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 바라보기를 잊지 마라

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44)

 

눈 떠 바라보기를 잊지 마라

 

 

평안하신지요?

 

무정하고 무심한 세월이 흐르고 또 흐르더니 어느덧 상강霜降 절기를 맞게 되었네요. 옛 사람은 이맘 때를 가리켜 “만산滿山 풍엽楓葉은 연지臙脂를 물들이고, 울 밑의 황국화黃菊花는 추광秋光을 자랑한다”고 노래했습니다. 단풍을 보며 여인의 볼에 찍는 연지를 떠올리는 것이 참 정겹습니다. 국화의 노란빛이 사뭇 부드러워진 가을빛이 깃든 것이라 하는 상상력이 참 여유롭습니다. 이런 여유는 멈춰 설 때만 누릴 수 있는 것일 텐데, 달구치듯 우리를 몰아가는 어떤 강박관념 때문에 가을을 만끽하지 못하고 삽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남해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벌써 아련한 그리움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자옥한 미세먼지 때문에 해돋이의 장관을 보지 못하고 푸른 바다 풍경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이들과 동행한 시간이 시종 유쾌했습니다. 다 함께 합주하던 리코더 소리가 마치 이명증처럼 자꾸 들려옵니다. 남해 금산에 올라 모두 보리암으로 향했을 때 저는 금산 꼭대기를 찾았습니다. 이성복 시인의 시 <남해 금산>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 대한 시인의 그리움이 내 속에도 떠오르기를 바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저는 습관처럼 이성복의 시를 읊조렸습니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사랑하지만 끝내 안을 수 없는 여자, 그리움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시의 화자는 그 돌 속으로 들어갔을까요?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돌올突兀한 바위를 보면서 시인의 시선이 저 바위에 머물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성복 시인은 “사랑의 의무는 사랑의 소실에 다름 아니고, 사랑의 습관은 사랑의 모독”이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산길을 천천히 걷는 동안 젊은 날 내 마음을 달뜨게 했던 오규원 시인의 <한 잎의 여자>도 떠올랐습니다.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근한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마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 <한 잎의 여자> 부분

 

이 시를 만난 후 괜히 물푸레나무를 보면 그 잎을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남세스럽지만 바람에 몸을 뒤채는 나뭇잎을 볼 때마다 이런 시구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 나는 아직도 젊은 날의 영문 모를 열정과 작별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닷가 산책로를 걸으면서 안개에 가려 우련하게 떠오르는 해를 적막한 시선으로 바라보셨지요? 햇빛이 고요한 물결 위로 번져올 때 우리는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평생 품고 살아가야 할 아픔 말입니다.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아 그렇지 아픔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물론 그 아픔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지요. 저는 선생님을 볼 때마다 그 아픔과 더불어 살아온 이의 쓸쓸함과 아울러 어떤 넉넉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는 기대라도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 고통이 운명처럼 달라붙어 죽을 때까지 해결될 수 없는 일이라면 생각만으로도 참 힘겨운 인생입니다. 그 무거운 짐을 헌옷 벗어던지듯 벗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으셨나요? 여전히 속된 저는 생각만으로도 그 무게에 짓눌리는 느낌입니다.

 

가끔 운명의 속박 같은 것을 느낄 때마다 헤라클레스의 죽음을 떠올립니다. 영웅인 남편 헤라클레스가 다른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길까봐 조바심치던 아내 데이아네이라는 반인반수의 괴물인 켄타우로스의 피가 묻은 옷을 남편에게 보내지요. 헤라클레스의 활을 맞고 죽어가면서 켄타우로스가 했던 말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켄타우로스는 자기 피가 묻은 옷을 헤라클레스에게 입히면 그의 사랑이 결코 떠나지 않을 거라고 질투심에 사로잡힌 여인을 속였던 것입니다. 아내가 보낸 옷을 입은 헤라클레스는 살갗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마침내 불타는 장작더미 위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합니다. 영웅의 최후로는 매우 불명예스럽고 치욕적인 죽음입니다.

 

바울 사도도 떠오릅니다. 그는 자기 몸에 있는 가시를 없애달라고 세 번씩이나 기도했다고 하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묵묵부답이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깊은 침묵 속에 담긴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그는 그 가시야말로 영적인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자기를 지켜주었다고 말합니다. 제거할 수 없는 아픔은 품고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깨 통증과 테니스 엘보로 시달리는 제게 어느 선생님은 그 고통에 잘 적응하며 살라고 하더군요. 어쩌면 그런 게 삶의 지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해에서 돌아와 함석헌 선생의 시 <마음에 부치는 노래>를 찾아 읽었습니다. 젊은 날 이미 우리 역사를 ‘고난’ 혹은 ‘뜻’의 관점에서 읽어냈던 분이지만, 암담한 역사 현실 앞에서 가끔 흔들리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자기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이런 시를 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이 거친 바다라도

그 위에 비치는 별이 떠 있느니라

까불리는 조각배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눈 떠 바라보기를 잊지 마라

역사가 썩어진 흙탕이라도

그 밑에 기름진 맛이 들었느니라

뒹구는 한 떨기 꽃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뿌리 박길 잊지 마라

인생이 가시밭이라도

그 속에 으늑한 구석이 있느니라

쫓겨가는 참새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사랑의 보금자리 짓기를 잊지 마라

삶이 봄 풀에 꿈이라도

그 끝에 맑은 구슬이 맺히느니라

지나가는 나비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영원의 향기 마시기를 잊지 마라

 

- 함석헌, <마음에 부치는 노래>

 

세상은 거친 바다 같고, 역사는 썩어진 흙탕과 다를 바 없고, 인생은 가시밭입니다. 눈을 감고 산다면 모를까 눈을 뜨면 암담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입니다. 자칫하면 더럽고 불의한 세상에 대한 저항을 포기하고 세속의 논리에 순응하며 살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함 선생은 자기 마음을 정직하게 돌아봅니다. ‘까불리는 조각배 같은 내 마음아’, ‘뒹구는 한 떨기 꽃 같은 내 마음아’, ‘쫓겨가는 참새 같은 내 마음아’, ‘지나가는 나비 같은 내 마음아.’ 거듭해서 등장하는 ‘내 마음아’라는 호격조사 속에서 저는 안쓰러움을 느낍니다.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지요? 함 선생은 그런 마음의 실상을 알기에 흔들리기 쉬운, 까무룩 잠들기 쉬운 그 마음을 자꾸만 불러 일으켜 세우는 것일 겁니다. 눈을 떠 바라보면 거친 바다 위를 비치는 별이 있고, 썩어진 흙탕 밑에도 기름진 맛이 들어 있고, 가시밭 같은 인생에도 으늑한 맛이 있는 법입니다. 썩어진 흙탕 같은 세상에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요? 가시밭 같은 인생 위에 사랑의 보금자리를 지을 수 있을까요? 일장춘몽 같은 인생을 살면서도 영원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을까요? 함 선생님은 그럴 수 있다고, 아니 그래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삶이란 그런 것이겠지요.

 

연암 박지원은 지초芝草나 반딧불도 썩은 흙이나 풀이 있어야 나올 수 있다 했습니다. 김수영은 <거대한 뿌리>에서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고 노래했습니다. 그는 고단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 속에 있었지만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려 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장벽을 만날 때마다 비명부터 지르고 보는 나의 심약한 마음에 비하면 김수영의 의지는 강철과 같습니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제3인도교의 물 속에 박은 철근 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 <거대한 뿌리> 중에서

 

이 도저한 도전 정신, 어려움 앞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강다짐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이렇게 비장하지는 않지만 선생님의 모습 속에서 저는 ‘거대한 뿌리’를 봅니다. 그것을 믿음이라 해야 할지, 연민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생의 짐을 끝까지 지고 가려는 그 검질긴 마음속에서 나는 거룩을 봅니다. 가끔 손을 내밀어 주시고, 속마음을 허물없이 드러내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가야 할 길이 아직 멀지만 그래도 동행이 있어 힘이 납니다. 이 가을에 마음 흐뭇한 일 많이 만나시기를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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