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사진, 그리운 사람들

꽃자리의 사람, 사람, 사람(4)

 

마음의 사진, 그리운 사람들

- 사진 작가 신미식 -

 

 

사진가는 사진으로 말한다. 서른이 넘어서 사진을 시작하고 100여 개 국을 여행하며 수만 가지 이야기들을 담아내는 신미식(53) 작가 역시 사진 너머로 수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도통 머물러 응시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통에 잃어버렸던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을, 그가 건네는 이야기, 카메라 앵글로 포착한 자연과 사람, 세상의 모든 ‘얼굴’들을 통해 다시 느낀다. 기쁘고 따뜻하고 아름답고, 또 슬프고 먹먹하고…. 마흔 둘부터 펴내기 시작한 사진집이 벌써 서른 권에 이르고,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셔터를 누르는 그를 갤러리 카페 마다가스카르에서 만났다.

 

 

 

 

                                사진 김승범

 

 

‘아프리카 사진가 신미식’

 

잡지사 디자이너였던 그가 사진을 시작한 건 회사 동료인 사진부장 선배가 사진 인화를 배워주면서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사진을 인화하던 당시에 그는 회사 암실에서 살다시피 하며 사진 인화를 배웠고, 회사 문이 닫히는 밤이면 아무도 없는 암실로 되돌아가 찍었던 사진들을 밤새 뽑고 또 뽑았다.

 

“사진이 너무 하고 싶었는데 당시 사진부장 선생님이 인화 방법을 알려줬어요. 사람들이 퇴근하고 회사 문이 잠기는 밤 시간이면 회사로 되돌아와 미리 복사해둔 열쇠로 암실 문을 따고 들어가서 인화 작업을 해보곤 했죠. 인화지가 비싸서 주로 회사에서 쓰고 남은 것들을 사용했고요. 집에 돌아가면 새벽 6시 정도였는데 한두 시간 정도 눈 붙이고 출근하기를 3년 했어요. 당시엔 필름 카메라여서 찍은 사진을 지울 수 없으니까 오히려 사진 한 장 한 장을 신중하게 찍었는데, 찍은 사진들을 놓고 암실에서 자세히 보면서 공부가 많이 됐지요.”

 

회사를 그만두고 떠난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펴낸 그의 책이 한국에서 사진 에세이집의 시작이었지만, 정작 그는 열세 권의 책을 내기까지 신용불량자 형편이었다. 집도 절도 없이 후배 창고에서 2년간 잠을 청하면서 새벽 인력 시장에서 막일을 뛰었고, 빚 독촉에 시달렸다. 전기가 끊겨서 한전에 찾아가 사정한 적도, 교회 나갈 차비조차 없던 때도 있었지만 말 그대로 “가진 거 다 내놓고 사진을 했다.” 하나 있는 카메라를 팔아서 연 첫 개인전시회에서는 사진이 팔리지 않아서 1년 간 카메라를 빌려서 사진을 찍었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했지만, 열세 권의 책을 내고 나서야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났어요. 주변 사람들에게는 일절 알리지 않았지만 전기까지 끊길 정도로 생활이 어려웠죠. 아침에 깨지 않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첫 전시를 열기 위해 카메라를 팔고서 전시 수입이 없어서 1년을 렌탈 카메라로 살았는데, 되레 그때 내가 무엇을 찍고 싶은지를 알겠더라고요. 늘 살던 동네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그동안 볼 수 없던 게 보이고, 마음속에서 구도가 다 잡혔지요. 늘 소유하고 있으면 할 수 없는 경험이지요. 내가 계속 아프리카 사람들, 아프리카 아이들의 사진을 아무렇지 않게 찍을 수 있는 것도 가난했던 생활 덕분일거에요. 그들을 마주했을 때 불쌍하지 않고, 그저 사람으로 다가왔으니까요.”





       

                                       사진 신미식

 

‘아프리카 사진가 신미식’이 될 수 있던 이유도 아프리카를 불쌍한 모습으로 ‘꾸미지’ 않아서일 거다. 그가 아프리카로 처음 떠난 시절, 아프리카 이미지가 ‘죽음의 가난’ 혹은 ‘기아’ 정도였던 때부터 지금까지, 스물일곱 번의 여행을 통해 사진으로 말한 이야기는 그곳 사람들의 삶의 풍경과 일상의 표정들이다. 우리와 같은. 특히 아이들의 수줍고도 생동감 넘치는 표정이 담긴 그의 사진에서는 우리에겐 없을 ‘아프리카의 낭만’도 상상하게 된다. 셔터를 누르는 그의 손가락은 꽤 오랜 세월 동안 이렇게 사람들의 편견을 서서히 벗기는 작업을 해온 것일까?

 

 

 

 

 

제2의 고향 에티오피아

 

지금은 기회 생기는 대로 찾아가는 아프리카, 그중에서도 에티오피아는 그에게 또 다른 고향이다. 열 번 정도 다녀오면서 귀국할 때면 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달 만에 또 찾곤 했단다. 그가 특히 에티오피아를 찾는 이유는 ‘그냥 좋아서다.’ 굳이 따지자면 두 손으로 악수를 청하는 문화나 다른 아프리카 사람들에 비해 옅은 피부색이 한국과 비슷하고, 에티오피아의 기독교 문화유산들이 친숙해서다. 게다가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마을은 동네 자체가 커피와 낭만이 있다. 아침이면 마당에서 커피를 볶는데, 아무리 가난한 집도 커피 끓이는 도구가 있고, 일종의 커피 문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가 에티오피아 사진 속의 사람들과 계속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특별한 목적 없이 만나는 이들의 작은 필요를 발견할 때마다 가능한 그 필요를 채워주면서.

 

“에티오피아는 워낙 익숙해진 곳이라 꼭 고향에 가는 것처럼 설레지만, 작업 의뢰 받아서 가는 게 아니면 이제 사진은 잘 안 찍어요. 고향에 들어설 때면 뭔가 마음은 ‘쨍’하지만 사진을 찍진 않잖아요. 본 고향보다 더 자주 가는데,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다주러 가거나 사람들이 보고 싶을 때 가요. 특히 예가체프는 동네 자체가 커피 향에 취해 있는 마을이고 어느 집이나 들어가게 되면 커피를 내려 줘요. 가난해도 넉넉함이 있고 일종의 커피 문화가 있죠. 거기서 사람들 사진을 찍어 주다가 사귀게 된 한 장애인 청년에게는 특별히 동생 같은 마음이 생겨서 필요한 집을 지어 준 적이 있어요. 만나러 갈 때마다 동생 만나는 느낌이에요. 에티오피아 수도에서도 차를 열 시간은 타고 가야하는 마을이지만 멀다는 생각은 안해봤어요. 거리는 마음의 거리잖아요.”

 

어쩐지, 신미식의 사진에는 보는 이들을 제압하려는 느낌보다는 편안함이 있다. 피사체와 사진가의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서일까. 그에게 사진은 ‘예술 작품’이 아니다. 어떤 의도적인 장치 없이 흘러가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자유롭게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도 누군가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사진을 찍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그를 알아본 독자가 사인을 청했다.

 

“사진가는 예술가가 아니에요. 그야말로 숟가락만 얹은 거죠. 하지만 사진가는 사진가로 충분해요. 예술가가 되는 건 재미도 없고요. 사진가가 카메라로 담으려는 자연 그 자체가 예술이고, 그 자연을 만든 이가 예술가죠. 물론 어떤 사진이 누군가에게는 예술로 받아들여질 수는 있어요. 사진이 멋있어 지는 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때죠. 누군가 저를 찾아와서 너무 만나고 싶었다면서 악수를 청할 때, 그럴 때 제 일에 대해 보람을 느껴요. 글 쓰는 사람도 그렇잖아요.”

 

곧 그의 책이 또 나온다. 에티오피아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120장으로 추려서 묶는 작업으로, 딱 서른 번째 책이다. 이번 달 14일로 잡혀 있는 에티오피아 가족사진전 작가와의 대화에 맞춰 출간한 사진집을 들고 15일 다시 에티오피아로 떠났다. 언제나처럼 책은 거의 다 만든 채로 출판사로 넘기고, 제작비로 일체 부담한다.




                                        사진 신미식

 

지금 그에겐 새로운 꿈이 또 하나 있다. 포토아카데미 하우스를 만들어서 그 안에 도서관도 짓고, 여행자들이나 사진가들이 편히 쉴 수도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 언제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계속 꿈꾼다. 생각해 보면 그가 사진을 시작할 무렵에도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고, 공동 운영으로 시작한 갤러리 카페 마다가스카르도 우연한 기회에 어려운 조건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8년째다. 어차피 “꿈이 꼭 이루어 져야 해서 품고 있는 것도 아니다. 꿈꾸는 것 자체가 좋다. 꿈이 있는 한은 청춘이다.”

 

‣ 에티오피아 가족사진전이 ‘사진 공간 배다리’에서 있습니다. (2015.3.13~4.1)

 

오지은/ 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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