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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83

씨앗과 같은 말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30) 씨앗과 같은 말 마음에 떨어져 씨앗처럼 남은 말들이 있다. 동네 사람들의 아픔을 같이 느꼈으면 싶어 논농사를 시작하던 해, 논에 물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를 병철 씨에게 물었을 때였다. 그의 대답은 단순했다. “농사꾼은 꿈속에서도 물이 마르면 안 돼요.” 마을 사람들이 거반 다 나와 강가 너른 밭에서 일하던 날이었다. 아예 솥을 가지고 나와 강둑에서 밥을 짓는 김영옥 집사님께 일일이 짐을 다 옮겨야 했으니 고생이 많았겠다고 인사를 했을 때, 예전에는 물이 맑아 강물을 길어 밥을 지었는데 이젠 어림도 없게 되었다며 툭 한 마디를 했다. “다 씨어(씻어) 먹어두, 물은 못 씨어 먹는 법인데유.” 꿈속에서도 물이 마르면 안 된다는, 어떤 것이든 물로 씻으면 되지만 물이 더러워지.. 2019. 5. 8.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데 왜 잔이 넘칠까?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데 왜 잔이 넘칠까? 독자적인 몇 개의 낱말들이 서로 모여 구(句 phrase)나 절(節 clause)을 형성할 때 각 개별 단어의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결합된 낱말들이 만들어내는 전혀 새로운 뜻을 우리는 숙어(熟語) 혹은 관용구(慣用句)라고 한다. 이러한 특수 표현의 형성은 언어마다 다르다. 같은 언어라고 하더라도 시대마다 다를 수도 있다.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뜻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관용적 표현이 축자(逐字) 번역이 될 때에는 그 의미를 옮기지는 못한다. 한 언어의 관용적 표현에 대한 의미론적 연구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의 사고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을 제공하기도 한다. 히브리어 특유의 표현들은 번역된 성서 중에서 직역의 경.. 2019. 5. 8.
그냥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29) 그냥 후둑후둑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다. 오래된 흙집 흙벽 떨어지듯 견고하다 싶었던 마음이 허물어질 때가 있다. 태연하던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어디에도 뿌리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미동도 없이 마음이 가라앉을 때가 있다. 손을 휘저어도 무엇 하나 잡히는 것이 없을 때가 있다. 어떤 것도 마음에 닿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일도, 음악도, 책도, 커피도, 세상 풍경도, 전해지는 이야기도,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뒷걸음을 친다. 한 순간 내가 낯설고 세상이 낯설다. 모래알 구르듯 시간이 지나가고, 어둠이 깊도록 종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마침내 향방이 사라진다. 그럴 때면 발버둥을 치지 않는다. 고함을 지르지도, 안간힘을 쓰지도 않는다. 미끄러지.. 2019.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