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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시노래 한 잔

지구별 학교, 이태원 교실

by 한종호 2022. 11. 13.



얘들아
있잖아

엄마가 어릴적에 
뛰놀던 골목길에선

동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노랫소리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지

아침 밥숟가락 놓자마자
뛰쳐나가서 뛰놀던

그 옛날
엄마의 골목길은

신나는 놀이터였고
생의 맨 처음 배움터였지

아랫집과 윗집을 이어주는
앞집과 앞집을 이어주는

놀이에서는 그 누구든지 
친구가 될 수 있는

어디로든 통하는 길
그 골목길 사이로 

우물만한
하늘이 보이는 우리들의 땅

오늘도
골목길에서

언니들을 따라부르던
동네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아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
온 세상 어린이가 하하하하 웃으면

그 소리 들리겠네 달나라까지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노래를 부르며 자라난
온 세상 아이들이

오늘은 친구와 친구끼리
엄마랑 이모와 딸이

아빠 손 잡고 나온
어린 아들이

어릴적 영어유치원에서 
사탕 나누던 즐거운 추억을 되새기려

온 세상 친구들을 다 만날 수 있는 
이태원 골목길로 하나 둘 모여든 여기는

얘들이 있는 곳이라면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 
마땅히 안전해야 할

지구별 학교
이태원 교실

SKY 신화로 올가미를 씌워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세우는

원시시대 동굴 같은 
일제강점기 똑똑한 노예만들기학교

원시시대 교실 창문에서 보이던 
네모난 하늘을 벗어나

오늘도 아침 밥숟가락 놓자마자
탁 트인 골목길로 뛰쳐나와서  

활짝 열린 가슴으로 
마음껏 자유의 숨을 쉰다

이태원 교실에서
이제는 별이 된 

얘들아
있잖아

하늘 출석부에선 숫자가 아닌
이름으로 부르고 싶지만

사진 속 앳된 얼굴을 
차마 바라볼 수가 없어서

대답 없을 이름을
차마 부를 수가 없어서

이모 가슴은
사방이 꽉 막힌 네모난 원시시대 교실 같아

오늘도 가슴이 이렇게 답답하여서
혼자서 울다가 잠이 든다

눈물로 이어진 귓가에선
오늘밤에도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지구별 학교 이태원 교실
누구든지 친구가 되는 행복한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온 세상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이 어둡고 어둔 세상 
깊어가는 가을 밤하늘을 울린다

이 푸른 땅 
머리 위로

그리고 
가슴속으로 펼쳐진

어디로든 통하는 
하늘에서

푸른 꿈을 꾸던
아름다운 우리의 아이들이 

이제는 
이 어둔 세상을 

촛불처럼 밝히는
별무리가 되어 밤하늘에 가득 빛난다

눈물인지
별빛인지

눈이 부시도록
이 땅을 비춘다


* 동시 <앞으로>, 윤석중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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