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비밀을 안다는 것

두런두런(29)

 

누군가의 비밀을 안다는 것

 

 

강원도 단강에서 지낼 때였습니다. 어느 날 새집을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어릴 적 우리는 새집을 발견하면 새집을 ‘맡았다’고 했습니다.

 

지금 와 생각하면 ‘맡다’라는 말이 묘합니다. ‘맡다’라는 말에는 ‘차지하다’는 뜻도 있고, ‘냄새를 코로 들이마셔 느끼다’ 혹은 ‘일의 형편이나 낌새를 엿보아 눈치 채다’라는 뜻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어릴 적 말했던 ‘맡는다’라는 말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다 담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새집이 어디 있는지를 눈치 챘다는 뜻도 있고, 내가 차지했다는 뜻도 담겨 있었을 테니 말이지요.

 

저녁 무렵 교회 뒤뜰을 거닐다가 새 한 마리를 보게 되었는데, 날아가는 모양이 특이했습니다. 주변을 경계하면서 조심스럽게 이 가지 저 가지를 옮겨 다니고 있었지요. 어릴 적엔 새가 쫑긋거리며 나는 모양만 보고도 새집의 존재 여부와 위치를 짐작하곤 했지요. 그런 떨리는 예감이 틀리지 않을 때의 짜릿함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만이 누릴 수 있는 신비로움이었습니다.

 

눈앞에서 날고 있는 새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만 비춰 봐도 근처에 새집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했는데, 새의 부리에 벌레까지 물려 있으니 새집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더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었습니다.

 

 

 

 

경계하는 새의 눈에서 벗어나 사택 계단 쪽으로 물러나와 가만히 새를 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는 나의 행동이 미심쩍었던지 여간해선 둥지에 들지를 않았습니다. 제법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새는 안심을 했던지 둥지 쪽으로 내려앉았고, 새집의 위치를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난 성탄절, 성탄장식을 했던 소나무와 소나무가 넘어지지 않도록 모래를 넣어 사용한 플라스틱 양동이를 예배당 뒤편에 놓아두었는데 놀랍게도 새집은 그곳에 있었습니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양동이 안은 비가와도 비에 젖을 것이 없는 매우 안전한 장소였습니다.

 

양동이 안 소나무 가지를 피해 둥그렇게 만들어진 새집 안에는 - 새는 언제 누구에게서 자기만의 집 짓는 법을 저리도 훌륭히 배운 것일까요 -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새끼 세 마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새끼들은 내 인기척을 듣고는 어미가 온 줄로 생각을 했던지 쩍쩍 입을 벌려대고 있었습니다.

 

가장 은밀한 곳에 숨겨 있던 비밀 하나를 알게 된 것처럼 가슴이 뛰었습니다. 잘 보살펴야지 싶었습니다. 개구쟁이 아이들에게 들키면 새끼들은 장난감이 될 지도 모를 일, 그런 수난 없이 잘 자라 둥지를 떠나게 하고 싶었지요.

 

둥지를 살필 때마다 조금씩 달라져가는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어느새 솜털을 지나 고운 털들이 몸을 덮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새끼 새 한 마리가 둥지에서 떨어져 나와 양동이 안에서 죽어 있었습니다. 내 딴엔 새를 더 잘 살핀다는 마음으로 시간이 될 때마다 둥지에 들른 것인데, 결국 생각하니 이유라면 그게 이유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미로서는 누군가 둥지를 찾는 것이 마음에 걸렸을 것이고, 그런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새끼를 옮기려다가 그것이 제대로 안 되어 그만 새끼가 죽은 것이겠다 싶었습니다.

 

누군가의 비밀을 안다는 것, 그를 돌본다는 이유로 내밀한 비밀을 함부로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치명적인 일인지를 양동이 안에서 죽은 새끼 새는 지금도 엄하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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