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9/0831

시간 여행(2)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35) 시간 여행(2) 주보 에는 ‘목회수첩’이라는 면이 있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하는 자리였다. 애정과 책임감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싶었는데, 글을 쓰는 마음이 늘 조심스러웠던 자리였다. 숫자로 표시하던 ‘목회수첩’ 이야기는 2965번에서 멈췄다. 단강에서 독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쓴 글이 2001년 9월 9일자 에 담겨 있었다. 무슨 까닭일까, 오래 전 쓴 글을 읽는데도 여전히 두 눈이 젖는 것은. 사실 오늘 막걸리를 몇 잔 마셨습니다. 처음 마셔보는 막걸리에 약간의 취기마저 느낍니다.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마련한 저녁을 함께 먹으며 마주 앉은 재철 씨가 따라주는 막걸리를 기꺼이 받았습니다. 59년 돼지 띠, 재철 씨는 나와 동갑입니다. 그러나 농촌에 산다는 이.. 2019. 8. 21.
시간 여행(1)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64) 시간 여행(1) 우연히 발견한 몇 장의 옛 주보는 시간 여행을 하게 했다. 표지에 ‘징검다리’라는 짧은 글을 실었던 2001년 8월 17일자 주보 교회소식 란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었다. 1. 벌침 같이 쏟아지던 볕이 조금씩 순해지기 시작합니다. 그 순한 볕에 들판의 벼들도 패기 시작하네요. 이번 주 목요일(23일)이 ‘처서’, 이젠 찬 공기에 익숙해질 때입니다. 2. 지난 주 섬뜰의 박종관, 변학수, 변완수, 최태준, 김재용 씨가 예배당 화장실의 벽을 넓히는 공사를 해주었습니다. 자원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땀을 흘렸는데, 그 정성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이어지던 중 마지막 소식은 이랬다. 7. 미국 뉴저지의 길벗교회(담임, 김민웅 목사)에서 창립주일을 맞아 단강으.. 2019. 8. 21.
내 몸이 너무 성하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63) 내 몸이 너무 성하다 거꾸로 걷거나 뒷걸음질을 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정록 시인의 시를 읽다가 그의 시를 모두 읽고 싶어 뒤늦게 구한 책 중의 하나가 인데, 보니 그의 첫 번째 시집이다. 첫 번째 시집을 뒤늦게 읽게 된 것이었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책머리에 실린 ‘서시’가 매우 짧았다. 군더더기 말을 버려 끝내 하고 싶은 말을 남기는 것이 시라면, 시인다운 서시다 싶다. 다시 한 번 곱씹으니 맞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사람 손을 많이 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몸이 너무 성하다니! 나는 아직 세상을 잘 모른다고, 사람들 속에서 살지만 삶을 모른다고, 여전히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짧은 말 속에 자신.. 2019. 8. 17.
때 아닌 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62) 때 아닌 때 1981년, 그해 가을을 잊을 수 없다. 짝대기 하나를 달고 포상 휴가를 나온다는 것은 감히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군에 입대한지 넉 달여 만의 일이었으니 그야말로 꿈같은 휴가였다. 논산에서 훈련을 마친 뒤 자대에 배치를 받자마자 배구대표선수로 뽑혔고, 광주 상무대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을 했다. 9인제 배구였는데 나는 레프트 공격수였다. 아무리 규모가 큰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해도 이등병에게까지 휴가를 줄까 염려했던 것은 기우, 보란 듯이 3박4일간의 휴가를 받은 것이었으니 군 생활 중에 누릴 수 있는 기쁨 중 그만한 것도 드물 것이었다. 구름 위를 날아가는 것 같은 기차를 타고 올라와 수원에서 전철을 갈아타고 부곡역에 내린 나는 먼저 교회를 찾아.. 2019. 8. 17.
징검다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61) 징검다리 오래 전 단강에서 보낸 시간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보와 함께 기억을 하곤 한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주보에 담았다. 땅 끝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여겨졌던 일들, 그 일을 기록하는 것은 내가 이웃에게 다가가는 한 방법이었고, 내게 허락하신 땅을 사랑하는 한 선택이었다. 고흐가 그림을 통해 땅의 사람들에게 다가갔던 것처럼, 나는 이야기를 통해 다가갔다. 주보의 이름도 이었다. 지렁이 글씨로 글을 쓰면 아내가 또박또박 옮겨 썼다. 때로는 아내조차 내가 쓴 글씨를 읽지 못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글씨를 읽지 말고 이미지를 읽으라 말하고는 했다. 그렇게 손으로 써서 만든 주보는 민들레 씨앗처럼 조용히 퍼져갔고, 700여 명의 독자가 있었다. 그들은 멀리 .. 2019. 8. 17.
Good to Great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28) Good to Great ‘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이다’(Good is the enemy of Great) 라는 말이 있다.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짐 콜린스 교수의 (Good to Great)에 나오는 구절로 알려져 있다. ‘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이다’라는 말 뒤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이어진다. “대개의 사람들은 제법 ‘좋은 삶’을 살게 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위대한 삶’으로의 꿈을 접는다.” 의미로 살펴보면 ‘좋은’이라고 옮긴 ‘Good’은 ‘좋은’보다도 ‘무난한’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무난한 삶에 만족하여 그 너머에 있는 위대한 삶으로 나아가려고 하지를 않는다. 이만하면 됐다 하는 마음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위대한 삶을 미리 포기하곤 한다. 그.. 2019. 8. 14.
어느 날 보니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29) 어느 날 보니 어느 날 보니 젊다는 것이 예쁘더라 푸릇푸릇 영 서툰 것이 어느 날 보니 늙었다는 것이 예쁘더라 노릇노릇 잘 익은 것이 2019. 8. 14.
호박꽃을 따서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27) 호박꽃을 따서는 우리나라의 전래동요를 모아놓은 책에 ‘호박꽃’이란 동요가 담겨 있다. 충북 충주 지방 동요라고 밝히고 있는데, 삽화도 정겹다. 호박꽃을 따서는 무얼 만드나 우리 아기 조고만 촛불 켜주지 예뻐라, 호박꽃. 호박꽃과 같은 후덕한 마음! 2019. 8. 14.
개치네쒜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26) 개치네쒜 우리가 모르는 우리말이 어디 한둘일까만, ‘개치네쒜’라는 말은 전혀 모르던 말이었다. 심지어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어디 다른 나라 말로 여겨진 말이었다. 우리말에 그런 말이 있는 줄을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걸, 모르고 있었던 것이 영 아쉽게 여겨졌던 것은 그럴 만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일에서 목회를 시작하며 독일어를 배우는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프랑크푸르트 시에서 개설한 독일어를 가르치는 곳이었는데, 나처럼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 모여 ‘아베 체 데’부터 배우는 과정이었다. 오직 독일어만으로 독일어를 가르쳤는데 전혀 모르는 언어를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내게는 또 다른 관심사이기도 했다. 표정이나 몸짓이 만국공통어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그 때 덤으.. 2019. 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