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덕에 사랑은 더욱 따뜻합니다

신동숙의 글밭(88)

 

코로나 덕에 사랑은 더욱 따뜻합니다

 

어제는 나라 전체가 코로나와 신천지 얘기였습니다. 대구 지역에서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후 병원에서 도망쳐 나오려던 한 명의 신천지 신도와 이를 막아서려던 의료진들 사이에 몸싸움까지 일어난 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코로나보다 더 답답하고 황당했던 것은 신천지 주도층의 위기 상황 대응 능력이었습니다.

 

전교인에게 내린 지령이 처음부터 근본적으로 잘못된 경우를 벗어난 경우입니다. 신천지측은 확진자가 예배에 참석치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도록 지시하고, 전교인들의 입을 봉쇄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작전은 역학 조사와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서 하루도 못가서 전국민에게 들통이 나게 되었습니다. 청도의 이만희 교주 친형의 장례식 참석부터 하나 둘 구멍이 뚫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급기야 바로 다음날 2월 21일자로 서울시에서는 신천지 예배당 폐쇄와 집회, 봉사활동 구역 등을 즉시 신고해 달라는 요구와 함께 신천지 관련 구역에 대한 방역 조치와 활동 중단 여부를 밀착 감시할 방침이라고 국가적 선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곧바로 경남 지역과 전국으로까지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 반대 급부로 자기들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된 신천지 교인들이 근처의 다른 일반 교회로 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입니다. 혹시나 모를 낯선 방문객들에 대한 경계를 당부하는 문자를 교회 측에서 각 성도들에게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육체를 오염 시키는 코로나보다 더 나쁜 해악은 의식을 오염 시키는 그릇된 종교와 믿음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신천지를 두고서 입을 모아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를 통해서 신천지가 보인 무지몽매함과 폐쇄성과 이기심입니다. 깨어 있음과 개방성과 이타심을 지향하는 종교와 신앙인의 참모습에서 역행하고 있는 신천지의 모습에서는, 타인과 생명에 대한 사랑과 이해와 인권 존중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신천지는 나쁘지만, 그 안에 있는 개개인의 사람들은 선한 사람들입니다. 단지 개인이 대중에게 기대고, 믿음이 무지몽매함에 기대고, 개인의 양심이 조직의 권력에 기댈 때, 종교는 진리에서 멀어집니다. 그 비슷한 모습을 한기총의 회장인 전광훈 목사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진리와 자기 자신의 양심을 등불 삼고, 지성과 영성이 깨어서 한 걸음씩 걸어가는 순례길. 그 길에 함께 걷는 동행자가 있다면 더 행복한 순례길이 될 테고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코로나 관련 소식들을 저 역시 실시간으로 확인을 하며 마음과 몸 움직임을 두고 평정과 중심을 매 순간 잡아가는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현재로선 외출을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어쩔 수 없이 사회 활동을 해야하는 상황에서는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와 26˚c 이상의 온수 섭취(코로나는 열에 약하다고 합니다.) 등 코로나 관련 안전 수칙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관련 증상 발병시 병원을 찾지 말고 자진 신고를 한 후 적절한 도움을 받는 일입니다.

 

마른 기침, 인후통, 발열, 근육통, 호흡곤란 등의 코로나 주요 발병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기까지 숨은 잠복기간이 일주일 전후로 긴 편입니다. 접촉과 발병의 간극이 길다는 것이 우리의 예측을 넘어서는 지점이 됩니다. 한 명이 열 명이 될지 그보다 더 많이 얼마가 될지의 문제입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경우의 수를 막기 위한 조치 중 하나로 21일자 아침에 받은 문자 메시지입니다. 코로나 관련 증상 발병시 병원을 방문하지 말고, 곧바로 해당 보건 기관에 자진 신고를 해달라는 조치입니다.

 

기하급수적으로 퍼지는 일을 막기 위해선 온 국민이 함께 합심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함께 이 위기를 무사히 지나가기를 모두가 바라는 것이다. 거기서 신천지 집단은 홀로 역주행을 한 것입니다. 오히려 코로나를 통해서 수면 위로 드러난 신천지의 실체를 온 국민이 확인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릇된 믿음의 길을 맹목적으로 따르던 신천지 신도들의 많은 수가 발걸음을 멈추고, 진리의 길로 돌이키기를 바라는 입장입니다. 진리는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을 돌아보며 서로 사랑하게 합니다. 진리는 타인과 세상을  향해 개방성을 보입니다. 진리는 깨어 있음으로 마음에 홀가분한 자유함을 줍니다.

 

제가 보고 있는 것은 사회적 현상 속에 깃든 개개인의 마음입니다. 마음의 온기입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소식과 관련 정보 속에서 나와 너와 우리를 생각하는 이타심은 따뜻합니다.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곧 햇살과 같은 사랑이 됩니다. 그냥 미지근한 사랑이 아니라 따뜻한 사랑입니다. 가령 어느 작가는 만나게 되는 지인들마다 손에 한 방울의 손소독제를 떨어뜨려 드리고 싶다는 얘기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여기 저기서 올라오는 코로나 예방과 안전 수칙을 실시간마다 올려서 서로가 공유하려는 마음에서 따뜻한 연대심을 봅니다.

 

어느 페친 분은 웃음을 주기도 합니다. '마스크를 턱 밑에 걸치고 다니시는 분, 코로나는 코로나오기 때문에 마스크를 꼭 바로 씁시다.' 웃음 바이러스와 행복 바이러스와 햇살 바이러스 앞에 코로나가 맥을 못 출 것 같습니다. 실제로 입었던 옷을 햇살에 널어두거나 실내에서도 햇살을 자주 쬐어 주는 것이 바이러스 퇴치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26˚c 이상의 따뜻한 물이나 차를 마시며 햇살을 쬐는 것은 열에 약한 코로나를 예방하고 다스리는 공식 안전 수칙들입니다. 만일의 경우 감염이 되더라도 우리 몸은 따뜻한 물과 비타민과 햇살을 끊임없이 원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요. 비타민은 면역력을 담당하는 백혈구의 먹이가 되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의 온기와 평정이 중요하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마음에 두려움과 염려가 그림자처럼 따르더라도 깨어서 지켜보는 마음의 시선은 햇살과 같습니다. 두려움과 염려 속에 갇혀 어둠과 혼돈 속에 머무는 것은 마음과 몸의 체온을 떨어뜨리는 일이 됩니다. 그것은 바이러스가 좋아하는 환경이 되고요. 하지만 나와 너와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을 따뜻함으로 바라보려는 시선은 따뜻한 햇살을 쬐는 일과 같습니다. 몸과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줄 것입니다. 무작정 두려움과 염려를 퇴치하려는 것은 억지스러움입니다. 단지 깨어서 바라보십시오. 모든 것을 모두를 햇살처럼요.

 

호흡의 결이 거칠어지지 않게 꾸준히 유지하는 일은 곧 마음의 결을 유지하는 평정으로 이어집니다.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닙니다. 몸과 마음은 하나입니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 강아지, 강아지풀, 길에 뒹구는 돌멩이까지 모두는 어떠한 경우에도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자체로 함께 살아가는 고맙고 존엄한 생명입니다. 그것이 지금껏 지구를 바라보는 햇살의 시선일 테고요.

 

코로나 예방 수칙과 안전 수칙이 더욱 보완이 되어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들려오는 소식에 귀를 열어 놓으시되, 그릇된 정보는 걸러내시기를 바랍니다. 두려움과 염려를 지우려 하면 더욱 달라붙는 것이 마음의 습성입니다. 가만히 햇살처럼 모든 것을 바라보는 일. 그리고 흔들리는 중에도 호흡을 고르어 마음의 평정을 매 순간 유지려는 일은 우리 몸의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로 이어집니다. 면역력은 몸의 균형과 질서와 조화로움을 유지하는데서 힘과 탄력을 받으니까요.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정보와 바이러스도 나로부터 시작입니다. 내 몸 속의 의사 선생님인 백혈구가 건강해야 할 테고요. 26˚c이상의 따뜻한 온수와 비타민과 마늘과 건강한 음식들 일일히 나열하지 않아도 다들 아시니까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호흡과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일입니다. 이는 곧 우리 몸의 면역력과 신진대사 기능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방법이 되니까요. 그리고 나와 너와 우리를 따뜻한 마음과 시선으로 햇살처럼 바라보는 일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온기와 햇살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봄부터 초여름까지 무사히 견디며 지나갈 수 있기를 빕니다.

 

 

 

주변에서는 매화꽃과 산수유가 피어나고 있는 봄입니다. 이 봄날에 코로나 덕에 지금 제가 느끼는 사랑은 따뜻한 사랑입니다. 많은 분들로부터 따뜻한 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따뜻함은 바이러스가 맥을 못 추게 하듯이, 바이러스는 퇴치의 대상이기보다는 내 몸과 마음의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함으로 슬슬 몰아내면서 맥을 못 추게 해야할 단지 지나가는 대상일 뿐입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 중에 네 마음을 지키라 모든 생명이 이에서 남이니.' 봄날의 따뜻한 햇살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를요. 그리고 웃음 바이러스는 언제나 가장 힘이 쎕니다.

 

posted by

왜 빈자리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06)

 

왜 빈자리를 
 

“우리는 작은 교회인데 목사님께 말씀을 청해도 될까요?”


한 목사님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고는 무조건 가겠다고 했고, 그래서 날짜를 정해 말씀을 나누러 영월을 다녀왔다. 예배당이 인상적일 만큼 예뻤다. 외진 시골마을에 아름답게 자리 잡은 예배당은 왠지 모를 위로로 다가왔다.

 

 

 

예배를 드리는 첫 시간, 목사님이 염려한 대로 모인 인원은 적었다. 그 점이 자꾸 마음에 걸렸는지, 찬양을 인도하면서도 강사를 소개하면서도 목사님은 아쉬움과 송구함을 거듭 표했다. 말씀을 나누는 시간, 이제 더 이상 그런 이야기는 하지도 말고, 생각도 하지 말자며 오래 된 경험 하나를 이야기했다.

 

단강에서 목회를 할 때였다. 긴 가뭄 끝에 비가 왔다. 하필 비가 온 때가 주일 새벽이었다. 가뭄 끝에 오는 비는 ‘단비’가 아니라 ‘약비’다. 그럴 때 오는 비는 ‘오는’ 것이 아니라 ‘오시는’ 것이다. 품앗이로 일을 하던 시절이었으니 주일 예배에 자리가 텅 빈 것은 피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의 교우들이 모여 예배를 드릴 때 마음이 허전해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때 허전한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찾아들었다.


‘너는 왜 빈자리를 바라보며 허전해 하니? 나는 예배하러 나온 내 백성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데.’


그 때 그 생각이 나는 주님의 음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부터는 어떤 모임에 몇 명이 모였든 빈자리보다는 모인 이들을 바라보려고 마음을 모은다.

 

오래 전 이야기를 전하며 우리도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예배하자고, 미안해하는 목사님과 교우들을 위로하며 말씀을 나누기 시작했다. 물론 나 자신에게 이르는 말이기도 했다. 문득 마음이 가난해지며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호함과 너그러움  (1) 2020.02.26
잃어버린 마음  (1) 2020.02.23
왜 빈자리를  (1) 2020.02.22
남은 자의 몫  (1) 2020.02.21
학예회  (1) 2020.02.19
순종, 순명  (1) 2020.02.18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