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울컥녀’의 안녕 우리 집

이종연의 '아기자기' 2015. 5. 31. 13:08

이종연의 아기자기(20)

 

‘셀프 울컥녀’의 안녕 우리 집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네가 최고의 ‘셀프 울컥녀’야.”

 

저녁밥을 먹다 혼자 또 울음을 터뜨리는 나를 보며 남편이 말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엄마를 지켜보던 이루는 내가 쉽게 울음을 그치지 않자 덩달아 울기 시작했다.

 

“이루가 울잖아. 그만 울어.”

 

나는 울음을 그치기 위해 이루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다.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어흑흑.”

 

노래를 부르다 이내 또 울음이 터졌다. 좀 부끄러운 이유로 울었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사실 좀 우울하고 누군가 “더 울어 봐” 하면 충분히 오래 울 수 있을 것 같다. 아, 내가 생각해도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최고의 ‘셀프 울컥녀’는 내가 맞다.

 

 

 

 

이제 3일 후면 이사를 한다. 몇 달을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다. 그만큼 이유가 충분하고 또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지낼 시간들이 기대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셀프 울컥녀’인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이 곳을 떠나는 게 영 아쉽고 슬프다. 이루 때문이다.

 

이 집에 살면서 이루를 얻었다. 이 집에서 열 달을 지내며 이루는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했다. 아기를 낳으러 가기 전날 밤에도 나는 집 정리를 했다. 새 식구를 들일 공간이었으니까. 솜털처럼 가벼운 아기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온 날, 눈도 잘 뜨지 못하는 아기를 데리고 이 방 저 방 다니며 “이루야, 여기서 엄마 아빠랑 같이 살 거야. 우리 잘 지내 보자” 했다. 그리고 다시 열 달을 이루와 이 집에서 지냈다. 이 공간은 정말이지 이루의 (그토록 짧은) 인생 대부분의 추억이 깃든 곳이란 말이다. 이 집에서 뒤집기를 했고, 앉았다. 기기 시작하고서 이루는 집안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모든 게 장난감이었고 모든 공간이 놀이터였다.

 

요 며칠 이사할 집 도배며 청소를 한다고 남편이 계속 바빴다. 남편은 먼 길 오가며 일하느라, 나는 집에서 혼자 아기 보느라 수고했다며 한 상 차려 놓고 밥을 먹던 참이었다. 자연스럽게 이사 이야기가 나왔고 맞은편 식탁의자에 앉아 있던 이루를 보는데, 이 집에서 이루랑 쌓은 추억이 엄청 많고, 그게 이루에게는 인생 대부분의 추억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 울음이 터진 것이다.

 

추억은 이미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이고 말 그대로 이미 지나 버려 과거에 속한다. 시간으로서의 과거는 돌이킬 수 없지만, 추억의 장소는 때로 찾아가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집에는 다시 올 수가 없다. 발코니에서 유리문에 기대서서 빨래 너는 엄마를 보며 활짝 웃던 이루, 화장실까지 따라오겠다며 성큼성큼 기어 오던 이루, 최고의 놀이터 주방에서 엄마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히죽히죽 웃던 이루. 그 모든 모습을 이제 마음에만 고이 담아 두어야 한다. (이게 뭐 울 일이라고 거 참. 눈물이 다 아깝다?)

 

이루야 이 집에서 우리 참 행복했어, 그렇지? 내일은 우리 이루 데리고 이 방 저 방 다니면서 사진 찍어 줄게. 책장 붙잡고 서 있는 모습도 찍고, 책상 밑에 들어가서 노는 모습도 찍자. 안방에 가서는 침대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도 찍어야지.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까꿍 놀이’도 하자. 그렇게 아쉬움을 달래자.

 

새로운 집에서도 즐겁게 지내겠지만, 아마 처음부터 이 집에서처럼 익숙하게 놀지는 못할 거야. 아니, 처음에는 낯선 공간에서 지내는 게 아기에게도 스트레스라고 하더라. 몇 번 같이 가서 ‘앞으로 이 집에서 지낼 거’라고 얘기해 주긴 했지만 엄마도 어색할 텐데 너도 당연히 그렇겠지. 그래도 차차 적응하면서 그곳에서 새로운 추억을 쌓아 가자. 엄마 아빠랑 같이 있으면 어디에서나 이루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기니까 잘 할 수 있겠지? (혹시 잠자리가 바뀌어서 자주 깨더라도 엄마 아빠가 당황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안심시켜 줄게.)

 

이루 핑계를 대며 이 집을 떠나는 아쉬움을 이렇게 달랜다. 안녕 우리 집, 잘 있어.

 

이종연/IVP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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