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이유식?

이종연의 '아기자기' 2015. 5. 3. 14:53

이종연의 아기자기(16)

 

자연주의 이유식?

 

 

모유만 먹던 이루가 땅이 내는 소산인 쌀을 먹기 시작한 지 5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처음엔 곱게 간 쌀로 미음을 쑤어 그조차 바로 못 먹이고 체에 내려 하루 한 번, 겨우 한두 숟가락 먹이는 것으로 시작한 것이, 지금은 하루 세 번 엄마, 아빠와 함께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다. 아직 간을 전혀 하지 않은 진 죽을 먹으며, 제 손으로 숟가락 쥐는 것도 영 시원찮지만, 아래위에 두 개씩 난 이를 사용해서 (연한) 음식을 잘라 먹을 줄 알고 잇몸으로 오물오물 씹어 삼키는 모습은 볼 때마다 신기하고 기특하다. 요즘은 잔근육이 발달해 손으로도 이것저것 잘 집어 먹는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 먹던 걸 엄마 입에 넣어줄 때면 (거짓말 많이 보태서) ‘다 키웠군’ 싶다.

 

 

 

이유식을 시작하기 전 무얼 어떻게 만들어 먹여야 할지 모를 때, 이유식 책 두 권을 접했다. 한 권은 아이 키우는 부모라면 이름만 대면 아는 책이고 다른 한 권은 《다시 쓰는 이유식》이다. 두 책은 내용이 무척 다르다. 아이에게 무엇을 먹여야 하는지에 관해 무려 정반대의 주장을 펼친다. 《다시 쓰는 이유식》이 일반적이지 않은 주장을 한다고 보는 게 맞겠다. 아마 부모가 지향하는 나름의 신념이나 가치가 없는 상태에서 이 두 책을 동시에 본다면 무척 혼란스러울 것 같다.

 

전자는 6개월부터는 꼭 고기를 먹이라 하고, 후자는 돌 전에는 먹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전자는 백미로 시작하라 하고, 후자는 현미로 시작하라 한다. 이 두 부분이 가장 다르고 그 외에 이유식을 만들고 먹이는 방법 등은 비슷하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각 책이 제시하는 나름의 근거가 충분하다고 느껴지고 또 그 주장의 강도가 세기 때문에 그 둘을 절충해서 먹일 방법은 없어 보인다.

 

《다시 쓰는 이유식》은 이유식을 시작할 즈음 이루보다 다섯 달 먼저 태어난 건이네 집에 놀러갔다 소개받고, 빌려와서 읽다가 어찌어찌하여 아예 갖게 된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이 나에게는 더 설득력이 있었다. 그래서 이루에게 처음부터 현미를 먹였고 곧 11개월 차에 들어가지만 아직 고기를 먹이지 않는다. 보통 이유식 책에서는, 생후 6개월이 되면 모유나 분유로는 철분 공급이 부족하니 꼭 고기를 먹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시 쓰는 이유식>에서는 아기들의 위장은 아직 미성숙해서 단백질을 충분히 분해할 수 없기 때문에 고기를 먹일 경우 알레르기와 아토피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또 흔히 이유식은 흰 쌀죽으로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말하지만 《다시 쓰는 이유식》에서는 흰쌀은 영양이 제거된 쌀일 뿐 아니라 씹지 않고 넘길 수 있어 아기들이 부드러운 음식만 좋아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반면, 현미는 씨눈의 영양과 껍질의 섬유질이 살아 있어 어른이 되어서도 먹어야 하며, 이유기가 현미를 먹기 위한 훈련을 하는 시간이라고까지 말한다. 고기는 고민이 좀 됐지만, 현미는 평소 내가 먹기 때문에 좀더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이유식을 시작할 무렵, 고민 없이 선택한 게 있다면 그건 유기농 재료만 사용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생협을 이용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유기농 재료가 비싸긴 하지만 나는 하나님이 주신 몸을 소중히 돌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으로 땅이 오염되면(이미 인간은 농사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땅을 오염시키고 있지만 그럼에도) 다음 세대의 먹을 거리까지 오염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내게 그럴 권리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생각에 이를 수 있었던 건 기자로 일하면서 유기농 농사를 짓는 분들을 꽤 많이 만난 경험 덕분이다. ‘생명’의 고귀함을 일깨워 준 그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러나 이쯤에서 고해성사를 해야겠다. 생협을 이용하면서도 남편과 나는 너무나 자주 불량식품을 기꺼이 아니 대놓고 즐겁게 먹는다는 사실을. 임신했을 때와 수유 초기에는 엄청 조심하며 지냈는데 언제부턴가 기준이 많이 느슨해졌다. 간식과 야식을 좋아하는 남편 탓이라고 하기에는 그런 것들을 먹고 싶은 나의 욕구도 만만치 않음을 안다. (과자며 치킨이며, 아 세상에는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 밖에서 음식을 먹을 때 유기농 재료만 쓰는 곳을 찾기란 월리를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유별나다는 소리 듣는 것도 싫어서 그건 포기한 지 오래다. 대신 가능하면 생협에서 주문한 재료들로 집에서 만들어 먹으려고 애쓰는데, 그런 노력을 하면서 동시에 불량식품을 먹으니 어디 가서 생협 이용한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아직은 유기농 재료로만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할 수 있는 한 꽤 오래 이루에게 과당이 들어간 과자나 튀긴 음식은 주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언젠가 이루도 “엄마만 먹지 말고 나도 좀 달라”고 할 때가 오겠지. 요즘도 내가 뭔가 먹고 있으면 물끄러미 쳐다보며 입맛을 다시니 그날이 그리 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도 “절대 안 돼”라고 할 만한 심지가 없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결국 '타협'하며 살게 될 것이기에 이루도 신세계를 발견할 그날이 올 텐데, 위에 말한 대로 할 수 있는 한 그날이 최대한 늦게 오도록 애써야겠다. 그러려면 나부터 느슨해진 식습관을 다시 바로잡아야 할 듯하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가 자란다”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꼭 아이를 키우는 사람만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들에게서 느끼는 우월감이 불편해서다. 그럼에도 오늘 아이를 키우는 까닭에 내 식습관을 돌아보게 됐으니 나처럼 모자란 사람에게는 좀 맞는 말인 듯도 하다. 여보, 우리 당분간 야식 금지야!

 

이종연/IVP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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