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와 별들이 무척 보고 싶은 오늘

한종호의 '너른마당' 2015. 8. 26. 10:47

한종호의 너른마당(30)

 

무지개와 별들이 무척 보고 싶은 오늘

 

 

무더웠던 여름도 이제 막바지 고비를 넘기고 있는 듯 합니다. 바람과 비를 한껏 품은 태풍이 지나가더니 하루 사이에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를 간빙기라고 하지요. 이 시기에 지구환경은 격변을 겪게 됩니다. 지구 전체에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처절한 과정을 거쳤고 인류는 보다 나은 환경으로 이동하는 여정을 밟아나갔습니다. 태양계가 급격하게 팽창하거나 위축되는 우주적 주름살이 만들어지는 이 거대한 충격의 시간은 지구촌의 지층과 기후를 결정하는 때였고, 이로써 인류는 자연에만 의존하는 방식이 아닌 문명을 발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도전과 응전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인류는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셈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매우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온난화 현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되었고 이제는 실제로 우리가 경험하는 지구적 변화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계절개념은 무너져 내리고 있고 예측 불허한 여러 가지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래 전 지구촌의 격변과 오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때에는 어디론가 피할 길이 있었고 그러면서 인류가 살아갈 지역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지구를 탈출하지 않고서는 살 길이 없게 되는 상황이 예견되고 있는 것입니다. 온난화 현상은 지구 어디를 막론하고 영향을 미치고 있고 따로 피할 방법이 없는 환경재앙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급격하게 진행되는 사막화, 견디기 어려운 열대기온, 예고되지 않는 폭설, 대홍수와 해일 등은 지구촌 도처에서 계속 들리는 소식입니다. 이는 우리가 이젠 안전지대에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누군가가 지적했듯이 “불편한 진실”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재앙은 과거의 빙하기나 간빙기의 격변과는 달리 모두 인간의 인위적 죄악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발전이라고 여긴 일체의 산업화가 가져온 재난입니다. 지구를 지켜내고 있는 오존층을 인간 자신이 구멍을 내고 보호막을 스스로 망쳐버린 결과입니다.

 

기온이 달라지면 그건 다른 방법으로 막아낼 도리도 없고, 생태계 전반에 걸쳐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일어납니다. 단지 기온이 몇 도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수준의 문제가 아닙니다. 생태계 전반의 고리가 변하게 되고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의 근본을 흔드는 사태와 이어집니다. 더 나아가서 이는 질병의 발생과 확산까지 가져오는 사건입니다. 이토록 중대한 문제에 대해 이미 세계 기후협약이 마련되어 노력해왔지만 미국은 부시 정권 당시 이를 거부했고 아직도 이는 실천에 옮겨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산업이라는 이익에 묶여 인질이 된 지구촌의 생명입니다.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만 이해하거나 그 안의 에너지를 뽑아내려고만 하는 발상에서 이러한 재앙은 시작됩니다. 건드리면 안 될 것을 건드려 인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자동차 매연의 오염 정도가 아닙니다. 그것도 문제지만, 온실가스의 배출이 지구촌 전체에 걸쳐 팽창하면서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공해 해결능력을 넘어서고 있는 현실은 가공할 지경입니다.

 

나무를 함부로 베어내고 숲을 깎아버리며 강을 뒤집어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일들이 곧 인류의 미래를 벼랑으로 밀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개발은 더 이상 자연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과 다릅니다. 땅을 인간이 살아가야 할 터가 아니라 투기와 개발의 대상으로 인식할 때 자연이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그 귀중한 자산은 파괴되어 갑니다. 자연이 일단 파괴되면 이를 회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걸 마음대로 파헤치고 뜯고 뽑아내고 질식시켜가고 있습니다. 썩지 않는 쓰레기를 묻고, 기후에 영향을 미칠 배기가스에 대한 통제를 가볍게 여깁니다. 그 죄는 부메랑처럼 우리 인간의 현실과 미래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가상의 미래를 놓고 벌이는 논란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생생하게 겪고 있는 비극입니다. 인류 전체가 경각심을 가지고 대응하려 노력해야 할 바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해 기초적인 논란만 있지 실제로 지구 온난화를 막아내기 위한 작은 실천도 생활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의 숲이 사라지면서 지구의 허파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면 지구촌 도처의 작은 아마존 숲이 보호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러한 경고가 이미 시작되었는데도 한반도의 허파에 대한 민감한 각성이 없습니다.

 

그 각성의 부재는 이른바 4대강 사업에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강을 손대는 것은 주변 숲을 망가뜨리는 일과 직결됩니다. 강을 손대는 것은 자연을 질식시키는 일에 그대로 이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지구의 숨결은 가빠지게 됩니다. 산업공해는 감당할 수 없이 자연의 회복력을 손상하게 함으로써 지구 온난화라는 재앙을 앞당기게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해 무덤덤합니다. 경제적 계산만 따지고 있습니다. 이왕 따지려면 제대로 따져야 합니다. 자연의 미래적 가치를 희생시키고 얻는 이익이 과연 얼마일까요? 게다가 그 이익은 누구에게로 돌아가고 있나요? 골프장을 짓겠다고 산을 마구 깎아 우기에 그리도 재난을 자초하더니 강을 뒤집어 어떤 재난을 자초하려는지 알 수 없습니다.

 

지구 온난화도 애초에는 “뭐 별 일 있겠어?”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이렇게 함부로 대한 죄는 과거에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의 운명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지구촌, 땅별이 더는 살 곳이 되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우리 생전에 그런 일이 없다고 해서 후손의 권리를 미리 박탈해버리는 것은 또 옳은가요? 물을 마음 놓고 마실 수 없으리라고는 생각 못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누구도 물을 마음 놓고 마시지 못합니다. 지금 지구촌이 인간이 살 곳이 되지 못한다고 여기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런 생각도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지금 지킬 수 있을 때 지켜야 합니다. 인간이 자기 위주로 파괴한 자연, 욕망을 채우겠다고 추진한 산업, 이 모든 것이 인간의 행복을 진정 만들 수 없음을 깨닫고 새로운 방향 선회를 해야 합니다. 행복의 기준을 새로 잡아야 합니다. 자연과 더불어 자족할 줄 아는 행복의 세계관이 담긴 “오래된 미래”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계속 이러면 인간은 망합니다. 당장 자연을 인간의 욕망에 굴종시키는 오늘의 모든 논리와 결별해야 합니다.

 

생명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때, 우리는 마침내 살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우리는 무지개도 쉽게 보지 못하고 하늘의 별도 제대로 못 보는 그런 메마른 세상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무지개와 별들이 무척 보고 싶은 오늘입니다.

 

한종호/<꽃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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