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세상

  • 개나 사람이나 똑같네요..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1.19 11:10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6)

 

 개 같은 세상

 

심방 중에 들은 이야기이다.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반려동물 이야기가 나왔다.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어느 샌지 지나칠 정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뤘다. 압권은 직장 상사를 성토하는 이야기였다. 직장 상사를 성토하는 자리에서 단연 1등을 한 내용이 있단다. 그것도 반려동물과 관련이 있었다. “직장 상사 애완견 장례식장에 다녀온 적 있어? 가보니까 영정 사진에 강아지 사진이 떡하니 올라가 있는데,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어 난감하더라.” 그렇게 시작하는 내용이었다는데, 그 말 앞에 어느 누구도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동석한 교우 중에는 공무원인 교우가 있었다. 그가 뜻밖의 규정을 들려주었다. 애완동물이 죽으면 처리하는 규정이 있다는 것이었다. 동물이 죽었으니 죽은 동물을 처리하는 규정이 있어야겠지, 마음으로는 동의를 했지만 그런 규정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낯설게 들렸다.


반려동물 화장장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그 방식이 유일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화장과 함께 두 가지가 모두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화장 외의 또 한 가지 방법은 전혀 뜻밖이었다.


“종량제 봉투에 담아서 버리는 거예요.”

 

반려동물이 죽으면 사체를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면 된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렇게 하는 것이 규정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다른 쓰레기와 함께 소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반려동물의 사체 처리 방식에 대해서는 관심도 아는 것도 없었지만,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는 것이 규정을 지키는 것이라는 이야기는 황당하게 들렸다.

 

교우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씁쓸하기도 했던 것은 개들마저도 삶과 죽음이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개는 사람 이상의 호사를 누리며 살다가 죽으면 호화 장례를 치르는가 하면, 어떤 개는 그야말로 개처럼 살다가 개처럼 죽어 쓰레기  봉투에 담겨 버려지니 말이다. 종량제 봉투에 담기는 개가 그러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개 같은 세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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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묵상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4)

 

이슬 묵상

 

가을로 접어들며 하루 한 꼭지씩 이어오고 있는 글이 있다. 이슬에 관한 글이다. 밤새 기온이 내려가면 공기 중에 있던 수증기가 물방울로 맺힌다. 애써 골라 자리를 찾은 것인지 하필이면 풀잎이나 꽃잎 끝에 아슬아슬하게 맺혀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아찔하게 한다. 게다가 수명도 짧다. 아침 해가 뜨면 어느 샌지 사라진다. 이슬이 어느 순간 생겼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는 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이가 세상에 누가 있을까. 언제 왔다가 언제 가는지를 모르는 신비한 걸음, 이슬은 그런 존재지 싶다.

 

될 수 있으면 가장 짤막하게 쓰려 하는 것은, 그것이 이슬과 어울린다 싶기 때문이다. 어찌 이슬에 군더더기가 있겠는가. 맺히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눈물겨울 만큼 짧은 순간이다.

 

 

 

 

                                         사진/김승범


하루하루 이슬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나직하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다. 하도 나직하여 한참을 귀 기울여야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럴까, 이슬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은 마음 위로 이슬방울 하나 슬쩍 맺히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동안 들었던 말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나도 미끄럼을 타고 싶지만, 그러면 꿈이 깰까 봐.
-큰 소리에 익숙하다면, 당신은 저를 모르실 거예요.
-잠깐 제 안에 머물렀을 뿐, 빛은 제 것이 아닙니다.
-반짝이는 모든 것이 보물이 아닙니다. 저를 보세요.
-늘 드리는 기도 하나, 나를 지나간 빛이 더렵혀지지 않기를.
-저를 잊으세요, 그것이 저를 고맙게 기억하는 것입니다.
-제 귀에 또렷했던 것은, 오히려 낮은 목소리였습니다.
-때가 되면 모두가 사라집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바닥까지 마음이 가라앉는 날엔, 가장 깊은 기도를 바칩니다.

오늘 아침에는 이렇게 썼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습니다. 깨어지는 순간도요.


내일은 무엇을 써야 할지, 굳이 고민을 하지 않는다. 편하게 잠에 들며 들려줄 말을 기대한다. 이슬 맺히듯 들려주는 말이 있다면 옮겨 적으면 된다. 곧 다가올 추위, 이슬도 자신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예감하고 있을 것이다.

 

 

                                            

                                          사진/김승범

 

 

귀와 눈이 밝질 못한데도 이슬 묵상을 이어온 것처럼, 누군가 짤막한 묵상을 이어가면 어떨까 싶다. 곧 내릴 눈에 대해서도 좋겠고, 겨울나무에 대해서도 좋겠고, 어느 때보다도 단단하게 빛날 겨울밤 푸른 별도 좋겠고, 어둠은 물론 눅눅함까지를 지우는 촛불도 좋겠고, 사랑에 대해서도 좋겠고, 얼마든지 눈여겨 바라보고 귀 기울일 것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덩달아 사물과 자연에 눈을 뜨도록, 같은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누군가가 들려주는 나직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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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방 한 칸

  • '정리'?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잘 정리해야 하는데...
    생각의 정리!
    사막에 있다면 물이 더 중요하고...
    병원에 있다면 빨리 낫는게 더 중요한데...

    애써~ 사막과 병원으로 가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1.18 12:45
  • 목사님 저번 글에 꽃 정보가 여기에
    https://images.app.goo.gl/pnNAvwR5zhfrCkmS7

    이진구 2019.11.18 13:10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5)

 

그래야 방 한 칸

 

모처럼 다른 일정이 없는 월요일, 목양실로 나왔다. 평소에도 조용한 예배당이 월요일이라 그런지 더욱 조용했다. 책상 옆 한쪽 구석에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이 있다. 공문과 신문과 잡지, 이런저런 자료와 보고서도 있다. 하루에도 여러 편 우편물이 전해지고, 교회 일과 관련한 자료와 보고서 등도 전해진다. 때마다 중요한 것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덜 중요하다 싶은 것들을 쌓아두기 시작했는데, 그 높이가 어느새 제법이었다. 그때그때 분류를 하여 정리를 해두면 편할 것을 그렇지 못했다. 정리를 잘 못하는 성격도 컸거니와, 연일 이어지는 심방 등 바쁜 일정을 핑계로 쌓아 두기만 했었다.

 

 

 

그냥 일을 하는 것이 단조롭다 싶어 음악을 틀었다. 주로 클래식을 선물처럼 듣는다. 한가한 마음으로 음악을 듣는 일도 오랜만이지 싶다. 한 움큼씩 자료를 들고 와서 분류를 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남길 것과 버릴 것을 정했다. 자료를 살핀 뒤 남길 것과 버릴 것을 구분했다. 버릴 것은 왼쪽에 남길 것은 오른쪽에 쌓아두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보니 버릴 것이 더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 버릴 것을 챙겨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일을 마치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일을 모두 마치고 차 한 잔을 마시는 시간,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러고 보면 쌓아두고 있었던 것은 자료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뭔가를 처리하지 못한 미진한 마음들이 쌓여 있었던 것이었다. 한꺼번에 정리를 해보니 내게 부여된 일과 감당해야 할 의무가 적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교회 안에서건 교회 밖에서건 주어진 일들이 적지 않다. 크고 작은 다양한 요구들이 있다. 어떤 것은 받아들여야 하고, 어떤 것은 조정해야 하고, 어떤 것은 거절해야 한다. 어떤 일은 맡겨야 하고, 어떤 일은 챙겨야 한다. 그 경계가 불분명할 때도 있다. 하루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그런 일들 속에서 지나간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아무리 많은 일들이 복잡하게 엉겨 마음이 어수선하다 해도 결국 그 모든 것들은 내 방 한 칸을 채우는 것들이었다.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기도 하고, 벅차게 여겨지기도 하고, 일 속에 파묻혀 있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지만 아니었던 것이다. 겨우 방 한 칸에서 일어나는 작고 미미한 일들이었다. 반나절 정도 집중하면 대충 정리가 되는 것들이었다. 그것이 어떤 일이든 내게 주어진 일이 세상의 전부라도 되는 양 부풀리거나 수선을 피울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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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질문들

  • 아무래도...
    경각심에...
    즉각반응...
    하지못함...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1.16 19:06
  •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한희철 2019.11.18 09:59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3)

 

몇 가지 질문들

 

목회 계획 세미나 시간을 가졌다. 정릉교회 시무장로님들과 1박2일 내년도 목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일 오후에 출발하여 가던 길에 저녁을 먹고 나자 이내 날이 캄캄했다. 하루 머물기로 한 <한마음청소년수련원>이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은 데다가 초행길에 비까지 제법 내려 숙소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세미나는 몇 가지 질문으로 시작했다.

 

“오늘 한국교회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줄 수 있을까요?” “정릉교회에 점수를 준다면요?”


더 묻고 싶은 질문들도 있었다.

 

“정릉교회 밖에 있는 다른 이들은 정릉교회에 몇 점을 줄까요?”

“주님이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이나 주실까요?” 

 

장로님들의 대답이 궁금했다. 먼저 한국교회의 점수는 낙제점이었다. 평균이 얼추 40점쯤이 되었다. 정릉교회에 대한 점수는 조금 후했다. 평균 65점쯤이 되었다.

 

점수를 확인한 뒤 정말로 확인하고 싶은 것을 물었다.

 

“한국교회나 정릉교회나 모두가 만족할 만한 점수가 아닌데, 왜 우린 달라지려고 하지 않을까요?”


달라지지 않으면 편안한 몰락밖에 없는 것 아니겠냐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변화를 위해 몸부림을 쳐야 교회가 살아나지 않겠느냐고, 2020년을 앞둔 정릉교회 목회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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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과 같은 하나님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2)

 

숨과 같은 하나님

 

이름은 기호나 문자나 소리가 아니다.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한 장치나 도구도 아니다. 이름은 존재다. 이름에는 그의 존재가 오롯이 담겨 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고 있는 백성에게 보내실 때, 모세는 하나님께 질문을 한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합니까?”(출애굽기 3:13)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데, 하나의 명사가 아니라 하나의 문장으로 대답하신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이는 몇 가지 서로 다른 의미로 번역이 된다. “나는 곧 나다”로 번역되기도 하고, “나는 있게 될 자로 있게 될 것이다”(I will be Who I will be)로 번역되기도 하고,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존재케 한다”로 번역되기도 했다.

 

모세에게 알린 이름은 ‘거룩한 네 글자’(Tetra grammaton) 4개의 히브리어 자음 ‘YHWH’로 남았다. 그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빌론 포로기가 끝난 뒤 유대인은 그 이름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너무나 거룩한 이름이어서 인간이 발설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대신 회당 예배에서는 ‘아도나이’(나의 주)로 발음했는데, 구약성서 그리스어 번역본인 70인역은 이 단어를 '키리오스'(주)로 번역했다.

 

 

 

6~10세기경 히브리어 성서 원본의 재간행 작업을 벌인 마소라 학자들은 'YHWH'라는 이름을 구성하는 모음들을 히브리어 '아도나이' 또는 '엘로힘'의 모음 부호들로 대치했다. 그 결과 '여호와'(Jehovah, YeHoWaH)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19~20세기 성서학자들은 ‘여호와’라는 이름 대신 ‘야훼’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우리말 성경도 서로 다른 이름을 사용한다. <개역개정판> 성경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새번역> 성경은 ‘주님’이라는 이름을, <공동번역> 성경은 ‘야훼’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짤막한 신학 지식과 몇 몇 자료들의 도움을 받아 이해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이번 말씀축제 강사로 온 송대선 목사가 이 대목을 언급하며 소개한 내용이 있다. 자신의 의견이 아니라 어떤 성서학자(들)의 견해라는 점을 먼저 밝혔다.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는데, ‘YHWH’가 아기가 내는 원초적인 숨소리라는 것이었다. 어린 아기가 숨을 쉴 때 내는 가장 자연스러운 숨소리라는 것이었다.

 

그 말은 새로웠고 마음에 와 닿았다. 어린 아기에게는 아직 습득한 언어가 없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기는 한글로 숨을 쉬고, 미국 아기는 영어로 숨을 쉬고, 독일 아기는 독일어로 숨을 쉬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아기들에게는 언어 이전의 원초적인 숨소리가 있다. 만약 ‘YHWH’를 인간이 내는 가장 원초적인 숨소리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면, 하나님은 우리의 숨 속에도 함께 하시는 분이 된다.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가 없는, 나보다 나에게 더 가까운 분이 된다.

 

그럴 수 있기를, 그런 사유가 가능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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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강

  • 말탄 모습도 참 멋지시네요.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1.16 18:45
  • 병철 씨가 멋진 사람이어서요.

    한희철 2019.11.18 09:57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2)


두 개의 강 


이른 아침 약속 장소로 가다보니 새벽안개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마치 지상의 세계와 천상의 세계를 구분 짓기라도 하려는 것 같다. 안개 위는 천상의 세계이고 안개 아래는 지상의 세계인 듯싶다.

 

일교차가 심한 이때가 되면 물안개가 피어오른다는 것을 단강에 살며 경험을 했다. 아침 강가에 나가면 물안개가 피어올라 강을 따라 흐르고는 했다. 내게는 그 모습이 두 개의 강처럼 보였다. ‘두 개의 강’은 그런 모습을 그냥 옮겨 적은 것에 불과하다.


바다까지 가는 먼 길

외로울까봐

흐르는 강물 따라

피어난 물안개

또 하나의 강이 되어

나란히 흐릅니다. 

나란히 가는

두 개의 강 

벌써

바다입니다. 



생각해보니 강을 따라 물안개가 피어오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둔 것이 없었다. 단강에 사는 이병철 씨와 통화를 할 일이 있어 물안개 이야기를 했다. 언제고 물안개가 피어오를 때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며칠 뒤 사진이 왔다. 보니 병철 씨가 말을 타고 찍은 사진이었다. 병철 씨는 시간이 되면 말을 타고 다닌다. 말을 타고 강가로 나와 그 높이에서 단강을 보면 단강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단강이 그토록 아름다운 동네인 줄은 예전에는 몰랐다며 감탄을 하곤 한다. 




사진을 보니 말을 탄 병철 씨 저 뒤로 물안개가 피어올라 있다. 내가 간직하고 싶은 것은 나란히 가는 두 개의 강, 다시 한 번 부탁을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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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 옷 입히기

  • "특별한 일과 당연한 일"
    사색하게 만드는 단어이네요.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1.16 18:43
  • 특별한 일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 삶을 사랑하는 길이지 싶답니다.

    한희철 2019.11.18 09:56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1)


나무들 옷 입히기


갈수록 해가 짧아진다. 오후가 시작되어 잠깐 시간이 지난다 싶으면 어느새 땅거미가 깔리고는 한다. 문득 인생의 계절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인생의 해가 지는 시간도 그렇게 찾아올 것이었다.


새벽예배 준비와 심방 준비를 마쳤을 때는 이미 어둠이 다 내린 시간이었다. 막 자리에서 일어나며 보니 누군가 예배당 마당에서 일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가로등 불빛을 의지해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멀리서도 대뜸 누구인지를 알 것 같았다. 옆에 서 있는 트럭, 조경 일을 하며 정릉교회 조경위원회를 맡고 있는 권사님이었다. 하루의 일을 마치면 곧장 집으로 가는 대신 예배당에 들러 예배당 주변을 돌보는 일을 하신다. 피곤한 중에도 맡겨진 일을 지극한 정성으로 감당하는 권사님을 보면 늘 고마움이 앞선다.

 

 

 


물 한 병을 들고 다가가니 권사님이 맞았다. 일을 하느라 권사님은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보니 트럭에 실린 볏짚을 연신 손으로 훑어내며 추리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세요?”  

 

인사를 나누고 무슨 일을 하는지를 여쭸더니 권사님이 대답을 한다.

 

“내일이 ‘입동’이잖아요. 나무들 옷을 입히려고요.”


권사님의 대답이 하도 자연스러워서 나는 놀랐다. 권사님은 지금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었다. 겨울의 문턱에 접어들었으니 여린 나무들 겨우내 얼어 죽지 말라고 옷을 입혀주는 것은 권사님에겐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순간 부끄럽고 숙연했던 것은 여린 영혼들 앞에 내 그러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보호와 관심이 필요한 이들에게 너무도 당연하게 보호의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인지, 입동을 앞두고 나무의 옷을 준비하고 있는 권사님은 엄히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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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꽃도

  • 무슨 꽃인지 모르지만 아름답네요.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1.16 18:38
  • 꽃이름을 저도 모르겠네요.

    한희철 2019.11.18 09:55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0)


떄론 꽃도


때론 꽃도 외로운지, 나란히 핀다. 예배당 마당, 쌀쌀해지는 날씨에도 용케 핀 작은 꽃이 있어 다가가니 나란히 피어 있다. 우린 하나랍니다, 둘이면서도 하나지요, 가만 웃으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 꽃이라고 어디 외로움이 없을라고. 

하지만 괜스레 마음이 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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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들은 뭐하고 있었어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09)


목사님들은 뭐하고 있었어요?


지난 여름 끝자락에 있었던 일이니, 벌써 제법 시간이 지난 일이다. 꽃무릇이 지기 전에 사진을 찍자며 지인이 안내한 곳이 길상사였다. 언젠가는 찾아가 봐야지 마음에만 두었던 길상사를 그렇게 찾게 되었다. 

 

길상사의 꽃무릇은 벌써 시들어 있었다. 사진으로 찍을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꽃무릇 대신 잠시 길상사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서울 한복판 북한산 자락에 그처럼 호젓하고 넉넉한 공간이 있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넓고 그윽했고 아름다웠다.



(출처: 한겨레 휴심정)


동행한 또 다른 지인에게 아는 척을 했다. 김영한과 백석에 얽힌 이야기, 김영한과 법정 스님에 얽힌 이야기, 특히 김영한이 법정 스님에게 요정 대원각을 시주할 때의 이야기를 했다. 당시 대원각의 가치는 1000억 원이 넘었다고 한다. 그 엄청난 것을 시주하는 것을 두고 아깝지 않느냐고 기자가 물었을 때, 김영한은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한다.


“내 모든 재산이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해.”


세월에 지워지지 않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사랑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표정으로 보니 이야기를 듣는 지인은 이미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담담하게 듣더니 툭 한 마디를 했다.


“목사님들은 뭐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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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는 항상 아름답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08)


진짜는 항상 아름답다


자신을 찾아온 병을 넉넉한 웃음으로 받아들여 변함없는 삶을 살아낸 사람, 그는 떠났지만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남아 있다. 장영희 교수의 <내 생애 단 한번>을 다시 꺼내들었다. 꾸밈없고 반듯하고 따뜻한 내용 하나 하나가 가슴에 와 닿는다. 삶을 허투루 살아서는 안 되며, 쉽게 절망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책 속에는 <벨벳 토끼>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서양 동화 하나가 소개되어 있다. 한 아이가 가지고 있는 말 인형과 장난감 토끼가 나누는 이야기다.


"나는 '진짜' 토끼가 되고 싶어. 진짜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잠자는 아이의 머리맡에서 새로 들어온 장난감 토끼가 아이의 오랜 친구인 말 인형에게 물었다.

 

"진짜는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는 아무 상관이 없어. 그건 그냥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야."

말 인형이 대답했다.

 

"진짜가 되기 위해서는 많이 아파야 해?"

 

다시 토끼가 물었다.

 

"때로는 그래. 하지만 진짜는 아픈 걸 두려워하지 않아."

"진짜가 되는 일은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야? 아니면 태엽 감듯이 조금씩 조금씩 생기는 일이야?"

"그건 아주 오래 걸리는 일이야."

"그럼 진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

"아이가 진정 너를 사랑하고 너와 함께 놀고, 너를 오래 간직하면, 즉 진정한 사랑을 받으면 너는 진짜가 되지."

"사랑 받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지?"

"깨어지기 쉽고, 날카로운 모서리를 갖고 있고, 또는 너무 비싸서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장난감은 진짜가 될 수 없어. 진짜가 될 즈음에는 대부분 털은 다 빠져 버리고 눈도 없어지고 팔다리가 떨어져 아주 남루해 보이지. 하지만 그건 문제 되지 않아. 왜냐하면 진짜는 항상 아름다운 거니까." 


‘진짜가 될 즈음에는 대부분 털은 다 빠져 버리고 눈도 없어지고 팔다리가 떨어져 아주 남루해 보이지. 하지만 그건 문제 되지 않아. 왜냐하면 진짜는 항상 아름다운 거니까.’ 

 

또박또박, 마음에 글씨를 쓰듯 천천히 다시 한 번 읽는다. 공연히 눈물겹다. 털은 다 빠지고 눈은 없어지고 팔다리는 떨어져도 진짜는 항상 아름답다는 말을 마음을 다해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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