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이종연의 '아기자기' 2015. 6. 21. 13:18

이종연의 아기자기(22)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은평구 주민이 된 지도 벌써 3주째다. 이사하는 날부터 ‘이웃’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고 기대했던 대로 ‘사람이 사람에게’ 가 닿는 만남 속에 살고 있다.

 

이사하는 날, 평소 가까이 지냈고 우리가 은평구로 이사하는 데 큰 이유가 되었던 건이네 가족이 나서서 도와주었다. 건이 아빠는 차를 빌려서 인천까지 와 주었고 건이 엄마는 휴가를 냈다. 그 덕분에 남편이 이사를 관장하는 동안 나는 이루를 데리고 건이네와 나들이를 갔다.

 

이사하면 꼭 하고 싶었던 게 한 가지 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이었다. 인천으로 이사하면서 전에 다니던 교회를 자연스레 떠나게 되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거리가 멀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새로운 교회를 찾아야 한다는 부담으로 어영부영 고민하는 사이 임신을 했고 몸이 힘들다는 핑계와 갓난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 게 어렵다는 이유로 교회에 발걸음하지 못했다. 다닐 만한 동네 교회를 찾는 것도 솔직히 귀찮았다. 웬만한(?) 교회가 아니라면 인천에 뿌리내리고 살 것도 아닌 뜨내기 처지인 우리가 다닐 만한 교회는 쉽게 만날 수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이루가 어려서부터 교회 생활을 하면서 (문화적으로) 기독교를 접하고, 신앙의 좋은 선배들을 만나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한편의 마음과 나와 남편도 좋은 신앙 공동체를 만나 그 속에서 함께 성장해 가고 싶다는 또 다른 편의 마음이 조금씩 커져 가던 때에 이사를 하게 되어 이 동네에서는 꼭 교회를 다니고 싶었다. 그들과도 좋은 이웃이 되고 싶었고.

 

은평구에는 결혼 전에 남편이 다니던 교회에서 사역하시던 목사님이 개척한 교회가 있었다. 우리가 지향하는 ‘작은 교회’였고, 사실 전에 우리 소개로 건이네도 그 교회에 다니고 있었으며 몇 안 되는 교회 식구들 중 다수를 알고 있었기에 큰 낯섦 없이 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주일마다 ‘교회 다녀왔느냐’ 물어 보시는 시부모님께 ‘그렇다’고 거짓말을 했었는데, 이제 ‘효도용 거짓말’에서 해방되었다!)

 

 

 

교회에는 건이 뿐 아니라 이루 또래의 아기를 키우는 또 다른 가정도 있다. 그 가정도 며칠 전 우리 집 근처로 이사를 했다. ‘만날래?’ 전화 한 통하고 5분이면 바로 만날 수 있는 그런 거리다. 교회 갈 때 차도 얻어 타고, 잠깐 들렀다가 때 되면 밥도 같이 먹고, 필요하면 아이들 이유식도 나눈다.

 

요 사이 이루는 제법 말귀도 알아듣고 사람을 인식하고 기억하는 능력도 발달한 듯하다. 그래서 이모, 삼촌들이 집에 오면 제일 먼저 기어 나가 맞는다. 특히 이모들이 오면 소리까지 지르며 손을 흔들고 웃는 통에 모두들 한바탕 웃는다. 이모들이 잘 놀아 주니 나는 잠시라도 이루를 맡기고 부엌일을 할 수 있어 좋다. 이루는 어색해 하던 친구들과도 제법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그래, 이런 이웃을 만나고 싶었다. 전에 살던 집에 비하면 불편한 점도 있고(확실히 서울은 덥다, 음식물 쓰레기를 특정 요일에만 버릴 수 있다, 자전거를 둘 공간이 마땅치 않아 집 앞에 둬야 한다, 옆 집 공사 소음에 창문을 닫아야 할 때도 있다…) 모기 때문에 며칠 괴로워하기도 했지만(특대형 모기장을 사서 지금은 괜찮다) 이루가 친구들과 자주 만날 수 있고, 나나 남편도 이웃들과 왕래하며 같이 밥 먹고 삶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비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앞으로 이 좋은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다 보면 원치 않는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인연이 오래된 지방 어느 공동체의 대표님 부부와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남편은 그분들께 내가 공동체에서 살면 옆 사람들을 피곤하게 할 거라고 말했다. 가슴 저미는 말이었으나 내가 어떤 일에 대한 기준이 높고 그걸 타인(주로 남편)에게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일견 타당한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다면 내게 관용이 부족해서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못난 나도 이웃과 자주 부대끼며 지내는 동안 좀더 둥근 사람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루에게도 그런 마음 넉넉한 엄마가 되어 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이루와 함께’ 삼십대 중반을 향해 걷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우리의 삶을 다양한 빛깔로 물들일 뭇 사건들을 기다린다.

 

이종연/IVP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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