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나눔은 결코 헛되지 않음을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49) 


사랑의 나눔은 결코 헛되지 않음을


영적인 것과 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남에게 나누어주지 않는 사람이

영적이었던 적은 결코 없습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영적인 것과 복을

자기를 위해서만 간직해서는 안 됩니다.

무릇 사람은 자기 몸과 영혼 안에 지닌

모든 것을 서로 나누고,

남이 자기에게 바라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내주어야 합니다. 


비바람이 몹시 심하게 부는 어느 날 밤, 남루한 차림의 거지가 성 프란체스코의 오두막으로 찾아왔다.


“너무 배가 고프고 추우니, 먹을 것과 잠자리를 좀 마련해 주세요.”


프란체스코는 얼른 그 거지를 데리고 들어와서 불빛에 비춰 보니, 그 거지는 얼굴과 코가 문드러진 문둥이였다. 그는 서둘러 음식을 준비해서 정성껏 대접한 뒤, 자기의 잠자리를 그에게 내주었다. 침대에 들어간 거지는 그러나 잠시 후, 추워서 견딜 수가 없으니, 당신의 몸으로 자기의 몸을 데워 달라고 했다.


프란체스코는 그가 요구하는 대로, 더러운 몸에 자기의 몸을 비벼 그의 몸을 덥혀 주었다. 잠이 든 거지를 보고 프란체스코도 그 옆에서 잠이 들었다. 새벽 기도 시간이 되어 일어나 보니, 침대에서 자던 거지는 간 곳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피고름이 흐르던 그 문둥이의 몸을 감싸고 잤는 데도 프란체스코의 몸과 침대에는 그 더러운 이물질이 전혀 묻어 있지 않았다. 프란체스코는 즉시 그 자리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하느님, 어찌하여 나병환자로 저를 찾아 오셨습니까? 주님과 같이 동침했으니, 이 죄인의 기쁨을 무엇으로 다 표현하리요!”


밭에 뿌려진 씨앗의 죽음처럼 자기 무화(無化)의 삶을 살았던 프란체스코의 이 이야기는 아주 미묘한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이와 함께 고통을 나누고 난 뒤 신과 하나 되는 기쁨을 얻었으니, 이 얼마나 신비롭고 경이로운 일인가.


가장 작은 자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하면 그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예수는 가르쳤다. 프란체스코는 예수의 이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함으로써 자기보다 큰 존재와 하나 되는 신비를 몸소 체험하는 은총을 얻은 것이다. 진흙으로 빚어진 보잘것없는 유한한 한 인간이 우주적 신성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눔이 갖는 신비요 은총이다.





우리는 내가 지닌 것을 나누면 내 소유가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너무 좁은 안목이 빚어내는 편견이다. 풍요(affuence)란 단어에는 ‘풍부히 흐른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삶을 순환하는 부와 풍요를 누리려면, 내가 가진 것을 움켜쥐지 말고 흐르게 해야 한다.


현대과학이 밝힌 것처럼 모든 물질은 에너지로 되어 있다. 에너지는 멈추지 않고 항상 흐른다. 그러므로 에너지의 순환을 멈추는 것은 피의 흐름을 멈추는 것과 같다. 피가 응고되어 흐르지 않으면 그것은 곧 죽음이다. 나눔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씨앗 속에는 수천 개의 숲의 약속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씨앗은 그냥 있어서는 안 된다. 씨앗은 기름진 땅에 그 지성을 주어야 한다. 그렇게 주게 되면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흘러 물질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주면 줄수록 많이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줌으로써 우주의 풍요한 흐름을 당신의 삶 속에 순환시키는 것이 되므로.”(디팍 쵸프라)


디팍 쵸프라의 말처럼 나눔은 작은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 땅에 뿌려진 씨앗은 썩어야 싹을 틔우므로 없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썩어 없어짐[無化]으로써 숲을 이룰 수 있다. 예수나 프란체스코처럼 스스로 낮아지는 사랑의 실천자가 되려면, 이러한 식물적 상상력이 요청되는 것이 아닐까?


신이 선물로 베풀어 준 당신의 소유를 나누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원하면 다른 이에게 기쁨을 주라. 사랑 받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 주목받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주목하고 인정하라. 물질적으로 풍요롭기를 바라거든 다른 사람을 물질적으로 풍부하게 도우라. 당신이 뿌린 씨앗은 반드시 수천 배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어떤 씨앗의 죽음도 헛되지 않다. 우주는 단 하나의 쿼크[quark:물질의 최소 단위]도 낭비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주가 빚어내는 이 미묘하고 아름다운 신비에 참여함으로써 우리의 기쁨과 행복은 배가될 것이다. 그 참여의 한 방법은 곧 나눔이다. 당신의 존재 자체를 내어주는 사랑의 나눔은 결코 헛되지 않다.



고진하/시인, 한살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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