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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

백약이 무효이다

by 한종호 2017. 1. 13.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70)

 

백약이 무효이다

 

“처녀(處女) 딸 애굽이여 길르앗으로 올라가서 유향(乳香)을 취(取)하라 네가 많은 의약(醫藥)을 쓸지라도 무효(無效)하여 낫지 못하리라”(예레미야 46:11).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신 말씀을 나는 이렇게 새긴다. 그것이 욕심이든 근심이든 등 뒤에 메고 있는 커다란 보따리를 내려놓지 못하면 들어갈 수가 없다고. 또 하나, 그 문은 단체로 통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증명서 하나를 보이고 우르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곳이 결코 아니라고.

외국에 나갈 때든, 나갔다가 들어올 때든 공항에 내리면 입국심사라는 걸 한다. 여권을 내보이고 본인인지 아닌지, 입국 목적이 무엇인지 등을 확인한다. 내 나라나 영토에 아무나 함부로 들여보낼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입국심사를 할 때 보면 줄이 두 줄이다. 내국인이 서는 줄이 따로 있고, 외국인이 서는 줄이 따로 있다. 우리 마음속 터무니없이 자리 잡고 있는 생각 중 하나가 이와 관련된 것 아닐까? 최후의 심판 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서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아닌 다른 줄에 서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워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아예 하나님 아는 척을 하지 않는 이들이 세상에는 아주 없는 것일까.

 

 

 

열국을 향한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한다. 이집트(46장), 블레셋(47장), 모압(48장), 암몬, 에돔, 다메섹, 게달과 하솔의 나라들, 엘람(49장), 바벨론(50-51장) 등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모든 나라를 향한 말씀이다.

 

주님의 관심이 단지 이스라엘 안에 머물러 있거나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주님의 눈길에서 벗어난 대상이나 존재는 세상에 그 무엇도 없다. 교회나 기독교가 하나님의 관심이 머무는 울타리가 될 수 없다.

 

주님의 말씀이 갈그미스 전투에 참여했던 이집트의 왕 바로 느고의 군대를 향한다. 갈그미스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있는 곳으로 그동안 패권을 잡고 있던 앗수르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바벨론과 이집트가 서로 충돌을 하던 곳이다. 그곳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중동 지역의 지배권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여호야김 제4년, 그러니까 주전 605년,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은 이집트의 바로 느고를 물리친다. 이 결과는 이스라엘에도 영향을 미쳐서 그동안 이집트를 의지하던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만다.

 

이집트 군대는 나름대로의 무기와 힘을 갖고 있었다. 큰 방패, 작은 방패, 군마, 투구, 창, 갑옷…, 그러나 하나님은 이집트가 패배할 것을 바라보고 있다. 잘 싸우는 군사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친다(46:5). 상황은 점점 더 나빠져서 발이 빠른 자도 도망치지 못하고, 용맹이 있는 자도 피하지 못한다(46:6). 그들은 모두 유프라테스 강가에 넘어지며 엎드러지게 된다(46:6).

 

그들의 사방에는 두려움이 있다(46:5). ‘사방의 두려움’이라는 말은 예레미야를 괴롭힌 바스훌에게 주님이 붙인 이름이기도 하고(20:3), 사람들에게서 놀림을 받던 예레미야의 심정이기도 하다(20:10). 어디를 둘러보아도 두려움뿐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아볼 수가 없다니, 참으로 마음이 서늘해지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이집트가 입은 상처는 고칠 수가 없다. 상처 치료에 효력이 있는 유향이 나는 곳으로 유명한 길르앗에 가서 아무리 많은 유향을 가지고 온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나을 병이 아니기에 백약이 무효일 뿐이다.

 

“처녀, 딸 이집트야, 길르앗 산지로 올라가서 유향을 가져 오너라. 네가 아무리 많은 약을 써 보아도

너에게는 백약이 무효다. 너의 병은 나을 병이 아니다.” <표준새번역>

 

“아무에게도 짓밟힌 일 없는 너 이집트의 수도야. 길르앗에 올라가 향유를 구해다가 약을 만들어 마음껏 써보아라. 공연한 노릇이리라.” <공동번역 개정판>

 

“오, 처녀 딸 이집트야, 길르앗 산지로 올라가 약제 유향을 구해보아라. 그러나 백약이 무효일 것이다. 너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메시지>

 

이집트는 어쩌다가 이런 결과를 맞게 되었을까? 무슨 큰 잘못을 했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일까?

 

예레미야 46장 2-12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뿐이다. 이집트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힘을 믿고 으스대고 있었던 것이다(46:7-10). 이집트가 갈그미스 전투에서 패배한 것은 바벨론 느브갓네살의 군대가 강해서가 아니었다. 이집트의 오만함을 꺾기 위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던 것이다.

 

세상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하여도 하나님은 인간의 교만을 꺾으신다. 교만이 가져오는 결과는 사방의 두려움이고, 그 때 입은 상처는 너무도 깊고 커서 백약이 무효일 뿐이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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