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숙의 글밭/시노래 한 잔

멍 한 순간

by 한종호 2022. 4. 11.


멍 한 순간
멍해지는 순간은

내 안으로
하늘이 들어차고 있는 시간

보이지 않는 손짓으로
나를 지우시고 있다는 신호

하얀 백지처럼
푸른 창공처럼

이렇게 또 나를 어린 아이로 데려가신다
이어서 태초의 없음으로 데려가신다

그러면, 나는 그냥 말없이
하나 둘 셋, 몸에 힘을 빼면서

귀를 열고서
그냥 숨만 쉬면 된다

허공 중에 반짝 
한 톨의 먼지가 일어

한 점 숨이 된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닌 나에게

지나가는 바람이
한 톨의 말씀을 

이미 하늘로 가득찬 너른 땅
내 마음밭에 떨구어 주시며

낮아진 가슴으로 
숨을 불어 넣어주신다

그러면 나는 나도 모르게 
아득히 먼 깊은 데서부터 

알 수 없는 고마운 마음이 출렁이어
샘솟듯 눈물이 차올라 

빈 방에 촛불 하나 켠 듯 
가슴이 따뜻하여진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