작인 것입니다. 보다 더 오래 앉아 있기 위하여 보다 더 깊은 수행으로 나아갑니다. 


몸을 앞으로 뒤로, 왼편으로 오른편으로, 앉았다 일어났다 업드리고 누웠다가, 때론 비틀기도 하면서 온몸의 근육을 다양하게 움직이는 이유는, 온몸 구석구석 빈틈 없이 숨을 불어넣기 위함입니다. 막힌 곳 없이 숨을 불어 넣으니 저절로 피 돌기가 잘 되는 것입니다. 건강은 저절로 따라오는 그림자처럼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런 몸으로 앉아 있는 것입니다. 더 오랜 동안 앉아 있기 위함입니다.


숲의 인디언들은 나무를 보며 서 있는 사람이라고 했고, 사람을 보며 걸어다니는 나무라고 하였습니다. 살아갈 수록 더욱 분명해지는 한 가지의 생각이 있습니다. 사람이 나무처럼 꽃처럼 제자리에 머무를 수 있다면, 일상을 살아가다가 틈틈이 머물러 앉아 있을 수 있다면, 지구별 이 땅에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결코 과장된 말도 허황된 말도 아닙니다.


한 가지의 예로 요가 동작 중 다들 힘겨워 하던 동작이 있습니다. 상체를 앞으로 구부려 손끝으로 발끝을 잡고, 상체와 하체를 반으로 접는 동작입니다. 예전에 쓰던 일명 폴더 폰이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 하다 보면 몸은 접히지 않고 등은 산처럼 솟아 오르고 저도 모르게 숨은 턱턱 걸리며 몸도 마음도 턱 걸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대로 멈춤 동작을 지속하는 일은 온몸에 진땀이 나는 일이 됩니다. 내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순간입니다. 이때에도 흐르는 물같은 비결이 하나 있습니다. 


먼저 들숨 날숨의 호흡이 거칠에 지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호흡의 평온함은 그대로 마음의 평온함으로 이어집니다. 모든 순간의 호흡을 편안하게 유지하는 일입니다. 호흡의 숨결은 그대로 몸의 근육결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몸이 더 나아가지 않을 때 숨을 들이 쉬고, 몸의 굳은 부분을 알아차리며, 숨을 내쉬면서 그 부분에 힘을 푸는 일입니다. 숨과 몸과 의식, 그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면서 지속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5분 이상 지속할 수 있다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내 몸이 폴더 폰이 되는.


그러기 위해선 내 몸을 바라보는 의식이 매 순간 깨어 있어야 합니다. 움직임의 삶에 익숙한 우리들에겐 한 순간 깨어 있지 못하고, 의식이 무의식이 되는 순간, 숨은 턱 막히려 하고, 마음 따로 몸 따로 낑낑거리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깨어서 숨을 편안하게 유지하며, 숨을 내쉴 때 조금씩 굳은 부분에 힘을 풀면서 한 동작을 지속하는 일. 몸이 멈추고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고요한 시간입니다. 깨어 있는 것은 바라보는 의식입니다.


이렇게 한 동작을 5분 이상 지속할 수 있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도 그랬고, 1분의 시간도 길게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요가를 예로 드는 이유는 머물러 앉아 있기 위함입니다. 예전에 제 자신이 요가를 배우며, 또 저보다 뒤에 배우려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면서, 지금껏 앉아 있는 일에 대한 생각을 더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일상을 살아가다가 깨어서 홀로 앉아 있을 수 있다면, 사람도 나무와 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내내 떠나지 않고 제 곁을 맴도는 생각입니다. 마치 사랑하는 이 주변을 바람처럼 서성이고 맴도는 마음의 부름 같습니다.



앉아 있는 일은 비로소 내면으로 들어가는 일, 스스로 깊어지는 일입니다. 내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산책길이 됩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과 마주하게 된다면, 그것은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겐 태초의 혼돈과 어둠처럼 다가왔습니다. 그 속에서 한 점 별빛을 많이도 더듬어 찾았습니다. 


지금도 늘 낮과 밤처럼, 도로 위에 터널처럼 지금도 아무렇지도 않게 어둠은 찾아오고 아침 해는 돌고 돌아서 찾아옵니다. 오르내림처럼 들나듦처럼 들숨 날숨처럼. 그렇게 제가 움직이는 것이겠지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한 순간도 잠자는 순간에도 쉼없이 움직이는 제 생각과 마음에 안식을 주기를 원합니다. 앉아 있음은 안식이 됩니다. 토머스 머튼의 말처럼 태초의 에덴 동산이 되고, 살아서 미리 체험하는 천국이 됩니다. 비로소 머물러 앉아 고요한 안식을 누리기를 원하며, 오늘 하루도 틈틈이 더 앉아 있기를 소망합니다.


어린 나무의 싹이 굵은 나무가 되고, 꽃씨가 꽃이 되는 그 보이지 않는 선명한 길이, 단지 제자리에 머물러 앉아 있기 때문은 아닌지 거꾸로 생각해봅니다. 사람이 푸른 나무가 되고, 아름다운 꽃이 되는 길을, 말없이 알려 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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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됫박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4)


 상처와 됫박


이따금씩 떠오르는 사람 중에 변관수 할아버지가 있다. 나이와 믿음 직업 등과 상관없이 얼마든지 정을 나눌 수 있는 분으로 남아 있다. 변관수 할아버지는 단강교회가 세워진 섬뜰마을에 살았는데, 허리가 ‘ㄱ’자로 꺾인 분이었다. 언젠가 할아버지는 논둑에서 당신 몸의 상처를 보여준 적이 있다. 6.25때 입었다는 허리의 상처가 결정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해마다 겨울이 다가오면 할아버지가 이번 겨울을 잘 나실까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 겨울잠에 들기라도 한 듯 바깥출입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겨울 지나 봄 돌아오면 제일 먼저 지게를 지고 나타나는 분이 변관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의 몸도 기역자, 그 위로 삐쭉 솟아오른 지게도 기역자, 지게를 진 할아버지의 모습은 묘한 형상을 만들어내곤 했다. 논둑 밭둑에서 달래를 캐는 날엔 꼭 사택에 들러 한 움큼 달래를 건네주던 정 많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 집에는 됫박이 하나 있었다. 할아버지 말로는 ‘부엉이가 방귀 뀐’ 소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소나무의 어떤 부분에 병균이 침투하면 그 부분이 크게 부어오르듯이 두툼하게 변한다. 일종의 상처일 터였다. 그 부분을 잘라내어 ‘부엉이 방귀 뀐’ 부분은 동그랗게 파내어 됫박으로 쓰고, 가지 부분은 됫박의 자루로 쓰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는 벌써 오래 전, 할아버지 집에 있던 검붉은 빛 선명한 부엉이 방귀 뀐 됫박은 어디에 남았을지 모르겠다. 따로 됫박을 쓸 일도 드문 세상, 어쩌면 할아버지와 함께 이 땅에서 사라진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문득 떠오른 ‘부엉이가 방귀 뀐’ 됫박은 묘한 의미로 다가온다. 어쩌면 상처가 됫박이 된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도, 다른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품의 크기나 깊이도, 어쩌면 그가 입은 상처 혹은 그가 이겨낸 상처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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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공포증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3)


고소공포증


새벽기도회 시간에 설교를 하는 수련목회자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군에서 제대를 하기 전까지 심한 고소공포증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높은데 올라가면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고 식은땀이 나며 큰 두려움을 느꼈는데, 심지어는 텔레비전에서 누가 높은데 오르는 것을 보기만 해도 손에 땀이 날 정도였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마침내 기억해낸 어릴 적 기억이 있단다. 삼촌들이 모여 서서 어린 자신을 손에서 손으로 공을 던지듯 던지며 놀았다는 것이다. 어린 조카가 너무나 귀여워서 한 일이었겠지만, 자신이 생각할 때는 아무래도 그 일 때문에 고소공포증이 생긴 것 같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 순간에 하늘을 나는 무서움을 큰 울음으로 표현했다면 당연히 놀이는 멈췄을 터, 하지만 자신은 몸을 공처럼 둥글게 말고는 아무런 표시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니 삼촌들은 조카도 재미있어 한다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던지기를 했던 것 같다는 것이었다.

어디 그것이 전도사뿐일까. 누군가에게는 두고두고 트라우마로 남을 일을 누군가는 장난삼아 하는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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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에서 피운 꽃

신동숙의 글밭(153)


제자리에서 피운 꽃





작약, 수레국화, 양귀비, 민들레, 금계국, 개망초, 철쭉, 소나무꽃, 초록 잎사귀, 둘레에는 언제나 넉넉한 하늘


초여름 강변에 피운 꽃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합니다.

쉼 없이 떠돌아 다니는 생각은 바람이 되고
집 없이 자꾸만 흐르는 마음은 강물이 되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을 저절로 알 때
제자리에서 피운 꽃들에게서 배웁니다.


바람이 꽃이 되고
물이 꽃이 되는 길을


제자리에 머물러
머리 위에 하늘을 이고
진리의 땅에 사색의 뿌리를 내리는


들숨 날숨에 기대어 마음을 내려놓으며
명상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일상 속에 그려봅니다


상관없는 모든 아픔에까지 빗물 같은 눈물을 흘리다가
햇살 같은 웃음을 욕심 없이 짓다 보면

씨앗처럼 작고 단단한 가슴이 열리어


제가 앉은 자리에서도
제 안에 아무 것도 없던 땅에서도


진실의 꽃 한 송이
저절로 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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