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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마지막 5분

by 한종호 2020. 12. 26.

한희철의 얘기마을(184)


마지막 5분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우리 몇몇 친구들은 학교 도서실에 남았다가 늦은 밤 돌아오곤 했다. 학교 진입로는 꽤 긴 편이었는데 길을 따라 켜진 가로등 불빛이 참 좋았다. 우리는 그 길을 걸으며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했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루는 친구가 내게 물었다. 죽기 5분 전에 회개해도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는 거냐고. 수원 유신고등학교는 기독교 계통의 학교였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예배를 드렸는데, 아마 그날 설교의 내용이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난 친구의 질문 앞에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대답을 했다.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귀찮고 신경 쓰이게 하나님을 믿느니 그냥 맘대로 살다가 죽기 5분 전에 살아온 모든 죄를 회개하고 싶다고, 그래도 되지 않겠냐고 했다. 


이제쯤 와서 생각해 볼 때 친구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대답이 있다. 생의 마지막 5분, 우리는 그 시간을 계산해 낼 수 없다. 마지막 5분의 시간은 언제 찾아올지 아무도 모르는, 우리가 정해서 가질 수 없는 시간인 것이다.


마지막 5분을 스스로의 것으로 여기는 것은 어리석음이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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