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소원



어둠이 한참 내린 저녁, 아내가 부른다. 나가보니 작실에서 광철 씨가 내려왔다.


“청국장 하구요, 고구마 좀 가지고 왔어요. 반찬 할 때 해 드시라고요.”


그러고 보니 광철 씨 옆에 비닐봉지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데, 그 중 하나엔 허옇게 덩이진 청국장이 서너 개 담겨 있었다.


“청국장을 누가 했어요?” 


아버지와 광철 씨 뿐 청국장을 띄울만한 사람이 없다.


“제가 했어요. 그냥 했는데 한번 먹어보니 맛이 괜찮던데요.” 


사실 난 청국장을 잘 안 먹는다. 아직 그 냄새에 익숙하질 못하다. 그러나 광철 씨가 띄운 것, 비록 광철 씨 까만 손으로 만든 것이지만 그 정을 생각해서라고 맛있게 먹으리라 생각을 하며 받았다.

 

사진/김승범


식구들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고 보니 광철 씨와 편하게 얘기 나눈 지도 오래 되었다. 중학교 다니다 말고 도시로 나간 봉철이와 중학교 졸업하고 미싱공이 된 민숙이의 소식을 광철 씨는 더는 몰랐고, 바로 아래 남철 씨 소식도 몰랐다.


“뭐 덕은리에서 봤다는 사람도 있고, 부론에서 봤다는 사람도 있고, 큰 어머닌 충주에 가 있다구 하구요. 누구 말이 맞는 건지, 원.”


광철 씨는 남 얘기 하듯 동생 얘길 했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 그들이 한 자리에 모일 날은 언제인지, 그런 날이 있기나 할 것인지.


“일하러 가문요, 사람들이 자꾸만 저더러 그래요. 목사님께 자꾸 졸라서 장가 좀 보내 달라고 그래라구요.” 


광철 씨가 장가 얘기를 꺼냈다. 가만히 광철 씨를 바라보니 왠지 쑥스러운 표정이다.


“광철 씨, 장가가고 싶어요?” 


의외로 광철 씨 대답이 선뜻이다. 


“빨리 장가를 가야 빨래도 하고 밥도 짓고, 그리고 아들도 나을 텐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광철 씨 얼굴에 부끄러움과 진지함이 밴다. 어쩜 광철 씨는 동네 사람들을 핑계 삼아 자기 마음속 가장 깊은 소원을 이야기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34살 노총각 광철 씨. 하기야 결혼이 한 때의 동정이 아닐진대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가벼운 위로 삼아 건네는 말 뿐, 아무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지 못하는 결혼을 마음속 소원으로 갖고 있는 광철 씨.


광철 씨의 막연한 소원.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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