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결혼식



결혼식 주례를 하며 신랑 신부를 군(君)과 양(孃)이라 부르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면서도 왠지 군과 양이라는 호칭이 어색했고 미안하기도 했다. 


신랑 49세, 신부 46세. 늦을 대로 늦은 결혼이었다. 자칫 만남이 어렵지 싶은 나이에 두 사람은 우연히 그러나 기막힌 인연으로 만나 잡다한 상념을 털기라도 하려는 듯 이내 약속의 자리에 섰다. 


단강교회가 세워진 이래 교회에서 하는 첫 번째 결혼식이었다. 주일예배에 잇대어 잡은 시간, 그래도 흔쾌히 부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이도 연소하고 해서 원하는 분 있으면 주례자로 모시라 했지만 굳이 주례를 내게 부탁했다. 뜻밖의 부탁은 더욱 거절할 수 없는 법, 주례 부탁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사진/김승범


양가 가족만 모여서 단출한 식을 올렸음 했던 처음 바람과는 달리 적잖은 동네잔치가 되고 말았다. 예배가 끝나기도 전 동네 꼬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예배가 시작이 되자 하나씩 둘씩 동네 사람들이 늘어났다. 


가운데 통로를 비우고 이웃교회에서 빌려온 주단을 깔았다. 수국이 곱다랗게 피어난 화분과 온갖 수수한 들꽃이 꽂힌 꽃병이 제단 쪽으로 나란히 놓였다.


신랑 입장. 무뚝뚝한 표정으로, 경직된 걸음새로 성큼성큼 신랑이 들어왔다. 때때로 취한 모습, 헝클어진 모습에 익숙해진 사람이었지만 날이 날, 그날만은 말쑥한 신랑이었고, 표정도 한없이 진지했다. 


이윽고 신부 입장, 풍금 뒤 녹음기에서 울려 나오는 반주에 맞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신부가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신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때맞춰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걸음걸음마다 터져 나오는 박수와 환호. 이내 신부는 온통 부끄러움으로 가득하다. 때론 나이란 게 얼마나 잘못된 선입견인가. 


식이 모두 끝나도록 두 사람은 내내 떨었다. 쉽지 않은 자리, 쉽지 않은 만남, 홀로 먼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마음으로 새기는 거룩한 맹세, 내내 떨려 흔들리는 손끝 꽃송이들이 찬란한 햇살 속 흩뿌리는 눈보라처럼 아름다웠다. 


평생을 변함없이 사랑하겠노라,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고 약속을 했다. 그 약속 위에 손을 얹어 더뎠던 만큼 더 많이 사랑하시라고 축원을 한다. 출발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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