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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의 '최후의 심판'

하나님 맙소사!

by 한종호 2016. 3. 29.

이현주의 최후의 심판(1)

 

하나님 맙소사!

 

 

세상에는 참 공교로운 일이 많은지라 어느 날 사장과 비서와 운전기사가 함께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셋이 차를 타고 가다가 벼랑에 굴러서 함께 죽었던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이 아주 까마득한 미래의 어느 날엔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죽는 날, 그 날이 바로 최후의 심판날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렇고, 어쨌든 이 세 사람은 누구 때문에 죽게 된 것이냐를 따질 겨를도 없이 그야말로 졸지에 세상을 떠나 엉겁결에 심판대 앞에 섰습니다.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최후의 심판관이신 하나님께서 먼저 사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떠냐? 이렇게 갑자기 이리로 오게 될 줄은 몰랐지?”

 

“예. 몰랐습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몇 가지 정리를 해 놓았을 텐데요.”

 

“정리라니? 무슨 정리를 말하는 거냐?”

 

“우선 기업체에다 빌려 주었던 사채를 모두 회수하여 처자식들에게 분배해 주었을 것입니다. 가족들이 제 비밀 거래를 모르고 있으니 그 돈은 모조리 떼인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액수는 얼마나 되느냐?”

 

“하나님께서 그건 알아 뭘 하시겠습니까?”

 

“허허, 그건 네 말이 옳다. 모두가 먼지처럼 되었는데 그까짓 액수는 알아 뭘 하겠느냐? 수백, 수천억 원이나 단돈 10원이나 여기서는 마찬가지다. 그래, 네가 이제 판결을 받아서 천국으로 가든지 지옥으로 가든지 해야 할 터인데 네 생각엔 어떠냐? 너는 저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어느 쪽 길로 줄곧 걸어 왔느냐? 천국의 길이냐? 아니면 지옥의 길이냐?”

 

“지옥의 길을 걸어 천국 쪽으로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고?”

 

“지옥 같은 세상에서 오로지 천국만 생각하고 살았으니까요.”

 

“허허, 그것 참 대단하구나. 그러나 그건 이곳의 논리와 맞지 않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천국의 길 뿐이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지옥의 길뿐이다. 길이 곧 천국이요 길이 곧 지옥이니까.”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세상에 사는 동안 한 번도 주일(主日)을 빼먹거나 헌금을 잘라먹은 적이 없습니다. 이 사실은 여기 함께 온 비서와 기사가 증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이 사람아, ‘주일을 빼먹다’니 그건 무슨 말이냐?”

 

“성스런 주일을 지키지 아니하고 일을 한다든가 놀이를 한다든가….”

 

“성스런 주일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사장은 한심하다는 듯 하나님을 쳐다보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래 보여도 장로입니다. 아무렴 그런 것도 모를까 봐서 물어 보시는 겁니까?”

 

“장로는 또 뭐냐?”

 

“교회의 평신도들 가운데 우두머리를 장로라고 합니다. 천주교에서는 회장이라고도 하지요. 그게 다 비슷비슷한 겁니다.”

 

“네 말은 갈수록 어렵구나. 평신도는 또 뭐고 우두머리는 또 뭐냐?”

 

“이런!”(여기서 사장은 속으로 ‘제길!’ 하고 중얼거렸음)

 

“내가 무식해서 말이 안 통한다 이 말이냐?”

 

사장은 하나님이 자기의 속을 꿰뚫어 보는 바람에 흠칫 놀라서 목을 자라처럼 움츠렸습니다.

 

“좋다. 그래 너는 헌금도 꼬박꼬박 지켰으니 그만하면 천국으로 갈 수 있지 않느냐, 이말이렸다?”

 

“뭐 그런 뜻이라기보다는… 어쨌든 제 입으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다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시골의 가난한 성직자들에게 매달 송금한 돈만 해도….”

 

“그래. 그 돈을 벌기 위해서 너는 네가 말하는 주일에도 부하 직원들을 출근시켰지.”

 

“사무실을 비울 수는 없으니까요. 아시다시피 제 사업이라는 게 죽은 사람에게 관을 파는 것이었는데 어디 사람들이 날을 골라서 죽어 줘야 말이지요. 주일에는 죽는 사람이 없다는 무슨 원칙이 있었다면 물론 주일에 문을 닫았을 것입니다.”

 

“그런 원칙이 있을 수는 없지. 내가 그런 원칙을 만들지 않았으니까.”

 

“그러게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부하 직원들만 사무실에 출근시키고 너는 꼬박꼬박 주일을 지켰다 이 말이로군?”

 

“예. 그렇습니다.”

 

“네 이놈!”

 

갑자기 하나님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면 네놈 하나 천국 보내자고 숱한 부하 직원들은 지옥으로 가도 좋다고 생각했더란 말이냐? 어어, 고얀놈이로고!”

 

“아… 아니올시다.”

 

“아니긴 뭐가 아니냐? 이놈을 당장 지옥으로 데리고 가거라!”

 

“지… 지옥이라니요? 아이쿠, 하나님 맙소사! 아, 지금껏 지옥에서 살았는데 또 지옥으로 가란 말씀입니까?”

 

“땅에서 지옥생활을 한 자는 죽어서도 지옥으로 가고 땅에서 천국생활을 한 자는 죽어서도 천국으로 가느니, 이것이 나의 원칙이니라.”

 

천군들이 사장을 끌고 가자 곁에 서 있던 비서와 기사가 허겁지겁 따라가며 소리 질렀습니다.

 

“사장님. 혼자 가시면 어떡합니까? 같이 가셔야지요.”

 

천사장 미카엘이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저 두 사람은 심판도 받지 않고 지옥으로 가는데, 그냥 두십니까?”

 

“버려두어라. 저것들은 지상에 있을 때부터 사장의 수족노릇만 하던 자들이다. 몸이 가는 곳으로 수족이 따라가는 것이야 마땅한 일 아니냐? 남을 수족처럼 부리던 자도 천국에 못 가겠거니와 남의 수족 노릇으로 만족하던 자들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노예를 부리는 자가 없는데 노예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도매금으로 살던 자들은 도매금으로 가게 하여라.”

 

이현주/ 동화작가

 

 

http://fzari.com/774 불공평한 하나님(2)

http://fzari.com/782 당신이 누구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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