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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34

한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63) 한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한창 피었던 난 꽃이 졌다. 붉고 진한 향기를 전하더니 이제는 시들어 버리고 말았다. 언제 향기를 전했냐고 시치미를 떼듯이 누렇게 말라버리고 말았다. 아직도 더 마를 것이 있다는 듯이 꽃의 형체로만 남았다. 시든 꽃에서는 더 이상 향기가 나지 않는다. 묵중하면서도 코끝을 찌르던 향기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향기의 근원을 찾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들었던 향기이기도 했다. 누군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열정의 탱고 춤을 추듯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지하 어둠 속에서 세월을 잊고 포도주 빛깔을 익히듯이 향기는 그렇게 은은히 전해졌다. 분명 지는 꽃과 함께 향기는 사라졌다. 시든 꽃에서는 어떤 향기도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향기는 마음 끝에 남아 .. 2019. 6. 15.
골 빠지는 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62) 골 빠지는 일 오랜만에 어머니와 통화를 하였다. 무엇 그리 바쁘다고 자주 연락도 못 드리며 산다. 이런 저런 안부를 묻고 대답을 하는데, 어머니가 물으신다. “한 목사님, 요즘도 교차로에 원고 써요?”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자식들에게도 말을 높이신다. 세월의 고개 아흔이 넘자 모두가 고맙고, 모두를 존중하고 싶으신 것 같다. 요즘에도 쓰고 있다고 대답을 하자 무슨 요일에 실리는지, 몇 년째 쓰고 있는지를 다시 물으신다. “수요일에 실리고요, 원고 쓴 지는 23년쯤 된 것 같은데요.” 길을 가다 만나게 되는 생활정보지 중에 가 있다. ‘아름다운 사회’ 란에 일주일에 한 번씩 칼럼을 쓴다. 전국적으로 발행이 되고, 한국인이 많이 사는 외국의 대도시에도 발행이 되는 정보지로, 일.. 2019. 6. 14.
더는 못 볼지도 몰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61) 더는 못 볼지도 몰라 심방을 하며 교우들의 삶의 자리를 찾아간다. 어찌 삶이 평온하기만 할까, 고되고 험한 삶도 적지가 않다. 높은 곳에 위치해 달이 잘 보인다는 뜻에서 붙여졌다는, 달동네라는 말은 낭만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실상은 낭만과 거리가 멀다. 사전에서는 달동네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허가 주택과 노후 불량 주택이 밀집된 도시 저소득층 밀집 지역을 말하며, 산동네라고도 한다. 6 · 25 전쟁에 따른 이재민들에게 무허가 건축 지대의 지정을 시작으로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이농으로 생긴 도시 저소득층을 도시 외곽의 구릉 지대에 집단으로 이주시킴으로써 만들어졌다.’ 고만고만한 집들이 모여 있는 언덕 위 긴 골목 끝에 있는 권사님 집도 그랬다. 세상 한쪽 구석에.. 2019. 6. 13.
어느 날의 기도 2019. 6. 11.
사람이 소로 보일 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60) 사람이 소로 보일 때 전해져 오는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옛적 사람이 이따금씩 소로 보일 때가 있었다. 분명 소로 알고 때려 잡아먹고 보면 제 아비일 때도 있고 어미일 때도 있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한 번은 한 사람이 밭을 갈다가 비가 쏟아져 처마 밑으로 들어가 잠시 비를 피하는데, 웬 송아지가 따라 들어오더란다. 돌로 때려 잡아먹고 보니까 웬걸, 자기 아우였다. 너무도 어이가 없어 엉엉 울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는 괴로운 마음에 보따리를 싸들고 길을 떠났다. 사람이 소로 보이지 않고 사람으로만 보이는 곳을 찾아 길을 나선 것이다. 넓은 세상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느라 강물에 떠내려가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고, 깊은 .. 2019. 6. 11.
잊을 수 없는 만남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59) 잊을 수 없는 만남 그날 밤 그 만남은 잊을 수 없는 시간으로 남아 있다. 먼 곳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차에서 급한 전화를 받았다. 권사님의 아들이 다쳐 수술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집으로 오는 대신 병원으로 달려갔다. 권사님을 만난 것은 수술실 앞이었다. 순대 만드는 일을 하는 아들이 기계를 청소하던 중에 손이 기계에 빨려 들어간 것이었다. 기계를 멈췄을 때는 이미 손이 많이 으스러진 상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듣는 내가 그러니 어머니 마음은 어떠실까, 수술실 앞에서 시간을 같이 보내기로 했다. 시간은 생각보다 더디 무겁게 흘러갔다. 어느 순간 중 권사님이 당신 살아오신 이야기를 했다. 언젠가는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 했다. 참으로 신산(辛酸).. 2019. 6. 10.
다만 당신께로 갈 뿐입니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58) 다만 당신께로 갈 뿐입니다 Equal-Time Point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것은 서진교 장로님을 통해서였다. 창천감리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였다. 숙소에서 교회까지, 교회에서 숙소까지 나를 태워다 주신 분이 서장로님이었다. 장로님은 새벽에도 정한 시간에 맞춰 숙소로 찾아와 교회로 가는 수고를 해주셨다. 더없이 고마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는데, 덕분에 장로님과 차를 타고 오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장로님은 비행기를 모는 항공기 조종사 출신이었다. 삶의 경험이 전혀 다른 분들을 만나면 귀담아 들을 이야기가 많다. 장로님이 들려주는 비행기 혹은 비행에 관한 이야기는 신선했고 재미있었다. 평소에 궁금했던 것들을 들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궁금했.. 2019. 6. 9.
카잔차키스의 영혼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 카잔차키스의 영혼 어떤 현실에도 굴하지 않는 원시적 힘을 가진 사나이 와 인간적 유혹 속에서 마침내 자신을 지켜낸 예수를 그린 은 서로 다른 이야기인 것 같지만 사실 하나로 묶인다. 그건, 무수한 고난과 좌절 그리고 절망 앞에서 결국 무너지지 않은 인간에 대한 갈망이다. 이 두 작품은 모두 그리스 출신의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세상에 충격을 준 글이다. 크레타 섬에서 태어난 그는, 터키에 지배받아왔던 그리스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가계의 자손이었다. 그는 강인해야 했고, 그 어떤 상황도 이겨내야 했다. 두려움을 정복하고, 희망의 봉우리에 올라서야 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말년에 집필한 에서 카잔차키스가 어떻게 자신을 뜨겁게 일구어냈는가를 목격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서전이 얼마나 문학.. 2019. 6. 8.
오덴세와 조탑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57) 오덴세와 조탑리 독일에서 살 때 몇 분 손님들과 함께 덴마크를 다녀온 적이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동차로 9시간 정도를 달리자 덴마크 땅이었다. 동행한 분들은 아무런 검문이나 검색 없이 국경을 통과하는 것을 너무나도 신기하게 생각했다. 덴마크를 찾은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가 오덴세 방문이었다. 오덴세는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고향이다. 클림트와 모차르트를 빼고 비엔나를 생각하기가 어렵듯이, 오덴세 또한 안데르센을 빼고는 말할 수가 없는 도시였다. 골목 구석구석까지 안데르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안데르센이 죽었을 때 덴마크의 모든 국민들이 상복을 입고 애도했을 만큼 그를 아끼고 사랑했다니 당연한 일이겠다 싶기도 하다. 안데르센 기념관에는 안데르센에 관한 온갖 자료가 전시되어 .. 2019.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