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바다와 마주하며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 2016. 7. 27. 10:01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3)

 

고독한 바다와 마주하며

 

 


대학시절에 보았던 바다는 분명 아니었습니다. 동해 경포대의 백사장은 너무나 많이 망가져 있었습니다.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길고 넓게 펼쳐져 있던 모래 길은 뚝 끊어진 채, 과장하자면 손 뼘 만 한 백사장만 남기고 그대로 바다와 만나고 있었습니다. 여유와 품위를 잃어버린 해변은 우울해 보였습니다.

싸구려 유흥가로 변해버린 바다는 생존의 치열한 경쟁 끝에 기진맥진해버린 민초들의 절망을 닮아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누군들 그렇게 바다에 초라한 진을 치고 호객의 자리를 펴고 싶었겠냐는 항변이 들려오는 듯도 했습니다. 모두가 아귀다툼 끝에 뜯어먹은 바다가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입니다.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던 작은 섬들은 이미 점령당한지 오래이며, 맑고 투명했던 동해의 영혼은 자신의 바다에서 쫓겨나간 채 홀로 슬피 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여전히 가시철망에 포위된 주변의 해안선은 자연도 정치와 역사의 제물이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려움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여름의 열기에 물러설 곳이 없어진 도시에서 혹여나 하고 바다로 찾아간 나그네는 거기에서 또 하나의 작은 도시가 들어서 있음을 목격합니다. 그러나 어쩐지 갑자기 몰락해버린 도시의 쓸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많은 것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미 많은 것을 잃어버린 곳이 된 셈입니다.

정작 보고자 했던 것은, 있는 그대로가 가장 풍요한 풍경이었습니다. 도회지에서 몰려든 인파 앞에서 어설픈 화장을 하고 어색한 교태를 부리려는 여인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몸인 바다를 팔아 도시의 일부가 되려고 하는 욕망과, 그 욕망에 깔린 아픔을 마주하려 했던 것이 아닙니다.

소박하고 순진했던 바다의 싱싱한 육체를 마구 유린해버린 자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저토록 동해의 백사장을 갉아 먹을 대로 갉아 먹어버려 백사장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꼴을 만들어버린 이들은 대체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관동 팔경이 하나하나 무너지고 있어도 탄식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바다는 이제 잃어버린 꿈이 되어가고 있을까요? 눈을 부비며 태양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해변은 태고의 순간처럼 정갈한 몸으로 미소 지을 수가 없게 되고 있습니다. 갯벌은 침략당하고 있으며, 모래는 약탈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이며 포구(浦口)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하는 사람들이 떠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분주한 새벽을 향해 깨어나려는 도시로의 귀환은 그러나 그렇게 두고 온 바다를 그래도 그리워하게 합니다. 아직은 회생의 희망을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릿한 바람 냄새도 사라지고, 조용하게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도 침묵해버린 곳이라도 바다가 도시보다는 넉넉하기 때문입니다.

여름이 지나고 바다가 고독해지는 때가 오면, 다시 바다로 떠나렵니다. 인파가 무심히 헤집고 가버린 상처를 스스로 어루만지며 기운을 차려가는 바다를 보고 싶어서입니다. 바닷가 소나무 숲을 지나는 바람 속에서 뱃사람들이 남기고 간 전설도 듣고, 어촌의 불빛이 하나 둘 켜지는 밤도 지켜보는 겁니다.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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