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인들이 성직을 깔볼까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50) 


왜 세인들이 성직을  깔볼까


여러분이 의로우면, 여러분의 행위도 의로울 것입니다.

거룩의 바탕을 행위에 두지 말고, 존재에다 두십시오.

왜냐하면 행위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위를 거룩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어떤 직분이 우리를 의롭게 하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목사나 장로, 그런 직분이 우리를 의롭고 거룩하게 만들어주던가. 오히려 우리의 의롭고 거룩한 삶이 우리의 직분을 드높여주는 것이다.


총회장, 감독, 아니 교황이라 하더라도 그런 대단한(?) 직분이 우리를 의롭고 거룩하게 해줄까. 그런 직분을 맡은 이의 삶이 의롭고 거룩하지 못하다면, 도리어 그의 삶이 그 직분을 더럽히고 그 직분을 맡은 이를 썩게 만들지 않을까.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온 세상 사람들이 추앙하는 교황? 그것은 사무직이 아니던가. 목사들이 그토록 오르고 싶어 온갖 추태를 부리는 감독, 혹은 총회장? 그것도 사무직이 아니던가. 사무직을 깔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의롭고 거룩한 이가 사무직을 수행한다면 그 사무직이 빛날 것이다.


오늘날 왜 세인들이 성직을 깔볼까. 그 이름과 존재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외치는 말, 그가 부르는 노래가 그 존재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직분이든 그 이름과 존재, 그 말과 행위가 일치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광채를 발할 것이다.


고진하/시인, 한살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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