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가는 이유

이종연의 '아기자기' 2015. 5. 17. 10:44

이종연의 아기자기(18)

 

이사를 가는 이유

 

 

이사를 앞두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으로 이사한 날 바로 다시 하고 싶었던 이사다.

 

2년 전, 여러 사정과 상황을 반영하여 태어나 처음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동생과 같이 살게 되어 방 한 칸 더 있는 집이 필요했고, 남편은 외곽으로 빠지더라도 좀더 쾌적한 곳에서 살고 싶어 했다.) 문제는 내가 아파트를 참으로 괴기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는 데 있었다. 좁은 땅덩이에 머리 하나 누일 곳이 없어 콘크리트를 수십 층 쌓아 올려 그 위에 겨우 몸을 누일 수 있는, 참으로 비인간적인 곳이 아파트 아닌가. 어려서부터 마당 있는 집에 산 까닭에 인구가 미어터지는 서울에 살면서도 그 꿈을 버리지 못한 미련한 사람이 아파트를 좋아할 리 없었다.

 

이 집으로 이사하고 나서, 나는 일기장에 ‘감옥에 입장하는 기분’이라고 소회를 남겼다.

 

“아파트로 들어서는데, 짜증과 동시에 몸이 조여 오는 듯한 갑갑함에 분노가 일었다. 포로가 된 것 같은 억울함이랄까. 내 등 아래로 누군지 모를 11명의 배가 있는 것이나, 내 배 위로 8명의 등이 있는 이 상황은 전혀 인간적이지 않다. 이게 과연 집인가. 왜 좀더 신중하지 못했을까, 왜 좀더 (아파트는 싫다고) 내 주장을 펼치지 못했을까, 내가 이렇게까지 힘들 줄 몰랐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이곳에 사는 2년 동안 이 생각은 옅어지다 못해 나는 아파트를 몹시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모기에 한 번 물리지 않고 여름을 났고, 주택에 살면서 두 번이나 도둑이 들었지만 아파트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밤낮 골목을 울리며 지나는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도, 위층에서 내려오는 찢어지는 듯한 아주머니 목소리도 없었다. 4월이면 아파트 단지가 온통 벚꽃으로 뒤덮였고 5월이면 이팝나무 흰 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수납공간이 충분해 청소도 수월했다. 아, 아파트의 장점을 말하라면 밤도 샐 수 있겠다.

 

 

 

 

 

하지만 이루가 태어나면서 남편과 나는 계속 이 곳에서 사는 게 과연 괜찮은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친구 하나 없는 이 동네에 사는 것이 이루에게 좋을지, 또 우리가 외롭지 않게 육아를 할 수 있을지 자문했을 때 이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이 사는 몇 지역이 후보에 올랐다. 하연이네가 사는 광명, 지아․민아네가 사는 부천, 건이네가 사는 서울, 로미네가 사는 남양주, 수린이네가 사는 양평…. 모두 이루 또래의 자녀를 키우고 있고, 지금보다 가까이 지내고 싶은, 좀더 멀리 함께 인생을 내다볼 수 있는 친구들이었기에 우리 부부는 몇 달 동안 어디로 이사를 할지 거듭 고민했다. 그 결과, 내가 일하는 곳까지의 거리를 감안하고 또 아빠가 육아를 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건이네가 사는 서울 은평구로 결정했다. 너무 오래 고민한 탓인지 지역을 결정하고 나니 속이 다 후련했다.

 

하지만 외곽에 살다가 도심(이라고 해봤자 지하철 6호선 끄트머리이지만…)으로 이사를 하려니 아파트는 엄두도 못 내고 지금보다 좁은 다세대 주택으로 가야 하는 현실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부동산에서 소개해 주는 몇 군데 집을 다녀 보니, 이 집에 살면서 새로 산 장롱, 소파, 책장, 식탁 모두 버려야 할 판이었다. 다행히 남편이 지도까지 외울 정도로 인터넷 부동산을 뒤진 끝에 오래되긴 했지만 가구를 버리지 않아도 되는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보름 후에는 그 집에서 새로운 날들을 보내게 될 테다.

 

거처를 옮길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집으로 이사할 때 그러했듯 만 2년을 채우고 이사를 하는 이번에도 그러하다. 이루는 우리 가족 중에 가장 작고 여리지만, 그래서 가장 세심하게 이 아이의 필요를 살펴 채워 주고 보호해 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보다 환경은 조금 모자라지만, 이루가 또래와 함께 자랄 수 있는 곳에 살게 되어서 다행이다.

 

우리의 이사가 ‘사람이 사람에게’ 가닿기 위한 고민의 결과라고 믿고 싶다. 말과 생각은 번지르르한데, 정작 이사 후에 지근거리에 친구를 두고 살면서도 다시 외딴 섬에 사는 듯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허물없이 따뜻한 밥 한 끼 나눌 수 있고 충심으로 조언도 주고받을 수 있는 이웃이 되고 싶다.

 

이사 전에 도배와 입주 청소도 해야 하고, 줄어드는 수납공간을 감안해 불필요한 것들도 미리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 대출 신청한 것이 무리 없이 잘 마무리되어야 할 텐데! 여러 해야 할 일들에 치여 어느 때보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우리 딸 이루에게 소홀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이사를 하는 이유가 바로 요 소중한 녀석 때문이니까.

 

이종연/IVP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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