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언젠가 친구 차를 타고 그 거리를 지나본 적이 있습니다. 청량리의 뒷골목, 말로만 듣던 그 거리를 말입니다. 


영동고속도로는 밀릴 대로 밀려 있었고 개미 걸음으로 서울에 도착한 것이 늦을 대로 늦은 시간, 친구 집이 청량리서 멀지 많은 곳이긴 했지만 친구는 일부러 그쪽 길을 택했습니다. 뭘 모르는 촌놈에게 세상구경을 시켜주고 싶었던 것이었겠죠. 

 

                                                        사진/김승범


난 정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형형색색의 불빛과 반라의 여인들, 정말 그곳은 딴세상이었습니다. 구경 많이 하라는 듯 친구는 차를 천천히 몰았습니다. 


저들은 누구고 이 세계는 무언가, 짧은 시간이지만 생각이 마구 엉겼습니다. 골목 끝을 막 빠져나올 때였습니다. 뜻밖의 모습에 난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한 번 더 돌자!” 


짙은 화장에 가슴이 훤히 드러난 한 아가씨의 목에 십자가 목걸이가 걸려 있는 걸 보았던 것입니다. 반짝이는 십자가가 또렷하게 들어왔습니다. 한 바퀴를 다시 돌았을 때도 십자가는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난 그 일을 부끄러움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 그때 그가 십자가 목걸이를 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았는지, 왜 그곳에서 빛나는 십자가를 어색하게 여겼는지, 그런 내가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곳이야말로 십자가가 있어야 할 곳, 십자가를 필요로 하는 곳, 십자가를 옹색함으로 가둬두고 있는 나 자신을 부끄러움으로 마주해야 했습니다. 

-<얘기마을>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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