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명태찜



한가위 명절 마지막 날
늦잠 자던 고1 딸아이를 살살 깨워서

수운 최제우님의 유허비가 있다 하는
울산 원유곡 여시바윗골로 오르기로 한 날

번개처럼 서로의 점심 때를 맞추어 짬을 내주시고
밥도 사주신다는 고래 박사님과 정김영숙 언니 내외

끓는 뜨거운 돌솥밥과 붉은 명태찜을 사이에 놓고 
마주 앉아 간직했던 소중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언니와의 첫만남에서 서로가 짠 것도 아닌데 둘 다
윤동주와 김용택 시인의 시집을 똑같이 챙겨온 이야기

그것으로 열여덟 살 차이가 나는 우리는 단번에
첫만남에서부터 바로 자매가 된 이야기

동경대전에 나오는 최수운님의 한시를 풀이해서 해설서를 적으신 고래 박사님의 노트 이야기

청수 한 그릇 가운데 떠놓고 
모두가 둘러앉아 예배를 드린다는 천도교의 예배와

우주의 맑은 기운을 담은 차 한 잔 올리는 다례법과 이어지는 한국의 고대 차례법 이야기

예수님과 제자들의 두레밥상 이야기
석가모니와 제자들의 대화가 경전이 된 이야기

김치와 물김치와 멸치와 김과 부추전 영양 반찬처럼  
둥근 이야기들을 푸짐하게 풀며 나누다 보니

숟가락과 젖가락은 쉬질 않았건만
밥그릇에 밥은 천천히 줄고

돌솥에 끓던 누룽지 숭늉은 한 김 식어 푹 퍼져 
먹기 좋은 순한 물밥이 되어 날 어린 시절로 데려온다

문득 명태찜 둥근 접시를 보니까
명태살들이 우리 모녀 앞으로 다 밀려와 있다

분명히 나는 바닷가 저쪽으로 간간히 밀어보내었는데
파도에 밀려 도로 해변가로 떠밀려온 물고기들처럼 

둥글고 커다란 명태찜 접시가 
울산의 푸른 앞바다처럼 출렁이고 있었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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