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벗은 나무의 아름다움

 

 

 

봄볕이 따스합니다. 생명이 출렁거리는 계절입니다. 그야말로 시들고 죽어가고 있던 것들마저도 새로운 기운을 얻어 기뻐하는 시간입니다. 대학 교정에는 청춘의 활기가 그득합니다. 캠퍼스 이곳저곳 숲 속에는 희망을 나누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그곳에는 내일의 힘이 자라나고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황금가지》를 쓴 신화연구가 조지 프레이저는 겨울과 봄의 투쟁을 말하고 있습니다. 풍요를 비는 곡물제를 지내면서, 겨울의 차가운 바람을 이겨내는 봄의 소생을 기원하는 고대사회의 모습을 그는 계절의 권력교체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현상적으로 보면, 겨울은 자신의 주도권을 봄에게 넘겨주고 쓸쓸히 퇴장하는 듯 합니다. 패장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겨울은 봄을 잉태합니다. 그것은 겨울과 봄의 투쟁으로 파악되는 권력교체의 현장이 아닙니다. 겨울은 봄을 그 몸 안에서 낳고 길러 단련시키는 부모입니다. 봄은 그 겨울의 훈련을 달게 받고 지상에 나타난 자식입니다. 이젠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겨울이 되었지만, 봄은 그렇게 태어나고 완성되어 온 존재입니다.

 

사진/김승범

 

 

 

T.S. 엘리옷이 그의 시 <황무지>에서 이렇게 말했던 것은 단지 4월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의 시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읇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기억과 열망을 한데 섞어, 봄비를 그 뿌리에 뿌리며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지 않는가?”라고 말이지요. 4월의 잔인함은 정말 잔인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놀라운 생명력에 대한 극단적인 감탄입니다.

 

<황무지>의 첫머리는, 다르게 표현하자면 이전의 그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과 내일에 대한 열망을 하나가 되게 해 이제는 폐허가 되어버린 듯한 그 언 땅에서 꽃을 피워내는 계절의 힘에 찬사를 보내는 것입니다. 봄비가 내리면, 그 봄비의 따뜻한 체온이 땅 속에 가만히 숨쉬고 있던 라일락의 뿌리를 어루만지도록 해준다는 것입니다.

 

실로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생명의 춤사위는 저 땅 깊은 곳에서 이미 시작되어 있던 것입니다. 겨울은 그런 춤을 미리부터 추도록 만들어 준 공간입니다. 봄은 그 준비에 자신을 맡겨 자라온 생명의 몸입니다. 그 어떤 계절도 그래서 고맙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어버이는 겨울입니다. 지난 세월의 그 많은 고역과 어려움을 감당하면서 자신의 영혼과 몸 안에서 우리의 봄을 태어나게 해주신 분들입니다. 봄은 자기가 홀로 태어나 자기 힘으로 성장한 듯이 착각하기도 합니다. 권력의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봄은 모든 것이 제 세상인 줄로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계절의 은총에 대한 기본이 없는 존재의 무지입니다.

 

늙으신 부모님들은 모든 것을 내어주고 마치 헐벗은 나무처럼 서 계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쓸쓸함이나 아쉬움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자라게 한 기쁨의 증거입니다. 자신은 세상의 모든 찬바람을 맞고 서서 봄의 시간을 인내하셨던 것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주역인 봄은 그래서 지난 계절을 망각해버릴 수 없습니다. 그런 봄이 진정한 봄이 될 자격이 있을 겁니다.

 

김민웅/전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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