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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가 2022년을 보고 있다면 뭐라고 얘기할까?

by 한종호 2022. 6. 29.




잠결에 콰르릉 쾅쾅 귀를 찢는 커다란 소리에 놀라 깼다. 산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져 터질 듯한 굉음에 혹시 하늘도 땅에서처럼 지진이라도 난 것일까 싶을 만치. 하늘에서 어디 비행기라도 추락했나 여길 만큼.

무심하기만 한 하늘인 줄 알았는데, 그동안 꾹꾹 참았던 속내를 드러내기라도 하듯 무섭게 하지만 시원하게 한반도 전역으로 소나기가 퍼부었다. 

아침 출근길부터 여러모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비 오는 날이지만, 이렇게 내리는 비가 마냥 반갑기만 한 것은 오랜 가뭄을 우리 모두가 다함께 지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먼저 피부로 느꼈을 농민들은 그 답답한 마음에 기우제까지 올리고 싶었다지 않은가. 논에선 어린 모가 잘 크고 있는지 제법 초록 풀빛으로 덮이었다. 그런 비라고 생각하니 그저 반갑고 고맙다. 앞으로 큰 물난리만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다.

2022년 3월 9일 대선 이후 실제로 나의 내면에선 하늘이 울리고 땅바닥이 갈라지는 체험을 하고 있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의 지난한 터널을 지나오면서도 비록 생활은 많이 불편했지만,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지금에 비하면 마음은 그럭저럭 편안했던 것 같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정책자들과 방역 당국에 대한 믿음이 저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잘 하든 못 하든 온 나라 안팎으로 길거리가 텅 비고 가게마다 손님이 없는 나날이 계속되어도, 그리고 때가 되면 월세 월급이 꼬박꼬박 나가고 적자가 나더래도, 적어도 정부가 국민을 위하여 밤잠도 안 자고 깨어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항상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코로나19의 터널 막바지에 다다른 지금, 3월 9일 대선 이후 넉달이 넘도록 현 정부가 국민들을 위해서 한 일이 무엇이 있는가? 대선 전부터 예상했던대로 현 정부로 인해서 걱정과 근심만 날로 쌓여 가고 있다. 왕놀이에 빠진 그들을 두고 혹자는 탄핵 마일리지를 쌓아가고 있다고도 하던데, 잠결에 내 귓가를 때리던 천둥소리처럼 실감이 나는 건 왜일까. 

'정치'라는 말뜻에 대하여 혹시 내가 상식적으로 알던 뜻 외에 다른 속뜻이라도 더 있는가 싶어서, 국민으로서 더 넓은 아량을 베풀기 위하는 마음을 더 내어 보기로 하고 더 찾아서 공부하고 지금도 거듭 스스로 묻고는 있다. 그러면서 거듭 새기게 되는 '정치'의 본뜻이란, '정의'라는 한 글자가 그 나무의 뿌리임을 확인하게 될 뿐이다. '정의' 위에 바로 서지 못한 '정치'란, 엎어진 고사목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썩어가는 고사목에는 눈 멀고 탐식만 하려는 벌레들만 우글거리고 있다는 이치를 요즘 세상은 생중계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6월 28일 나토회의에 참석 차 스페인 공항에 도착한  대한민국의 항공기, 도착 당시 스페인 공항의 썰렁함이 냉수 한 사발을 들이킨 듯하다. 대한민국 모든 언론사와 포털 뉴스와 유튜브 그 어디에도 그 썰렁한 사진 서너 장 뿐, 그리고 공항에서 그대로 숙소로 들어갔다는 기사 내용 뿐. 대통령 내외를 환영하기 위해 나온 단 한 명의 현지 교민도 없었다는 기사가 바로 대한민국 현 정책자에 대한 교민들의 상식적이고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으로 보인다. 

국내의 국민들은 그저 답답하지만, 국외의 교민들은 국가의 수치, 부끄러움까지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해외 동포의 생활이란 그런 것이니까. 나라의 격이 올라가면 덩달아 격이 올라가고, 떨어지면 한없이 떨어질 수도 있는 처지. 한창 이란과 아라크 전쟁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을 무렵, 인도에서 만난 미국인 샘은 다국적 여행자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하기에 맨 처음 "I'm sorry, I'm American."라고 하던 그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맞은 편에는 자기 나라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전 세계를 떠돌고 있다는 이란 여성이 앉아 있었는데 그녀를 의식했던 것이리라. 

1945년에 발견된 <도마복음>이 당시에 프랑스의 르몽드지에 실린 적이 있다. 얼마 전 도올 선생의 <도마복음>을 읽다가, 발견한 문장인데 순간 아찔해졌다. 한 번 실린 기사는 역사에 길이 남는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영부인이 콜걸 출신이라는 르몽드지의 기사문은 전 세계의 지성인이라면 이미 다 보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공영 언론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을 뿐. 나는 사실 2번을 찍은 사람들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그 정도로 안목이 없을 수 있는가. 욕심에 가려 정작 그들 얼굴에 새겨진 악의적인 실체가 보이지 않는 것인가. 그렇지만 이제는 <그대가 조국> 이후 무겁게 들고 있던 그 마음도 내려놓고 있는 중이다. 나라 안팎으로 지성인들의 연대가 지닌 힘이 든든하기에. 지금 내겐 깨어서 꾸준히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지금 이웃 국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인 이 불안한 시국에 나토회의 차 대통령의 외교 방문이란, 수험생이 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순간보다 몇 갑절은 집중을 요해야 하고,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기 위하여 충분히 준비를 해야만 하는 자리라고, 국민의 한 사람인 필자도 생각하는데, 아닐 수 있는가? 동행한 기내 탑승자 중에 8할이 언론 기자들로 구성된 이유가 따로 있는가? 외교 시험에선 9수를 허락치 않을 것이다. 을사늑약 때 나라를 팔아 먹은 방법은 을사오적의 손끝 다섯 개가 전부였다.

비행 중 '깜짝 등장', 기자들 무리를 찾아가 스스로 나선 짧은 기내 인터뷰에서 대통령 자신은(혼잣말로, 단 한 명의 기자도 질문 없음) 스페인 방문을 두고, 자신은 "기내에서 축구를 봤고... 가면 얼굴이나 익히고... 필요한 자료는 대변인이 잘 알아서 설명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마지막으로 기자들에게 준 미션, "마드리드에서 즐거운 시간 많이 보내세요.", 원래 외교란 일하러 가는 자리가 아닌 해외여행처럼 놀러가는 자리였던가? 어찌 한 국가의 대통령이란 자의 입이 종이비행기보다 더 가벼울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떤 무리배들이 그들에게 소쿠리비행기를 태워주고 있는지 참 이상한 나라다.

사막에 불시착한 생텍쥐페리의 비행기 생각이 난다. 그날처럼 어린 왕자가 나타나서 윤통 내외를 보게 된다면 어떤 말을 들려줄까? 궁금해진다. 올 한 해처럼 마음이 심란할 땐 이런저런 생각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 서로 엉키기도 한다. 다행히 내겐 습관처럼 흐트러진 마음의 결을 고르는 단순하고 쉬운 방법이 있다. 훌쩍 차를 몰아서 나무가 많은 산속에 안기거나, 떠날 형편이 안 될 땐 그처럼 숲의 향기를 머금은 책을 찾아 읽거나 그냥 그대로 뻗어 잠을 자는 일이다. 

내 책꽂이에는 그동안 많이도 버리고 간추려 남은 책들이지만, 지금은 이 책들이 또 작은 방을 더 비좁게 좁혀오고 있는 형세다. 아직 다 읽지도 못했는데, 그냥 버리기엔 아까워, 하나씩 버리기 위해서 먼저 하나씩 읽어나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존경하는 영성가들의 책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 <깨어 있음>이라는 종교 간 융합을 위하는 책을 읽다가 더 답답한 마음이 밀려와 오히려 덮어버리었다. 요즘 들어 곳곳에서 일부러 매일 분홍색 넥타이를 멘 목회자들을 보게 되면 쓸데없는 의심이 들어 마음이 불편하다. 모든 이름 있다는 이들의 책이 영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

책꽂이 앞에서 마음 둘 곳 없어 유영하던 내 마음이 불시착 한 곳은 법정 스님의 저서들이 꽂힌 곳이다. 나는 법정 스님의 마음결에서 신약에서 읽은 예수의 마음을 본다. 스님의 저서들은 몇 해 전에 부산 보수동 책방 골목을 찾아서 구해온 보물들이다. 1970년대 말~ 1980년에 걸쳐 씌여진 법정 스님의 <산방한담>을 펼치었다. 책의 구조는 거꾸로 앞 표지가 뒤로 가 있고, 본문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씌여진 상하향 문장이다. 익숙하지 않은 글방향이지만, 세로로 씌여진 글이 마치 오랜 가뭄 끝에 하늘에서 내리는 단비처럼 마음밭을 적셔줄 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신선하다.

법정 스님의 글에선 언제나 종교 냄새보다는 자연의 향기가 가득하다. 절이 생기기 이전에 수행이 먼저 있었다는 스님의 글에선 존경하는 수행자로 사막의 교부들과 성 프란치스코 성인도 종종 등장하신다. 맨 첫 장을 시작하는 글제목은 '거꾸로 보기', 여기서 '거꾸로 보기'라는 말이 나온 정황을 알게 된다면, 법정 스님과 어린왕자의 일치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책의 제일 첫 문장은 이러하다. '침묵의 숲이 잔기침을 하면서 한 꺼풀씩 깨어나고 있다.' 

마치 스님의 잔기침이 조계산을 깨우고 있는 것만 같다. 이 글을 쓰시던 당시에도 기침이 있으셨구나. 봄날 든 감기 이후 내내 잔기침이 붙어 살고 있는 내겐 꼭 나의 내면에서 울려오는 음성 같기도 하다. 폐가 약했던 스님인데, 강원도 오두막의 미친 바람(스님의 표현)이 얼마나 폐를 할퀴었을까. 나처럼 아둔한 군상들로 인해 더 깊이 들어가신 스님. 함께 깨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어린왕자 같은 벗이 스님 곁에 살고 있었다면, 기침이 밤잠을 깨워 홀로 맑은 시간을 갖게 해줘 오히려 고마워했다는 스님의 기침이 순천 송광사의 조계산처럼 좀 더 유순하고 잠잠해지지 않았을까. 나는 여전히 혼자 있을 때면 이런 생각들을 하며 아득해지곤 한다. 

<무소유>에서처럼 <산방한담>에서도 스님의 글에선 나라 안의 정경이 그대로 펼쳐진다. <무표정>이란 제목의 글에선 버스를 탄 시민들의 얼굴을 두고 뜻으로 풀어내기도 하신다. 1979년, 1980년 당시의 시국을 두고, 그려내시는 국내의 정세와 스님의 심경이 꼭 오늘날의 국내 정세와 시민들의 마음과도 그대로 겹쳐진다는 사실을 확인해가며, 놀랍기도 하고 가슴을  슬어내리기도 하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게 된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60년을 주기로 어려움이 반복되었다고 한다. 외침이 있거나 국란이 있거나. 하지만 스스로 책을 읽고 생각할 줄 알고 스스로 깨어난 지혜로운 국민이 많은 나라는, 그 역사를 스스로 개척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또한 하늘과 땅에 잇닿은 순리일 터.

현 시국을 두고 묻고 싶었다. 눈 밝고 눈 맑은 선승이나 선각자한테, 아니면 어린왕자한테라도. 책의 초반부를 지나면서 출판사의 요청에 의한 듯, 사찰 순례에 대한 글들이 이어진다. 송광사, 해인사, 통도사, 운문사, 쌍계사, 화엄사, 직지사 등등. 여기서 사천왕상에 대한 스님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 본문을 그대로 옮기면, 

'큰절에는 대개 일주문을 거쳐 천왕문을 들어서게 되는데, 천왕문 안에는 좌우로 사천왕상이 안치되어 있다. 그 모습이 좀 괴이해서 뒤가 꿀리는 사람들은 흠칫 놀라게 된다. 어떤 천왕은 그 발 아래 관모(官帽)를 쓰고 있는 관리를 혀가 빠지도록 짓밟고 있다. 이건 주의해서 살펴볼 만하다. 무고한 백성들을 괴롭힌 부패관료이거나 정치적인 음모에 놀아난 검사나 법관들, 혹은 당초의 공약을 이행하지 않고 온갖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들이 사천왕의 징계를 받고 있는 광경인지도 모르겠다.'(<산방한담>, 샘터, 120~121쪽) 스님 글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멘"

1980년 4월. 스님의 글에서 언급하신 부패관료, 검사, 정치인 이 셋을 다 통합한 자가 현 정부의 불통령인 대통령이 아니던가. 참 기가 막히는 합체이다. 거기에 혹이 하나 더 붙어 있다. 범죄자가 배우자라는 사실이다. 스페인 교민들이 만장일치로 외면한 부부. 국내 공영언론보다 더 정확한 것이 해외 언론인 현실이 씁쓸하다. 내 안목에는 그들 부부가 사랑하는 사이로 보이지 않는다. 빵셔틀이란 게 있다는데, 아이들의 학교에 있다는 일진처럼. 비정상적인 주종관계로 보이는 것이다. 마치 약점(범죄 혐의)이라도 잡힌 악인이 그 약점을 쥐고 이용하려는 악인 앞에서 절절 매는 꼴로 보인다. 검사집단과 관련한 상류층들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약점을 손에 쥐고 있길래, 명명백백한 다수 혐의의 범죄자가 영부인 행세를 하며, 공영언론에까지 재갈을 물릴 수 있었을까? 

하지만, 우리네 눈 밝은 깨어 있는 시민들과 스페인 교민들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깨어난 교민들의 눈은 속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호주의 시드니에서 상영된 <그대가 조국>은 백삼십여 석이 넘는 좌석이 일찌감치 매진이 되었고, 촛불 시민들과 같은 교민들의 뜨거운 반응에 계속해서 상영의 불꽃이 전 세계로 번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유튜브(관련 검색어)를 통해 실시간 현장 확인 가능하다. 참 든든하고 고맙다.

지금도 어린 왕자가 탔던 비행기가 이 땅 지구별 어딘가에 불시착할지도 모르겠다. 하늘에 별처럼 정의가 내 마음에선 늘 살아서 빛나고 있으니까. 나는 오늘 <산방한담>을 읽으며 사천왕상으로 풀어낸 법정 스님의 대답을 들었다. 답답하던 마음에 시원한 바람 한 줄기 같은 시원한 느낌이 드는 건, 시공을 뛰어 넘어 같은 지성으로 충분히 함께 공감할 수 있다는 연대감으로 인함이 아닐까. 마음이 통하고 말이 통하는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 천국이 아닐까. 

스페인에 도착한 그 꼴불견 무리배들이 이 지구별과 대한민국에 누를 끼치지는 않아야 할 텐데. 한 번쯤 사찰을 방문해 본 한국인이라면, 사천왕상이 두 눈 부릅 뜬 모습을 흠칫 떠올릴 수 있으리라. 돌아올 때는 어디 고비 사막에라도 불시착 아니면 경유라도 하여 몸고생이라도 한다면, 혹시나 더 나아가 사막의 교부들처럼 몸고행으로 이어진다면 그들 영혼엔 더없는 복락이 되리라. 관모를 쓴 자를 알아 보시는 사천왕 하늘과 땅과 비행기와 어린왕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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