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가까이, 마음에 가까이'

신동숙의 글밭(22)/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자연에 가까이, 마음에 가까이

 

하루를 보낸 후 내 방으로 들어옵니다. 가만히 돌아보고 둘러보는 시간. 정리되지 않은 일들, 사람과의 관계들이 때론 무심한 들풀처럼 그려집니다. 참지 못한 순간, 넉넉치 못한 마음, 후회스러운 마음은 하루의 그림자입니다.

 

무심한 들풀 사이에도 소소한 즐거움이 들꽃처럼 환하게 미소를 띄기도 하고요. 이런 저런 순간들이 모여 색색깔 조각보의 모자이크처럼 하루를 채우고 있답니다. 낮 동안에도 잠시 잠깐 틈나는 대로 차 안이나 어디서든 홀로 적적한 시간을 갖지만, 밤이 드리우는 고요함에 비할 수는 없답니다.

 

우선 천장의 조명을 끕니다. 그래도 간간히 책을 읽고, 글도 쓰려면 책상 위 작은 스텐드 조명은 켜둡니다. 종지만한 유리 찻잔 안에 티라이트 양초를 넣고 심지에 불을 붙입니다. 쑥병차 한 개를 찻잔에 넣고서 쪼로록 뜨거운 물을 가득 부우면 찻잎이 빙그르르 춤을 춥니다.

 

그윽한 쑥향이 피어오르면 어수선하던 가슴에 한줄기 아득한 그리움이 흘러 물길을 냅니다. 따뜻한 차를 한 모금씩 마시다 보면 거칠던 숨결이 가지런해지고요. 또다시 마음이 순간 어수선해지려 들면 작은 촛불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그렇게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비좁던 가슴 한 켠이 조금씩 여백으로 차오르는 것입니다.

 

어둔 방, 촛불 하나와 쑥차 한 잔으로 따뜻하고 고요한 시간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내 곁에는 마음에 맞는 좋은 책이 있답니다. 제게 좋은 책이란 고독과 묵상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익어간 마음과 삶이 담긴 책입니다.

 

다양한 음악을 좋아하지만, 차 안이나 혼자 있을 땐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듣는 이유도 다르지 않습니다. 음악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바람과 숲과 별의 소리로 들려오는 것입니다. 작곡가와 연주자의 내면에서 무르익은 자연의 소리. 클래식 음악과 고전 속에는 언제나 자연과 마음이 담겨 유유히 흐르고 있기에 제 마음도 따라서 깊이 흐르곤 한답니다.

 

 

 

한밤 중 홀로 이렇게 적적하게나마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행복한 마음이 차오릅니다. 자동차와 불야성의 소음들로부터 외떨어진 덕분에 제가 사는 작은 마을엔 그러한 소음이 없는 것에도 감사하고요. 도심에서 한발짝 물러난 작은 마을이 때론 섬처럼 고립된 쓸쓸함으로 다가올 때도 있지만, 제 내면에 흐르는 여린 소리는 자연에 가까이, 마음에 가까이입니다.

 

어느 처사님이 법정 스님에게 여쭈었다고 합니다. 세상엔 넘쳐 나는 정보와 지혜로운 길도 많은데, 그 속에서 잘 살아가려면, 사람이 나이가 들어 후회를 적게 하려면 어떻게 살면 되나요?

 

섣불리 씨앗을 뿌린 젊은 날의 기도와 꿈이 나중에 때가 되어 이루어졌을 때, 조화로운 삶 속에서 그 이루어진 꿈을 관망했을 때, 만족스러울 수 있다면 정말로 다행이지만, 이게 아닌데! 라는 후회가 밀려든다면 그만큼 안타까운 경우도 없을 테니까요.

 

그에 대한 법정스님의 답변은 '자연에 가까이, 마음에 가까이'. 저 역시 하루에도 수차례 마음이 흔들리고 넘어지고 무너지는, 아차! 싶은 순간들을 맞이하면서도 촛불의 심지처럼 간직하고 있는 말씀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말입니다. '자연에 가까이, 마음에 가까이'. 저는 법정스님의 마음에서 예수의 마음을 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 옛날 눈에 보이는 현상이 전부인 줄만 알았던 구약 시대의 그들에게 예수는 끊임없이 얘기합니다. 마음으로 범하면 범하는 것이라며, 예수의 손끝이 끊임없이 가리키는 곳은 마음이었기에. 자연과 진리의 말씀은 그 마음, 본향으로 잘 찾아오너라고 주신 마음의 지도가 될 테지요.

 

오늘도 촛불 하나, 차 한 잔, 좋은 책 한 권이 주는 변함없는 선물은 마음에 평온과 감사와 행복입니다.

posted by

어리석은 생각

  •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값비싼 향유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보통 먹을 것이나 다른 것을 쟁여 놓지 않나요? 가난한 이들에게서도 그때는 향유가 필요했었나요?

    이진구 2019.12.04 09:52
  • 어머니께 받은 것이라면,
    어머니는 또 당신의 어머니께 받은 것이라면,
    더없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한희철 2019.12.05 06:33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31)

 

어리석은 생각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일을 두고 예수님은 ‘좋은 일’이라고 한다. 노동자 1년 치 품삯에 해당할 만큼 값비싼 향유, 제자들의 불만처럼 그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가난한 자들을 지극한 사랑으로 품었던 예수님의 삶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여인을 책망하는 제자들의 입장에 동조를 하실 것 같은데, 그 일을 ‘좋은 일’이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은 뜻밖이다. 주님의 말씀은 이어진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주님은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과 아무 때나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신다.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은 어느 때나 마음을 먹으면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한 일은 아무 때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주어진 때가 있어, 그 때를 놓치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제든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지금의 시간을 뒤로 미루는 것은, 그런 점에서 어리석은 생각이다.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는 아니겠지요?  (2) 2019.12.06
신 벗어들고 새 날 듯이  (4) 2019.12.05
어리석은 생각  (2) 2019.12.04
달라진 것이 없다면  (4) 2019.12.02
사나운 짐승이 사는 곳  (4) 2019.12.02
낫게와 낮게  (4) 2019.12.01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