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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36

달 따러 가자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91) 달 따러 가자 윤석중 선생님이 만든 ‘달 따러 가자’는 모르지 않던 노래였다. “얘들아 나오너라 달 따러 가자 장대 들고 망태 메고 뒷동산으로 뒷동산에 올라가 무동을 타고 장대로 달을 따서 망태에 담자” 지금도 흥얼흥얼 따라 부를 수가 있다.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2절이 있는 줄을 몰랐고, 그랬으니 당연히 2절 가사를 모를 수밖에 없었다. “저 건너 순이네는 불을 못 켜서 밤이면 바느질도 못한다더라 얘들아 나오너라 달을 따다가 순이 엄마 방에다 달아 드리자” 쉘 실버스타의 달 따는 그물 1절은 2절을 위한 배경이었다. 낭만적으로 재미 삼아 달을 따러 가자고 한 것이 아니었다. 장대 들고 망태를 멘다고 어찌 달을 따겠는가만, 달을 따러 가자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밤이.. 2019. 3. 31.
다시 한 번 당신의 손을 얹어 주십시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90) 다시 한 번 당신의 손을 얹어 주십시오 며칠간 기도주간을 보내고 돌아와 갖는 새벽기도회, 오랜만에 나누는 말씀이 새롭다. 마가복음서의 순서를 따라 주어진 본문이 8장 22~26절, 벳세다에서 한 눈먼 사람을 고쳐주시는 이야기였다. 두어 가지 생각을 나눴다. 사람들이 눈먼 사람 하나를 데리고 왔을 때, 예수님은 그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바깥으로 따로 데리고 나가신다. 동네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고치면 소문이야 금방 멀리 퍼지겠지만, 예수님은 소문을 위해 오신 분이 아니었다. 그를 따로 만나신 것은 그에게 눈을 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눈을 고치신 후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실 때도 마찬가지다.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신다. 집집마다 들러 소문.. 2019. 3. 30.
사랑을 한다면 한희철의 하루 한 샐각(89) 사랑을 한다면 화장실 변기 옆에 시집 몇 권이 있다. 변기에 오래 앉아있는 것은 좋은 습관이 아니라는데, 잠깐 사이 읽는 한 두 편의 시가, 서너 줄의 문장이 마음에 닿을 때가 있다. 시(詩) 또한 마음의 배설(排泄)이라면, 두 배설은 그럴 듯이 어울리는 것이다. 변기 옆에 놓여 있는 시집 중의 하나가 이다. 이대흠 시집인데, 구수한 사투리며, 농익은 생각이며, 시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중의 하나가 ‘성스러운 밤’이었다. 삼십 년 넘게 객지를 떠돌아다니다 갯일에 노가다에 쉰 넘어 제주도에 집 한칸 장만한 홀아비 만수 형님이 칠순의 부모를 모셨는데, 기분이 좋아 술 잔뜩 마시고 새벽녘에 들어오던 날, 그 때까지 도란거리던 노인들이 중늙은이 된 아들놈 잠자리까지 챙겨놔서.. 2019. 3. 29.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88) 길 창밖 동쪽으로 집 한 채를 새로 짓고 있다. 연립주택이지 싶은데 몇 층까지 올리는 것인지 제법 높이 솟아올라, 창 하나를 거반 다 가렸다. 창을 통해 내다볼 수 있었던 하늘이 조금 좁아지게 되었다. 저렇게 높은 건물이 서면 달라지는 것은 풍경만은 아닐 것이다. 바람의 길도 달라질 것이다. 바람에게 어디 정해진 길이 따로 있을까만, 이후로 바람은 자연스레 저 건물을 비켜 지나갈 것이다. 새들의 길도 달라질 것이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날아나던 공간을 이제부터는 조심해서 날아야 한다. 익숙한 대로 날다간 벽에 부딪치고 말 일, 더 높이 비상하여 지나든 옆으로 돌아가든 다른 길을 택해야 한다. 우리가 당연한 듯 어떤 일을 할 때에도, 누군가는 그 일로 인하여 다른 선택을 해야 .. 2019. 3. 29.
비아 돌로로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85) 비아 돌로로사 정릉교회 현관 앞 주차장 옆으로 작은 마당이 있다. 예배당을 지으며 마을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들었다. 마당에는 소나무를 비롯한 나무들과 두 개의 파고라가 설치되어 있어, 규모는 작지만 정겨운 느낌을 준다. 사순절을 보내며 마당에 ‘비아 돌로로사’ 14처를 만들기로 했다. 비아 돌로로사는 ‘고난의 길’이란 뜻으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까지 가신 길을 일컫는 말이다. 공간이 협소한 까닭에 아쉬운 선택을 해야 했다. 터가 넓고 형편이 된다면 각 처소마다 그곳에 알맞는 조형물을 세우고 싶은 일, 14처를 알리는 내용을 코팅하여 파고라 기둥에 붙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어제 저녁이었다. 창을 통해 바라보니 누군가가 파고라 기둥 앞에 서서 거기.. 2019. 3. 25.
가장 위험한 장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86) 가장 위험한 장소 아이들의 사망 원인 1위는 ‘금 밟고 죽는 것’이고, 어른들의 사망 원인 1위는 ‘광 팔다가 죽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웃고 말 일을 설명하는 것은 멋쩍은 일이다. 광 팔다 죽는 것이야 금방 짐작이 되지만, ‘금 밟고 죽은 것’이 뭘까 갸우뚱할지 모르겠다. 놀이를 하다가 밟은 금을 말한다. 엉뚱하게도 마크 트웨인은 이런 말을 했다. “침대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이다. 80% 이상의 사람들이 거기서 사망하니까.” 이만한 역설과 통찰이라면 삶이 단순하겠다 싶다. 2019. 3. 25.
역지사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84) 역지사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한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영어로 옮기면 ’understand’가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이해’를 뜻하는 ‘understand’가 ‘under’라는 말과 ‘stand’라는 말이 합해진 것이라 하니 말이다.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걸어보기 전까지는 그를 판단하지 말라.”는 북미원주민들의 속담도 마찬가지다.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을 경계한다. 어떤 사람이 말을 타고 지나가던 중 한 마을에서 묵게 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가죽신발 한 짝이 없더란다. 할 수 없이 낡은 고무신 한 짝을 얻어 신고 길을 나서게 되었는데, 그가 말을 타고 지나가자 동네에는 말다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시작은 아무래도 고무신을 본 사람이었을 것이다... 2019. 3. 24.
다 살아지데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83) 다 살아지데요 아직은 젊은 사람. 도시를 피해, 도시가 요구하는 삶의 방식을 피해 시골로 들어가 둥지를 틀 듯 땀으로 집을 지었다. 집이 주인을 닮은 건지, 주인이 집을 닮은 건지, 동네 언덕배기 저수지 옆 그럴듯한 집이 들어섰다. 창문 밖으로 벼들이 익어가는 모습을 볼 때면 그는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으리라 싶었다. 나무를 깎고, 글을 쓰고, 종이로 작품을 만들고, 닭을 키우고, 아이들 등하교 시키고, 소박한 삶을 살던 그에게서 어느 날 전해진 소식은 참으로 허망한 소식이었다. 누군가의 부탁으로 닭을 잡고 있는 동안 집이 홀라당 불탔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숟가락 하나 건지질 못했다고 했다. 살림도구며, 작품이며,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한 허무 위에 주저앉을 때.. 2019. 3. 24.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예전에 독서캠프를 통해 만난 분 중에 나태주 시인이 있습니다. ‘풀꽃’이란 시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지요. 시골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하신 분답게 중절모가 잘 어울리는 시골 할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그분을 처음 뵙는데, 그 분은 나를 알고 있었습니다. 한 신문에 쓰고 있는 칼럼을 눈여겨 읽어오고 있다 했는데, 금방 친숙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나태주 시인이 쓴 시 중에 최근에 알게 된 시가 있습니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을 만큼 중병을 앓고 있을 때, 곁에서 간호하는 아내가 안쓰러워 썼다는 시였습니다.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라는 제목의 시였는데, 아내를 위해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 2019. 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