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드는 어두운 예감



작실 병직이 네가 이사를 갔다. 지난 여름 성경학교 연극 발표 시간엔 아합 왕 역을 맡아 참 멋있고도 씩씩하게 연극을 잘 했던 병직이, 병직이 네가 문막으로 떠났다.


설정순 집사님 내외가 떠난 것은 의외였다. 곧 환갑의 나이. 아무래도 떠나기엔 늦은 나이 아닌가. 그냥 내 논 부쳐도 남는 게 없는 판에 남의 땅 빌려 붙이려니 그 사정 오죽했으랴만, 두 사람이 이제 나가 무슨 일을 어찌 할까 짐작이 잘 안 된다. 빨갛게 잘 익은 산수유나무를 사이에 둔 아랫작실 양담말 앞뒷집이 모두 텅 비어 버렸다. 


며칠 있으면 종하 네가 이사를 간다. 팔십이 넘은 할머니 밑에서 살던 종하 종일이 종석이가 결국은 떠나게 됐다. 다 모여야 열 명뿐인 학생부에 종하, 종일이가 빠지면 그 구멍은 휑하니 클 것이다. 재워 주는 건 걱정 없으니 이사 가서라도 버스 타고 오라고, 보내기 아쉬운 교회 식구들은 거듭거듭 같은 얘길 하지만 그것 또한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사진/김승범


교회 옆집인 승학이 네도 망설이고 있다. 지난번 종설이 종숙이가 그런 것처럼 승학이 승혜 승호를 원주 시내로 내보내려는 것이다. 시내에 집을 마련해서 보내려 하는데 아이들만 보낼 수는 없고 할머니 할아버지께 부탁을 드리자니 노인네들 내쫓는 것 같아 쉽지 않아 망설이고 있다.


끝정자 연미 네도 떠난다는 얘기가 있다. 수원 인근에서 일을 하는 연미 아버지, 방이 마련 되는대로 떠날 모양이다. 그러면 연희 연미 연경이 경호 경민이도 떠나게 된다. 학교도 마을도 교회로 그만큼 비게 된다. 


밀려드는 어두운 예감.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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